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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사랑사람의 서재

하늘을 등지고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전쟁·밀리터리

방구석4평
그림/삽화
lovendpeace
작품등록일 :
2019.12.26 00:03
최근연재일 :
2022.08.09 01:45
연재수 :
277 회
조회수 :
27,394
추천수 :
1,600
글자수 :
1,201,430

작성
22.07.25 23:33
조회
23
추천
2
글자
8쪽

Episode275_최초의 악수

DUMMY

지금껏 느껴지던 무수한 의식들이 일시에 사라졌다.


그로 인해 사라는 마음 속에서 커다란 빈 공간을 느낀다. 알았건 몰랐건, 미우나 고우나 이제껏 함께해온 알 수 없는 존재들. 마귀들의 기척이 더는 느껴지지 않는다.


창 속의 마귀들은 전부 버스터 키트의 심층으로 떠나갔다. 그곳의 동족들을 잠재우기 위한, 피할 수 없는 영겁의 이별이었다.


인간에게 몹쓸 짓을 당한 두 집단의 마귀들, 하려고 든다면 정말 언젠가 사라가 예측했듯이 인간을 멸망시킬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마귀가 선택한 것은 복수가 아닌 체념. 이제 인간에게 그만 휘둘리자며. 다시 잠들어 언젠가 다시 만날 날을 기다리자는 직설적인 호소 하나.


서로간의 의사와 마음을 확인한 그들은 서로 별다른 이상이나 분쟁 하나 없이 스스로를 어둠으로 파묻었다.


오는 길이 험했을 뿐, 모든 설득과 이해는 그들 스스로도 놀랄만큼 간단히 끝나버렸다.


이제 증오의 목소리나 외침은 더는 들리지 않았다. 그들의 마음으로 전달되는 풍광은 공허함 그 자체. 자신 외에는 들리는 것도 보이는 것도 없다.


순식간에 모든 것이 끝나버린, 허무할 정도의 공허함.


그 어느 때보다 자아를 강하게 인식하게 되면서, 사라와 하온의 의식이 현실로 끌어당겨진다.



***



눈을 뜨자마자 우레와 같은 함성과 고함이 쏟아진다. 해일처럼 덮치는 전쟁의 북소리, 싸움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지나치게 시끄러워 도리어 잠잠함을 느낄 정도의 난리 속에서, 사라는 자신이 쥔 길고 빛나는 창자루를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그녀의 은창에서는 이제 그 어떤 영혼의 흔적도 찾아볼 수 없다. 마귀들은 사라졌다.


무한동력장치는 완전히 기능을 정지했다. 다만 그들이 놓고 간 원한의 잔재는 어렴풋이 남아, 무시무시한 힘을 끌어안은 채 침묵을 지키고 있다.


따라서, 지금껏 마귀의 원혼에 동조했던 버스터 키트의 의지는 일시에 사라져버린 것이다.


반역자들을 뒤에서 습격하려던 브릭 박사 역시 버스터 키트로부터 해방되었다.


마귀에 의해 변형된 팔의 칼날은 다시 부드러운 손의 형태로 되돌아갔고, 힘껏 내지른 주먹은 사라의 근육에 부딪혀 손목이 꺾여버렸다.


맥없이 나가떨어지는 브릭. 힘 하나 믿고 미쳐 날뛰던 자였으니, 힘이 없으면 한낱 광인에 불과할 뿐이다.


브릭 뿐이 아니다. 버스터 키트로부터 솟아난 오만가지 가지와 팔, 뿔, 손, 촉수들이 슬금슬금 줄어들며 모습을 감추었다. 처음부터 이 전장에는 무엇도 없었다는듯이 시침을 떼는 듯 했다.


그 밑에서 인간과 돌가죽은 농성전을 벌이고 있었다. 끝내 꼭대기에 도달한 반역자를 중심으로, 인간은 인간대로 돌가죽은 돌가죽대로 조금이나마 승리를 끌어모으려 안달이 난 것이다.


구체 하나만 덩그러니 남은 버스터 키트를 둘러싸고, 남은 장작을 다 불태우려는 저들의 열기.


이 폭력을 멈춰야만 했다. 창자루를 꼬옥 쥔 채 하온은 생각했다.


이제 버스터 키트의 의지는 사라졌다.


그의 밑에 깔린 저 장치는 이제 모든 목적이 사라진 단순한 에너지원에 지나지 않는다. 사라의 은창 역시, 마귀는 사라진 채 힘만 들어찬 껍데기일 뿐.


그리고 그 주도권을 지닌 것은, 중심과 가장 가까우며 명백히 손을 접촉하고 있는 사라와 하온.


결국 이런 방식으로 끝맺는다는 것에 실소를 터트리며, 하온은 눈을 감았다.


다시금 빛나는 무한동력장치의 핵 안에 자신의 의지를 새로이 불어넣었다. 마지막으로 발동한 두 개의 기적은 파괴와 치유의 힘.


광범위한 파괴의 기적이 그들이 딛은 지면 심층에서 발동되며, 거대한 진동이 협곡을 뒤흔들었다. 폭발력을 견디지 못한 대지가 찢어져 두 동강이 났고, 갈라진 땅이 돌가죽과 인간의 거리를 벌리며 더는 맞붙지 못하도록 했다.


그 직후 스며드는 치유의 기적이 흔들리던 대지를 굳어지게 해 지진을 멈추었고, 피흘리며 죽어가던 모든 생명에게도 퍼져나가 상처를 메꾸고 고통을 앗아갔다.


서로 모순되는 두 아이러니한 힘은 이제 무한동력장치의 힘을 온전히 받아, 그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절대적 권능으로 기능했다. 이제껏 존재했던 그 어떤 인간도 지금의 하온보다 더 강한 권력을 거머쥔 적은 없으리라.


