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x커피일요일 님의 서재입니다.

잿빛 까마귀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커피일요일
작품등록일 :
2022.05.05 22:07
최근연재일 :
2022.11.02 22:00
연재수 :
55 회
조회수 :
1,896
추천수 :
24
글자수 :
252,035

작성
22.10.22 22:00
조회
34
추천
0
글자
13쪽

50. 정화

DUMMY

“잘 아시는 분이 왜 이러실까? ‘그분’도 분명히 말씀 하시지 않았나요? 목적을 잃은 존재는 길바닥에 말라 죽고, 불쏘시개로나 사용될 것이란 거 분명 당신이 모르지 않을 거 아니에요?”


“아스클레피오스, 네가 ‘그분’에 대해서 뭘 안단 말이냐? 나는 ‘그분’을 태초에서부터 만나 뵈었다. 그분은 지금 용서하시려고 마음을 열고 계신다. 저 미물들을 용서하셨으니 이 우주의 직조차인 나의 작은 흠은 그 거대한 품 안에 숨겨 주실 거야. 자네는 ‘그분’의 말씀 중 용서와 사랑을 모르는 건가?”


아스클레피오스는 어떻게든 그 무거운 창조자의 입술이 떼어지게 함에 있어서 너무나 기뻤지만, 대놓고 즐거워할 순 없었다.


치유의 신은 잠시 헛기침을 하며 목을 가다듬고는 다시 데미우르고스에게 말을 하기 시작했다.


“아이고 영감님! 최근에 다른 존재들과 대화한 적 없으시죠! 그죠! 왠지 이럴 거 같더라니까. 거 향연에도 좀 참여 하시고, 대화를 나눠야 그런 이단적 해석에 빠지지 않는다는 거 아시면서 왜 그러실까? ‘그분’ 깨서는 오직 필멸 자들을 사랑하셔요. 직접적인 언급은 없지만, 루시퍼만 보더라도 아시잖습니까!”


데미우르고스는 아스클레피오스의 말에 대답은 없이 콧방귀만 뀔 뿐이었다.


하지만 분명 동요하고 있다.


‘그분’의 따스한 눈길과 관심 대신 차가운 판결과 처벌로 신들의 영역 저 밖으로 쫓겨나 망각의 늪 저 밑으로 타락할 것이란 것은 분명 루시퍼가 속삭인 유혹을 들었을 때도 떠올린 걱정 중 하나였다.


“젊은이여. 자네 분명 말하지 않았는가?”


“예? 그게... 어떤 걸 말씀하시는 거죠?”


데미우르고스는 우수에 찬 표정으로 아스클레피오스에게 말했다.


아스클레피오스는 갑작스럽게 적극적으로 무언갈 말하려는 듯 한 데미우르고스의 태도에 놀랐지만, 고무 감을 느꼈다.


“내가 우주의 아버지가 아니냐고.”



“예 그랬죠?”


데미우르고스는 등을 보이던 몸을 돌려 천공을 바라보았고, 그 틈을 통해서 우주를 바라보았다.

천공을 바라보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데미우르고스와 아스클레피오스.png

그리고 데미우르고스는 말을 시작했다.


“내가 이 병든 우주를 바라보며 무슨 심상이 떠오르리라 생각하는가?”


데미우르고스는 아스클레피오스가 서 있을 곳 언저리에 대충 눈길을 주며 말했다.


아스클레피오스는 염려하고 있다고 대답할 수 없었다. 만약 그리 말한다면 분명 창조의 신은 그것을 단숨에 부정해 버릴 것이다.


데미우르고스는 선뜻 대답하지 못하고 우물쭈물 하는 아스클레피오스를 흝깃 보았다.


치유의 신은 과하지도 덜하지도 않게 모든 신체 부위에서 균형이 아름답게 잡힌 근육이 드러나 있었으며, 두눈에는 완벽함이 그 영혼을 빛내고 있었다.



“나는 아무런 심상이 떠오르지 않는단다. 보거라 젊은 아스클레피오스여! 자네는 이 우주에서 무엇이 보이는가?”


“저는 이 안에서 고통받을 영혼들이 보입니다.”


“신 이기 이전에 인간이었던 자네에게는 그리보이겠지. 하지만 너 또한 이해할 수 있지 않겠나? 이것이 우주를 위한 가장 좋은 것이라고 넌 동의하지 않겠는가? 인간을 치유하기 위해서 그 인간을 죽여버리는 너는 날 이해할 수 있지 않겠냐는 거다 아스클레피오스.”


