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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르보치킨 님의 서재입니다.

망나니 백작의 생존전략

웹소설 > 일반연재 > 퓨전, 판타지

까르보치킨 아카데미 작가
작품등록일 :
2021.01.02 18:12
최근연재일 :
2021.02.03 21:20
연재수 :
3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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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594
추천수 :
1,211
글자수 :
204,097

작성
21.01.23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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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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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글자
12쪽

내 딸 내놔

DUMMY

필사적으로 달리는 키르케의 등 뒤로 마수가 외치고 있었다.


《정답은···솔방울이야!》

《왜?》

《내가 예전에 세발로 걸어 다니는 걸 본적이 있거든!》

《그거 내가 장난친 건데.》

《뭐어? 그럼 아니야?》


마수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키르케는 깊게 안도했다.


‘다행이다.’


키르케는 얼굴에 긁힌 상처가 나고 있는 것도 눈치 채지 못한 채 숲의 입구를 향해 달렸다.

달리고 달린 끝에, 키르케는 빛이 새어 들어오는 곳으로 도착했다.


“시, 신발 제대로 가져왔겠지?”


키르케는 품안에 소중히 안은 신발을 살폈다.

다행히 두 짝 모두 떨어뜨리지 않고 잘 간직하고 있었다.


“이제 아버지를 구할 수 있겠어.”


키르케는 눈물을 글썽하다가 서둘러 닦았다.

아버지를 살리기 위해서는 시간을 지체할 수는 없었다.


-


키르케는 급하게 바로 황제를 만나러 궁으로 달려왔지만 경비병들에게 가로막혔다.


“누구냐!”

“화, 황제 폐하를 알현하려고 왔어요.”


경비병들은 어처구니가 없다는 표정으로 키르케를 훑어보았다.

머리에는 나뭇잎이 잔뜩 붙어있고 헝클어진데다, 얼굴과 무릎에는 생채기가 가득한 어린아이가 귀족가의 여식이라는 것을 누구도 눈치 채지 못했다.


“참나, 황제 폐하가 너같이 더러운 꼬맹이를 만나주실 것 같으냐?”


키르케는 초조한 얼굴로 신발을 흔들어보였다.

하지만 고작 경비병들이 이 신발의 정체를 알 리가 없었다.


“이분이 누구인 줄 알고 그 입을 놀리는 건가? 경비병.”


대놓고 으르렁거리는 저음의 목소리가 경비병들을 얼어붙게 만들었다.

귀족답게 화려하게 차려입은 아이테스와 헤니르 백작이 키르케의 뒤에 서 있었다.


“황태자 전하를 지킨 영웅, 칼리스 유피테르의 따님인 키르케 유피테르 공녀가 알현을 청한다는 것을 빨리 알리도록 하시오.”

“네? 이, 이 꼬맹이가 공녀?”


헤니르 백작의 말에 경비병들은 허둥대며 어쩔 줄 몰라 했다.

답답해진 아이테스가 성질머리를 못 이기고 버럭 소리를 질렀다.


“빨리 안 뛰어가!”

“아, 아, 알겠습니다!”


몇몇의 경비병들이 혼비백산하며 보고를 올리러 뛰어갔다.


“고, 고맙습니다.”


키르케가 고개를 숙이며 감사인사를 전했다.


“아닙니다. 저희들이야말로 아버지가 그런 일을 당하게 해서 미안합니다. 공녀.”

“아무런 도움이 되어주지 못했군요.”


키르케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에요. 아까도 도움을 주셨고···”


키르케는 신발을 품에 꼭 안으며 말을 이어갔다.


“아버지라면, 두 분이 이렇게 자책하길 바라지 않으실 거예요.”


아이테스와 헤니르 백작은 무심코 숨을 죽였다.

의연하게 앞을 응시하는 키르케의 눈동자가 너무나 칼리스 백작의 것과 닮아있었기 때문이다.


“어쩌죠, 아이테스 경? 저 눈물 날 것 같습니다. 마치 칼리스 경이 제 눈앞에 서있는 것 같아요.”

“참으세요.”


작게 소곤거리는 둘의 대화를 듣지 못한 채, 키르케는 부리나케 뛰어온 안내인을 따라 궁 안으로 걸어 나갔다.


