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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르보치킨 님의 서재입니다.

망나니 백작의 생존전략

웹소설 > 일반연재 > 퓨전, 판타지

까르보치킨 아카데미 작가
작품등록일 :
2021.01.02 18:12
최근연재일 :
2021.02.03 21:20
연재수 :
3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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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204,097

작성
21.01.25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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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2쪽

고쳐 쓸 수 있는 사람(1)

DUMMY

칼리스가 수도로 떠나있는 동안, 매일같이 서재 청소를 하던 하녀들 중 한명이 중얼거렸다.


“우리 이래도 되는 거 맞아?”


다른 하녀들은 눈치만 볼뿐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

매일 같이 하던 서재 청소는 오늘만큼은 달랐다.


“앞으로 책상의 서랍도 열어서 안을 청소하고 책장의 책들도 모조리 빼내고 닦아내거라.”


아침부터 티타가 하녀들에게 갑작스럽게 내린 명이었다.

하녀들은 고개를 갸웃거리면서도 감히 반발할 수 없어 고개를 숙였다.


“너, 갑자기 할 일이 확 늘어서 불평하는 거 아냐?”

“아, 아니야!”

“좀 이상하긴 해. 티타 님이 우리에게 이렇게 일감을 많이 주시다니.”


다른 하녀가 대화에 끼어들었다.

속에서 삭히고 있던 의문들이 하녀들 사이에서 분출했다.


“그러게. 예전에는 주인님이 일을 정말 많이 시켜도 티타님이 우리를 감싸주셨잖아. 그런데 이번에는 티타님이 우리한테···”

“쉿, 쉿. 좀 조용히 얘기해.”


다시 침묵이 찾아왔다.

처음 이야기를 꺼냈던 하녀가 우물쭈물하더니 본심을 내뱉었다.


“나는 사실 일감이 많은 것보다 우리가 마치 도둑처럼 주인님의 서재를 샅샅이 뒤지는 거 같아서 그게 찝찝한 걸.”

“너, 그거 티타님앞에서도 말할 수 있어?”“당연히 못 말하지.”

“그럼 조용히 하고 시키는 대로 해. 어차피 깊게 생각해봤자 우리만 손해 볼 거야.”


하녀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하던 일에 집중했다.

대부분의 하녀가 거침없이 움직이는 분위기 속에서, 책상 쪽 청소를 맡은 하녀만 열쇠를 손에 쥔 채 망설이고 있었다.


“진짜로 열어?”

“네가 티타 님한테 열쇠를 받았으니까 네가 해야지.”

“좀 무서운데. 주인님의 책상 서랍을 함부로 열다니.”

“우린 티타 님이 시키는 대로 하는 것뿐이야.”


결국 하녀가 구멍에 열쇠를 집어넣었다.

스윽, 소리와 함께 서랍이 열렸다.


“비어있네···”

“다른 곳도 열어서 청소하라고 하셨어.”


서재뿐만 아니라 청소를 하러 들어간 하녀들 전부가 티타의 명에 따라 칼리스의 저택 내부를 구석구석 뒤지고 있었다.


-


티타는 뒷짐을 진채, 저택 내를 돌아다니며 중얼거렸다.


“애들이 잘하고 있을 런지, 원.”


하녀들은 티타의 예상대로 칼리스가 자주 드나드는 공간을 구석구석 뒤지라는 것에 거부감과 두려움을 보이고 있었다.

하지만 티타가 엄중하게 경고하면 어쩔 수 없이 작업에 들어갔다.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할 것이지 요즘 애들이란 쯧쯧···”


티타의 앞치마 주머니에는 어제 받은 서신이 구겨진 채 들어가 있었다.

서신의 내용은 대략 이러했다.


-칼리스가 수도에서 큰 사고를 치는 바람에 황제가 화가 나서 주택 수색을 명했다.


티타는 그 내용을 보자마자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었다.


‘우리 도련님은 그러고도 남아. 역시 내 생각은 틀리지 않았어.’


이런 이야기를 보고나니 오히려 안심이 들 정도였다.