“데미우르고스!”


아스클레피오스는 적당한 음성으로 창조자에게 분노를 내비쳤다. 그것은 아주 적절한 음절의 강조와 시끄럽지 않을 정도의 고음으로 그 자체에 있어서 적절한 분노였다.


“마음대로 화도 못 내는 우리 아스클레피오스는 사람을 사랑하는가? 건강을 사랑하는가?”


그것은 아스클레피오스를 향한 비꼼 이였다.


분명 아스클레피오스가 인간들을 치유하고자 하는 것은 보기 아름답고 좋기 때문이었다. 치료받는 자가 무엇을 느끼고 어떤 의지를 지니고 있는지는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


“제가 사람들을 어떻게 치료하든 그게 뭔 상관이겠습니까? 당신은 이 우주의 아버지입니다. 그렇지 않나요? 그러면 당연히 당신은 이 우주를 사랑하고, 돌봐야 하는 것이겠지요.”


“그것참 이율배반적인 소리구만 아스클레피오스, 자네는 사람들이 어떻게 죽어 나가던 자네 마음대로 치료를 강행해도 되지만 나는 나의 뜻대로 이 우주를 운행 시켜서는 안 되는가? 아스클레피오스... 비록 그것이 우주를 완전히 파멸시키는 것이라고 하더라도 나는 그것이 우주를 운행하는 데 있어서 좋다고 판단한다면 기꺼이 파괴하겠다.”


“데미우르고스 도대체 왜 그러시는 겁니까? 파멸한 우주를 어떻게 운행 시킨다고 말하는 겁니까? 당신은 우주를 운행하는 것 말고 다른 이유로 우주를 파멸로 이끄는 것 아닙니까? 도대체 그 죄악의 군주가 당신의 의지를 어떻게 현혹했길래 이 말도 안 되는 참극을 허용했단 말입니까?”


“아스클레피오스! 설마 자네는 내가 악마의 유혹에 놀아난다 생각하는 건가?”


“그렇지 않습니까? 데미우르고스?”


아스클레피오스의 지칠 줄 모르는 추궁에 데미우르고스는 공허한 웃음을 터뜨렸다.


창조자의 거대하고 무거운 웃음소리는 퍼져나가 신들의 영역 저 멀리까지 울려 퍼졌다.


“아마 젊은 자네는 내게 묻고 싶은 거겠지. 내가 아들 같은 우주를 버린 것처럼, ‘그분’ 깨서도 아들 같은 나를 버리지 않겠냐고. 맞지?”


아스클레피오스는 창조자의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그리고 내가 진정으로 우주를 저버린다면 ‘그분’ 께서 나를 망각 저 너머로 밀어 떨어지게 하는 것에 정당성을 지니게 한다고 자넨 말하고 싶은 거겠지 그렇지 않나?”


아스클레피오스는 신의 영역에 울려 퍼지던 창조자 목소리의 메아리가 잠잠해졌을 즈음 고개를 끄덕였다.


“오... 젊은 신이여, 젊은 영혼이여, 젊은 필멸의 태생이여! 자네는 아는가? ‘그분’은 코스모스(질서)인가? 카오스(혼돈)인가? 애매하게 그분을 샴쌍둥이로 만들지 말게, ‘그분’의 영혼은 섞여 있는 것이 아니네.”


“데미우르고스, ‘그분’은 질서로서 우리와 함께하신 게 분명합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째서 이 세계를 일관적으로 운행하도록 하겠습니까?”


“나도 처음엔 그런 줄 알았다네 젊은이. 하지만 그 고약한 침묵 속에 살아가다 보면 어떤 생각마저 드는 줄 아나? 처음부터 ‘그분’은 없는 건 아닌지 억겁 속에서 생각하게 되는 거야!”


아스클레피오스는 데미우르고스의 말을 듣자 쏜살처럼 창조자의 말을 반박하고자 했지만, 손가락을 치켜들고는 아직 말이 끝나지 않았다고 표시하고 있었다.


“나도 아네! 아스클레피오스 ‘그분’을 부정하는 것은 가장 반지성적이란 것. 내가 느낀 감정이란 게, 마치 그런 결론을 도출해 낼 만큼 절망적이었다는 걸 말하고 싶은 거네 아스클레피오스여. 나도 알아 그분은 존재하신다. 그 사실이 나에게 족쇄를 채웠고, 더 무겁고 초조하게 만들었지. 그렇다면. ‘그분’을 전심으로 부정하고 싶지만, 그것이 이미 아니라는 것이 결정 났을 때 자네는 어떻게 하겠나?”