-


보고를 들은 황제는 꽤 놀란 표정으로 말했다.


“정말 구해왔느냐?”


키르케는 비틀거리며 신발을 공손히 내밀었다.

황제가 신발을 받아들자 긴장이 풀린 키르케는 그대로 풀썩 쓰러졌다.


“아!”


그 자리에서 쓰러진 키르케를 주목한 것은 황태자뿐이었다.

황제는 신발에만 신경이 쏠려있었다.


“이거, 예상치 못한 수확이군.”


황제는 만족스럽게 웃었다.

반면 황태자는 키르케에게 시선을 떼지 못하며 안절부절못했다.


“폐, 폐하. 공녀가 쓰러졌습니다만···”

“응? 여봐라. 저거 옮기거라.”


황태자의 말에 황제는 대충 손을 내저으며 키르케를 옮기도록 명했다.

수행원들은 기절한 키르케를 안아 들고 어디론가로 향했다.

황태자는 착잡한 얼굴로 수행원들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공녀도 확보했으니 계획대로야.”


황제는 음흉하게 웃으며 수행원들에게 명했다.


“칼리스 유피테르 백작의 치료를 행하겠다. 바르나크 광장에서.”

“광장에서 말입니까?”

“최대한 보는 눈이 많아야 하거든. 내 자비로움을 돋보이게 하기 위해서라도.”


수행원들은 고개를 숙인 후 재빨리 움직였다.

황제의 이야기를 엿들으며 황태자는 작게 중얼거렸다.


“칼리스 유피테르 백작···”


아직도 그가 자신의 감싸고 독침을 맞았을 때의 장면이 생생하게 떠올랐다.

그때를 떠올리면 아버지 같은 존재에게 배신당했음에도 마음이 크게 흔들리지 않았다.


-


황제의 바람대로, 바르나크 광장에는 칼리스 백작과 지팡이를 쓰기로 명받은 테이레스 이외에도 많은 귀족들이 모였다.

걱정이 되어 문병을 왔다는 핑계로 황제에게 인정받은 칼리스와 인맥을 쌓아보려고 한 자들이었다.


‘조용한 병실에서 해도 될 텐데 굳이 이런 시끄러운 광장이라···’


테이레스는 이 상황이 내키지 않았지만 잠자코 있었다.

황제의 수행원들이 테이레스에게 금색의 지팡이를 내밀었다.


“대현자 테이레스, 이 지팡이를 쓰는 것을 허락하노라.”


테이레스는 비장한 얼굴로 황제가 준 지팡이를 받아들였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테이레스는 금색의 지팡이를 칼리스의 어깨에 대고 눈을 감아 마력을 집중시켰다.

따스한 빛이 모여들더니 칼리스의 어깨를 감쌌다.


“고대의 신이시여, 부디 저에게 힘을 빌려주소서.”


테이레스가 주문을 외자, 칼리스의 얼굴색이 기절해있을 때보다 확연히 좋아졌다.

숨을 쉬는 것도 이전보다 좀더 안정된 상태였다.


“칼리스 경···”


멀리서 지켜보고 있던 헤니르 백작이 기도하듯 두손을 모았다.

아이테스도 진지한 얼굴로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으···”


칼리스가 작게 숨을 내뱉으며 눈을 떴다.

황제가 눈을 뜬 칼리스에게 천천히 다가왔다.


“이제 몸은 괜찮은가, 칼리스 경?”

“아, 폐하. 많이 괜찮아졌습니다.”


바로 일어나려는 칼리스를 황제가 만류했다.


“아직 무리하지 말게.”


황제는 겨우 몸을 추스르고 앉아있는 칼리스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칼리스 유피테르 백작, 그대에게 황실은 도무지 갚지 못할 빚을 졌다.”


칼리스는 담담한 표정으로 듣고 있었다.


‘보상이라도 줄 거면 빨리 주던지. 아직도 어깨가 쑤시네.’


주위를 둘러보던 칼리스는 뭔가 위화감을 눈치 챘다.


“음?”


키르케가 없었다.

칼리스는 마침 눈에 띈 테이레스에게 눈으로 물어보았다.


