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 창조자 데미우르고스
데미우르고스는 천구 저 밖에서 점점 금이 가 에테르와 빛이 흘러 떨어지는 균열을 두 눈으로 엿보고 있을 수 밖에 없었다.
여기저기 깨지고 금이 간 천구 저 밖에 있던 데미우르고스는 각도를 돌려가며 금 안에 들어 있는 우주가 보이는지 시시각각 확인하고 있었다.
데미우르고스의 시야에는 온통 푸르게 빛나고 있는 별들과 성운의 광경이 황홀했다.
“아름답구나! 피조물이여... 그분을 위해서, 나를 위해서 더욱 빛나다오...”그는 자신이 만들어 낸 세계를 오랜만에 주시한 것이 참으로 고대한 일이기도 했고, 이제서야 재회한다는 성취감마저 들었다.
그런 재회도 잠시 데미우르고스의 영혼에 죄악의 악취가 그 정신을 혼미하게 했다.
“안카누스 맙소사! 설마 했지만 이 정도로 세계가 타락했을 줄이야..."그때 데미우르고스가 틈새로 지켜보던 우주에서부터 잿가루가 신들의 영역으로 들어오더니 음성이 들렸다.
"뭘 새삼스레 놀라시는지. 당신도 이미 각오한 일 아니었습니까?"
그 음성에는 데미우르고스가 맡았던 인간들의 죄악으로 빚어진 냄새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이 인상을 찌푸리며 음성이 들리는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데미우르고스가 들은 그 음성은 죄악 그 자체가 소리로써 현현하는 듯 했다.
데미우르고스는 그 음성이 말하는 바에 대해서 지금도 과거에도 동의하고 싶지 않았지만,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고, 어느 때와 같이 후회하고 있었다.
"루시퍼. 내가 우주로 내려갔을 때 그때 다시 만나기로 하지 않았나?"
"예 그랬죠. 하지만 당신이 이 타락한 세계를 호기심으로 바라보길래 먼저 와 봤습니다. 하하하! 분명 당신이라면 실망했을 것 같거든요. 그래서 오늘은 특별히 이곳에 올라와 당신에게 인사한 겁니다."
데미우르고스는 루시퍼가 하는 말에 집중할 수 없었다.
그 더러운 악취의 원천이 입 없이 음성을 내뱉고, 죄악을 쏟아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데미우르고스 쪽으로 흘러나오던 잿가루가 더욱더 흘러들어오더니 그것이 붉은색으로 물들었고 이내 그 핏빛 잿가루가 혈액으로 바뀌어 공중을 표류하더니 그 혈액들이 뭉쳐 혈관을 이루고, 그 혈관들이 자리를 잡더니 뼈들이 핏빛 잿가루에서부터 나와 그 혈관을 지지했다.
혈관과 뼈 위에 근육이 붙고, 그 위에 살점이 붙고, 그 위에 돼지나 소 같은 가축들의 가죽이 덮였다.
"굳이 지금 볼 필요가 있나? 계획만 잘 진행된다면 이따 볼 텐데?"
데미우르고스는 자신을 육신으로 드러내는 루시퍼에게 말했다.
"악령들에겐 육체가 없고, 무게가 없으나 오직 우리의 주인만이 그 실체로써 역사하신다. 들어보셨죠?"
"모를 수가 없지."
"그렇다면 제가 악령이 아니란 걸 그분께서 직접 음성으로 알려주신 것 아닙니까?"
루시퍼는 데미우르고스에게 항상 그래왔던 것처럼 기존의 믿음을 뒤엎을 만한 이단적인 해석을 흘렸다.
데미우르고스는 인상을 찌푸리며 루시퍼를 바라보았다.
"상징적 표현을 무시하는 발언이구나. 너는 이 세상에서 가장 타락했고, 죄악과도 가장 밀접한 존재야. 그 사실을 너 자신도 인정하지 않는가?"
"인정하죠. 인정하고 말고요. 근데 제가 악령 된 존재라는 건 알겠지만 망령된 존재는 아니지 않습니까?"
"왜 굳이 그 둘을 구분해야 하는지 나로선 잘 모르겠군. 망령이든 악령이든 널 표현하기 위해 사용된다면 그 두 단어가 더욱 악랄해진다는 것만큼만 내겐 확실해 보이네."
"그분께서 제 존재를 인정하십니다! 당신을 인정하는 것만큼 말이죠! 그분은 공명정대하신 분이니까요!"
"뭣이! 루시퍼!"
데미우르고스의 순수한 음성은 루시퍼에게 있어서는 상극의 것으로 그 외침이 괴로웠다.
