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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르보치킨 님의 서재입니다.

망나니 백작의 생존전략

웹소설 > 일반연재 > 퓨전, 판타지

까르보치킨 아카데미 작가
작품등록일 :
2021.01.02 18:12
최근연재일 :
2021.02.03 21:20
연재수 :
36 회
조회수 :
34,604
추천수 :
1,211
글자수 :
204,097

작성
21.01.17 21:20
조회
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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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글자
12쪽

너를 보게 될 줄은

DUMMY

아이가 팔을 흔들며 격하게 저항했다.


“아파요! 놔주세요!”

“쯧, 말 더럽게 안 듣네. 처맞아야 정신 차리겠어?”


때린다는 말에 칼리스가 미간을 바로 찌푸렸다.


“당신이 이 아이 보호자인가?”

“그런 셈입죠. 어디서 온 나리인지 모르겠지만, 남의 애에 신경끄쇼.”


남자의 뒤로 더 어려 보이는 아이들이 콧물을 훌쩍이며 일렬로 서 있었다.

칼리스는 직감적으로 느꼈다.


‘어디로 보나 깡패 새끼 같은 놈이 이런 어린아이들을 단체로 모아 관리하고 있다니. 아무래도 존나 구린 뒷사정이 있는 거 같은데.’


칼리스는 팔짱을 낀 채 남자와 어린아이들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무슨 문제라도?”


그때, 머리를 올백으로 깐 앙상한 정장 차림의 남자가 지팡이를 든 채 천천히 걸어왔다.


“이 녀석이 무례를 저질렀군요. 제가 대신 사과드리겠습니다. 칼리스 유피테르 백작님.”


칼리스는 경계심을 풀지 않은 채 남자를 바라보았다.


“실례지만, 당신이 누구인지 먼저 여쭤봐도 되겠소?”

“저는 아게라우스 네이아 백작입니다. 보잘것없는 이곳의 주인이지요.”


그의 이름을 듣는 순간, 칼리스의 머릿속이 조금 명쾌해졌다.

대강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파악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아게라우스 백작. 고아원을 운영하는 척하며 뒤로는 아동 인신매매를 했던 천하의 쌍놈.’


나중에 혐의가 발각되자, 정의감으로 가득 찬 여주인공이 고아원에 쳐들어가서 이 녀석을 거의 죽기 직전까지 두들겨 팼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나중의 일이었다. 여주인공이 10대 중반이었을 때의 일이었으니까.

칼리스는 남자의 뒤에 겁먹은 채로 서 있는 아이들을 가리키며 물었다.


“이곳의 주인이라 하셨죠. 그럼 저기 있는 아이들이 정말 저 남자의 아이들이 맞습니까?”

“친자식은 아니지요. 저 아이들은 제가 세운 고아원의 아이들입니다. 그리고 이 무례한 녀석은 그 고아원의 직원이죠.”


남자는 지팡이를 쥔 손에 힘을 주며 음험하게 웃었다.


“아니, 직원이었다고 하는 것이 맞을까요? 내일부터는 못 나올 테니.”

“히익! 배, 백작님! 한 번만 용서해주십쇼!”


지팡이가 바람을 세차게 가르는 소리가 났다.

칼리스는 얼른 키르케의 눈을 가렸다.


“어헉!”


남자는 지팡이에 그대로 얼굴을 가격당했다.


“추태를 보여서 죄송합니다. 이걸로 이 녀석도 조용해지겠지요.”


칼리스의 표정은 도무지 펴지질 않았다. 하지만 이게 현실이었다.

귀족은 이렇게 아래 신분의 사람을 두들겨 패도 아무도 뭐라 할 수 없었다.


‘영지 내에 있기만 하면 자기 소유의 물건이니까.’


아까부터 물을 맞은 여자아이에게 눈을 떼지 못하고 있던 키르케가 입을 열었다.


“배, 백작님. 무례를 무릅쓰고 한 말씀 드려도 될까요? 저 아이는 남한테 먹을 것과 돈을 달라고 하다가 물을 맞았거든요.”

