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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커피일요일 님의 서재입니다.

잿빛 까마귀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커피일요일
작품등록일 :
2022.05.05 22:07
최근연재일 :
2022.11.02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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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2,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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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10.19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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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48. 죄악과 향연

DUMMY

“질문이 있어 보이는 군 신부여.”



“예, 있죠. 있고말고요.”



“들어줄 게 말해봐, 뭔가?”


“왜 기만하신 거예요?”


지 하루는 신부의 질문에 웃음을 띠었다.


“역시 물어볼 것 같았어. 문밖에서 다 들은 것 맞지? 딱히 배경 설명을 하고 싶지 않아서 말이야.”


“예, 배경 설명은 필요 없어요. 그냥 대답해 주세요. 왜 그 주교를 기만하신 거예요?”


“왜 그러면 안 되나?”



“몽상가들과 저에겐 진실을 알려줬잖아요. 그런데도 이 계획을 실행할 수 있게 자본을 대준 주교에게는 왜 기만을 하신 거예요? 당신은 저런 주교들같이 하나의 영혼에서 두 마음을 품는 자들에 염증을 느낀 게 아니었나요?”


“반은 맞고 반은 틀리지. 나는 정확히 주교나 주교의 추종자, 하수인, 신도들 같은 자들에게만 실망한 게 아니야. 나는 전 인류를 향해 실망했네! 신부여.”


“그런데 어떻게 그런 인류와도 같은 인간이 되었는데도 불구하고 종말의 주역이 될 수 있을 거라 단언하는 건가요?”


지 하루는 신부의 질문을 기다렸다는 듯이 얼굴 가득 미소를 품고는 말을 이어갔다.


“내 안카누스에게 맹세코 병자의 상태에 대해서는 병자였던 사람이 더욱 잘 알지 않겠는가? 어떤 의사나 현명 한 사람보다 말이야. 물론 현명한 사람이 병에 걸린 경험이 있다면 그 사람이 더욱 잘 알겠지만, 경험이 없다면 그렇지 않겠는가?”


“나 참···. 그러니까 당신이 죄악을 저지른 상태에 있으면 어떻게 하면 죄악을 저지른 사람이 더 좋을지 선한 사람보다 더욱더 잘 안다는 말이에요?”


신부는 몽상가에게 헛웃음을 말 가운데 내비치며 말했다.


“그것이 좋다는 게 아니고 그것이 합당하지 않겠냐는 말이다. 신부여 당연히 나의 행동이 옳은지 어떤지는 알 수 없지. 아주 불행하게도 나는 그게 좋은지는 전혀 알 수 없네. 사실 자네 보다도 더 모를 수 있지. 하지만 내 모든 행동은 합당하지 않은가?”


“좋지도 않은데 어디서 합당성이 나온 건지는 모르겠네요. 당신은 그저 멸망을 주도하고 있는 죄인에 불과하지 않나요?”


“그럼 들어보게 내 비유를 듣고 나면 자네는 동의 할 거야. 금속 물질에 중독된 자들은 죽음을 택할 정도의 고통을 느낀다고 하더군. 하지만 말이야. 내가 그것에 동의 할까? 혹은 그 사람이 자살하도록 내가 도와주거나 혹은 진심으로 그렇게 동감을 해 줄 수 있을까? 대답은 '아니다.' 겠지. 당연한 것 아니겠나? 나는 금속 물질에 중독된 적도 없으니까 금속 물질에 중독된 자들의 죽음에 대해서 이렇다 저렇다 말 할 수 없는거네 하지만 죄악에 관해서는? 나는 죄악을 저지른 것이네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말이야. 그리고 나는 알고 있네. 그런 인간들은 나와 마찬가지로 멸망이라는 처방을 받아야 마땅하다는 것을 말이야. 중금속에 중독된 자들이 다른 중금속에 중독된 자들에게 허락하는 자멸처럼.”


