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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사랑사람의 서재

하늘을 등지고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전쟁·밀리터리

방구석4평
그림/삽화
lovendpeace
작품등록일 :
2019.12.26 00:03
최근연재일 :
2022.08.09 01:45
연재수 :
277 회
조회수 :
27,297
추천수 :
1,600
글자수 :
1,201,430

작성
22.03.29 22:48
조회
33
추천
3
글자
7쪽

Episode256_최후의 전쟁(5)

DUMMY

피냄새가 짙게 배인 흙더미 위로 주검이 쌓여 벽을 만들 무렵, 돌가죽 중 승리를 기대하는 자는 그 누구도 없었고 모두가 이 상황에 겁에 질려 도망치기 바빴다.


도망이라니··· 돌가죽이! 그 굳건하고 강인하던 종족이 인간을 앞에 두고 후퇴도 아닌 도망을 택했다. 모두가 제정신이 아닌 것이다.


마크도 입을 다물지 못하고, 저를 지키려 몸을 내던진 동포들의 부스러기를 꼬옥 쥐고선 절망에 젖었다.


이제 그에게 허락된 명령은 없었다. 후퇴라는 단어는 이미 사치와 다름없었다. 이제 돌가죽에게 퇴로란 없다.


저 뒤편의 풍경은 본디 있었던 널찍한 길과 지평선은 온데간데 없이, 두 갈래의 절벽이 한데 달라붙어서 장벽처럼 그들을 가두고 있다. 장벽과 다른 점이 있다면 그 두께의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두텁다 못해 막막하다는 것이다.


지금 인간들에게는 이 계곡의 지형 자체를 움직여 그릇으로 만들 정도의 힘이 있다. 돌가죽들의 발악은 솥 안에 갇힌 병아리가 발버둥치는 것과 다름이 없다. 그 도축장 안에서 죽는 때를 일초라도 늦추려 용을 쓰는 셈이다.


하지만 모든 것이 늦어버렸다. 더는 살아날 길이 없다. 돌가죽들은 모두 전의를 상실했고, 이제 와서 무기를 들어봤자 뭘 할 수 있을지 모를 판이다. 저들이 멀찍이서 보석을 붙들고 인상 한번 쓰면, 그것만으로 바위의 용과 불꽃의 바람이 혁명군의 숨통을 끊는다. 한 번 파도가 쓸고 갈 때마다, 어린애 물장난에 휩쓸리는 개미떼처럼 돌가죽들이 죽어갔다.


마크가 멍하니 생각하는 것은 갖은 후회들, 이 모든 것이 자신의 탓이라는 생각이 끊이지 않는다. 생각이 아니다, 사실이다. 그가 받은 모든 힘과 권력은 돌가죽의 미래를 책임진다는 무언의 약속 하에 가졌던 것이니까.


만일··· 애초부터 이 작전을 시행하지 않았더라면. 절벽 위에서 마지막 판단을 내릴 때 조금만 더 신중했더라면. 아니, 차라리 버스터 키트가 처음 가동했을때만이라도 뒤늦게 후퇴를 명령했더라면 다소의 피해는 있더라도 많은 목숨을 건질 수 있었을 것이다.


이제 그러한 망상은 모두 허무한 가정에 지나지 않았다. 너무 늦었으니까.


비명과 공포가 도축장을 가득 메웠다. 익숙한 풍경이지만 오늘은 악취가 더욱 짙다.


수나는 그 악취에 눈을 찌푸린다. 돌가죽이 딛고있던 지면은 기적에 의해 부서지고 뒤집혀 난장판이 된 것과 달리, 그녀가 서있는 지면은 평평히 깔린 눈이 소복할 정도로 멀끔하다. 그 위로 가끔 날아오는 돌가죽의 육편이나 핏덩이가 하얀 표면 위로 떨어지면 새빨간 꽃잎만 가끔 뿌려지는 정도다.


제기랄, 눈 둘 곳이 없네. 수나는 제 옆에 떨어진 토막난 팔을 발로 퍽 차날렸다.


수나는 오늘 하루 종일 기분이 좋지 않다. 박사가 미친 거야 전장에서 드문 일도 아니고, 아군의 공포와 희생은 무기의 힘을 이끌어내는 마중물 역할을 톡톡히 해줬으니 가치있는 것이고, 적을 섬멸하는 것은 장수로써 기뻐 마지않아야 할 일이지만, 그 모든 것이 지금은 그녀의 심기를 거슬리게 한다.


이제는 지금의 이 전황마저 그녀의 눈에 거슬린다. 아니, 사실 무기의 힘을 처음 봤을때부터 눈에 거슬렸다. 그 말도 안되게 강한 능력과 불가항력의 힘을 목견했던 날, 장수로서의 감동과 함께 찾아온 짙은 의심이 아직까지 목구멍에 끼어있다.


왜냐하면 이제 그들은 무적이기 때문이다. 이 물건은 이제껏 존재하지 않았던 필승의 수단이다. 이것을 다루는 자라면 그게 누구든, 맞건 틀리건 간에 무조건 이겨 그 뜻을 이룰 수 있었다.


첨예한 대립도, 불리함에서 꽃피는 기적도 더 이상은 없다. 무기가 존재하는 한 나라님은 무적이다.


물론 수나는 알고있다. 분명 나라님은 성군이고, 이것으로 제 잇속만 챙기거나 욕심에 눈먼 실책을 저지를 인간은 아니란 것을. 수나가 그의 수하를 자처한 이유도 그녀가 그 분의 판단을 전적으로 신뢰하는 탓이다.