“구걸하는 모습을 보셨단 말인가요?”

“그게······네.”


아게라우스 백작의 표정이 순식간에 싸늘해졌다.


“공녀님이 오해를 하셨군요. 저흰 음식도 잘 먹이고 옷도 잘 입혀주는 데다, 잠자리까지 제공해주는데 이 천민 계집이 만족할 줄 모르고 밖을 떠돌아다닌 겁니다.”


뻔히 보이는 거짓말은 칼리스는 무심코 헛웃음을 흘릴 뻔했다.


‘혓바닥 잘 놀리네. 쓰레기가. 구걸도 억지로 시킨 거면서.’


칼리스는 소설 속에서 귀족들이 아게라우스에 대해 좋게 평가했던 장면들을 떠올렸다.


“아게라우스 경은 영지 내에 부모를 잃은 가여운 아이들을 직접 거둬 기른다지요?”

“어머, 아무런 득도 되지 않을 일을 그렇게 성심성의껏 하시다니 훌륭하신 분이네요.”

“황실에서도 주목하고 있다고 하더라고요.”


고아원의 진상을 절대 밝히지 않은 채 아게라우스는 이 좋은 평판을 기반으로 승승장구해나갔다.


‘그래서 더 빡쳐. 누군 좋은 평판 쌓으려고 이 고생을 하고 있는데 지는 애들을 두들겨 패는 인간쓰레기인 주제에 그렇게 꿀이나 빨고.’


칼리스가 속으로 분노하고 있음을 눈치채지 못한 아게라우스 백작은 태연하게 말을 이어나갔다.


“걱정마세요. 공녀님. 다음에는 절대 그런 모습이 눈에 띄지 않도록 제가 잘 교육해놓겠습니다.”


교육이라는 말에 여자아이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아까보다도 몸이 더욱 심하게 떨렸다.


“그 교육이 뭐죠? 저도 알 수 있을까요?”


모두의 예상과 달리, 키르케는 쉽사리 물러서지 않았다.

아게라우스는 노골적으로 미간을 찌푸렸다.


“귀족가 여식이 알만한 것이 아닙니다.”

“왜죠? 백작님의 말씀에 따르면, 전 저 아이가 부적절한 행동을 하는 것을 직접 봤는데요. 무슨 교육을 받는지 궁금할 수밖에 없지 않나요?”


키르케의 당찬 대꾸에 아게라우스는 이를 갈았다.

당장 건방진 계집이라고 욕하고 싶지만, 옆에 칼리스가 있어서 그럴 수도 없었다.


“백작님의 교육은···”


무리에 섞여 있던 아이가 나와 대화에 끼어들었다.

금방이라도 부서질 것 같이 앙상한 몸을 가진 아이였다.


‘미친? 이게 어떻게 된 거야?’


칼리스는 아이의 생김새를 보자마자 화들짝 놀랐다.

소설 속 여주인공의 묘사와 똑같이 생긴 아이가 눈앞에 있었기 때문이다.


-


더러워져서 거의 회색빛이 된 머리에 부은 눈꺼풀 탓에 잘 보이지 않는 푸른 눈.

소설 속의 당당하고 아름다운 여주인공과는 억만 광년 차이가 있었다.

하지만 뒤이어 나온 아게라우스의 말이 칼리스의 짐작을 확신으로 바꾸어놓았다.


“페넬로페. 왜 갑자기 나서는 거냐?”


그 이름을 듣고, 칼리스는 입술을 깨물었다.

예상이 빗나가길 바랐지만 역시 눈앞의 여자아이는 여주인공, 페넬로페였다.


‘이 녀석, 역시 이 소설의 여주인공이야. 하지만 페넬로페는 분명 이 시기에 양모랑 같이 살고 있어야 하는데 왜 관리라고는 하나도 안 된 모습으로 여기 있는 거지?’


즉, 자신이 기억하고 있는 소설 속의 내용과 달라진 셈이었다.

머릿속에 최악의 가정만 떠올렸다.