지 하루의 비유를 전부 들은 신부는 몽상가를 빤히 쳐다 보았다.


수사학적 접근을 통해 지 하루의 논리를 타파 하기전 혹시 몽상가의 정신세계가 온전한지 혹은 그렇지 않아 전혀 정상적이지 않은지 확인 하고자 한 것이다.


하지만 지 하루의 눈빛은 어느때 보다 더욱 총명하고, 마치 방금의 말이 그동안 전하고 싶었지만 그 누구에도 들어내지 않은 의의 라는 것 처럼 열정에 불타고 있었다.


“오.. 신이시여..”


신부는 미간을 짚으며 연신 그렇게 외쳤다.


“딱히 당신의 생각에 대해서 이렇다 저렇다 말하진 않을게요. 근데 혹시 저한테 뭔가 거짓말을 하거나 한건 없죠? 그건 중요해요. 제가 당신을 도우는 이유는 정확하게 당신이 행함에 있어서 제가 추구하는 결과가 우연스럽게도 겹쳤기 때문이에요. 알겠죠?”



“신부여. 걱정말거라. 내가 무슨 기만을 하겠나? 세계는 온전히 말 그대로 완벽하게. 그야말로 단언적으로, 그리고 유일하게.. 흠... 유일하게는 아니고, 그로써 멸망을 맞이할 것이다. 나는 그외에 어떤 것도 알 수 없으며 단정 지으려는 의도도 지니고 있지 않고, 그저 그것을 실행하고 받아들이는 것 뿐이로다.”


안젤리 신부는 지 하루의 말하는 것이 전부 끝나자 미동도 없이 그 자리를 가만히 서 있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예 뭐.. 알겠어요. 그럼 다시 볼 일은 없겠네요? 앞으로.”


“원하는대로 하시오. 어차피 뭘 한들 계획에 차질을 줄 수 없으니.”


***


우주로 돌아올일 이 없을거라 생각하며 신들의 영역 에서 위대한 영혼들과 향연을 벌이고 있었던 아스클레피오스는 몇몇의 몽상가 들이 자신을 부르는 소리를 듣고는 자신과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던 영웅의 영혼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자리에서 일어나 천구를 바라보았다.


커다란 테두리를 대충대충 둘러보던 아스클레피오스는 순간 놀라는 바람에 왼손에 들려있던 포도주가 담긴 술잔을 떨구었다.


황금으로 만들어 진 잔은 보석으로 휘황찬란 하게 꾸며져 있는 바닥에 굴러 떨어지며 아름다운 소리를 만들어 냈고, 포도주는 바닥에 닿자 푸른 연기와 함께 사라졌다.


“세상에!”


아스클레피오스는 천구에 커다랗게 나 있는 균열을 발견하자 자신을 필사적으로 부르고 있는 몽상가의 꿈으로 들어가 지구에 현현 했다.


***


슐츠는 작은 여관방에서 레이븐과 세르쥬를 옆에 앉혀 두고 아스클레피오스를 부르고 있었다.


“우리가 언제까지 여기에 가만히 앉아 있어야 하는거에요?”


그에게는 세르쥬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레이븐은 그동안 자신이 저질렀던 악행들과 백색 지옥 저 아래에서 자신이 받아들였던 그 잿빛의 죄악을 씻어 낼 수 있다는 상상에 빠져 너무나 고대하고 있었기 때문에, 주변에서 뭐라 하는 말은 그의 고막이 떨리는 것과 별개로 그의 영혼은 아무런 말도 들을 수 없었다.


“오오... 아스클레피오스 여...”


아스클레피오스는 슐츠의 머리 바로 위에서부터 방안에 즐비해 있던 먼지를 가르며 나타났다.


아스클레피오스의 백색의 머리카락이 휘날리며 주변을 살피다가 검은 눈동자가 그를 향해 고정되더니 완벽하게 좌우의 균형이 이루어져 있는 잘생긴 얼굴에 주름이 마구잡이로 생겼다.


