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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공의노래 님의 서재입니다.

사슬의 학살자와 오두막의 손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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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천공의노래
작품등록일 :
2021.04.09 16:55
최근연재일 :
2021.08.02 07:50
연재수 :
118 회
조회수 :
8,186
추천수 :
231
글자수 :
613,867

작성
21.07.05 0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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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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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글자
11쪽

89화

+와 +사이의 글은 외국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DUMMY

온몸을 적신 피를 마법으로 없앤다.

이제 리나도 위즈가 하는 일을 모두 아니까 굳이 할 필요 없을 것 같지만,

스스로 최소한의 선이라고 생각하며 꼬박꼬박 피 냄새는 지우려 한다.

그래도 아직 남은 것 같아 맨살을 손톱으로 긁어 벌겋게 오른 뒤에야 멈춘다.


“이 정도면 됐겠지.”


정원으로 돌아가자 리나가 책을 들고 바깥에 나와 한참 방어막을 고치고 있다.

발소리에 경계하는 모습을 보이다 위즈인 걸 알자 다시 환하게 웃는다.


“왔어?”

“응. 다녀왔어.”


허리를 펴고 앉아 위즈를 맞이한다.

방금까지 참혹한 전투가 벌어졌던 정원에는

시체 한 조각은커녕 피도 보이지 않지만,

섬멸 마법에 휩쓸린 잔디는 되돌리지 못했다.


“들어가서 하지, 왜 여기까지 나와 있어.”


살짝 지친 목소리로 말한다.

손이 아직도 떨리는 건 섬멸 마법 때문일까, 사람을 죽여서 그런 걸까.


“적이 나타나면 어떻게 하려고.”

“막으면 되지, 뭐.”


리나가 자신감에 찬 목소리로 말한다.

그래도 살짝 피곤한 기색이 섞여 있다.


“아까 내가 싸우는 거 봤잖아. 어땠어? 잘 싸웠어?”

“응. 정말 잘했어.”


진심이다.


“리나 네가 없었다면 이 정원은 적에게 넘어갔을 거야.”

“위즈는 죽고?”

“설마. 내가 적들한테 죽겠어?”


싸우는 위즈를 이길 수는 있어도 도망치는 위즈를 잡을 수는 없다.

리나 옆에 쭈그려 앉는다.


“그런데 정말로 당황하지도 않고 잘 싸우더라. 전에 미안하다면서 울던 거랑은 천지 차이던데?”


놀리자 리나가 세게 치지만, 위즈는 그래도 좋다는 듯 실실 웃는다.


“무서웠지?”

“응.”

“그런데 어떻게 싸울 생각을 한 거야?”

“위즈가 말했잖아.”


- 같이 싸우자. 제대로, 내 뒤를 부탁해.


“그리고 나도 내 손으로 위즈를 지키고 싶었어.”

“하지만 괜찮겠어? 밤에 잠들기 더 힘들어질 거야.”


그 말에 리나의 표정이 살짝 어두워지지만, 이내 어깨를 으쓱인다.


“괜찮아. 위즈랑 살려면 익숙해져야지.”


위즈도 이런 일은 처음이다.

어떻게 보면 리나가 이 일들을 몰고 온 건데.


“대단하다.”

“어?”

“보통 이런 일 겪으면 울면서 집에 돌려보내 주라고 할 텐데 말이야.”


용맹한 건 책에 나온 니롯샤 스케루드와 똑같다.


“집으로 돌아가는 것보다 위즈랑 사는 게 더 좋으니까.”

“말이라도 고마워.”

“위즈가 더 대단한 거 아니야? 나는 싸우면서 엄청나게 무서웠는데.”


다칠까 봐, 아플까 봐, 죽을까 봐.


“위즈는 그걸 다 이겨내고 싸운 거잖아?”

“그건 그냥 익숙해져서 그런 거야.”


학생 때부터 전장에 자주 나갔으니.


“그나저나 이제는 전처럼 마음 놓고 못 싸우겠다. 지금까지 적의 공격을 그대로 받고 나는 적을 죽이는 식으로 싸웠는데, 이제 스타일을 바꿔야 하나.”

“왜?”

“리나 네 곁에 돌아와야 하니까.”


리나가 위즈의 뒤를 지키는 동안 위즈는 리나의 앞을 지킨다.

그런 만큼 위즈가 도망치거나 다치거나 죽으면 리나가 위험해진다.


“아까도 그래서 밀린 거야. 내가 실수해도 도망칠 수 없으니까.”

“거짓말. 그냥 방심해서 그런 거잖아?”

“들켰네.”