마약 밀매 사건을 해결한 것으로 사망 플래그를 하나 해결했더니 소설의 내용이 크게 바뀌어버렸다는 최악의 상황.


‘이래서는 내가 소설의 내용을 잘 알고 있다는 게 무용지물이 된다.’


칼리스가 속이 타고 있는 동안, 페넬로페는 움츠러든 채 아게라우스에게 말했다.


“죄, 죄송해요. 저 아가씨 때문에 백, 백작님이 곤란해지실까 봐.”

“날 위해 그랬다는 거냐? 기특하기도 하지. 하지만 대화에 끼어드는 건 못된 버릇이다. 너도 나중에 교육을 받아야겠구나.”


그 말이 떨어지자 페넬로페는 아까 그 여자아이보다 더욱 심하게 떨었다.


“네 이름이 페넬로페니?”


끼어들지 말라는 아게라우스의 무언의 협박에도 키르케는 당당하게 페넬로페에게 말을 걸었다.

페넬로페가 두려워하며 고개를 끄덕이자, 키르케는 방긋 웃으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보니까 나랑 또래인 것 같은데. 나중에 마주치면 이야기라도 나누자.”

“네?”


그렇게 말하며 키르케는 힐끔 아게라우스를 보았다.

칼리스는 이것이 키르케 나름의 견제임을 눈치챘다.


‘자기가 지켜보고 있다는 메시지를 주는 거군. 하여간 누구 딸인지 대담한 짓만 한다니까.’


나름 도움을 주려고 노력하는 키르케의 모습이 기특하긴 했지만, 이 이상은 위험할 것 같아 칼리스가 나섰다.


“키르케, 그쯤 해둬라.”

“공녀님이 아주 자유분방한 분이시군요.”


화가 머리끝까지 난 아게라우스는 대놓고 키르케를 칼리스 앞에서 까버렸다.

하지만 칼리스도 딱히 굽히진 않았다.


“그렇죠. 저도 어디로 튈지 모르겠다니까요.”


마치 이 아이의 행동에 자신은 책임질 게 없다는 태도.

아게라우스는 부녀가 쌍으로 마음에 들지 않아 혀를 찼다.

하지만 여기서 싸워봤자 득 될 것이 없으니 자기가 먼저 물러가기로 했다.


“거듭 좋지 않은 꼴을 보여드렸군요. 죄송합니다. 갈 길이 바쁘실 테니 천천히 쉬십시오.”


아게라우스가 아이들을 데리고 황급히 사라졌다.

키르케는 발을 동동 구르며 칼리스에게 항의했다.


“아, 아버지! 정말로 우리 이대로 가나요? 그 백작님, 아이들을 때리고 있어요!”

“뭐?”

“아까 그 은발의 여자아이가 저한테 몰래 흉터를 보여줬어요. 때렸다는 증거에요.”


칼리스는 키르케가 페넬로페에게 가까이 다가갔을 때를 떠올렸다.


‘그때였군.’


이미 다 알고 있지만, 칼리스는 혹시나 하고 키르케에게 물었다.


“맞아서 생긴 흉터라는 것을 어떻게 아는 거냐?”

“저, 저는 알아요. 예전의 저도 그랬으니까.”


키르케의 손이 조금 떨렸다.

칼리스는 괜한 것을 물어본 것 같아 시선을 돌렸다.


‘그래, 칼리스도 과거에 키르케를 저렇게 대했지.’


그래서 이번 사건을 접하고 더욱 입맛이 썼다.

자신의 생명과 직접 연관된 사건이 아님에도, 계속 신경이 쓰였다.

키르케는 결국 분을 못 이기고 눈물을 뚝뚝 흘렸다.


“그 아이들, 예전에 키르케가 했던 표정을 하고 있었어. 그러니까 내버려 두기 싫어. 히끅···”


키르케가 페넬로페와 아이들을 걱정하며 울음을 터트리자 칼리스는 놀라운 심정을 감출 수 없었다.


“죽여버리겠어! 그 계집, 감히 나보다 아름답다는 칭송을 받다니! 분해서 견딜 수 없어. 언젠가 갈기갈기 찢어버릴 거야!”