데미우르고스는 그 무거운 시선으로 아스클레피오스를 바라보았다.


아스클레피오스는 데미우르고스의 시선이 부담스러웠기 때문에 자꾸만 저 구석으로 자기 눈을 옮겼다.


“나는 ‘그분’이 어떤 존재이신지 다시 정의 하기 시작했다 아스클레피오스. 너는 이 적막만이 흐르는 영역에서 그분의 후광이 비치는 가장 밝고 높은 곳에서 필멸의 영웅들과 향연을 벌이고 지상의 음악과 음식, 쾌락을 즐겨서 모르겠지. 하지만 난 이곳에 서서 우주를 느끼고 있었단 말이다. 수많은 비극과 죄악, 더욱 악해지는 영혼들의 출몰과, 고통받는 선한 자들의 실망과 신성모독, 그리고 타락을! 그 모든 것을 관조하고 계시는지 애써 무시하고 계시는지 아니면 관심조차 없으신지 나는 그분을 시험하고자 하는 욕망에 빠졌다 아스클레피오스.”


“데미우르고스여! 시험은 악마의 것 아닙니까? 어째서 ‘그분’을 악마의 방식으로 판단하려 한다는 겁니까? 믿음과 소망은 당신의 영혼 어디에 있습니까?”



“나는 사랑을 느끼고 싶었노라. 젊은 아스클레피오스여... ‘그분’ 께서는 죄악 안에서 사랑을 발견한 것처럼 루시퍼는 사랑 안에서 죄악을 발견하는 추잡한 존재네. 내 그럼 루시퍼 안에서 사랑을 발견할 수 있다면 그것은 ‘그분’을 닮아가는 것 아니겠는가?”


“데미우르고스! 적당히 하세요! 그런 궤변들이 ‘그분’을 시험하기 적절한 이유가 될 거로 생각하지 마십시오!”


“그게 아니라면 아스클레피오스여, 시험하지 않고, 그저 ‘그분’의 행위를 따라 하기만 한다면 ‘그분’과 가까워진다는 말인가? 그렇다면 나도 그분처럼 내가 이단적인 해석으로 ‘그분’을 재단 한 것을 관조한 것처럼 이 우주에 퍼진 죄악을 그대로 두겠노라. 루시퍼가 어떻게 우주를 파멸시킬 때까지 나는 그것을 관조하며 가만히 있겠노라. 어떤가? 이 얼마나 훌륭하고, 완벽하고, 아름답고, 선한가? ‘그분’은 그런 분이 아닌가? 나 데미우르고스는 ‘그분’을 모방했으니 ‘그분’과 가까워졌노라.”


“어린아이처럼 굴지 마십시오! 데미우르고스!”


아스클레피오스는 데미우르고스의 쏟아지는 참혹함과 감정이 섞인 말들 사이에 붉은 기운을 발견할 수 있었다.


아스클레피오스는 당장에 그 기운을 쫓지 않았지만 분명 그것이 이 데미우르고스의 행동과 관련 있을 거로 생각하고 내색하지 않았다.


“당신도 알다시피 ‘그분’은 우리에게 사명과 목적을 부여하지 않았습니까? 필멸자에겐 우리와 다르게 그 사명의 무게보다 자유의지를 부여 한 것 아닙니까? 그렇기에 더욱 그 안에서 사명을 발견한 필멸자들을 사랑하시는 것 아닙니까?”


“아니, 아스클레피오스. ‘그분’은 필멸자들이 사명을 행했을 때 사랑하시는 게 아니다. ‘그분’은 그저 그 존재 자체로 필멸자들을 사랑하신다. 알겠는가? 조건 없는 사랑이라는 것이다. 그것은 마치...”


“자식과 부모의 관계 같이 말이죠.”


아스클레피오스는 말을 끝마치지 못하는 데미우르고스를 대신해서 문장을 끝마침 해주었다.


데미우르고스는 아스클레피오스의 말에 다시 필멸자들이 떠올랐는지 고개를 숙이고는 작게 분노를 불태우고 있었다.


아스클레피오스는 숙인 창조자의 머리 뒤에 보인 목덜미에서 붉은 잿가루가 조금씩 떨어지는 것을 분명 볼 수 있었다. 그것은 찰나에 불과했지만, 지상도 아닌 이 신의 영역에서 볼만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눈에 띄는 것이었다.


