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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르보치킨 님의 서재입니다.

망나니 백작의 생존전략

웹소설 > 일반연재 > 퓨전, 판타지

까르보치킨 아카데미 작가
작품등록일 :
2021.01.02 18:12
최근연재일 :
2021.02.03 21:20
연재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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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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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2.02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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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실력 좀 볼까?(3)

DUMMY

에리스는 쉽사리 분함을 거두지 못하고 씩씩거렸다.

관객석에 있는 자신의 부모가 낭패라는 표정을 짓고 있는 것도 눈치 채지 못했다.


“날 무시한 대가를 치르게 해주지!”

“무, 무시한 게 아니라···”


키르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공격이 날아왔다.

일순 당황하긴 했지만, 에리스의 거침없는 공격을 키르케는 한 방도 맞지 않고 전부 피했다.

그런 키르케를 보고 칼리스가 감탄했다.


“엄청 잘 피하네.”

“마법이 날아올 방향을 머릿속으로 계산하신 겁니다. 그것도 단기간에.”


테이레스는 침착함을 유지하려고 애썼지만, 목소리에 감출 수 없는 흥분이 묻어났다.


‘내 딸, 슈퍼 천재였군.’


칼리스는 흡족하게 키르케의 활약을 지켜보았다.

하지만 정작 토너먼트를 치르는 키르케는 그렇게 유쾌한 기분이 아니었다.


‘자기 멋대로 오해하고서 왜 화를 내는 거야?’


공격을 피하며 키르케는 대기실에 있었던 일을 떠올렸다.


-


키르케는 보호자로 변신한 미미와 헤어진 후, 혼자 대기실로 들어갔다.

아까부터 키르케에게 관심을 보이던 에리스가 냉큼 키르케 옆에 앉았다.


“너, 왜 아까 말 걸었는데 무시한 거야? 사람이 말을 하면 좀 쳐다보기라도 해야 하는 거 아냐?”


키르케는 여전히 묵묵부답이었다.

시비를 거는 말투에 기분이 상한 것도 있었지만, 결정적인 이유는 이러했다.


‘괜히 말했다가 내가 여자인 거 들키면 어떡해.’


키르케의 분장을 도와주며, 주노는 어린아이니까 굳이 남자 목소리를 연기할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키르케는 여전히 불안했다.

어느새 주변 참가자들이 에리스를 발견하고 수군거렸다.


“쟤, 저번 마법 논문 대회에서 금메달을 딴 애야.”

“뭐? 유력한 우승 후보겠네.”

“으, 너무 긴장 된다···”


에리스는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키르케를 바라보았다.


‘네가 이래도 날 무시할 수 있겠어?’


얼굴에 에리스의 의사가 전부 적혀있었다.

하지만 키르케는 다른 곳에 정신이 팔려있었다.


“아, 알겠다. 내가 너무 대단한 존재라서 쳐다보기가 힘든 거지?”


에리스의 말에 키르케는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에리스는 여전히 착각의 늪에 빠진 채로 종알종알 말을 이어갔다.


“그럼 그렇지. 날 이렇게 차갑게 대할 이유는 그거밖에 없어. 그렇게 안 봤는데 너 부끄럼이 많구나?”


키르케는 결국 참다못해 에리스에게 한 마디를 던졌다.

여기서 단호하게 쳐내지 않으면 계속 들러붙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야, 나한테 말 걸지 마.”


원래 키르케였다면, 같은 여자를 상대로 이렇게 거칠게 말하지 않았을 터였다.

하지만 지금 키르케는 소년으로 분장한 상태였기에 다소 쌀쌀맞은 말이 저절로 나왔다.

에리스는 잠깐 멍한 표정을 지었다가 얼굴이 완전히 일그러졌다.


“참가자, 어디 가는 거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는 에리스를 보고 진행요원이 물었다.


“잠깐 화장실이요.”

