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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커피일요일 님의 서재입니다.

잿빛 까마귀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커피일요일
작품등록일 :
2022.05.05 22:07
최근연재일 :
2022.11.02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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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9.09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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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잿빛 까마귀

DUMMY

잿가루는 그 차갑고 비참한 기류와 함께 흘러가더니 그에게로 다가왔다.


그는 잿가루에 반응하듯 몸에 닿자 손가락을 꿈틀거렸다.


이내 눈을 뜬 그는 자신이 묶여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주변에 날카로운 것이 없나 확인했다.


아직까지는 아무도 그가 깨어났다는 것을 알아채지 못했지만 너무 눈에 띄게 움직인다면 그를 알아차릴 것이고 저지당할 것이 분명했다.


함부로 고개도 제대로 돌리지 못하는 그는 바닥을 바라보았는데 말이 오줌을 싸 조그맣게 웅덩이가 만들어진 곳이 보였다.


그리고 그 웅덩이는 자신의 모습을 반사시켰는데 그의 다리가 묶여있는 곳 근처에 말위에 얹어 놓은 가죽 끈으로 고정되어 있는 검을 발견했다.


그는 다리를 비틀어 검의 날에 밧줄을 끊으려 했지만 그것은 너무 큰 동작이었고, 주변의 눈에 띌 것이 분명했기 때문에 다리를 검 뒤쪽으로 옮긴 후에 그대로 좌우로 움직였다.


물론 이 동작 또한 누가 보았더라면 바로 들켰겠지만 다들 지쳐있었고 딱히 그에게 관심을 주고 있지도 않았기 때문에 들키지 않을 수 있었다.


그는 묶인 채로 몸을 움직이는 것이 불편했기 때문에 자신의 엄한 다리를 검으로 잘라내기도 했다.


그는 자신의 다리가 차가운 검날에 베인 고통에 삐져나오려는 신음을 참고 더욱더 빠른 속도로, 하지만 짧은 주기를 왔다 갔다 하며 다리를 움직였다.


'참는 자는 복이 오리라.'


그는 그 격언을 마음속으로 읊조리며 스무 번은 그렇게 떠 올릴 즈음 다리에 묶였던 밧줄이 느슨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러자 그는 자신의 왼다리와 오른 다리를 번갈아가면서 위아래로 움직였고 이내 밧줄이 모두 풀리게 되었다.


그는 그때 주변을 둘러보았고 아무도 그를 주시하고 있지 않자 조용히 말에서 내려 이번에는 자신의 팔을 포박하고 있는 밧줄을 아까 그 검에 올려놓고 앞뒤로 움직이며 자르기 시작했다.


그는 주변을 경계하다가 밧줄이 거의 다 풀리는 것 같자 주변을 둘러보는 것을 그만두고 밧줄을 푸는 것에 전념했다.


그러다가 이상한 기운을 느낀 그가 오른편을 바라보자 그를 향해 검을 쥐고 옆으로 베려는 병사를 볼 수 있었다.


그는 곧바로 땅에 누워 병사의 일격을 피했다.


"레이브누스가 일어났다!"


병사는 바로 일어난 그가 도망치려 하자 그렇게 외쳤다.


"야! 저 손으로 잡아라!"


병사의 외침을 들은 리워야딘은 그가 아직 밧줄에 풀리지 않은걸 보고는 병사에게 소리쳤다.


병사는 리워야딘의 명령을 채 듣기도 전에 그에게 칼을 휘둘렀고 그는 칼이 휘두르는 경로에 맞추어 팔을 갔다 댔다.


검격은 그의 팔을 느슨하게 묶고 있던 밧줄을 베어나갔다.


완전히 베어 내진 못했지만 그를 결박하던 밧줄은 충분히 헐렁해졌고, 그는 자신의 팔을 밧줄로부터 빼내어 자유롭게 하였다.


"아이, 거참."


리워야딘은 탄식했다.


"일어났는가? 레이브누스?"


람세스는 자신의 왼 허리춤에 차 있는 검을 뽑으며 그에게 천천히 다가왔다.


그는 슐츠가 내온 차를 마신 것 때문에 정신과 육체가 온전치 못했다.


잿빛은 그의 몸 상태를 잿가루가 아닌 것을 모두 잿가루로 만들고 있었기 때문에 보통 사람보다 더 빠르게 해독작용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그는 람세스의 말을 뒤로하고 다리에 묶여있던 밧줄을 잘라낸 검을 가죽끈에서부터 빼어냈다.


"그 검은 안네아폴리스의 자유민 만을 위한 검이란 걸 자네는 모르겠지."


람세스는 그렇게 말하며 사선으로 검을 휘둘렀다.


그는 비몽사몽 했기 때문에 가까스로 검으로 람세스의 공격을 쳐내긴 했지만 너무 늦은 탓에 팔이 긁혔다.