칼리스 백작이 마치 딴 사람처럼 변했다는 이야기를 부정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도련님을 배신할 수 있을지 생각을 참 많이 했지.’


티타는 돈 때문에 저택에서의 일을 쉽사리 그만둘 수 없는 처지였다.

그런 티타의 생각을 읽은 듯, 서신에는 티타가 거절할 수 없는 조건이 적혀있었다.


-병에 걸린 아들을 무슨 병이든 고칠 수 있는 황실의 보배, 아스클레피오스의 지팡이를 사용해서 고쳐주겠다.


그 제안을 본 순간, 티타의 마음은 명쾌하게 정리되었다.

이미 황제에게 그 지팡이가 없다는 것을 티타는 알 턱이 없었다.


“더는 부정하지 않아도 되는구나. 내가 언제든 이 저택을 떠나고 싶어 했다는 걸.”


티타에게 이것은 일생일대의 기회였다.

악마 같은 주인에게서 탈출할 수 있는 기회.

티타는 주름진 눈가에 맺힌 눈물을 훔쳤다.


“우리 아들, 엄마가 꼭 낫게 해줄게.”


티타는 창문 밖을 보며 결심을 다졌다.


-


분주하게 쓸고 닦는 하녀들을 보고도 남자 시종들은 별 다른 의심을 품지 않았다.


“하녀들이 오늘따라 청소를 오래 하는군.”

“주인님도 수도로 가셨으니 먼지가 더 쌓였나보지 뭐.”

“그래, 우리들은 이런 일은 잘 모르니까. 하녀 장인 티타가 어련히 알아서 하겠지.”

“유피테르 백작가는 안주인이 부재한 상태니 어쩔 수 없어.”


그래서 티타의 계획은 순조롭게 진행되어 가는 듯했다.


“이게 무슨 짓이냐!”


키르케의 유모가 키르케의 방을 뒤지고 있던 하녀들에게 호통을 치기 전까지는.


“티, 티타님께서 청소를 꼼꼼히 하라고 하셔서···”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공녀님의 침실을 이렇게 쥐 잡듯 뒤지다니. 청소는커녕 오히려 어지럽히고 있지 않느냐.”


소란이 일고 있는 곳으로 티타가 직접 발을 들였다.


“무슨 문제라도 있나?”

“티타 님.”

“자네는 공녀님의 유모였지. 감정에 휘둘려서 하녀들의 일을 방해하지 말게.”


유모는 여전히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티타에게 따졌다.


“이 하녀들은 공녀님이 공부한 공책들까지 펼쳐보고 있었습니다. 이게 청소랑 무슨 관계가 있죠?”

“공녀님이 공부를 하다가 미처 치우지 못한 것들을 청소했을 뿐이야.”

“이 일을 주인님과 공녀님이 알면 뭐라고 할지···”

“주인님은 한동안 돌아오시지 않을 거네.”


티타의 발언에 유모가 놀라 눈을 크게 떴다.


“수도에서도 술을 마시고 싸움을 하셔서 구금되었다고 하더구나. 조금 점잖아지셨나 했는데 역시 아무것도 달라진 게 없었지.”

“아, 아닙니다! 주인님은 바뀌셨어요.”

“뭐?”

“바뀌셨다고요. 공녀님한테도 상냥하게 대하시고···”


티타는 잠시 멍하게 유모를 바라보았다.


‘제정신인가? 공녀님을 아낀다면 절대 우리 도련님을 좋게 볼 리가 없을 텐데.’


하지만 유모가 실성해서 칼리스를 감싸는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유모는 진심으로 칼리스가 그런 행패를 부릴 리 없다고 믿고 있는 것 같았다.


“이 이야기는 그만하지.”


티타는 그런 유모의 태도가 불쾌해져서 말을 끊었다.


“일을 계속 방해한다면 자네에게 체벌을 가할 수밖에 없네. 공녀님의 유모한테 그런 짓은 나도 저지르고 싶지 않으니 조용히 넘어가게.”


티타의 단호한 태도에 유모는 그대로 방에서 쫓겨나올 수밖에 없었다.

