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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사랑사람의 서재

하늘을 등지고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전쟁·밀리터리

방구석4평
그림/삽화
lovendpeace
작품등록일 :
2019.12.26 00:03
최근연재일 :
2022.08.09 01:45
연재수 :
277 회
조회수 :
27,416
추천수 :
1,600
글자수 :
1,201,430

작성
22.07.04 22:32
조회
27
추천
3
글자
8쪽

Episode272_추락

DUMMY

하온의 흑광석이 소멸되는 동시에, 전장 전체를 뒤덮는 폭음이 땅의 모래를 진동시켰다.


발생되는 충격파가 하온의 심장을 뒤흔든다. 이젠 그 무엇도 보호해주지 못하는 청년의 몸이 힘없이 지면으로 고꾸라졌다.


의식을 잃은 하온은 이제 들개 앞의 썩은 고기나 마찬가지, 굶주린 야수들이 입맛을 다시고 있다. 지금은 초토화 수준인 기적술사들이래도, 조금만 힘을 회복한다면 즉시 그의 숨통을 끊어 전장을 뒤엎을 저력이 남아있었다.


그러나 군중 틈을 헤치고 튀어오른 굳센 다리, 추락하는 그의 신체를 잡아채는 억센 팔이 하온을 단단히 붙들어맨다.


그 구원의 정체는 용운이다. 몸을 한껏 가벼이 해 필사적으로 근육을 움직이며, 적들의 속박을 떼어내려 하늘을 마구 누빈다.


“하온! 일어나라, 내 흑광석을 써서 회복해!”


끌어안은 청년의 귀에 대고 외친 호소는 안타깝게도 전해지지 않았다. 하온의 의식은 깊은 바다에 가라앉은 듯 먹먹한 장벽에 가로막혀 있다.


기절로부터 깨어날 때까지 버틸 수 있을까? 용운의 몸 전체를 뒤덮은 식은 땀이 긴장에 의해 다시 데워진다. 솔직히 말해, 그에겐 불가능했다.


어떠한 무기도 쥐어지지 않았으며, 모든 권력은 감옥 안에 두고 도망쳤다. 버스터 키트의 힘도 받지 못했다. 이젠 맨몸뚱이 하나가 가진 것의 전부인 비루한 신세다.


그럼에도, 몸뚱이 하나라도 아직 바칠 것은 있었다.


용운은 하온을 들쳐멘 채 온 전장을 누볐다. 하늘 위로는 버스터 키트의 촉수가 기나긴 직선을 그으며 뻗어나갔다. 요동치는 번갯불처럼 여러 갈래로 나뉘며, 하온의 추락을 자축하듯이 말이다.


저 거체 앞에서 돌가죽들의 보호망 따위는 두부벽에 불과하다. 하온 스스로의 보호를 잃은 순간부터, 이 전장 위에 안전한 장소라곤 존재치 않는다.


만일 그가 살아남을 수 있는 단 하나의 공간이 있다면···


그건 사라의 옆이다. 용운은 알 수 있다.


“하온ㅡ!!!!!”


이 혼란한 전장의 어딘가에서 사라도 하온을 부르고 있다. 폭음과 고함과 절규가 내리치는 가운데서도, 그녀의 목소리만은 이토록 또렷하다. 사라의 신호가 인도하는 방향을 바라보며 용운은 웃었다.


“봐라. 역시 너희 둘은 뭔가가 있다니까.”


힘껏 발을 내딛는다. 군중을 뛰어넘어 다시 한번 하늘로 솟구친다. 동시에 모든 적이 그를 주시한다.


사라 역시 그 모습을 보았다. 있는 힘껏 달리고 시체더미를 헤치며 손을 뻗는다.


몰려드는 적의 증오, 짖어대는 개들의 돌진신호. 저 뻔뻔한 행태를 보아라! 저 가증스런 눈빛을 없애라!


날아오는 빛의 화살, 심장을 찌르는 가시철사, 매 공격 하나하나에 죽음을 가까이 느낀다. 용운은 품에 끌어안은 하온을 뒤에 숨긴 채, 모든 죽음을 제 몸뚱이로 대신 받아들인다.