아스클레피오스는 땅에 발이 닿자 나무판자로 삐걱거리는 바닥을 밀어내며 잽싸게 그에게로 달려들었다.


그는 자신을 치유해줄 신이 그에게로 왔다는 것의 감격에 빠졌지만, 아스클레피오스의 손이 자기 목을 잡아채고는 그대로 바닥으로 내리찍는 것에서 기이함을 느꼈다.


“케헥...! 왜 그러십니까?”


그는 아스클레피오스의 강인한 손길에 가까스로 말을 흘려보낼 수 있었다.


“루시퍼! 참으로 기고만장해 가지고 이제는 직접 필멸자 세계에 손을 대는구나!”


아스클레피오스는 그의 목을 손으로 쥐고 있었지만 더러운 존재라도 된다는 것처럼 역겨운 것을 바라보고 있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 그대로 치를 떨며 그에게 말했다.


“가만히 있거라 필멸자여. 비록 더럽고 부정한 것으로 쌓여 있지만 ‘치유’해 주겠노라.”


“아스클레피오스! 잠시만요! 그는 아무것도 모릅니다. 제가 당신을 이곳으로 불러냈습니다. 제 말 좀 들어 보세요.”


슐츠는 방안에 흐르고 있는 에테르를 자신에게로 집중하며 아스클레피오스에게 말했다.


“내게 대적하는가 몽상가여? 나는 에테르가 태어난 곳에서 거주하는 자이다. 그런데 그깟 신비로 나에게 뭘 할 수 있겠는가?”


아스클레피오스는 비어있는 오른손가락을 튕기며 그렇게 단순하게, 슐츠가 온정신을 다해 모으고 있었던 에테르 들을 공중에 흩어 건물 밖으로 빼내 버렸다.


“그리고 너... 참으로 뻔뻔하구나! 너 하나가 이 세계의 종말을 불러왔다는 것을 알면서도 내게 구원받겠다고 생각하는 건가? 내게 구원받아 마땅한 자들은 이미 이 우주 밖에서 나와 성대한 향연을 펼치고 있다! 네가 아킬레우스보다 용맹하고 강인한가? 혹은 네놈이 소크라테스보다 지혜롭기라도 하다는 건가? 혹은 한심한 네가 향연에 참석한 그 어떤 영웅보다 더욱 가치 있다는 거냐? 네놈은 향연 속에서 바닥에 떨어뜨린 빵 쪼가리를 햝는 개 만도 못한 자다!”




아스클레피오스는 그에게 그렇게 말하며 아주 익숙 하다는 듯이 직접 보지도 않고 그의 갈비뼈 사이에 손을 집어넣더니 검은 타르 덩어리 같은 혈액을 순환시키고 있는 잿빛의 심장을 잡아, 쥐었다.


“지옥 불에 구슬리기라도 한 것처럼 보이는구나.”


아스클레피오스는 직접 꺼내 보지 않아도 그의 신체 상태가 어떤지 알 수 있었다.


슐츠와 세르쥬는 아스클레피오스를 양팔로 매달려 가며 저지했지만, 아스클레피오스는 아무런 저항을 받지 않은 것처럼 미동도 없이 그대로 그의 심장을 오른팔로 쥐고 있었다.


“신이시어··· 날 구원하소서!”


“신을 부르짖는 모두가 구원받는 것은 아니로다. 이 뻔뻔한 독사의 자식아.”


아스클레피오스는 이를 꽉 물어 이마와 광대의 근육이 과장되게 움직임과 동시에 그의 심장을 빼내었다.


혈관과 붙어 있었던 심장은 그것이 뜯겨 나올 때 평소의 5배는 늘어나다 금이 가며 찢어졌다.


심장에는 깔끔하지 못하게 이리저리 찢겨 있는 혈관의 흔적이 남아있었고, 아스클레피오스의 손이 들어가고 나오면서 부서진 갈비뼈의 조각들이 심장 이곳저곳에 박혀 있었다.