그의 팔에서부터 잿가루가 섞인 피가 튀어 람세스의 말에 뿌려졌다.


그는 바로 다음 자세를 잡으며 공격해 오려는 람세스를 뒤로 하고 도망가려고 했지만 반대편에는 리워야딘이 그를 막아섰다.


그는 짧게 도약하던 와중 리워야딘을 보자 검을 휘둘렀지만 리워야딘은 그의 공격이 우습다는 듯이 피하고는 오른팔을 잡아 그가 도약하던 방향으로 내던졌다.


그의 시야가 공중으로 뜨더니 세상이 전부 거꾸로 뒤집혔고, 중력이 잠시 거슬러지는 듯싶더니 땅바닥에 머리부터 내려와 박혔다.


그는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팠고, 깨진 건 아닌지 걱정했지만 그가 손을 데어보자 축축한 것이 피를 흘리고 있을 뿐 별문제 없이 잘 붙어있는 것을 확인했다.


그는 머리로 집중된 고통에 인상을 쓰며 천천히 땅을 짚고 일어났다.


"왜... 이게 뭔 일이야?"


그는 아까 전만 하더라도 머리가 핑 도는 느낌이 나며 한마디도 제대로 꺼내기 힘들었다.


하지만 지금은 조금 어눌하긴 해도 말을 할 수 있을 정도로 몸상태가 나아지고 있다.


"레이브누스! 너는 안네아폴리스 에서 우리의 사제들을 무참히 살해한 혐의로 정의로운 재판을 받아야만 한다! 당장 투항하고 죄인의 오라를 받으라! 그렇지 않으면 죽음으로 이 죄악을 씻어 내겠노라!"


람세스는 그에게 검을 겨누며 말했다.


"아니야.. 아니야.. 내가 그런 게 아니야.."


그는 안네아폴리스에 있는 라모스 신전에서의 피의 향연으로 가득 찬 참혹한 현장을 떠올렸다.


"이젠 자신의 죄악을 부정하려고 하다니!"


람세스가 그렇게 외침과 동시에 리워야딘은 그를 향해 앞을 향해 뻗듯이 발차기를 했다.


발차기에 맞은 그는 충격에 중심을 잃고 그 충격이 그의 몸을 이끄는 경로에 있던 병사에게로 넘어졌다.


병사는 그의 몸을 잡더니 일으켜 세우며 밀쳐냈다.


그를 일으킨 병사의 손에는 그의 몸에 가득 채우고 남아 옷 밖으로도 흘러넘치는 잿가루가 묻어 나왔다.


람세스는 그에게 또 무어라 말했지만 그의 귀에는 람세스의 음성이 들리지 않았다.


마치 영혼을 거르는 거름막이 그의 고막에 부착된 것처럼 람세스의 목소리만 들리지 않았고, 주변의 풀숲에서 나는 풀벌레 소리, 말들이 가끔가다 내쉬는 콧방귀 소리는 정상적으로 들렸다.


게다가 그의 고막에는 그것들보다 더욱더 잘 들리는 것이 있었다.


분명 저 멀리에서 나는 것 같지만 믿기지 않을 정도로 거대하고 중압적이고 강하게 다가오는 소리였다.


"바스락."


모두 다 타버린 슐츠의 주택에서 나는 소리였을까?


혹은 옮겨 붙은 나무들이 남겨놓은 잿더미가 자신들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혹은 푸른 밤의 기류를 따라 움직이며 내는 소리였을까?


그는 한참 생각했다.


다른 이들에겐 찰나의 순간이었겠지만 그에게는 억겁의 시간이었고, 주변을 모두 성찰하고 고찰하기엔 충분했다.


그리고 그는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


"나 자신에서부터 비롯된 것이다."


람세스는 그의 말을 듣고는 눈썹을 치켜뜨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드디어 회계할 마음이 들었구만 레이브누스. 하지만 우리는 사제가 아니라 법의 집행자들이다. 회계는 하데스에 가서 망령들에게나 해라."


람세스는 그렇게 말하고는 리워야딘에게 눈짓했다.


리워야딘은 람세스의 신호에 고개를 끄덕이며 그를 제압하기 위해 그에게 다가왔다.


"아니, 그거 말고."


그는 그렇게 말하며 다가오는 리워야딘에게 검을 내질렀다.


자기 자신에게서부터 퍼져 나오는 잿가루들이 그의 팔 움직임에 반응하며 팔에서부터 칼끝까지 통행하며 움직여 리워야딘에게 닿을 즈음에는 칼끝에 회백색의 잿가루가 가득했다.


잿가루가 그의 움직임과 함께 흩날리는 것을 리워야딘은 못 본 것은 아니었지만, 그것이 그를 막아설 충분한 이유가 되진 못했다.


