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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르보치킨 님의 서재입니다.

망나니 백작의 생존전략

웹소설 > 일반연재 > 퓨전, 판타지

까르보치킨 아카데미 작가
작품등록일 :
2021.01.02 18:12
최근연재일 :
2021.02.03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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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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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204,097

작성
21.01.11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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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2쪽

원수와 아군은 한 끗 차이(2)

DUMMY

“칼리스 경,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칼리스는 속으로 무척 당황하고 있었다.


‘내가 먼저 말을 걸면 몰라도 헤니르 백작이 먼저 말을 걸다니. 헤니르 백작은 망나니라고 소문난 나를 옛날부터 싫어한다는 설정이었는데?’


칼리스는 긴장을 풀지 않은 채 헤니르 백작이 하는 말에 집중했다.


“갑자기 말 걸어서 놀라셨죠? 죄송합니다. 이번에 영지에서 있던 일을 들었습니다. 그래서 직접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어서···”

“무슨 말씀이신지?”

“농민들을 괴롭히는 폭력배 무리를 직접 가서 쫓아내셨다고요. 저희 영지 내에서도 유명합니다!”

“아아, 그때 일 말이군요.”


다행히 그 무리와 했던 진짜 이야기는 새어나가지 않은 모양이었다.


“저 사실 조금 감동했거든요! 주제넘을지도 모르겠지만, 저처럼 영지 내 주민들의 삶을 신경 쓰는 분이 나타났다고 생각해서 기뻤습니다.”


헤니르 백작은 쑥스러운 듯 볼을 긁었다.

의도한 건 아니지만 이번에는 헤니르 백작이 소설과 달리 처음부터 자신에게 호감을 품게 된 상황으로 바뀌었다.


‘이건 좋은 기회야.’


기회가 오면 반드시 잡아야 한다.

헤니르 백작과 손을 잡아야만 결백이 증명될 테니까.

칼리스는 친절한 미소를 지으며 헤니르 백작에게 다가섰다.


“아닙니다. 헤니르 경처럼 대단하신 분이 저를 그렇게 좋게 봐주셨다니 제가 오히려 영광이죠.”


칼리스는 없는 말도 지어가며 헤니르 백작을 칭찬했다.


“헤니르 경은 다방면에 지식을 갖추신 영민한 분이라고 저희 영지에서도 소문이 자자합니다. 이번 조사단도 황실이 직접 지명해서 들어가시지 않았습니까?”

“네? 어떻게 그걸 벌써···큼, 아닙니다. 부족한 능력임에도 황실에서 좋게 봐주셨을 뿐입니다.”

“헤니르 경처럼 국민의 삶에 가장 가깝게 살고 계신 귀족은 없습니다. 자신감을 가지셔도 좋을 텐데요.”

“그렇진 않습니다. 기껏해야 숫자놀음 정도만 하는걸요.”


헤니르는 귀족답지 않게 아래 사람들이 다루는 실용적인 지식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때문에, 은근 흉을 보는 사람들도 있었다.


‘칼리스도 앞장서서 욕을 해댔고. 자기나 잘할 것이지. 그랬으면 내가 지금 이 개고생을 안 하는데.’


칼리스는 원래 칼리스가 헤니르 백작을 두고 했던 폭언을 떠올렸다.


“저 인간은 있을 곳을 잘못 골랐어! 촌구석에 농부로 태어났으면 딱 분수에 맞는데 말이야. 안 그런가? 다들 내 말에 동의하지?”


그렇기에, 지금의 칼리스는 정반대의 행동을 취했다.

최대한 헤니르 백작을 띄워주는 방향으로.

게다가 헤니르 백작의 지식은 분명 나중에도 도움이 될 테니까.


“산수나 계산은 효율적인 삶을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하죠.”


헤니르 백작은 칼리스가 정확한 용어를 언급하자 눈을 크게 떴다.

게다가 그 가치까지 짚어내다니 놀람의 연속이었다.


“게다가 헤니르 경은 산수와 계산 분야뿐만 아니라 농법에도 깊은 지식이 있으시다고 들었습니다.”