끝내 그를 스친 공격이 용운의 몸 전체에 퍼지는 통증으로 변해 파고들었다. 그만한 강철의 의지라도 격추시킬만큼 끔찍한 고통, 고작 몇 초만에 용운은 하온을 놓치고 맥없이 지면에 추락한다.


떨어지는 하온을 위로 두고 사라가 두 팔을 벌린다. 마침내 도달했다, 다시금 둘은 만났다.


만난다면 어떻게든 될지도 몰라, 사라도 그런 막연한 희망만을 품고있을 뿐이다. 대체 무엇이 희망이 되어줄지는 알 수 없지만, 지금에 와서 뭘 더 할 수 있을지도 알 수 없지만···


서서히 가까워지는 하온의 모습, 사라의 얼굴에 상황에 어울리지 않는 미소가 떠오른다.


그러다 마침내 둘의 살결이 닿았을 때, 승리의 윤곽이라 믿었던 것의 감촉이 느껴졌을 때.


그제서야 사라는 자신을 향해 손을 뻗은 수 명의 기적술사를 보았다. 그들에게 힘을 보태는 다른 기적술사의 따끔한 시선도 느껴졌다.


적들의 그 손바닥이 일렁이는 기류를 낳고, 곧 살의를 품은 파동이 급격히 기세를 더한다.


눈 앞을 가득 메울 정도의 거대한 격류가 막대한 광채를 머금은 채 질주한다.


그 경로 앞에 놓인 모든 혁명군과 반역자들이 느끼기를, 이번 파도는 도무지 넘어설 수 없을 것만 같다. 격류를 정면에 둔 자들은 곧 찾아올 죽음이 두려워 눈을 꽉 감는다.


그 흐름을 앞두고 가장 먼저 튀어나온 것은 돌가죽 한 마리였다. 흉터가 가득한 사루비가 나서서 하온과 사라를 그 품에 감싼다.


억세고 단단한, 사루비의 등이 공포에 젖은 사라의 눈을 가려주었고, 그 뒤를 따라 다른 돌가죽 십수마리가 저마다의 이유를 가지고 함께 그들의 방패가 되어주었다.


증오에 의한 삶과, 자포자기에 의한 가림막, 정의를 각오한 고깃덩이, 영광으로 삶을 끝마치려는 돌가죽이, 하온과 사라를 감싸고 고기방패를 자처했다.


그들의 가장 가까이에서 사라의 눈망울을 마주한 사루비.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말을 조심스레 그녀에게 꺼낸다.


“하온, 사라! 지금까지 잘 버텨줬다···!”


동시에, 격류가 그들의 등에 부딪힌다.


“그러니까··· 죽으면 안돼···!!!”


몰아치는 파열. 굉음이 한계를 넘어서며 침묵이 되었다.






모든 것이 휩쓸려간다.


부서지는 흙뭉치, 떠밀려간 시체들, 곱게 흩어지는 철가루들.


적들은 사라와 하온의 주위를 감싸는 모든 것을 날려버릴 작정이다. 그들이 발을 딛고 서있는 이 부근의 대지가 그 죄로 인해 매섭게 할퀴어진다.


모든 것을 휩쓸어간다. 동료도, 작전도, 의지도···.


그 가운데, 굳세게 뭉친 십수명의 돌가죽들이, 서로 얽히며 형성한 자그마한 모래성 하나가 이 파도 사이에서 유일하게 형체를 남겨두고 있었다.


모래성은 밀려오는 파도마다 서서히 무너져간다. 또다른 돌가죽 하나가 부스러진다. 또 하나, 파도에 휩쓸려가는 몸뚱이가 또 하나···


희망을 지키는 껍데기가 하나하나 벗겨지고, 견고해보이던 형태도 어느덧 빈약한 뼈대만 간신히 붙어있다.


이제 남은 것은 가장 깊숙이에서, 가장 처음으로 그들의 몸을 감쌌던 돌가죽 하나. 사루비는 끝까지 동료의 곁을 지켰다.






마침내 격류가 그치고, 침묵이 사그라들며 이명을 남긴다.


엉망으로 패인 지면 위에는 오로지 셋의 실루엣만이 꼿꼿이 서있다.


그들이 버스터 키트에 닿기까지 남은 거리는 고작 몇십걸음.