“빨리 다녀오도록 하세요.”


울음을 참느라 어깨를 들썩거리던 에리스는 그대로 대기실의 문을 벌컥 열고 뛰쳐나갔다.


“웬일이야···”

“무슨 배짱으로 저랬대?”


키르케는 한순간에 싸해진 대기실의 분위기에 잠시 당황했다가 애써 외면했다.

대신 토너먼트에 온 정신을 집중하기로 했다.


-


설마 이렇게 빨리 대련 상대로 에리스를 만날지 몰랐다.

에리스의 맹공격이 잠시 멈춘 틈을 타 이번에는 키르케가 맹공격을 날렸다.


“아니?”

“왜 그래?”

“이거 정말, 공녀님한테는 못 당하겠군요.”

“너만 알지 말고 제대로 설명을 해봐.”


툴툴거리며 말하던 칼리스는 이내 눈치 챘다.

키르케가 날렸던 얼음 마법이 아까보다 훨씬 단단해지고 규모가 커져있었다.

테이레스는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키르케에게 눈을 떼지 못했다.


“아직 가르쳐드리지 않은 영역입니다. 융합 마법의 강도를 높이는 방법.”

“그런데 어떻게 안 거야?”


굳이 물어보는 칼리스를 보며 테이레스는 조금 미묘한 표정을 지었다.


‘상당한 딸 바보시군.’


테이레스는 한숨을 쉬면서도 결국 대답을 해주었다.


“그야 공녀님이 스스로 원리를 깨우칠 정도로 천재시니까요.”

“그랬군. 이거 참, 이러다 자네 없이도 잘 하겠네. 잘라도 되겠네.”

“말에 뼈가 있는 것 같은데 제 기분 탓이길 바랍니다.”


키르케가 날린 얼음 마법에 에리스의 불 속성 마법은 금방 잦아들었다.

승부는 이미 점쳐져 있었다.


“아, 아직 항복 아냐!”


하지만 에리스는 악을 쓰며 물러나지 않았다.

에리스는 두 팔에 차고 온 마법 팔찌에 마력을 모아 증폭시켰다.


“다시는 날 무시하지 못하게 해줄 거야!”


에리스가 고함을 치며 순식간에 발밑에 커다란 불의 고리를 만들었다.

불의 고리는 점점 영역을 넓혀가며 토너먼트의 장 전체를 불태울 기세로 커져나갔다.


“앗, 뜨거!”


토너먼트 장과 가까이에 있던 관객석들의 보호자들이 서둘러 자리를 피할 정도였다.


“자, 어서 덤벼 봐! 네 마법이 얼마나 대단해도 이걸 이길 순 없어!”


에리스의 눈이 광기로 번들거렸다.

동시에 차고 있던 팔찌가 불안정하게 마구 흔들렸다.


“이건 위험하군요. 자기 몸을 갉아먹는 짓입니다.”


테이레스가 걱정이 가득한 눈으로 에리스를 바라보았다.

불의 고리가 금방이라도 자신을 태워버릴 것 같은 상황에서도, 키르케는 에리스를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넌 날 못 이겨.”


-


얼굴에 까만 재를 잔뜩 묻힌 채 쓰러진 에리스가 바들바들 떨며 손을 들었다.


“하, 항복···”


관객석이 잠시 조용하다가 이내 함성과 박수소리로 가득 찼다.


“우와아아아!”


환호하는 관객들을 보며 칼리스는 미간을 찌푸렸다.

무슨 신기한 쇼를 본것처럼 구는 관객들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이쪽은 뛰쳐나갈지 말지 존나 고민했는데.’


젊은 부부가 울먹이며 바로 토너먼트 장으로 뛰어 내려갔다.


“에리스!”

“우리 딸!”


에리스의 어머니는 눈물 젖은 얼굴을 딸의 얼굴에 비볐다.


“다친 곳은 없니?”