"이따가 뵙죠. 충분히 감상하세요. 그것도 이제 곧 못할 테니."
루시퍼는 그렇게 말하고는 그 육체에서 가죽이 뜯어져 가장 작은 크기로 나뉘었고, 살점이 뜯겨 가장 작은 크기로 나뉘고, 가죽이 물러나 가장 작은 크기로 나뉘고, 혈관이 뼈에서 분리된 혈액으로 나뉘더니 모두 핏빛 잿가루로 나뉘어 우주 속으로 흘러갔다.
***
"저게 뭐야!"
그는 저 하늘 위에 일그러진 공간 속에서 거대한 눈동자를 볼 수 있었다.
잘못 본 것은 아닌지 눈을 비벼 잿가루를 흩날려 가면서 눈에 있는 이물질을 없애고 다시 바라보았지만, 그 하늘에는 분명 눈동자가 보였다.
그 거대한 눈은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려 가며 주변을 살펴보다가 그에게로 눈동자를 고정했다.
서로 눈이 마주쳤다는 것을 그가 인지하자 그의 영혼이 정지했다.
끈적하게 흐르던 혈액이 멈췄고, 바스락거리는 소리로 생명의 고동을 울리던 심장도 잠잠했다.
그는 호흡을 멈춘 채 그 거대한 눈동자를 연신 바라보기만 하는 것이었다.
그 눈동자 또한 그를 계속해 주시했는데 점점 동공이 확대되어 지상에서 하늘을 바라본 것에 불과했지만 5센티 정도의 지름 길이로 보였던 동공이 10센티 언저리로 늘어났다.
하늘에 생긴 자그마한 균열에서 옅게 푸른빛을 내는 광원 같은 것이 유체가 흐르듯이 들어와 퍼지더니 천구 저 어딘가에서 폭발하는 소리가 들렸다.
대낮이었지만 그는 볼 수 있었다.
센트리 별자리가 초신성 폭발을 일으켜 그 굉음보다도 더 요란하게 빛나 훤히 천구를 비추고 있는 것을.
“여기 있었구나...”그는 이 지구를 점거한 군주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누구냐?’
그는 저 균열에서부터 보이는 눈에서 초점 하나 흐릴 수도, 눈을 떼지도, 자신의 육신중 어느 하나 꼼짝할 수 없었고, 입도 하나 뻥긋할 수 없었다.
“네 주인이다. 비루한 종이여... 해야할 역할은 모두 잘해주었다. 그러니 이제 편히 쉬거라. 네 고향으로 돌아가 새로운 낙원에서의 삶을 기다리거라."
그는 그 속삭임 같은 목소리가 들릴 때마다 고막이 지네에게 갉아 먹히는 듯했고, 영혼은 부식해 땅바닥으로 떨어져 사라지는 것만 같았다.
귀를 막아보려 했지만 팔은 움직이지 않았다.
“무의미한 저항 이로다. 너의 영혼은 이미 백색 지옥에서 죽었다. 지금 저항한다 한들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그게 무슨 소리야?’
그는 마음속으로 물었지만, 군주는 그의 의지를 알 수가 있었다.
군주는 그에게 의미를 알 수 없는 웃음소리를 들려주더니 균열 저 너머에서 보이던 눈동자가 사라지는 것과 함께 물러났다.
그는 몸이 마비 된 것이 풀리자 숨을 들이마시며 부족한 산소를 공급하기에 여력이 없었다.
그대로 땅바닥에 쓰러져 힘에 겨운 들숨과 날숨의 화음을 이루어냈고, 어느 정도 숨을 쉬자 귀에서부터 고통이 쓰나미에 파도가 밀려오듯 몰아쳐 그의 정신이 몸부림치게 했다.
그는 두 귀를 손으로 막으며 바닥에 그대로 몸을 경련했다.
조금 지나자 경련하던 그는 입으로 거품을 내뿜다가 정신을 잃었다.
침에 기도가 막힌 채 기절한 그는 얼마 안 가 죽음을 한 번 더 경험했다.
그의 육체에서부터 잿가루가 흩날려 나오더니 다시 그의 육체로 들어갔다.
이내 그는 몸을 용수철 튀듯 바닥에서부터 튀어 오르고는 숨을 내쉬었다.
그는 잿가루가 가득한 침을 왼편으로 고개를 돌려 내뱉었다.
여덟 번을 내뱉었지만, 끝까지 잿빛이 도는 그의 침을 바라보고는 귀에서 통증이 느껴지지 않자 말을 찾으러 몸을 일으켰다.
