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isode262_혜성 충돌(1)
그 남자는 여전히 단단하고 각진 육체 위로, 온 몸에 거적때기를 두른 채 세상에 다시 나타났다.
두 팔에 감긴 쇠사슬이 맹렬히 흔들린다. 옆에서는 거대한 무게추가 고속으로 공전하며 더 광대한 원반을 형성한다.
그 추를 번갈아 던져 그 반동에 몸을 맡기며, 온 땅 위에서 가장 강한 인간, 용운이 성큼성큼 전장 한복판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용운이다!!"
"용운 대장군님이시다!!!!"
"이겼다!! 용운 대장군님이 전선에 돌아오셨다!!!"
"승리의 철구가 우리와 함께한다!!!"
사방에서 시끄럽게 울리는 인간들의 환호소리, 응원과 함성이 협곡을 가득 메운다. 할 말을 잃은 돌가죽들의 탄식과 침묵은 거기 밀려 조용히 묻히고 만다.
“전방에 용운 출현! 탈옥한 용운이 출현했다! 비상사태, 비상사태-!!!”
뒤늦은 몇몇의 보고 내지 절규만이 맥없이 전장에 울려퍼질 뿐, 이미 두 눈으로 확인한 돌가죽들에게 있어 이는 단지 확인사살에 불과하다.
도대체 무슨 수로 여기까지 왔는지, 감옥에 갇혔다는 소문은 뭐였는지 등등 의문은 한두가지가 아니었지만, 대부분은 그저 절망하건 희망에 미쳐 날뛰건 둘 중 하나의 태도로 일관했다.
그 와중 수나만은 딱히 놀란 기색이 없다. 팔짱을 끼고는 아주 여유롭게 그의 모습을 관찰하고 있다.
용운도 그리 놀랍지는 않았다. 그녀는 이미 알고있었을터다.
***
"엿이다, 맛있게 처먹어."
한 달 전, 용운이 괜한 고집으로 아직 철창 안에 처박혀있을 적이다.
그 날도 여느때와 같이 수나가 갑작스레 쳐들어왔고, 알다가도 모를 말을 하며 퀴즈를 맞춰보라고 냅다 대답을 강요했다.
그 보답으로 건네주었던 크고 비싼 엿 한 덩어리를 마지막으로, 그녀는 그대로 전쟁터로 떠나버렸다.
그녀가 권한 대로 천천히 엿을 아껴 먹다가, 안에서 느껴지는 딱딱한 감촉을 발견하자 용운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단단히 굳은 이 설탕반죽 안에, 난데없는 흑광석 하나가 반지에 박혀 숨겨져있는게 아닌가.
그렇게 용운은 팔자에 없던 시험에 들고 만 것이다.
그 반지를 두고 그는 한참을 생각했다. 낮에도, 밤에도, 사흘이 지나고 나흘이 지나도 계속 고민했다.
탈옥 자체는 문제가 아니었다. 이후 찾아올 형벌과 뒷감당 역시 각오한다면 감당할 수 있었다. 다만 고민인 것은 그게 옳냐 그르냐의 문제다.
이대로 감옥을 나간다는건 말도 안되는 일이다. 용운이 모든 영광과 성공을 포기하고 굳이 이곳까지 틀어박힌 명분이 통째로 뒤집히는 것이다.
고작 그 '정당한 법' 하나를 지키기 위해 틀어박힌 용운이, 탈옥과 반역이라는 무엇과도 견줄 수 없는 범죄행위를 저지르는 셈 아닌가?
더 많은 시간이 흘렀다. 마침내 용운은 결단을 내렸다.
만일 그 혼자였다면 끝까지 고민하다 결국 정답을 외치길 포기했을지도 모른다. 이제까지 쌓아온, 피해받은 것에 대한 보상심리로 지금이 옳다며 반지를 외면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마지막 만남에서 들었던 수나의 이야기가, 그녀의 조언 하나가 목구멍에 박힌 가시처럼 끊임없이 그를 괴롭히고 잊지 못하도록 상기시켰다.
'그러니까 너도 이제 그만 고집부려. 원리원칙도 좋지만, 몇 달 전의 너도 좀 본받아보란 말이야. 그땐 네가 좀 더 융통성이란게 있었는데 말이지.'
결국 용운은 그녀의 선물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제 손가락에 반지를 끼운 채, 한번 더 스스로의 결단을 번복한 것이다.
다음 날, 감옥을 지키던 간수들은 다시는 잊을 수 없는 모습을 눈 앞에서 목격했다.
용운이 있던 감옥이 말 그대로 통째로 기울어졌다. 그가 수감된 이 건물 전체를 자신의 기적으로 가볍게 만들더니, 있는 힘껏 들어올려 지면과의 틈을 벌리는 게 아닌가.
