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x커피일요일 님의 서재입니다.

잿빛 까마귀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커피일요일
작품등록일 :
2022.05.05 22:07
최근연재일 :
2022.11.02 22:00
연재수 :
55 회
조회수 :
1,902
추천수 :
24
글자수 :
252,035

작성
22.10.21 22:00
조회
38
추천
0
글자
12쪽

49. 번제

DUMMY

“걱정하지 말거라 몽상가여. 상처는 너를 해하지 못할 것이다.”


아스클레피오스는 그를 대할 때와는 다르게 다정하고 온화한 말투로 말했다.


슐츠는 아스클레피오스의 말을 들은 탓인지 마음이 안정되었고, 희미해지던 정신이 다시 또렷하게 돌아오는 것 같았다.


어느새 슐츠의 목에서 뿜어져 나오던 선혈 또한 동맥이 메꾸어져 더 이상 슐츠의 몸 밖으로 이탈하지 않았다.


잿가루는 갈 곳이 없어 이곳저곳을 방황하며 슐츠의 몸을 향해 충돌하며 상처를 만들어 냈지만, 아스클레피오스가 계속 그 상처를 치유해 주었다.


잿가루는 슐츠에게 자꾸만 공격하다 이제는 세르쥬 에게로 향했는데, 마찬가지로 아무리 많고 다양한 상처가 난다고 하더라도, 아스클레피오스의 능력에 의해서 별 의미 없는 발버둥에 불과하게 되었다.


잿가루는 방 안에 있는 슐츠와 세르쥬만을 왔다 갔다 하며 안절부절 못하는 하나의 지성체인 것처럼 그 두 사이를 바르게 오가며 방해했지만, 오직 아스클레피오스만은 두렵다는 듯이 그 두 사이의 가운데에 서 있는 데에 불과하고 빙 돌아서 그 둘을 공격했다.


아스클레피오스는 그런 잿가루를 유심히 보더니 재빠르게 흘러가려는 것을 붙잡았다.


그러자 잿가루는 더 탈것도 없는 것이 검은 불꽃을 내비치더니 아스클레피오스의 손안에서 사라졌다.


"참으로 역겹구나!”


아스클레피오스는 그렇게 말하면서 손을 씻어 보이는 듯한 몸짓을 보였다.


잿가루는 방안을 이리저리 돌아다니다 아스클레피오스의 손아귀에 모두 잡히더니 검은 불꽃과 함께 사라졌다.


“이제 됐다 몽상가여.”


“예!”


슐츠는 아스클레피오스의 말에 시선을 내리깔며 말했다. 당장에 자신과 세르쥬를 구해준 장 본인이기는 했으나, 저지하려는 행위에 의해서 신의 노여움을 살진 않을까 걱정하는 슐츠였다.


“내가 그리 쪼잔한 신은 아니다 몽상가. 그보다 더 중요한 사태가 이곳 우주에 일어나고 있지 않은가? 이곳은 나의 고향이로다. 지금은 거처를 옮겨 고향을 잊을 만큼 좋은 삶을 영위하고 있지만 데미우르고스 못지않게 나는 이 우주를 사랑한다.”


슐츠는 자신의 마음을 아무런 제약 없이 읽어 내린 아스클레피오스가 놀라웠지만, 그것보다도 데미우르고스에 대한 평가가 놀라웠다.


“데미우르고스 께서 이 우주를 사랑하신다고요?”



슐츠가 말하자 아스클레피오스는 별 이상한 놈 다 본다는 듯이 쳐다봤다.


“당연한 것 아닌가? 악인이 아니고서야 자기 자식을 사랑하지 않는 부모가 어디 있겠는가? 데미우르고스가 이 우주를 만든 존재로서 당연히 이 우주를 사랑하는 것은 당연한 것 아닌가? 물론 데미우르고스는 인간이 아니지만 비유적 표현 이라는게 이 시대에도 통용된다면 무슨 말인지 알 거야.”



“그러면 만약 이 우주가 멸망 위기에 처했다면 데미우르고스는 이 우주를 그대로 멸망하도록 놔두겠다고 생각하시나요?”