“그것까지 알고 계셨습니까?”

“모임에 참여하기 전에 참여하시는 분들에 대해 조금 조사를 했습니다. 명망 높은 백작님들과 교류하려면 이 정도 노력은 기울여야지요.”


헤니르 백작은 칼리스에게 순수하게 감탄을 띄며 말했다.


“준비가 철저하시군요. 게다가 다른 분야에도 이렇게 관심이 깊으시다니.”

“소문이랑 다르지요?”


헤니르 백작은 칼리스가 던진 농담에 살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칼리스는 속으로 안도했다.

어쨌든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 같다.


“그냥 취미생활에 불과합니다. 제가 직접 농사를 짓는 것도 아니니 말입니다.”

“아닙니다. 영지의 주인으로서 아주 도움이 되는 지식이 아닙니까.”

“그런가요?”

“네.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합니다.”


헤니르 백작은 칼리스의 말에 얼굴을 붉혔다.

헤니르 백작은 자신이 쌓아온 지식에 대해 자신이 없었고 늘 기죽어있던 상태였다.

어릴 때부터 귀족이면서 쓸데없는 것에 관심을 보인다는 질책을 자주 들어왔기 때문이다.


‘슬슬 괜찮으려나.’


헤니르 백작의 눈치를 살피던 칼리스는 묵혀두고 있던 본심을 꺼냈다.


“그래서 말인데, 괜찮으시면 조언을 받을 수 있을까 싶습니다.”

“조언이요?”

“잡초 제거법에 대해서요.”


헤니르 백작은 무심코 숨을 죽였다.

잡초란 단어 때문이었다.

황실 조사단 내에서만 쓰던, 마약 뷔레를 뜻하는 비밀 암호였다.


“최근에 저희 영지에서도 극성이거든요. 잡초가 워낙 억세서 뽑다가 손을 떠는 영지 민도 있을 정도랍니다.”


헤니르 백작은 저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다.

손을 떠는 것은 뷔레 중독자들이 보이는 증상들 중 하나.

아무리 봐도 칼리스는 비밀 암호를 확실히 알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벌써 그 암호가 새어나갔다니. 대체 무슨 일이지?’


헤니르 백작은 혼란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이것 참. 영지 내부에서 몰래 잡초를 퍼트리는 녀석이라도 있는 게 아닐지. 그런 생각도 들었지 뭡니까.”


헤니르 백작은 눈을 크게 떴다.

칼리스는 황실 조사단에 스파이가 있는 것 같다고 돌려 말하고 있었다.


‘헤니르 백작은 조금 순진하긴 하지만 머리는 좋은 사람이지.’


칼리스의 예상대로, 헤니르 백작은 칼리스의 말을 알아듣고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


“어떠십니까? 누추하지만, 저희 저택에 방문해주셔서 조언을 해주신다면 굉장히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만.”

“조, 좋습니다. 그럼 이틀 뒤는 괜찮으신가요?”

“물론이죠.”


헤니르 백작과 악수를 나누고 있는 칼리스를 저 멀리서 랑레이 백작이 지켜보고 있었다.


“벌써 작업에 들어간 건가? 행동도 참 빠른 남자로군.”


칼리스가 자신에게 말한 대로, 조사단 사람들에게 정보를 빼내고 있다고 철석같이 믿고 있었다.


‘그런데 헤니르 경이 조사단의 일원이란 건 어떻게 이렇게 빨리 알게 된 거지? 정말 조직에서 대단한 위치라서 정보를 제공받고 있는 건가? 그렇다면 최대한 칼리스 경을 따르는 게 좋겠어.’


게다가 거한 헛다리까지 짚고 있었다.


-


승마 모임을 성공적으로 마친 칼리스와 키르케는 지친 몸을 이끌고 집으로 돌아왔다.

하루종일 미소만 짓고 있느라 광대가 아파서 누가 먼저라 할 것 없이 키르케와 칼리스는 마차에서 내리자마자 광대를 문질러댔다.


‘뭔가 보상이 될 만한 말이나 행동을 해주는 게 좋으려나. 그래야 나중에도 잘 처신하겠지.’