아스클레피오스는 여전히 일정한 박자를 맞추어 가며 뛰면서 타르 같은 혈액을 흘려보내고 있는 그의 심장에 눈길을 주고는 매우 불쾌한 것을 본 반응을 보이며 몸서리쳤다.


“신성모독이로다!”


아스클레피오스는 그의 심장을 바닥에 내팽개치더니 발로 짓밟았다.


그의 심장은 크게 4개의 조각으로 나뉘었으며 바닥에는 그의 심장조직과 검은 혈액으로 가득했다.


아스클레피오스는 그 모든 과정에서 호흡하나 흐트러지지 않았다. 그의 심장이 온전히 움직임을 멈추고, 그 또한 생명을 잃어 나무 바닥 위에서 천장을 초점 없이 바라보았다.


“노여움은 푸셨습니까?”


슐츠는 아스클레피오스에게 물었다.



“내가 노여움 따위로 필멸자에게 죽음을 경험하게 했다고 생각하는가? 그는 죄악(잿가루) 이다. 그가 몰고 온 이 멸망은 이전에 나를 찾아와 희생양이 된 수많은 성인에게 행한 외설이로다!”


아스클레피오스가 그렇게 말을 끝내자 박살 난 그의 심장에서부터 잿가루가 흩날리며 방안을 돌아다니더니 채 식지도 않은 그의 신체에 뚫린 구멍을 향해 들어가고 있었다.


“몽상가. 저 죄악을 붙잡아 두어라.”


아스클레피오스는 그에게 들어가고 있는 잿가루를 향해 손가락을 가리키며 말했다.


“예”


슐츠는 곧바로 정신을 집중하며 에테르의 흐름으로 얇고, 굴절되어 보이는 푸른 기운이 감돌고 있는 장막을 만들어 내더니 그 장막이 잿가루가 통과하지 못하도록 막았다.


잿가루는 처음에는 그 장막을 부드럽게 곡선을 그려가며 돌아가나 싶었지만, 모든 방향에서 잿가루가 그의 몸으로 접근할 수 없자 방의 벽 여기저기를 마구잡이로 부딪히다가, 뾰족한 가시의 형태로 잿가루가 뭉치더니 슐츠에게로 날아와 찔러대기 시작했다.


“읏!”


슐츠는 장막을 유지하면서 잿가루를 피하느라 움직임이 굼떴고, 목을 향해 날아오는 잿가루를 피하지 못했다.


잿가루는 슐츠의 동맥을 끊으며 지나간 바람에, 슐츠의 목에서 그의 뚫린 가슴에서 흘러나오는 타르 덩어리 같은 혈액과는 대비되어 더욱 붉고 맑게 흐르는 혈액이 뿜어져 나왔다.


“아스클레피오스···”


슐츠는 눈을 감은 채로 바로 앞에 서 있는 신의 이름을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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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 50. 정화 22.10.22 35 0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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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8. 죄악과 향연 22.10.19 32 0 12쪽
47 47. 종말의 서막 22.10.17 24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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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 45. 몽상가들 22.10.12 23 0 12쪽
44 44. '지 하루' 라는 몽상가 22.10.10 25 0 13쪽
43 43. 재회 22.10.07 21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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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 40. 안개속 표류 22.09.30 25 0 12쪽
39 39. 안개속 표류 22.09.28 27 0 11쪽
38 38. 별세 22.09.26 23 0 10쪽
37 37. 흑색신전 22.09.23 27 0 11쪽
36 36. 귀향 22.09.21 25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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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30. 정의의 유보 22.09.07 24 0 11쪽
29 29. 푸른빛의 몽상가 22.09.05 26 0 11쪽
28 28. 만월과 메데스비홀스작센 +1 22.09.02 36 0 10쪽
27 27. 푸른밤의 수난 +1 22.08.31 28 0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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