그의 공격은 검을 다루는 데에 숙련되지 않은 사람이 내지르는 공격이었기 때문에 불필요한 동선이 섞여있었다.


리워야딘은 그런 공격을 오른쪽으로 몸을 돌려가며 옆으로 도약해 간단히 피한 뒤, 오른쪽으로 돌아가는 회전력을 이용해 연결되는 동선으로 그의 오른팔을 검으로 베었다.


베인 그의 팔은 힘없이 그의 몸에서 분리되었고, 잘린 팔은 땅에 닿자 잿가루로 변하며 바스라 졌다.


리워야딘은 그의 팔을 잘라낼 때 고깃덩어리가 아니라 모래로 가득한 포대를 감싸는 천이나 가죽을 자르는 느낌이 들었다.


잘린 팔이 들고 있던 검은 땅에 부딪히며 밤하늘을 가르는 얇은 소리를 냈다.


바스러진 잿가루들은 바닥에 함께 놓여있는 검을 감싸더니 공중으로 날아올라 그의 몸을 향해 날아왔다.


잿가루들은 검을 그에게로 가져왔고 그의 남은 왼팔로 그 검을 잡아 쥐었다.


날아온 잿가루들은 일정한 괘도를 유지하며 그의 몸 주위를 날아다녔다.


"이젠 놀랍지도 않군"


리워야딘은 그에게 진절머리 난다는 듯이 표정을 짓고는 그에게서 조금 거리를 두었다.


그러자 이번에는 람세스가 그의 등 뒤에서 검을 찔러 넣었다.


람세스의 검은 그의 등짝에서 시작해서 가슴팍을 관통해 나갔고, 오른편으로 배면서 거두었기에 그의 흉부 오른편에는 가로지르는 기다란 통로가 형성되었다.


그의 몸에서 타르 덩어리 같이 흐르며 탁하고 검은 혈액이 관통된 몸과 오른팔의 절단 면에서 아주 느리게 흘러나왔다.


타르 같은 혈액은 흘러나오는 동안에도 땅 위에 질펀하게 펼쳐지며 끈적하게 주변에 마구 달라붙었다.


"허억.. 허억.."


그는 갑작스러운 일격에 숨을 다잡으며 기절하지 않도록 집중했다.


폐에 구멍이 뚫린 그였기 때문에 숨도 쉴 수 없었을 테지만 그는 잘만 숨을 쉬고 있었고, 그의 영혼의 활기는 여전했다.


그는 왼쪽으로 체중이 쏠려있었기 때문에 서있는 것이 불편했을 뿐이지 중상을 입은 사람처럼 고통에 신음하거나 그대로 바닥 위에 쓰러지지 않았다.


그의 뚫린 폐에는 공기 대신 처절함이 들락거렸고, 그의 혈관에는 다 타고 남은 잿가루가 그 타르 같은 혈액과 함께 그들도 모르는 여정을 전개하고 있었다.


그 모든 여정의 끝에는 그의 의지가 발현되기를 기도하고 있었는데, 그의 의지는 뒤에 있는 레이브누스를 향해 왼팔에 들린 안네아폴리스의 검으로 람세스를 베고자 했다.


"네가 자초한 거다 레이브누스"


그것은 람세스의 입에서 나온 말이었지만 그 말과 함께 그의 목을 벤 것은 리워야딘의 검이었다.


그의 머리는 반시계 방향으로 돌아가며 달빛에 의해 푸르게 빛나는 허공을 표류했다.


원심력은 그의 절단된 목구멍에서부터 끈적하고 탁한 혈액을 끄집어내 넓은 지경에 흩뿌렸다.


메데스비홀스작센의 땅 위에 서있는 람세스의 모든 병사들은 그의 혼탁한 피가 그들의 머리에 안착했다.


마치 죄악이 그들 위에 내려앉은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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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 45. 몽상가들 22.10.12 22 0 12쪽
44 44. '지 하루' 라는 몽상가 22.10.10 25 0 13쪽
43 43. 재회 22.10.07 21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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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 41. 안개속 표류 22.10.03 19 0 11쪽
40 40. 안개속 표류 22.09.30 25 0 12쪽
39 39. 안개속 표류 22.09.28 26 0 11쪽
38 38. 별세 22.09.26 22 0 10쪽
37 37. 흑색신전 22.09.23 26 0 11쪽
36 36. 귀향 22.09.21 25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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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30. 정의의 유보 22.09.07 23 0 11쪽
29 29. 푸른빛의 몽상가 22.09.05 25 0 11쪽
28 28. 만월과 메데스비홀스작센 +1 22.09.02 35 0 10쪽
27 27. 푸른밤의 수난 +1 22.08.31 28 0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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