하지만, 믿음만으로는 부족한 때도 있다. 이토록 강한 힘이 단 하나의 집단, 한 사람의 손에 쥐어져도 괜찮은 것일까?


나라님이 이 막중한 힘을 손에 쥐어준 순간, 이제 수나는 단 한번도 틀려서는 안된다는 저주에 걸려버린 것이다.


그런데, 눈 앞에 펼처진 이 도살장의 악취가 옳은 것인지 수나는 알 수가 없다.


평소라면 알 수 있다. 서로 싸워나갈 수 있었으니까. 각자의 말과 이론과 신념이 부딪치며, 협상으로든 무력으로든 승패를 가르다보면 정의도 언젠가는 승리할 가능성을 부여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 이것은 학살에 불과하다. 화술로 따지자면 일방적으로 떼를 써서 이겨낸 격이다. 여기에는 승리도 변증법도 없다. 이런건 싸움이 아니야. 장군으로서의 수나도 의미를 잃고 있다.


패배자의 왕은 끝없는 절망과 자책을, 학살자의 수하는 너무도 속 편한 고민과 성찰을 그 속에 품고있는 동안, 전장은 시간이 지날수록 말끔히 청소되어가고 있었다.


그리 많은 시간이 지나지도 않았건만 돌가죽의 수는 눈에 띄게 줄어있었고, 반면 인간 측의 피해는 버스터 키트의 본색이 드러난 이래 한없이 0에 가까웠다.


혁명군에게 싸울 의지가 없으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것이다. 종족의 근성과 용기마저 잃어버린 돌가죽들은 최소한의 저항조차 하지 않고 등을 돌려 도망치기 바쁘다. 그들을 묶어 투쟁의 이유를 만들어줘야 할 두령마저도 의지를 잃어버렸다.


"싸움이 끝나버렸군."


수나는 싸움의 시대가 저물어버린 것을 한탄했다. 이제 이 전쟁을 빙자한 억지를 보고 있는 것도 지쳤는지, 저 멀찍이 허공을 바라보며 이 시간이 어서 지나가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 눈에 흩날리는 눈이 보였다. 먹구름 낀 하늘이 보였다.


높게 솟아 시야를 가로막는 절벽도 보였다. 그 위로 무언가가 보인다.


보고야 말았던 그 순간, 수나는 경악해 잠시 숨을 쉬는 것조차 잊어버렸다.


그녀의 뒤쪽에서도 하나둘씩 목격자가 나타났다. 그녀와 싸웠던 정예병, 기적술사, 지원을 위해 합세한 암살단들도 그것을 보고 놀라 표정을 굳혔다.


한마디 한마디 덧대는 웅성임이 사람과 사람을 타고, 곧 군중의 시끌벅적함으로 뒤바뀐다. 소란을 일으킨 것은 부끄럽게도 제 사령부와 기적술사들을 방패삼아 뒤꽁무니에 숨어있던 꼴인 인간 병졸들이다.


소란은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 혁명군에서도 하나둘씩 이변이 일어난다. 그 방향으로 고개를 돌린 돌가죽들이 웅성대더니, 아까와는 다른 형태의 혼란이 전장을 잠식한다.


"마··· 마크 두령님···!!"


자신을 흔드는 부하의 부름에 마크도 그들의 시선을 따랐다. 그리고 깜짝 놀라 쿵쾅대는 심장이 그의 의식을 깨워 일으켰다.


그 실루엣이 이곳의 모두를 깨우고, 심장박동을 빠르게 하고, 모든 창백한 자들의 피를 돌게 했다.


그리고 바로 그 절벽 위, 맹렬히 휘날리는 새빨간 머리칼을 맞이하며 수나는 씨익 미소를 지었다.


"싸움은···! 아직 끝나지 않았어!"

1648561609397.png


작가의말

마침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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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7 Episode276_시대는 변한다 +2 22.08.09 47 2 9쪽
276 Episode275_최초의 악수 +1 22.07.25 23 2 8쪽
275 Episode274_눈물과 위안으로 22.07.21 31 2 8쪽
274 Episode273_비상 +1 22.07.12 25 2 9쪽
273 Episode272_추락 +2 22.07.04 27 3 8쪽
272 Episode271_지각과 각성(4) +2 22.06.27 30 2 7쪽
271 Episode270_지각과 각성(3) 22.06.13 34 2 7쪽
270 Episode269_지각과 각성(2) 22.06.04 26 2 7쪽
269 Episode268_지각과 각성(1) +1 22.05.31 25 2 10쪽
268 Episode267_혜성 충돌(6) +2 22.05.18 39 2 8쪽
267 Episode266_혜성 충돌(5) +2 22.05.17 41 2 10쪽
266 Episode265_혜성 충돌(4) 22.05.15 33 2 8쪽
265 Episode264_혜성 충돌(3) 22.05.10 74 2 8쪽
264 Episode263_혜성 충돌(2) 22.05.03 27 2 8쪽
263 Episode262_혜성 충돌(1) +4 22.04.22 43 3 8쪽
262 Episode261_고요한 역습 22.04.20 89 2 9쪽
261 Episode260_미래의 아이들(2) +2 22.04.18 59 2 8쪽
260 Episode259_미래로의 일발(3) +2 22.04.15 26 4 9쪽
259 Episode258_미래로의 일발(2) 22.04.08 41 5 7쪽
258 Episode257_미래로의 일발(1) +2 22.04.05 37 4 9쪽
» Episode256_최후의 전쟁(5) 22.03.29 34 3 7쪽
256 Episode255_최후의 전쟁(4) +2 22.03.26 52 3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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