“사랑의 부재를 너는 아는가? 아스클레피오스! 너는 저 지상에서 신과 ‘그분’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랐을 테니 그 공허를 모를 터이다. 몽상가들이 나에게 보내는 그 어떤 존경과는 다르단 말이다. 필멸의 신이여.”



“그것참 안쓰럽네요. 직조자 어르신. 분명 저는 절대로 당신을 이해하지 못할 겁니다. 그리고 당신도 절대 내가 저 지상에서 어떤 삶을 살았는지, 그리고 ‘그분’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모를 거예요.”


아스클레피오스는 점점 데미우르고스에게 다가가며 말했다.


“모르긴 뭘 몰라! 나는 네가 저 우주에서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어떻게 살아왔는지 지금 당장에라도 전부 읊을 수 있는데.”


“그럼 알겠어요. 영감님. 제 아버지는 따로 있지만 당신은 제 아버지보다 더욱 절 잘 아시는 분이군요. 이것 참 기분이 이상하군요... 그렇다면 혹시 실례가 안 된다면 고향이 완전히 파멸하기 전에 한 번만 그 고향의 아버지를 안아봐도 되겠습니까? ‘그분’은 데미우르고스 당신에겐 아버지 같은 존재일 거 아니에요. 하지만 저는 당신의 아들 같은 존재 아닙니까? 대신 이라 하면 영감님 당신이 화낼 테니, 다른 사랑을 허락해 주시겠습니까?”


원래라면 데미우르고스는 갑작스럽게 포옹을 제시하는 아스클레피오스를 의심이 간다면서 내 쳤을 것이다.


하지만 아스클레피오스는 우주를 바라보며 눈물을 흘리고 있고, 데미우르고스 또한 마음 어딘가에서 상실감이 떠오르고 있었기 때문에 아스클레피오스의 포옹을 허락했다.


치유의 신의 두 팔로 창조자의 몸을 휘 감았을 때 창조자의 몸에서 검은 불꽃이 타올랐다.


“아스클레피오스! 이건!? 도대체?”


데미우르고스는 아스클레피오스의 품 안에서 그 우직한 몸을 꿈틀거리며 치유의 신의 품에서 벗어나고자 했다.


하지만 아스클레피오스의 몸은 모든 면에서 완벽하고, 아름답고, 훌륭하고, 강인했기 때문에 데미우르고스는 쉽게 빠져나가지 못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잿빛 까마귀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잠시 스토리 아레나 동안은 연재가 힘들것 같습니다. 22.08.22 25 0 -
55 55. 잿빛 연옥 22.11.02 12 0 12쪽
54 54. 잿빛 연옥 22.10.31 19 0 12쪽
53 53. 잿빛 연옥 22.10.28 16 0 12쪽
52 52. 잿빛 연옥 22.10.26 23 0 12쪽
51 51. 흑색 지옥 22.10.24 26 0 12쪽
» 50. 정화 22.10.22 35 0 13쪽
49 49. 번제 22.10.21 38 0 12쪽
48 48. 죄악과 향연 22.10.19 31 0 12쪽
47 47. 종말의 서막 22.10.17 24 0 12쪽
46 46. 몽상가들 22.10.14 26 0 12쪽
45 45. 몽상가들 22.10.12 23 0 12쪽
44 44. '지 하루' 라는 몽상가 22.10.10 25 0 13쪽
43 43. 재회 22.10.07 21 0 11쪽
42 42. 창조자 데미우르고스 22.10.05 30 0 11쪽
41 41. 안개속 표류 22.10.03 19 0 11쪽
40 40. 안개속 표류 22.09.30 25 0 12쪽
39 39. 안개속 표류 22.09.28 27 0 11쪽
38 38. 별세 22.09.26 23 0 10쪽
37 37. 흑색신전 22.09.23 27 0 11쪽
36 36. 귀향 22.09.21 25 0 11쪽
35 35. 카산드리아 22.09.19 23 0 11쪽
34 34. 안개속의 마녀 +1 22.09.16 27 0 11쪽
33 33. 불멸 +1 22.09.14 24 0 11쪽
32 32. 잿빛 까마귀 22.09.12 26 0 11쪽
31 31. 잿빛 까마귀 +1 22.09.09 30 0 11쪽
30 30. 정의의 유보 22.09.07 24 0 11쪽
29 29. 푸른빛의 몽상가 22.09.05 26 0 11쪽
28 28. 만월과 메데스비홀스작센 +1 22.09.02 36 0 10쪽
27 27. 푸른밤의 수난 +1 22.08.31 28 0 10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