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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사랑사람의 서재

하늘을 등지고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전쟁·밀리터리

방구석4평
그림/삽화
lovendpeace
작품등록일 :
2019.12.26 00:03
최근연재일 :
2022.08.09 01:45
연재수 :
277 회
조회수 :
27,355
추천수 :
1,600
글자수 :
1,201,430

작성
22.07.21 01:20
조회
31
추천
2
글자
8쪽

Episode274_눈물과 위안으로

DUMMY

사라는 여전히 잠들어있다. 하온의 어깨에 매달려, 그 의식은 고요한 공허에 날아가버렸다.


하온은 창을 밀어넣기 위해 온 힘을 다했다. 177cm의 몸뚱이에 담긴 무게를 모두 실었다. 상처에서 피를 뿜으면서도 악착같이, 악을 지를 힘까지 모두 창에 담았다.


그러나 움직이지 않는다. 철판에 고정된 창은 하온 혼자의 힘으로는 1mm도 더 밀어넣을 수 없다.


등 뒤에서 뱀이 허물을 벗는듯한 껄끄러운 소리가 울린다. 두 팔이 묶인 브릭 박사가 직접 하온을 처단하기 위해 자신의 몸을 재구성하고 있었다.


사라는 아직도 깨어나지 않았다. 하온은 다급한 마음에 몸을 마구 들썩이며 창에 간절함을 호소해보지만, 이미 망가진 팔뚝에 힘이 더 들어갈리도 없다.


몸 여기저기가 괴이하게 변질된 브릭 박사의 육신이 버스터 키트의 표면 위로 솟아올랐다. 뒤틀린 팔뚝의 끝에는 손 대신, 반역자들을 심판할 길고 뾰족한 칼날이 돋아있었다.


하온도 사라도 절반은 시체상태, 의식은 거의 있고없고에 사라는 이미 죽기 직전이다. 이대로 적이 다가온다면 저항할 방법이 없었다. 이 몸을 고치지 못하는 이상, 하지만 하온의 손엔 무엇도 들려있지 않다.


만일 치유의 힘을 쓸 수 있었다면, 그의 손에 흑광석만 남아있었더라면···


그러나 제 손이 지금 쥐고 있는 것을 바라본 순간, 이전에 사라의 의식으로부터 읽어낸 어떠한 사실들을 떠올린 순간, 하온은 숨을 들이키며 깨달았다.


이 창에 담겨진 진실, 그 정체는 자신의 밑에 묻힌 무한동력 장치와 동일한 존재라는 것. 같은 존재가 스며든 증오의 유산, 분노에 찬 마귀가 잠들어있던··· 흑광석이다.


수많은 원한을 머금은 흑광석으로 이루어진 창은, 다시말해 기적의 매개체이기도 했다.


“창 안의 존재여, 부디··· 부탁합니다, 제게···!”


그 순간 하온이 간절히 바랬던 것, 이 이상의 것은 바라지 않았다. 그저 낫게 해주기를. 목숨을 구해주기를 바랬다. 더 이상 죄를 낳아서는 안된다는 일념 하에, 세상에서 가장 따스한 힘을 갈구했다.


“치유의··· 힘을···!!!!”


은창이 급작스레 빛을 내뿜었다. 번쩍이는 섬광에 상황을 파악한 브릭 박사가 다급히 발을 옮겨 하온에게로 돌진했다.


동시에 하온의 의지에 감응하듯, 사라의 손이 움직인다.

최종전 피날레2.png

굳세게 창자루를 움켜쥔 그 팔뚝은 이제 어떤 상처 하나도 남아있지 않았다.


“고마워, 하온···!”


둘의 팔이 각각 하나씩, 모든 상처도 아픔도 은창의 허락 아래 씻겨나가고, 다시 빛을 찾은 사라의 눈이 올곧게 창을 바라보며 의지를 보였다.


브릭 박사의 칼날이 일격에 숨통을 끊으려 약동한다. 죽음이 일직선으로 다가온다.


그 서슬이 하온의 목에 접촉하기 직전, 사라의 창끝은 다시한번 동력원 중심부에 닿았다.


사라와 하온이 함께 손을 모아, 있는 힘껏 내리누른 힘을 듬뿍 담고, 부딪친 창과 코어로부터 빛줄기가 뿜어나온다.


부풀어오르는 백색이 곧 시야를 잠식하고···


모두를 감싸안으며···



***



사라에게 있어 마귀와의 접촉은 처음이 아니다. 드문 일도 아니라는 표현이 더 어울릴 정도다.


그토록 많이 얼굴을 보았음에도, 사라와 마귀는 내내 서로와 싸우거나 언쟁하는데만 열중해왔다. 지금도 딱히 화해했다 하기는 어려운 관계, 결국 사라와 마귀는 서로를 제대로 납득해주지는 못한다.


그 때 창 속의 마귀들이 이르기를, 애초부터 이해할 수 없는 것이었다. 사라는 그들과 생김새도 다르고, 언어도 다르며, 다른 종족에 다른 처지에 속한 자였으니까.


끝내 서로 이해할 수 있었던 것은 고작 그만큼의 접점에 한정된 자그마한 점 한 톨.


그럼에도 기어이, 완전히 새로운 마귀들ㅡ어쩌면 은창 안의 마귀보다도 더 증오에 불타고 있을ㅡ을 설득시키려 개고생을 한 그녀의 노력은 타자에게는 쉬이 이해하기 힘든 것이다.


그토록 오랫동안 해내지 못한 화해라는 것이, 고작 두 번의 만남으로도 가능할 정도로 허무한 일일까?



사라의 목소리가 동력원 안으로 침투한다. 무한한 힘을 뿜어내는 이 흑광석 장치에는 노예로 전락한 원혼들이 마귀의 형태로 스며들어있다.