방에서 나온 유모는 저택 복도를 걸으며 고민에 빠졌다.


“뭔가 단단히 잘못 되었어···”

“역시 그렇게 생각하시죠?”


갑자기 튀어나온 목소리에 유모는 깜짝 놀라 발걸음을 멈췄다.


“다, 당신은···”

“놀라게 해서 죄송합니다. 재정 관리 담당인 마리온입니다.”


마리온이 공손하게 인사하자 유모는 그제야 안심한 얼굴이 되었다.


“아아, 주인님이랑 자주 이야기 하던···”

“실은 하녀 장이 저한테도 접근해왔거든요. 뭔가 꾸미고 있는 것 같습니다.”


마리온과 유모는 심각한 표정이 되어 몰래 이야기를 나눴다.


-


한편, 수도에 머무르고 있는 칼리스는 키르케와 태평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아버지! 우리 이제 행사도 다 끝났고 팔도 다 나았으니까 어디 놀러 가면 안돼요?”


어쩐지 어리광이 늘은 것 같다고 생각하며 칼리스는 적당히 대화를 이어나갔다.


“어디 가고 싶은 데라도 있느냐?”

“수도 근처에 네오아이라는 도시가 마법이 이 제국에서 가장 번성한 도시래요! 거기 가보고 싶어요.”

“으음, 시간이 될지 모르겠구나.”


그때 저택의 사용인이 둘에게 급하게 뛰어 들어왔다.


“주인님, 급하게 서신이 도착했습니다. 공녀님께도 도착했습니다.”

“나?”


키르케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서신을 받아들였다.


“어? 유모한테서 온 거네.”


칼리스는 불길한 예감에 키르케에게 손을 내밀었다.


“키르케, 괜찮다면 내게 보여다오.”

“여기요.”


키르케 역시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눈치 채고 칼리스에게 편지를 넘겼다.

그리고 주의깊게 편지를 읽는 칼리스를 두고 조용히 방을 나왔다.


“뭐야? 티타가 하녀들을 부리면서 내 집을 뒤지고 있다고?”


칼리스는 기가 막혀 편지를 테이블 위에 거칠게 내려두었다.


‘왜지? 갑자기 그런 짓을 할 이유가···’


혼란스러워하던 칼리스는 퍼뜩 원인을 떠올렸다.


‘있군. 그 강도 사건 때문에 황제가 손을 쓴 것 같아. 하지만 설마 티타가 협조할 줄이야. 티타는 칼리스를 옆에서 오랫동안 봐온 믿음직한 측근이라고 생각했는데.’


칼리스는 고개를 저었다.

자신의 생각이 틀렸음은 이미 이 편지를 통해 증명되었다.


‘아니지. 오히려 오랫동안 봐왔으니까 더 정 털렸을 수도 있어. 그 새끼가 어지간한 망나니여야 말이지.’


칼리스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도무지 진정되지 않는 마음을 안고 방 안을 돌아다녔다.


“지금 당장 저택으로 출발해야···아니, 침착하자. 지금 아무리 빨리 가도 사흘은 걸릴 거야. 게다가 중간에 또 어떤 돌발 상황이 생길지 모르고.”


지금 당장 저택으로 돌아간다는 선택지는 일이 더 악화될 가능성이 컸다.


‘설령 내가 도착해서 잠시 중단된다고 하더라도, 티타가 그런 짓을 앞으로 그만둘 거란 보장이 없어.’


당장 쫓아내는 것도 힘들었다.

마리온과 키르케의 유모가 결정적인 물증을 가지고 온 것은 아니었으니까.

다른 시종들에게 아무 죄도 없고 불쌍한 늙은 하녀를 쫓아낸 주인이라는 이미지가 박힐 수도 있었다.


“이것부터 생각해보자. 티타는 왜 갑자기 배신을 한 걸까?”


칼리스는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며 생각에 잠겼다.

이번 일은 시간을 지체할수록 자신에게 불리했다.

강도 사건의 증거를 찾아내지 못하더라도, 사소한 거 하나라도 꼬투리가 잡히면 골치 아팠다.