피곤한 와중에도 키르케가 신경 쓰인 칼리스는 키르케에게 짧게 말을 건넸다.


“키르케, 수고했다.”

“아, 아니에요!”


키르케는 칼리스에게 들은 말이 기뻤는지 볼을 붉혔다.


“아버지, 저, 그, 아군이라고 해야 하나···”

“응?”

“아, 아군이에요! 분명! 아버지께도 도움이 될 수 있을 거고···그러니까 제가 오늘 아군을 만들었거든요.”


두서없이 말하는 키르케를 보고 칼리스는 저도 모르게 피식 웃었다.


“뭐, 그렇게 복잡하게 생각할 것 없다. 아군은 다른 말로 친구라고도 하니까.”

“친구···”

“그래.”


키르케는 수줍어하며 다시 말을 정리했다.


“아버지, 저 친구가 생겼어요.”

“그래. 잘 됐구나. 괜찮다면 그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들려줄 수 있니?”


키르케는 칼리스의 말에 밤하늘에 떠있는 별보다도 환하게 웃었다.


“네!”


-


그날 밤 칼리스는 피곤하긴 했지만, 서재의 소파에 앉아 키르케의 옆에서 잠자코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처음으로 아버지가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기 위해 자리를 마련하자 키르케는 굉장히 신이 난 채 승마 모임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클로에 양도 직접 고양이랑 놀아주고 고양이의 코를 닦아주기도 한다지 뭐에요! 저, 저는 그런 숙녀가 하기에는 더러운 짓···저만 하고 있는 줄 알았는데. 클로에 양도 그걸 하고 있다고 하니까 놀라서 저도 하고 있다고 무심코 말해버렸어요.”

“그랬구나.”

“아, 죄송해요, 아버지. 흠이 될만한 짓을 해서.”

“아니다. 공감대를 만들어서 다행이지. 그래서 클로에 양이 뭐라고 했느냐?”


칼리스가 숙녀답지 않은 말을 했다고 탓하는 대신, 더 이야기를 들으려고 하자 키르케는 배시시 웃었다.

칼리스는 내심 그런 키르케를 보고 놀라고 있었다.


‘처음 봤을 때는 어려도 악녀는 악녀라고 생각했는데.’


그때의 모습이 거짓말처럼 느껴질 정도로, 키르케는 지금 그저 천진난만한 아이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제 손을 맞잡고 아주 기뻐했어요! 정말로 고양이를 좋아하는 귀족 여식을 만난 건 처음이라면서. 나중에는 고양이를 좋아하는 다른 여식들도 소개시켜 준다고 했어요.”

“그래, 잘 됐구나.”


렉시 백작이 겸손을 부리며 자기 딸은 고양이들하고만 논다고 했지만 거짓말이었다.

아버지가 발이 넓은 만큼, 당연히 그의 딸 클로에도 인맥이 넓은 편이었다.

그런 클로에와 친해지는 것은 당연히 자신과 키르케의 미래에도 큰 도움이 되기에 반길 수밖에 없었다.


“클로에 양은 그만큼 고양이를 굉장히 좋아해요. 아마 외모에 대해서 흉을 보지 않기 때문일 거라고 생각해요.”


키르케는 진지한 표정으로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저도 우리 집 고양이들이 좋아요. 못생겼고 더럽지만, 껴안으면 온기가 느껴져요. 그게 마치 내가 여기 있어도 된다고 말해주는 거 같아서.”


억지로 안긴 고양이였는데도 키르케는 의외로 굉장히 정을 붙인 모양이었다.


‘많이 외로웠나보군.’


칼리스는 키르케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이제는 사람 친구들하고도 잘 놀면 좋겠구나. 친구들이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그런 기분을 더욱 자주 느끼게 될 거다.”

“으응······네, 그럴···게요······”


키르케는 눈을 비비다가 꾸벅꾸벅 졸더니 이내 색색 숨소리를 내며 잠들었다.

칼리스는 키르케의 어깨를 토닥이며 말했다.