방아쇠를 쥔 것은 하온. 그리고 그제서야, 하온이 처음부터 부르짖던 그의 호소는 마침내 거스를 수 없는 무게를 가지게 되었다.


“...이번에야말로 마지막 기회입니다!”


하온의 일갈과 함께 일시에 전장이 침묵했다.


“전쟁은 끝입니다. 이제부터 그 누구도 서로를 향해 선을 넘어선 안됩니다!”


아무리 악을 질러도 묻히던 그의 말과 단어 하나하나가, 지금은 모두를 쥐죽은 듯 고요하게 억누르고 있다. 이제 하온의 언어는 이 협곡의 새로운 법전이나 다름없는 셈이다.


“만일, 어느 한쪽이 창칼을 들이대려 한다면··· 하온과 사라가 그 침략자의 반대편에 설 것입니다.”


더구나 지금 하온이 가진 힘을 생각하면, 이보다 더 두려운 협박 내지 형벌도 없을 것이다.


반역자들의 일방적인 통보는 무수한 불만을 낳았다. 당연히 얻어야 했을 승리를 코앞에서 빼앗긴 인간은 말할 것도 없다. 나라님의 기적술사들은 하나같이 험악한 얼굴을 붉히고, 분을 못이긴 채 몸을 떨고만 있었다.


다만 그들을 이끄는 대장군 수나만이, 미련없이 결과에 승복하며 자신의 패배를 인정할 뿐이다.


“...됐다. 모두 싸움을 멈춰라. 우리가 진거다.”


어안이 벙벙한 것은 돌가죽도 마찬가지였다. 갑작스레 조용해진 전장도 전혀 적응되지 않았으며, 차라리 싸움으로 산화되는 편을 원하는 이들도 있었다.


개중엔 하온이 반역자답게 모든 인간을 묵사발내고 황궁에 진격하리란 상상을 한 돌가죽도 있었는지, 난데없이 중립을 지키는 모습에 어안이 벙벙한 표정도 보였다.


소극적이지만 서서히 끓어오르는 불만과 미련들, 하지만 벼락처럼 내리치는 두령의 명령에 모두 다시 입을 다물었다.


“모두 이제 멈춰라!! 더 이상 패배 뿐인 전쟁을 계속할 필요는 없다!!”


마크는 버스터 키트의 앞에 대검을 꽂아 세우고, 모든 부하의 눈 앞에서 외쳤다. 그로부터 그대로 시선을 들어올리면, 시체처럼 가만히 곤두서있는 하온과 사라의 모습이 보인다.


“이들의 말을 들어라, 남은 너희의 목숨이라도 지키기 위해 이렇게까지 싸워오지 않았나!”


마크도 굴복을 선언했다. 수나의 패배선언에 함께 화답하는, 전쟁의 끝을 고하는 음성이다.


“하온의 뜻을 거스르고, 사라의 화해를 받지 않는 자는, 그게 누구라도 내가 용서치 않겠다!!!”



***



협곡은 유래없이 잠잠한 그대로였다. 마침내 살육이 끝났다. 전쟁은 끝을 고한 것이다.


하온은 버스터 키트의 꼭대기에 서서 그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오직 이 순간을 위해 여기까지 달려온 것이다. 비로소, 양 집단이 주먹을 거두고, 두 종족은 악수를 청하며 화해의 손길을···


그 즈음에서 하온은 피식 웃음이 나와, 하던 생각을 멈추고 씁쓸히 중얼거린다.


“...아니지, 이건 화해라고는 할 수 없겠지···.”


전쟁의 결말은, 반역자 둘의 완전한 승리였다.





ㅡ<하늘을 등지고>3부, ‘하늘과 땅의 이별곡’ 완ㅡ


작가의말

다음 화에서 최종막 4부가 시작됩니다.
...겁내지 마세요. 3부랑은 비교도 안되게 짧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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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7 Episode276_시대는 변한다 +3 22.08.09 49 2 9쪽
» Episode275_최초의 악수 +1 22.07.25 24 2 8쪽
275 Episode274_눈물과 위안으로 22.07.21 32 2 8쪽
274 Episode273_비상 +1 22.07.12 26 2 9쪽
273 Episode272_추락 +2 22.07.04 27 3 8쪽
272 Episode271_지각과 각성(4) +2 22.06.27 32 2 7쪽
271 Episode270_지각과 각성(3) 22.06.13 36 2 7쪽
270 Episode269_지각과 각성(2) 22.06.04 27 2 7쪽
269 Episode268_지각과 각성(1) +1 22.05.31 26 2 10쪽
268 Episode267_혜성 충돌(6) +2 22.05.18 40 2 8쪽
267 Episode266_혜성 충돌(5) +2 22.05.17 41 2 10쪽
266 Episode265_혜성 충돌(4) 22.05.15 34 2 8쪽
265 Episode264_혜성 충돌(3) 22.05.10 75 2 8쪽
264 Episode263_혜성 충돌(2) 22.05.03 28 2 8쪽
263 Episode262_혜성 충돌(1) +4 22.04.22 44 3 8쪽
262 Episode261_고요한 역습 22.04.20 91 2 9쪽
261 Episode260_미래의 아이들(2) +2 22.04.18 61 2 8쪽
260 Episode259_미래로의 일발(3) +2 22.04.15 27 4 9쪽
259 Episode258_미래로의 일발(2) 22.04.08 43 5 7쪽
258 Episode257_미래로의 일발(1) +2 22.04.05 38 4 9쪽
257 Episode256_최후의 전쟁(5) 22.03.29 34 3 7쪽
256 Episode255_최후의 전쟁(4) +2 22.03.26 53 3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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