구덩이를 파는 것도 아니고, 벽에 구멍을 뚫는 것도 아닌 이 참신한 탈옥법에 대고 간수들이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입을 벌린 채 경악하는 것 뿐이었다.
용운이 그렇게 유유자적 감옥을 나간 뒤의 경황은 이렇다. 용운과 함께 1층에 있던 수십명의 범죄자가 함께 탈옥을 하였고, 도망친 용운을 잡으러 또 수십명의 간수들이 그에게 달려들었다.
용운은 먼저 애꿎은 간수들이 다치지 않도록 그들을 적당히 손봐주었고, 곧장 탈옥한 죄수들을 향해 내달렸다.
5분간의 소요 이후, 죄수들은 물리적으로 얌전해진 채로 순순히 용운에게 인도되어 쇠사슬에 줄줄이 구속되었다.
이후 용운은 달렸다. 달리고 또 달렸다. 온 몸을 한껏 가볍게 하고, 방방 뛰고 또 뛰며 자신의 집으로 향했다.
몰래 창문으로 들어가 자신이 아끼던 무기를 꺼낸 뒤엔, 도로 뛰쳐나가 사슬을 빙빙 돌리며 그 관성에 자신의 무게를 맡겼다.
수나가 정확히 어디에 있을지는 알 수 없다. 다만 베르디 남부를 향한다는 그녀의 발언에 근거해, 움직이는 구름기둥의 소문을 따르며 투르나를 가로질렀다.
그래, 가주마. 용운도 이제 결심했다. 무엇보다 수나가 그를 부르지 않았나. 그녀가 준 반지를 소중히 끼워두고는, 용운은 있는 힘껏 발을 내딛고 하늘로 날아올랐다.
***
용운이 마침내 하늘로부터 내려앉아 착지했을 때, 그곳에 있는 모두가 환호성을 지르며 열광했다.
용운의 바로 앞에는 수나가 있었고, 그녀는 팔짱을 낀 채 빈정거리는 투로 그를 맞이한다.
“생각보다 훨씬 늦었군, 감옥에서 평생 썩을 것처럼 굴더니?”
“...덕분에 정신을 차렸어. 고맙다.”
이에 전혀 아랑곳않는 용운의 감사인사에, 수나는 눈을 동그랗게 뜨곤 의외라는 듯 대꾸했다.
“뭐가?”
“네 말대로 그건 고집이었다. 저들의 방식에 매달려서 순수함에 집착하고 있었던 거였어. 그런 건 내 최선을 다한 선택이 아냐.”
“그럼 지금 하는 짓은 옳은 판단이고?”
사근사근 따져드는 수나의 물음에 용운은 부드럽게 미소를 지었다. 이번 질문에는 자신있게 대답할 수 있었던 덕이다.
“감옥 안에서 썩는것보다 나을지 확신이야 할 수 없지. 하지만 최소한 나 스스로의 힘으로 고민해서 나온 판단이다.”
"그래서··· 어느 쪽 편에 서기로 했는데?"
칼자루를 쥔 나라님이냐, 칼끝에 찔린 돌가죽이냐?
용운은 대답하지 않았다. 피차 서로 정답은 알고있으니, 수나도 눈 딱 감고 가볍게 넘어가기로 했다.
"그럴 줄 알았지."
감긴 눈을 뜨자마자, 수나의 입에서 벼락같이 불호령이 떨어진다.
"호위조, 공격!!"
그녀의 말에 반사적으로 창을 뻗어오는 네 명의 전사들, 내 갈래의 공격이 용운을 향해 날아든다. 그러나 그 습격 중 목표물을 지나친 것은 단 하나도 없다.
서로 부딪히고 꼬인 창들 위로, 어느새 하늘높이 뛰어오른 용운이 여유로운 미소와 함께 그들을 관망한다.
수나도 마찬가지로 미소를 지어주었다. 비꼼도 한가득 담아 외쳤다.
"고맙다, 싸워줘서! 이제 나도 망설임 없이 싸울 수 있겠어!"
반면 용운은 한껏 멋부리고 진지한 대꾸로 돌려준다. 유머란게 없는 친구다.
“무엇이 옳을지는 하늘이 결정할 일, 그러니 나는 최선을 다할 뿐이다!”
그렇게 멀어지는 용운의 실루엣을 뒤로하고, 수나는 다시금 칼을 휘두르며 외쳤다. 잔뜩 들뜬 나라님의 군세에게 있는 힘껏 찬물을 붓는 한마디였다.
"전군ㅡ!!! 현 시간부로 용운은 반역자와 동조한, 우리의 공격대상이다!! 온 힘을 다해 저지하라!!!"
- 작가의말
복구하자 연재주기
다음 화도 잘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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