그의 말은 방금 하늘에서 들린 폭발하는 굉음에 놀라 깼는지 앞발을 들고 뒷걸음치며 히힝 하며 울었다.
"워워... 진정해."
그는 말에게 양팔을 벌리고 천천히 다가갔지만 말은 그를 보고도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하고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그가 다가가기만 하면 뒤로 돌아 뒷발질을 할 것처럼 몸을 비틀어대며 그를 경계했다.
그는 마른세수하며 말이 묶여있는 줄을 바라보았다.
단단히 묶어 놓았기 때문에 당장에는 말이 날뛴다고 끊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게다가 어떻게 줄을 끊고 말이 도망간다고 하더라도 자신의 소유가 아니기 때문에, 지출되는 돈은 성당 측에서 다 부담할 것이기 때문에 걱정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그는 잠깐 벗어나 주변 사람들에게 방금 그가 본 하늘에 떠 있는, 자세히 말하자면 저 너머에 있는 것만 같았던 눈동자에 대해서 말하고자 했다.
"기다리고 있어, 곧 돌아올 테니까."
그는 여전히 진정하지 못하고 날뛰는 말을 향해 무심히 외치고는 뒤로 돌아 관문으로 향했다.
그가 길을 따라가는 동안 여러 사람이 그의 등 뒤에서부터 추월해지나가 관문 저 너머로 사라졌다.
대부분이 하늘을 힐끔거리며 두려워한다는 듯이 등을 구부리고는 재빠르게 발을 움직였다.
그들이 두려워한 천구에는 센트리 초신성이 새파랗게 빛나며 발광하고 있었다.
그는 그를 추월하여 지나가는 사람들을 유심히 지켜보기에 정신을 쏟았고 어느샌가 관문에 다다랐다.
"정지! 일단정지!"
그는 그를 멈춰 세우는 말에 반응하여 발걸음을 멈추었고, 목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몸을 돌렸다.
그 음성의 주인은 커다란 창을 한 손으로 마치 그것으로 몸의 중심을 잡는다는 듯이 짚고있는 병사에게서 비롯한 것이었다.
"넌 누구냐? 신분을 밝혀라!"
병사가 들고 있었던 창 또한 위협적이었지만 병사는 허리춤에 차 있는 검이 더 유용하다는 듯이 왼손으로 들고 있는 창은 여전히 든 채로 오른팔로 왼편 허리춤에 차고 있는 검에 손을 가져다 댔다.
"저는 미케니움 에 속해 있는 흑색 성당의 사제 레이브누스 입니다. 방금 하늘을 보셨는지요?"
그는 레이브누스라는 이름이 익숙하다는 듯이 자신을 그렇게 소개했다.
"흑색 성당에서 온 신부님이라고요? 통행증을 지닌 사람만 지나갈 수 있습니다. 통행증 가지고 계시는가요?"
병사는 그가 의심쩍다는 눈빛을 보내며 말했다.
“통행증이라뇨? 그런 건 없지만 여기...”그는 자신의 로브 옷자락 안에 들어있는 휘장을 뒤적거리며 찾았다.
“흠흠!”
병사는 그가 자신의 심상을 누그려 뜨릴 수 있게끔 해줄 돈이나 그외에 선물 받을 만한 것이라도 있으리라 생각 하며 헛기침을 했다.
하지만 곧바로 병사는 눈이 찌푸려 졌는데 그의 손에서 휘장이 나왔기 때문이다.
“아직 제 소개를 제대로 한 것 같지가 않아서 말이요.”
그는 병사에게 휘장을 잘 볼 수 있게 눈높이에 맞게 들어 올리며 말했다.
“신부님. 신부님께서 흑색성당의 관계자라는 건 확실히 알겠습니다. 하지만 말이죠. 통행증이 없으면 통과하실 수가 없어요.”
“어떻게 안 될까요?”
병사는 그의 말에 대꾸하지도 않고 다시 그 관문을 통과하려는 사람이 없는지 그의 뒤에 이어져 있는 길을 주시했다.
“수고 많으십니다.”
그의 뒤에서부터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것은 온화한 말투로 중년 남성의 목소리였다.
어디선가 들어본 것 같은 목소리일 것이라 그는 생각했고, 뒤돌아 누가 오는지 바라보았다.
그가 제대로 기억하고 있었던 것이 그 목소리의 주인은 슐츠였다.
옆에 나란히 걸어오던 세르쥬가 그를 보자 허겁지겁 그에게로 달려오고, 스벤은 그를 보고도 관심 없다는 듯이 그냥 걸어오기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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