원래 소설에서 키르케는 차마 귀족 여식이라면 담지 못할 거친 말들로 페넬로페를 욕하고 격하게 죽이고 싶어했다.

그런데 지금은 완전히 상황이 바뀌어있었다.


“키르케, 아이들을 구하고 싶으냐?”


키르케가 울먹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아버지가, 도와주셨으면 좋겠어요.”


칼리스는 잠시 눈을 크게 떴다.

이렇게 솔직하게 부탁하는 키르케의 모습은 오늘 처음 봤기 때문이다.


‘마차에서 이젠 뭐든 이야기하라고 해서 그런가.’


칼리스는 늘 그랬듯 키르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래. 앞으로도 그렇게 솔직하게 말하는 거다.”


키르케는 빨개진 눈으로 기쁘게 웃었다.


“키르케, 그럼 일단 네 고양이들을 빌려가야겠다.”

“아버지의 고양이들이기도 해요!”

“아니. 그냥 네 고양이들인 걸로 해두자.”


단호하게 선을 그은 칼리스는 다시 고민이 들었다.

이게 맞는 걸까. 괜히 생존에 악영향만 끼치는 건 아닐까.

하지만 생각해볼수록 오히려 이쪽이 이득이었다.


‘나랑 키르케의 죽음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건 페넬로페였어. 그러니까 그 녀석을 도와주고 좋은 이미지를 쌓으면 우릴 적대할 생각은 안 하겠지.’


게다가 페넬로페가 무슨 이유에서인지 양모를 잃고 저 고아원에 들어가는 바람에 소설 내용이 틀어진 건 확실했다.

여기서 페넬로페한테 또 무슨 안 좋은 일이 생기면 소설 내용이 어떻게 뒤틀릴지 알 수 없었다.


‘무엇보다 그걸 방지해야만 해. 어쨌건 페넬로페는 이 소설의 주인공이니까.’


칼리스는 아게라우스가 떠나갔던 방향을 째려보며 침까지 뱉었다.


‘그 새끼, 역시 존나 마음에 안 들어. 괴롭힐 게 없어서 애들 가지고 지랄을 하다니. 내가 꼭 조져버리고 만다.’


칼리스는 분노로 이글이글 타오른 채로 작전을 개시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만 가자꾸나.”

“네!”


수상한 그림자 여럿이 몸을 숨기고 칼리스와 키르케가 천천히 숙소로 돌아가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역시 저 백작, 뭔가를 꾸미려는 모양이야.”


수상한 그림자들은 현재 상황을 동료들과 공유하며 누가 들을세라 아주 작게 속삭였다.


“고아원의 감시 인력을 평소의 두 배로 늘리라는 지령이 내려왔다. 실수 없도록.”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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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신발 찾아 삼만리 +3 21.01.22 788 26 14쪽
23 독 안에 든 쥐 +1 21.01.21 795 35 14쪽
22 속일 걸 속여야지 21.01.20 895 32 14쪽
21 쉴 틈을 안 주네 +1 21.01.19 875 35 13쪽
20 너를 구하게 될 줄은 +4 21.01.18 932 34 14쪽
» 너를 보게 될 줄은 21.01.17 942 32 12쪽
18 호랑이를 길렀네 +2 21.01.16 945 33 15쪽
17 고양이를 기른 줄 알았더니 +1 21.01.15 945 37 14쪽
16 그래봤자 손바닥 안(2) +1 21.01.14 940 38 15쪽
15 그래봤자 손바닥 안(1) 21.01.13 965 39 14쪽
14 원수와 아군은 한 끗 차이(3) 21.01.12 1,051 38 16쪽
13 원수와 아군은 한 끗 차이(2) +1 21.01.11 1,057 44 12쪽
12 원수와 아군은 한 끗 차이(1) 21.01.10 1,088 42 13쪽
11 믿는 도끼에 발등 찍혀봐라(3) 21.01.09 1,137 44 12쪽
10 믿는 도끼에 발등 찍혀봐라(2) +1 21.01.08 1,162 40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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