‘키르케는?’


테이레스는 어두운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황제가 칼리스의 심정을 눈치채고 먼저 말을 걸었다.


“자네 딸을 찾고 있나 보군.”

“아, 네. 걱정하고 있을 거라고 생각해서···”

“눈을 뜨자마자 안타까운 소식을 전해야 해서 마음이 편치 않네만···자네의 딸, 키르케 공녀는 중상을 입고 말았다네. 그래서 지금 궁에서 치료 중이지.”


청천벽력 같은 소식에 칼리스는 멍해졌다.

자기가 기절한 사이에, 키르케가 크게 다쳤다니.


“그게 무슨···”

“전부 내 책임이네. 내가 부주의하게 자네를 치료하기 위해서는 어떤 물건이 필요하다고 공녀에게 말했던 탓이야.”


테이레스는 입술을 깨물었다.

황제는 지금 자기가 유리한 대로 사실을 꾸며 말하고 있었다.

하지만 거짓말을 하는 것은 아니었기에 그 자리에서 바로 반박할 순 없었다.


“공녀는 내 말을 듣고 그 물건을 구하러 가던 중에 크게 다쳐서···궁에서 전력으로 치료하고 있지만 완치될 때까지 얼마나 걸릴지는 모르네.”


황제의 말을 듣고 있던 황태자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아버지는 공녀를 볼모로 잡아서 칼리스 백작과 접촉했다고 여겨지는 그자의 정보를 캐낼 생각인 거야.’


황제는 여전히 자애로운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하지만 최선을 다할 것을 약속하지. 국가의 안전을 위협하는 사건을 솔선수범 해결한 그 공과 황실에 대한 자네의 충성심을 높이 사, 나 군터 노르시아가 책임지고 키르케 공녀를 치유하겠네.”


짝짝짝짝···

황제의 말에 좌석에 있던 귀족들이 감격하여 대부분 일어나 박수를 쳤다.

하지만 칼리스와 테이레스의 표정은 밝긴커녕, 아주 어두웠다.

아이테스와 헤니르 백작도 마찬가지였다.


‘황태자 구해준 보상을 이것만으로 퉁칠 작정? 순 지한테 유리한 방향으로 끌고 가네.’


게다가 뭔가 다른 꿍꿍이가 있다는 것을 칼리스는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었다.

황제가 손을 들자 박수소리가 일순 멈췄다.


“그러니 자네는 자네의 건강에 신경 쓰도록 하게. 공녀가 자네를 얼마나 걱정했으면 이런 무모한 짓을 했겠나. 자네가 어서 건강해져야 공녀도 기운을 차릴 거야.”


칼리스는 부들거리며 주먹을 꽉 쥐었다.

황제는 옆에 서 있던 황태자에게 재촉했다.


“그렇지, 태자. 너의 목숨을 구한 자에게 감사 인사를 하거라.”


황태자가 칼리스에게 천천히 다가왔다.


“감사합니다. 칼리스 백작. 덕분에 목숨을 부지했습니다.”


하나마나한 감사인사였다.

하지만 황태자는 슬쩍 뒤에서 귀족들에게 손을 흔들고 있는 황제의 눈치를 살피더니 칼리스에게 아주 작게 속삭였다.


“별실에 있습니다.”


칼리스는 그 정보를 귀담아들었다.


-


칼리스는 아이테스와 헤니르 백작의 부축을 받으며 광장을 떠났다.

인맥을 쌓고 싶어 안달 난 귀족들은 아직 몸이 피곤하다는 핑계로 전부 물렸다.


“공녀는 무사합니다. 중상을 입지 않았습니다.”

“아, 아이테스 경!”


광장을 나오자마자 아이테스는 사실을 고했다.

헤니르 백작은 얼굴이 하얗게 질린 채 안절부절못했다.

잘못하면 황제의 뜻을 거역하는 것으로 보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압니다.”


칼리스는 담담하게 대답했다.

아이테스와 헤니르 백작이 동시에 놀란 표정을 지었다.


“키르케는 황제가 요구한 물건을 무사히 가져왔겠죠. 그럼 황제의 앞까지 제대로 걸어갔다는 셈이니 중상을 입었을 리가 없습니다.”