에리스는 힘없이 눈을 뜨며 작게 속삭였다.


“죄송해요. 엄마, 아빠.”


친근하게 부모를 부르는 에리스를 보며 키르케는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

아버지를 아빠라고 부르는 건 아직 자신에게 먼 이야기였다.


“죄송할 게 뭐 있어. 우리 딸, 너무 잘했어.”


키르케는 에리스의 어머니를 보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에리스가 한 행동은 도무지 잘했다고 칭찬받을 만한 행동이 아니었다.

에리스의 아버지가 키르케를 노려보더니 차갑게 내뱉었다.


“마법을 제대로 배운 적도 없는 무지한 부모 밑에서 났다더니. 수준이 보이는군.”


에리스를 달래느라 정신없던 에리스의 어머니도 매서운 눈으로 키르케를 째려봤다.


“마법 강도도 조절 못 하다니. 정말이지 기본도 지킬 줄 모르는구나.”

“강도를 조절하지 못한 건 저 아이예요. 난 쟤의 공격에 대응한 것뿐이라고요.”


얌전히 있을 줄 알았던 키르케가 제대로 반박하자, 에리스의 부모는 할 말을 잃고 버벅거렸다.

진행요원들이 쩔쩔매며 에리스의 부모를 말렸다.


“그, 그만 물러가 주세요! 토너먼트 진행에 방해됩니다.”

“이의를 제기합니다.”


에리스의 아버지가 안경을 만지작거리며 진행요원들에게 따지듯 말했다.


“토너먼트에서 살생은 금지되어있습니다. 하지만 저 소년은 우리 딸을 해치려고 했어요. 당장 탈락시켜야 하지 않습니까?”

“타, 탈락?”


관객석이 일제히 웅성거렸다.

누구든 부당하다고 생각했지만, 에리스의 부모는 유명한 학자라 당장 반박하기 힘든 분위기였다.

그때, 칼리스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백작님?”


테이레스가 말릴 틈도 없이 칼리스는 단박에 토너먼트 장에 뛰어 들어갔다.

갑자기 나타난 칼리스를 보고 에리스의 부모는 당황한 얼굴로 말했다.


“다, 당신은 테이레스의 조수?”


정말로 탈락당할까 봐 마음을 졸이고 있던 키르케가 칼리스를 알아보고 안도한 표정을 지었다.


“아, 아버지···”


키르케가 아주 작게 내뱉은 말을, 에리스는 듣고 말았다.

에리스는 방금 일어났던 격렬했던 전투를 떠올렸다.


-


에리스는 자신의 몸에 무리가 가는 것을 알면서도 끝없이 화염을 태웠다.

단지 눈앞의 소년이 자신을 돌아보게 하겠다는 일념으로 마력을 끌어모았다.


“그러다 크게 다쳐.”

“하, 네 걱정이나 하지 그래? 내가 아까 말했지. 날 무시한 대가를 치르게 해주겠다고!”


키르케는 침착한 얼굴로 에리스를 바라보았다.


“네가 싸우는 이유는 겨우 그것뿐이야?”

“겨우 그거라니?”


놀라는 에리스에게 키르케는 담담하게 내뱉었다.


“그래선 날 이길 수 없어.”


키르케도 다시 마력을 두 손에 끌어모았다.


“난 꼭 이 토너먼트에서 우승할 거야. 아버지를 위해서.”


그렇게 말하는 키르케의 눈동자에는 단 한 점의 망설임도 없었다.

에리스가 키르케의 눈동자를 멍하게 바라보는 사이에, 거대한 얼음기둥이 솟아올랐다.


-


갑자기 나타난 칼리스를 보고 에리스의 부모는 어리둥절 해했다.

칼리스는 멱살 잡고 싶은 마음을 눌러 참으며 에리스의 부모에게 쏘아붙였다.


“남의 자식을 살인자로 몰기 전에 그쪽 딸의 행위를 돌아보는 건 어떤가?”