“잘 자라. 키르케.”

“···으응······”


돌아오는 답이 딱히 없는 것을 보면 이미 깊게 잠든 모양이었다.

칼리스는 키르케를 조심스럽게 안아 들어 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유모와 하녀에게 넘겼다.


“키르케를 침실로 옮기도록 해라. 깨지 않도록 주의하고.”


칼리스에게 설마 그런 자상한 말을 듣게 될 줄 몰랐던 유모는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잠든 키르케와 칼리스를 번갈아 보았다.

칼리스가 서재의 문을 닫은 이후에도 유모는 쉽사리 발걸음을 떼지 못했다.


“왜 그러세요? 어서 아가씨를 옮겨야죠.”


키르케의 시중을 드는 하녀가 옆에서 재촉했다.


“그, 그래. 그래야지.”


침실까지 안고 온 키르케를 침대에 눕히며 유모는 소리 없이 눈물을 훔쳤다.


“아가씨, 정말 잘 되었어요. 드디어 주인님이 아가씨의 마음을 알아주고 계셔요.”


잠들은 키르케의 얼굴은 평온하기 그지없었다.


-


이틀 후, 헤니르 백작은 서둘러 유피테르 백작 가를 찾았다.

칼리스는 자신을 찾아온 헤니르 백작을 보자마자 응접실로 능숙하게 안내했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진행하기 위해 시종들과 하녀들을 전부 내보냈다.


“그, 잡초 때문에 고초를 겪고 계시다고 하셨는데.”


헤니르 백작은 승마 모임에서 처음 만났을 때와 달리 조금 편치 않은 얼굴이었다.


“네. 황실 조사단도 그렇지요?”

“···역시 알고 계셨군요. 그 암호를.”


칼리스는 고개를 숙이며 헤니르 백작에게 사과했다.


“놀라게 해드려서 죄송합니다. 하지만 이렇게 빨리 말씀드리지 않으면 내부의 변절자가 눈치챌 것 같아서요.”

“그 내부의 변절자가 누군지도 이미 알고 계신 겁니까?”

“그렇습니다.”


헤니르 백작은 경악하며 이마를 짚었다.

눈앞의 남자가 너무 상식 밖의 말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니, 변절자를 알아낸 것 자체도 놀라운데 어떻게 그렇게 빨리···”

“헤니르 경. 이건 헤니르 경만 알고 계셔주셨으면 합니다. 황실에 진정으로 충성하는 헤니르경이기에 믿고 말씀드립니다.”

“네? 무슨 말씀을 하시려고···”


칼리스는 목소리를 낮춰 헤니르 백작에게 충격적인 사실을 전했다.


“사실 제가 직접 마약 밀매 사업에 참여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알 수 있었습니다.”

“네에?”


헤니르 백작은 깜짝 놀라 소리를 높이고는 자신이 낸 큰 소리에 놀라 바로 입을 막았다.

칼리스는 집게손가락을 입가에 댄 채 기밀사항이라고 강조하며 이야기를 지속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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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신발 찾아 삼만리 +3 21.01.22 788 26 14쪽
23 독 안에 든 쥐 +1 21.01.21 795 35 14쪽
22 속일 걸 속여야지 21.01.20 895 32 14쪽
21 쉴 틈을 안 주네 +1 21.01.19 874 35 13쪽
20 너를 구하게 될 줄은 +4 21.01.18 932 34 14쪽
19 너를 보게 될 줄은 21.01.17 941 32 12쪽
18 호랑이를 길렀네 +2 21.01.16 945 33 15쪽
17 고양이를 기른 줄 알았더니 +1 21.01.15 945 37 14쪽
16 그래봤자 손바닥 안(2) +1 21.01.14 940 38 15쪽
15 그래봤자 손바닥 안(1) 21.01.13 965 39 14쪽
14 원수와 아군은 한 끗 차이(3) 21.01.12 1,051 38 16쪽
» 원수와 아군은 한 끗 차이(2) +1 21.01.11 1,057 44 12쪽
12 원수와 아군은 한 끗 차이(1) 21.01.10 1,088 42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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