그들 역시 저마다의 이유로, 그러나 대부분 비슷한 이유로 인간에게 미움을 쏟아낸다. 그토록 미운 인간, 이제는 이곳까지 끌고와 죄를 범하도록 강제하는 것이 인간인데, 그들의 대표격으로 온 사라에게 귀를 기울일 리가 없다.


때문에 마귀들은 이번에도 사라를 거부했다. 그녀의 옆에서 함께 호소하는 하온의 목소리도 간단히 무시한다.


사라는 갑갑하다. 사라가 여기에 온 건 그들을 위해서기도 하다. 그러나 알아주지 않는다. 마귀들은 알아줄 수 없다.


다른 종족, 다른 환경. 다른 삶을 살아온 각자가 서로를 이해할 수는 없음은 사라도 인정해야만 했다. 사라의 두번째 시도 역시 수포로 돌아가고야 만다.





헌데, 그들과 함께하는 다른 존재가 있었다. 그들과는 다른ㅡ같은 존재가 있었다.


또다른 목소리가 들려오자, 동력원 안의 마귀들이 동요한다. 그것은 사라의 목소리가 아니다. 하온의 목소리도 아니다. 브릭의 목소리일리도 만무하며, 하다못해 돌가죽의 목소리도 아니었다.


처음 듣는 군중의 목소리임에도, 이토록 익숙한 울림.


그 떨림의 근원은, 사라의 은창에 깃들어있는 다른 하나의 마귀 무리였다.








똑같이 뒤틀린 괴물들, 그들 모두가 똑같은 증오를 품은 채, 흑광석 안에서 무수한 시간을 잠들어있었다.


같은 종족, 같은 환경에서, 같은 고통을 느껴왔던 그들이라면.


삶이 겹치는 교집합이 있을 것이다. 점보다는 조금 더 넓은ㅡ서로 공감해줄 수 있는 아픔이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조금이라도 이해할 수 있다. 남은 것은 서로의 소망에 달린 것이다. 만일 그들이 이해를 소망하기만 한다면 말이다.






ㅡ마귀의 목소리가 뒤섞여 하나의 의지를 표상한다.


사라는 결코 닿을 수 없었던, 무한동력장치 안 마귀들의 심장 속에, 창 속의 마귀가 가까스로 손을 뻗어 닿는다.


그들은 서로 이어졌다. 모든 지식과 감정, 고통이 마음을 통해 전해진다. 하고싶은 이야기도, 슬픔도 함께 나누었다.





ㅡ”네게도 많은 고통이 있었겠지. 우리가 그랬듯 미움 뿐일테고.”


“...참아야 한다는 말밖에 해줄 것이 없어서, 미안하다. 저들은 우리의 상처를 갚아줄 길이 없단다. 여전히 밉고 불쌍한 생물이란다.”


“하지만··· 만일 너희만 괜찮다면, 우리가 너희의 상처를 핥아줄 수 있겠니?”


“인간의 일은 인간에게, 그들을 속죄시키는 것은 이 아이들이 해야 할 몫. 그러니 나와 함께 잠들자, 다시한번 고요히 기다려보자.”








ㅡ”정말 믿어도 될까?” 아직 믿지 못하는 마귀가 묻는다. 창 속의 마귀가 대답할 차례였다.


그들의 수천, 수만개의 눈이 사라와 하온을 지그시 바라본다.


이어지는 것은 골똘히 생각한다는 의미의 침묵.





ㅡ“믿어달라고 하더군.”


마지막 답변과 동시에, 그들의 목소리가 서서히 사그라든다.








ㅡ마귀들의 음성이 무에 가깝게 잦아든다.


이윽고 조용해지는 그들의 목소리에 사라가 몇 번 그들의 이름을 부르짖었다.


그러나 어느 쪽에서도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고, 그제서야 사라는 이것이 이별을 뜻하는 것임을 알았다.


작가의말

다음 화도 잘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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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7 Episode276_시대는 변한다 +3 22.08.09 48 2 9쪽
276 Episode275_최초의 악수 +1 22.07.25 23 2 8쪽
» Episode274_눈물과 위안으로 22.07.21 32 2 8쪽
274 Episode273_비상 +1 22.07.12 25 2 9쪽
273 Episode272_추락 +2 22.07.04 27 3 8쪽
272 Episode271_지각과 각성(4) +2 22.06.27 32 2 7쪽
271 Episode270_지각과 각성(3) 22.06.13 36 2 7쪽
270 Episode269_지각과 각성(2) 22.06.04 27 2 7쪽
269 Episode268_지각과 각성(1) +1 22.05.31 26 2 10쪽
268 Episode267_혜성 충돌(6) +2 22.05.18 40 2 8쪽
267 Episode266_혜성 충돌(5) +2 22.05.17 41 2 10쪽
266 Episode265_혜성 충돌(4) 22.05.15 34 2 8쪽
265 Episode264_혜성 충돌(3) 22.05.10 74 2 8쪽
264 Episode263_혜성 충돌(2) 22.05.03 28 2 8쪽
263 Episode262_혜성 충돌(1) +4 22.04.22 44 3 8쪽
262 Episode261_고요한 역습 22.04.20 91 2 9쪽
261 Episode260_미래의 아이들(2) +2 22.04.18 61 2 8쪽
260 Episode259_미래로의 일발(3) +2 22.04.15 27 4 9쪽
259 Episode258_미래로의 일발(2) 22.04.08 43 5 7쪽
258 Episode257_미래로의 일발(1) +2 22.04.05 38 4 9쪽
257 Episode256_최후의 전쟁(5) 22.03.29 34 3 7쪽
256 Episode255_최후의 전쟁(4) +2 22.03.26 53 3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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