‘단지 내가 싫어서 하기에는 리스크가 너무 커. 이 일을 통해 티타가 얻을 수 있는 이득이 분명 있을 거야.’


칼리스는 잠시 머리를 식히기 위해 테라스 쪽으로 나왔다.


“어이, 샌님.”

“으악!”


거꾸로 매달린 채 나타나 얼굴을 들이미는 여자를 보고 칼리스는 깜짝 놀라 주저앉았다.

“자주 만나네.”

“그냥 당신이 찾아온 것뿐이잖아. 아직 이곳을 떠난 게 아니었어?”

“그러려고 했는데 신경 쓰이는 정보가 있어서. 황실 군이 단체로 어딜 향하는 것을 목격했거든.”


칼리스는 여자가 물고 온 정보에 관심을 보이며 물었다.


“어디로?”

“엿들어보니 레리카라는 완전 촌구석 마을로 간다고 하던데. 황실 군 몇 명이 엄청 투덜거리더라고. 군기가 빠졌다니까.”


여자의 말을 듣고 칼리스는 생각에 빠졌다.


“거기에 대체 뭐가 있어서 황실 군을 보낸 거지?”

“나야 모르지.”


이렇게 정보가 새어나갔다는 것은 그만큼 황실 군의 행보가 급하게 정해졌다는 것을 의미했다.

티타가 저택을 뒤지기 시작한 시점과 황실 군이 레리카 마을로 향하는 시점이 맞아떨어진 점이 마음에 걸렸다.


‘우연이라기에는 이상하군. 레리카 마을···어디서 들어본 적이 있는데···’


소설에서 스쳐지나가듯 적혀있던 문장까지 머릿속에서 샅샅이 살피던 칼리스는 드디어 알아냈다.


“좋아. 이제야 정리가 되는 군.”

“뭐가?”


여자의 물음에 칼리스는 제대로 대답하지 않고 넘어갔다.


“좋은 정보를 물어다줘서 고맙군. 나중에 이 빚을 갚도록 하지.”

“착각하지 말라고. 내가 빚을 갚으러 온 거니까. 그 녀석들이 훔쳐온 물건들, 꽤 도움이 될 거 같거든.”


여자는 피식 웃으며 뒷말을 덧붙였다.


“그래도 정보에 대한 값을 더 갚고 싶다면, 네 딸한테 일러둬.”

“뭐를 말이지?”

“나 아줌마 아니라고.”


멍해진 칼리스를 놔두고 여자는 다시 바람처럼 잽싸게 사라졌다.

도무지 무슨 맥락에서 나온 소리인지 알 순 없었지만, 칼리스는 신경을 끊고 다른 곳에 집중하기로 했다.


“티타가 황제를 도울 이유가 없도록 만들어야 해.”


칼리스는 자신의 방에 놓인 금색의 지팡이를 똑바로 쳐다보았다.


작가의말

김마모님 후원금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더욱 노력하겠습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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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독 안에 든 쥐 +1 21.01.21 795 35 14쪽
22 속일 걸 속여야지 21.01.20 895 32 14쪽
21 쉴 틈을 안 주네 +1 21.01.19 874 35 13쪽
20 너를 구하게 될 줄은 +4 21.01.18 932 34 14쪽
19 너를 보게 될 줄은 21.01.17 941 32 12쪽
18 호랑이를 길렀네 +2 21.01.16 944 33 15쪽
17 고양이를 기른 줄 알았더니 +1 21.01.15 945 37 14쪽
16 그래봤자 손바닥 안(2) +1 21.01.14 940 38 15쪽
15 그래봤자 손바닥 안(1) 21.01.13 965 39 14쪽
14 원수와 아군은 한 끗 차이(3) 21.01.12 1,051 38 16쪽
13 원수와 아군은 한 끗 차이(2) +1 21.01.11 1,056 44 12쪽
12 원수와 아군은 한 끗 차이(1) 21.01.10 1,088 42 13쪽
11 믿는 도끼에 발등 찍혀봐라(3) 21.01.09 1,137 44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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