그러나, 사라도 사루비도 이젠 단 한 걸음도 나아갈 수 없다.


사루비의 몸뚱이가 기울어지며 쓰러진다. 의식은 이미 잃은지 오래였다. 털벅 하는 소리만 허무하게 지면에 울린다.


사라도 마찬가지다. 이미 상처로 가득했던 그녀의 몸은 방패의 틈새로 새어나오는 강한 파동을 이겨낼 방도가 없었다.


다리가 서서히 기울어진다. 본래라면 맥없이 지면에 부딛혔을 터인데, 그녀의 몸을 받아주는 것이 있었다.


그 비루하고 믿음직한 감각에, 사라는 마저 못 지은 미소를 얼굴에 띄우며 조용히 눈을 감았다.


자신에게 무게를 맡긴 사라를 안아든 채, 청년은 아직 두 다리를 딛고 일어서있다.


하온이 여전히 전쟁터 위에 남아있었다.






이제 눈 앞의 그 누구도 이 청년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는 맨몸뚱이다. 모든 능력을 잃고 반송장이 되어 비틀대는 허수아비다.


정신을 되찾았다 해서 만신창이인 몸이 나아지는 것도 아니다. 여전히 몸 전체를 쑤시는 격통에 이젠 비명을 지르는 것조차 지칠 지경이다.


하온은 묵묵한 태도 그대로 사라의 몸을 짊어진 채, 그녀의 팔을 제 어깨에 두르며 자세를 고쳤다.


그리고 발을 한번 내딛어본다. 버스터 키트는 더는 멀리 보이지 않는다. 남은 거리는 몇십걸음··· 영원과도 같은 거리 고작 몇십걸음.


“안 죽어··· 사라, 우린 절대 죽지 않는다···!”


피에 젖은 다리는 떨리고, 부러진 팔은 대롱거리고, 찢어진 살갗을 맞댄 채 처참하게도 움직인다.


“난, 모두와··· 사라와 함께 살거야, 누구도 여기서 죽을 수는 없어···!!!”


작가의말

다음 화도 잘 부탁드립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2

  • 작성자
    Lv.54 Jy2315
    작성일
    22.07.09 10:15
    No. 1

    잘보고가요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17 방구석4평
    작성일
    22.07.12 01:00
    No. 2

    언제나 함께 해주시니 정말 감사드립니다. 꼭 주간연재인 마냥 뻔뻔히 업로드하는 제 모습이 부끄럽습니다. 한 회라도 더 연재 주기를 끌어올려야...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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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6 Episode275_최초의 악수 +1 22.07.25 24 2 8쪽
275 Episode274_눈물과 위안으로 22.07.21 32 2 8쪽
274 Episode273_비상 +1 22.07.12 26 2 9쪽
» Episode272_추락 +2 22.07.04 28 3 8쪽
272 Episode271_지각과 각성(4) +2 22.06.27 32 2 7쪽
271 Episode270_지각과 각성(3) 22.06.13 36 2 7쪽
270 Episode269_지각과 각성(2) 22.06.04 27 2 7쪽
269 Episode268_지각과 각성(1) +1 22.05.31 26 2 10쪽
268 Episode267_혜성 충돌(6) +2 22.05.18 40 2 8쪽
267 Episode266_혜성 충돌(5) +2 22.05.17 41 2 10쪽
266 Episode265_혜성 충돌(4) 22.05.15 34 2 8쪽
265 Episode264_혜성 충돌(3) 22.05.10 75 2 8쪽
264 Episode263_혜성 충돌(2) 22.05.03 28 2 8쪽
263 Episode262_혜성 충돌(1) +4 22.04.22 44 3 8쪽
262 Episode261_고요한 역습 22.04.20 91 2 9쪽
261 Episode260_미래의 아이들(2) +2 22.04.18 61 2 8쪽
260 Episode259_미래로의 일발(3) +2 22.04.15 27 4 9쪽
259 Episode258_미래로의 일발(2) 22.04.08 43 5 7쪽
258 Episode257_미래로의 일발(1) +2 22.04.05 38 4 9쪽
257 Episode256_최후의 전쟁(5) 22.03.29 34 3 7쪽
256 Episode255_최후의 전쟁(4) +2 22.03.26 53 3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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