“그런 걸 말이라고 하고 있는 건가 몽상가여? 당연 데미우르고스는 이 우주를 계속 운행 하도록 필멸자의 의식으로썬 관측할 수 없는 방법으로 고쳐 나갈 거야. 그리고 방금 그 잿가루를 보더라도 그것은 루시퍼에 의한 음모라는 것을 나는 알 수 있었어. 나와 필멸자들이 이 우주 전역에 퍼져 있는 죄악을 어느 정도 정화한다면 데미우르고스가 루시퍼를 저지할 것이고, 그 후에는 자네들이 살아온 세상에서의 일상이 다시 회복될 거야. 아주 단순한 문제야 이건.”


슐츠는 아스클레피오스의 설명을 들었는데도 불구하고 여전히 염려와 걱정이 가득한 표정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런데 말입니다. 제가 천구에 천공이 났을 때 봤을 때는 데미우르고스의 눈동자가 보였습니다. 그것은 염려의 눈동자도 아니었고, 연민의 눈동자도 아니었습니다. 그 유일한 눈동자는 그저 이 세계가 어떤지 바라보는 그런 시선이었습니다. 아스클레피오스 여··· 혹시 데미우르고스는 이 우주에 퍼져 있는 죄악(잿가루)을 못 보는 존재는 아닌지 염려됩니다.”


“뭐라고? 신들을 과소평가하는 말이구나. 하지만 방금 그 말은 실로 이상하다. 데미우르고스라면 직접 눈으로 보지 않더라도 우주에 얼마나 죄악이 퍼져 있는지 알 것이고, 그렇다면 천구에 천공이 생겼을 때는 그 죄악의 군주와의 투쟁에 바빠 여력이 없을 텐데, 어떻게 천공을 통해 그 창조자의 눈동자를 바라보았다는 것인지?”


슐츠는 아스클레피오스의 질문에 답하지 않았다.


신의 의문에 필멸자가 현명한 답을 내놓을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내 직접 저 밖에 나가 데미우르고스와 대면해야 하겠다. 도대체가 우주를 구원할 마음은 있는 건지, 의심이 들 정도이니···”


아스클레피오스는 그렇게 말하며 방 안에 있는 모든 이와 점차 멀어지기 시작했다.


“잠시만요! 그럼 우린 이제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리고 레이븐은요? 완전히 죽은 겁니까? 아니면 다시 살아나면 어떡하죠?”


슐츠의 물음에 아스클레피오스는 점차 자신의 의식을 우주 밖으로 이동시키고 있는 것을 잠시 멈추고 슐츠에게로 몸을 돌렸다.


“레이븐의 죄악은 진정한 죽음 앞에서 막을 내렸다. 그는 곧 있으면 잿가루의 부재와 함께 눈을 뜰 것이다. 그가 일어나면 그와 함께 이 난장판을 수습하도록 해라. 그리고 그는 더 이상 죽음을 저항할 수 없을 테니 내가 ‘치유’한 곳을 지켜야 할 것이야. 그곳이 가장 깨끗하면서 나약한 곳일 테니.”



아스클레피오스는 슐츠에게 그렇게 말하며 서둘러 자신의 의식을 우주 저 밖으로 전송시켰다.


신의 육체가 사라진 곳에는 방금 일어난 모든 일들이 마치 신기루라도 됐다는 듯이 적막만 흐르고 있었다.


“방금 그 아스클레피오스? 라는 그 신인가 뭔가 하는 사람은 뭐라고 말한 거예요? 난장판을 수습하라는 말 말고는 뭐라고 말한 건지 모르겠던데.”


슐츠는 세르쥬의 아스클레피오스를 신이라 지칭했지만, 다시 사람이라고 말하는 것에 괴리가 있다는 생각을 떠올리다 다시금 생각을 지워 버리고는 세르쥬에게 말을 꺼냈다.


“아마 레이븐이 더 이상 죽은 후에 다시 살아나거나, 혹은 죽을만한 상태에 있을 때 멀쩡히 살아있지 않을 거란 말이겠지.”


“근데 그걸 왜 치유라고 말하는 거예요?”



“아스클레피오스는 치유의 신이야. 그가 관장하는 영역도 치료의 영역이기 때문에 그가 행한 모든 것은 치유라고 할 수 있겠지.”


“방금 우리가 그 잿가루에 다쳤을 때 죽지 않게 해주는 게 치유 아닌가요? 레이븐은 그 정 반대잖아요.”