테이레스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덧붙였다.


“문제는 그다음입니다. 폐하는 아마 공녀님을 쉽게 돌려주지 않을 겁니다.”

“그래.”


섣불리 빼내 올 수도 없었다.

잘못하면 황제의 성의와 처리를 무시하는 것으로 보일 수 있었고, 그랬다가는 지금까지 쌓은 좋은 이미지가 와르르 무너질 판이었다.


‘나중에 사형당할 빌미를 만들게 될지도 모르지.’


고민에 빠진 칼리스 일행의 앞에 그동안 모습을 감추고 있던 석궁을 든 여자가 불쑥 나타났다.


“어이, 샌님. 이제 몸은 괜찮나? 꽤 놀랐다고. 귀족들이란 전부 자기 몸을 사리는 비열한 겁쟁이 집단이라고 생각했는데.”

“당신···”

“덕분에 그 녀석들을 잡아들일 수 있었어. 다른 이들이 해를 입는 일은 없겠지. 감사 인사도 없이 가버리는 건 좀 그런가 싶어서.”

“정말 당신의 목적은 그것뿐인 건가?”


칼리스의 질문에 여자는 어깨를 으쓱했다.


“그 녀석들은 시작일 뿐이야.”

“배후가 있다는 거야?”

“그래. 그것도 엄청난.”


여자는 씩 웃으며 칼리스를 가리켰다.


“당신은 앞으로도 자주 마주칠 것 같네. 내가 쫓는 녀석들도 아마 너를 주목하기 시작했을 거야.”

“무슨 말이지?”

“말 그대로의 의미야. 난 귀족들처럼 돌려 말하는 짓 같은 건 안 하거든.”


헤니르 백작의 시선이 슬그머니 아이테스한테로 향했다가 다시 땅바닥으로 향했다.


“그럼 난 이만.”

“잠깐 기다려.”

“난 바쁜 몸인데.”

“감사 인사를 다른 것으로 받고 싶은데.”


칼리스의 말에 여자가 킥킥 웃었다.


“좋아, 말뿐인 감사는 안 받는다 이거지. 뭘 원하지?”

“넌 이 제국의 출신이 아니지?”


여유롭던 여자의 표정이 잠시 굳었다.


“그 석궁. 이 제국의 사람들은 그런 무기를 쓰지 않아. 수면 침도 이 제국의 것이 아니지.”


눈앞의 여자를 보자, 칼리스는 황제의 꿍꿍이가 조금씩 보이는 듯했다.


‘이 여자의 정보를 황제는 노리고 있어.’


여자는 칼리스에게 으르렁거리며 물었다.


“그래. 그렇다면 어쩔 거지?”


칼리스가 여자를 향해 씩 웃었다.


“황실을 상대로 도적질을 해줘야겠어.”


칼리스의 폭탄 발언에 모두가 얼어붙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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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다 털렸죠? +2 21.01.24 770 30 15쪽
» 내 딸 내놔 +1 21.01.23 807 28 12쪽
24 신발 찾아 삼만리 +3 21.01.22 788 26 14쪽
23 독 안에 든 쥐 +1 21.01.21 795 35 14쪽
22 속일 걸 속여야지 21.01.20 895 32 14쪽
21 쉴 틈을 안 주네 +1 21.01.19 874 35 13쪽
20 너를 구하게 될 줄은 +4 21.01.18 932 34 14쪽
19 너를 보게 될 줄은 21.01.17 941 32 12쪽
18 호랑이를 길렀네 +2 21.01.16 944 33 15쪽
17 고양이를 기른 줄 알았더니 +1 21.01.15 945 37 14쪽
16 그래봤자 손바닥 안(2) +1 21.01.14 940 38 15쪽
15 그래봤자 손바닥 안(1) 21.01.13 965 39 14쪽
14 원수와 아군은 한 끗 차이(3) 21.01.12 1,051 38 16쪽
13 원수와 아군은 한 끗 차이(2) +1 21.01.11 1,056 44 12쪽
12 원수와 아군은 한 끗 차이(1) 21.01.10 1,088 42 13쪽
11 믿는 도끼에 발등 찍혀봐라(3) 21.01.09 1,137 44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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