“뭐라고? 감히 우리 에리스를 모욕해?”

“저 애가 태워 먹은 시설들을 보고도 그런 말이 나오나? 시설만 태웠으니 다행이지 사람까지 태웠으면 어쩔 뻔했어.”


칼리스가 먼저 나서서 총대를 매자, 관객석에서 봇물 터지듯 불만이 쏟아져 나왔다.


“마, 맞아! 난 머리가 탈 뻔했다고. 가뜩이나 얼마 안 남았는데.”

“기껏 좋은 옷을 입고 왔는데 그을음이 생겼어.”

“보상해! 보상하라고!”

“조, 조용히 해! 우리가 누군지 알고···”

“사과해라!”


에리스의 아버지가 수습하려고 했지만 한번 기운 분위기를 바꿀 순 없었다.

사람들에게 비난을 받는 부모의 모습을 처음 본 에리스는 놀란 눈빛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마음이 차분했다.


‘결국 쟤한테 져서 그런가.’


아버지를 위해 싸운다고 했던 키르케의 모습은 에리스의 마음에 불꽃처럼 남아있었다.

각오의 깊이가 남달랐기 때문이다.

에리스도 당연히 토너먼트에서 우승하고 싶었지만, 키르케의 각오를 마주한 순간 그 마음은 마치 모래성처럼 무너져 내렸다.


‘저 사람이 아빠? 하지만 아까는 엄마랑만 같이 왔는데.’


듬직하고 어른스러웠던 키르케의 얼굴이 두건을 두른 남자의 옆에서는 완전히 풀어져 있었다.

에리스는 여전히 박박 우기는 부모의 옷자락을 잡아끌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자신의 부모가 부끄럽게 느껴졌다.


“어, 엄마. 아빠 이제 그만···”


한편, 에리스의 뒤에 나올 예정이었던 참가자가 침을 질질 흘리며 짐승 같은 울음소리를 냈다.


“크르르르르···”

“음? 다음 참가자인가. 미안하지만 조금만 더 대기를···”


참가자는 송곳니를 드러내더니 진행요원의 목을 그대로 물어뜯었다.


“크아아악!”


즉사한 진행요원의 시체가 바닥에 던져졌다.

인간이었던 참가자는 점점 변모하더니 마치 마수와도 같은 모습으로 변했다.


“실험 결과를 확인해 볼 좋은 기회가 왔군.”


검은 망토를 두른 남자가 입꼬리를 올린 채 중얼거렸다.

남자의 시선은 토너먼트 시합장에 있는 칼리스를 향했다.


작가의말

김마모님 후원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열심히 하겠습니다.

봐주시는 분들 모두 감사드립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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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신발 찾아 삼만리 +3 21.01.22 789 26 14쪽
23 독 안에 든 쥐 +1 21.01.21 796 35 14쪽
22 속일 걸 속여야지 21.01.20 895 32 14쪽
21 쉴 틈을 안 주네 +1 21.01.19 875 35 13쪽
20 너를 구하게 될 줄은 +4 21.01.18 933 34 14쪽
19 너를 보게 될 줄은 21.01.17 942 32 12쪽
18 호랑이를 길렀네 +2 21.01.16 946 33 15쪽
17 고양이를 기른 줄 알았더니 +1 21.01.15 947 37 14쪽
16 그래봤자 손바닥 안(2) +1 21.01.14 942 38 15쪽
15 그래봤자 손바닥 안(1) 21.01.13 966 39 14쪽
14 원수와 아군은 한 끗 차이(3) 21.01.12 1,053 38 16쪽
13 원수와 아군은 한 끗 차이(2) +1 21.01.11 1,058 44 12쪽
12 원수와 아군은 한 끗 차이(1) 21.01.10 1,090 42 13쪽
11 믿는 도끼에 발등 찍혀봐라(3) 21.01.09 1,139 44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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