세르쥬는 슐츠의 말이 도대체가 이해되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스클레피오스는 아마도 그 죄악을 정화했다는 거겠지. 그리고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죽음이 치유의 반대라고 볼 수 없을 수도 있는 거야.”


슐츠는 방 안에 있었지만, 방의 벽 저 너머에 높은 산이라도 있는 것처럼 깊게 바라보며 말했다.


“죽음이 치유의 반대죠. 그럼 치유를 통해서 죽으면 그게 치유에요?”


“그게 아니다 세르쥬 아스클레피오스는 치유의 신으로써 육체를 주로 치유해 주긴 하지, 기록되어 남겨진 희곡들에서도 그렇게 묘사하지만 이번에 그가 치유한 것은 그의 육체가 아니야.”


“그럼 뭘 치료해 준 건데요?”


슐츠는 곧바로 세르쥬에게 영혼이라고 대답하고 싶었지만, 그 말을 목구멍에서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가게 할 수 없었다.


진정으로 그의 영혼이 치유되었다고 말하기에 슐츠의 눈에는 여전히 그의 안에 보여야 하는 영혼이 흔적조차 없었기 때문에 확답할 수 없었다.


“쿨럭!”


슐츠가 대답하지 못해 난감에 빠져 있을 때 레이븐이 식도에서 역류한 위액을 뱉어내며 그는 깨어났다.


“정신이 드는가 레이븐?”


그는 자신에게 달려드는 슐츠를 두 손으로 저지하며 방안이 너무 밝다는 듯이 실눈을 뜨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물... 물 좀 주세요. 너무 목이 마르고... 졸려요...”“아직 잠들지 말게 레이븐, 세르쥬! 물 좀 떠와 줘 가능하면 많이!”


“네, 아래에 아직 잠들지 않은 사람이 있으면 가서 물어볼게요.”


세르쥬는 여전히 살아난 그를 바라보는 것이 익숙하지 않았기 때문에 시체 쳐다보듯 그를 바라보았다.


그는 빨리 세르쥬가 나가 물을 떠 오라는 의미로 손목을 움직이며 세르쥬를 부추겼다.


***


안개의 마녀 카산드리아는 관문을 지키고 있어야 할 경비병들이 모두 도망치고 없는 관문에 도착해 주변을 둘러보며 헤센부르크로 들어갔다.


인간들은 처음에는 초신성으로 새로이 태어난 카를르수를 별 대수가 아닌 것처럼 대했다. 하지만 지금은 천구에 떠 있는 별들만 바쁜 것이 아니었다.


강물의 흐름이 본래 향하던 곳 과는 전혀 다른 곳으로 흘러 민가가 통째로 쓸려나가기도 했고, 한여름에 폭설이 내려 지붕이 무너지기도 했다.


그때까지만 하더라도 사람들은 각자 자신들이 믿는 미신들에 의지하거나 몽상가 들을 찾아가는 것으로 심신을 안정시켰다.


하지만 그 주에 태어난 이들이 모두 기형아에, 임산부 중 반절이 유산을 경험하자 사람들은 공황 상태에 빠지기 시작했다.


마침내 그들의 하찮은 정신력을 무너뜨린 것은 가장 높은 산의 중심부에서부터 타오르는 마그마가 폭발하며 대륙의 40%가 용암으로 가득해 지경의 모든 나무가 불타고 잿가루로 변했으며, 화산재와 튀어 오른 돌이 불특정 다수의 머리를 부숴 놨을 때였다.

화산폭발 고화질.png

지 하루의 음모를 모르는 몽상가들은 초신성 카를르수를 이 종말의 시발점 이자, 근원이라 주장했다.


왕과 그의 병사들은 저 하늘 위의 별 카를르수를 어떻게든 가리려 노력했지만 찬란하게 타오르는 그 푸른 초신성은 세차게 타오를 뿐이었다.


다시 한 번의 커다란 폭발과 함께 초신성 카를르수가 사라졌을 때 몽상가들의 해석이 틀렸다는 것을 사람들은 알게 되었지만, 이미 그즈음에는 아무도 그들의 말에 귀 기울이는 자는 없었다.


“난리도 아니구만.”


카산드리아는 잿가루를 따라와 헤센부르크로 온 것이다.


잿가루는 바로 헤센부르크로 이어져 어느 여관으로 가다 다시 지 하루의 저택으로 이어지다 다시 또 다른 여관방에서 그 잿가루의 흔적이 멈추어 있었다.


“죄악(잿가루)이 멈추진 않았을텐데··· 무슨 꿍꿍이지?”


마녀는 방 구석에 힘없이 앉아 있는 것만 같은 한 줌도 안 되어 보이는 잿가루를 몸을 낮추어 살펴보았다.


잿가루를 손위에 들어 보이자 어디선가 불어온 바람에 날아가 건물 밖으로 사라졌다.


“아스클레피오스···”


마녀는 그 잿가루에서 분명 그 치유의 신이 개입되어 있으리라 생각했다.


“꽤 오랜만인데.. 내 말도 들어주겠지..”카산드리아는 넓은 챙의 모자를 고쳐 쓰고는 우주 저 밖에 있을 신의 이름을 머릿속에 떠올리며 신호를 보냈다.


***


아스클레피오스는 우주 저 밖에서 데미우르고스와의 논쟁으로 바빴기 때문에 수많은 몽상가의 원성에 신경 쓸 수 없었다.


그것은 카산드리아의 요청도 마찬가지였었는데, 아무리 그녀가 레이븐의 존재를 눈치챘다고 하더라도, 그 사실이 이 종말을 막는 데 커다란 역할을 할 것이란 것을 아스클레피오스조차 알 수 없었다.


“영감님, 거 말 좀 하세요. 아무리 미운 자식이라도 죽게 놔두는 부모가 어디 있습니까? 지금 이대로 가다가는 회생도 못 하고 곧바로 멸망이라니까요? 그리고 ‘그분’은 또 어떻게 당신을 생각하겠어요?”


데미우르고스는 아스클레피오스의 말을 계속해서 무시하다 ‘그분’을 언급하자 눈빛이 바뀌었다.


그 사소한 차이를 눈치채지 못할 아스클레피오스가 아니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잿빛 까마귀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잠시 스토리 아레나 동안은 연재가 힘들것 같습니다. 22.08.22 25 0 -
55 55. 잿빛 연옥 22.11.02 13 0 12쪽
54 54. 잿빛 연옥 22.10.31 19 0 12쪽
53 53. 잿빛 연옥 22.10.28 17 0 12쪽
52 52. 잿빛 연옥 22.10.26 24 0 12쪽
51 51. 흑색 지옥 22.10.24 26 0 12쪽
50 50. 정화 22.10.22 35 0 13쪽
» 49. 번제 22.10.21 39 0 12쪽
48 48. 죄악과 향연 22.10.19 32 0 12쪽
47 47. 종말의 서막 22.10.17 24 0 12쪽
46 46. 몽상가들 22.10.14 26 0 12쪽
45 45. 몽상가들 22.10.12 24 0 12쪽
44 44. '지 하루' 라는 몽상가 22.10.10 25 0 13쪽
43 43. 재회 22.10.07 21 0 11쪽
42 42. 창조자 데미우르고스 22.10.05 30 0 11쪽
41 41. 안개속 표류 22.10.03 19 0 11쪽
40 40. 안개속 표류 22.09.30 25 0 12쪽
39 39. 안개속 표류 22.09.28 27 0 11쪽
38 38. 별세 22.09.26 23 0 10쪽
37 37. 흑색신전 22.09.23 27 0 11쪽
36 36. 귀향 22.09.21 25 0 11쪽
35 35. 카산드리아 22.09.19 23 0 11쪽
34 34. 안개속의 마녀 +1 22.09.16 27 0 11쪽
33 33. 불멸 +1 22.09.14 24 0 11쪽
32 32. 잿빛 까마귀 22.09.12 26 0 11쪽
31 31. 잿빛 까마귀 +1 22.09.09 30 0 11쪽
30 30. 정의의 유보 22.09.07 24 0 11쪽
29 29. 푸른빛의 몽상가 22.09.05 26 0 11쪽
28 28. 만월과 메데스비홀스작센 +1 22.09.02 36 0 10쪽
27 27. 푸른밤의 수난 +1 22.08.31 28 0 10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