“역시, 내가 없으면 안 되지? 아까 방어막으로 멋있게 화살 막은 것도 그렇고 말이야.”

“아, 그거 물어보려고 했는데. 그 유물 어디서 어떻게 찾은 거야?”


리나가 오두막 아래 서고에서 있었던 일들을 천천히 얘기한다.

무서웠던 것부터 유물 자물쇠를 푼 것까지, 다만 옆에서 들리던 목소리는 빼고.


“에아로시스 소설책이라, 그거 지난번에 읽으려고 찾다가 안 보이기에 포기했는데.”


당연히 책에 열쇠 같은 걸 끼워둔 적도 없었다.


“그리고 유물이 입구 근처에 떨어졌다고?”

“응. 왜?”

“유물 대부분이 서고 구석에 모여 있거든. 거기에 떨어질 리도 없고.”

“그래도 위즈가 모르는 유물일 수도 있잖아.”


고개를 젓는다.


“상자 뒤쪽에 일련번호가 적혀있어. 저 장갑도 유물 목록에 제대로 적혀있었고.”

“진동 때문에 굴러왔을 가능성은?”

“그러면 다른 유물들도 같이 굴러왔어야지.”


괜스레 무섭고 소름이 돋는다.


“혹시, 데스트리아누스가 도와준 걸까?”

“시조? 이미 무덤에 계신 양반인데 어떻게 도와줘?”

“위대한 마법사잖아. 뭔가 방법이 있지 않았을까? 아, 데스트리아누스의 무덤은 어디에 있어?”

“본가 뒤쪽 선산(先山) 제일 앞에. 유령이 나왔어도 아마 엘렌 성부터 돕지 않았을까.”

“그런가? 이 오두막에 대해 모르는 페르투륵사나 츠레니시아가 도왔을 리도 없고.”


무의식적으로 시선이 무덤을 향한다.


“아니면 어둠은?”

“차라리 시조님이 도왔으면 좋겠다.”

“왜?”

“이렇게 도와준 것 가지고 나중에 갚으라고 할 테니까.”

“어쨌든, 누군가 우리를 도와줬다는 거겠네?”

“그렇지. 그러고 보면 리나 너 여기 와서 신기한 일 많이 겪는구나.”


대답 대신 멋쩍게 웃으며 머리를 긁적인다.

행여나 자신도 모르게 루미 얘기까지 꺼낼까 봐 이내 화제를 돌린다.


“일단 방어막 빨리 고쳐야겠다.”

“할 수 있겠어? 어때?”

“음······.”


방어막 단면을 빤히 보다가 말한다.


“일단 이거, 한 마법으로 만든 게 아니야.”

“응. 알고 있어. 한 세 개 정도 되지 않아?”

“어떻게 알았어?”


위즈도 굳이 토루마가 알려줬다고 하지는 않고 어깨를 으쓱인다.


“그래서? 할 수 있겠어?”

“할 수는 있겠는데, 솔직히 힘들어. 계산할 것도 많고, 마력도 필요하고. 아, 그래도 마력은 커다란 방어막 만드는 데 많이 필요하지, 방어막 보강하는 데는 별로 안 들어.”

“어느 정도인데?”

“나 혼자 해도 3일 정도면 될걸?”

“그래? 생각보다 적게 드네.”

“어차피 마력이 부족해서 3일인 거야.”


고개를 힘없이 끄덕이고 리나를 쳐다본다.

리나도 위즈를 똑같이 쳐다보다가 묻는다.


“왜? 뭐라도 묻었어?”

“······아니.”


살짝 착잡한 목소리다.


“그러면 왜? 힘들어? 괜찮아?”


그 말에 한숨을 내쉬고 풀밭에 엎드린다.


“위, 위즈?”

“으어어어어어어.”


얼굴이 눌려 이상한 소리를 낸다.


“힘들다, 힘들어. 너무 힘들어.”

“미안. 나 지키느라.”

“그······.”


그런 거 아니라고, 자책하지 말라고, 평소 같으면 그렇게 말했겠지만,


“그거 알면 평소에 저한테 더 잘하시죠.”


이번에는 다르게 말한다.

그 반응에 리나는 이상하다는 듯 쳐다보다가 위즈 머리를 쓰다듬는다.


“자, 됐지?”

“나는 내가 쓰다듬는 게 더 좋은데.”

“그러면 나 쓰다듬어. 여기.”


리나가 고개를 푹 내리고 위즈한테 내밀자 위즈가 자기 손을 보여준다.


“어?”


떨림이 멈추지 않는 손.


“위즈? 추워? 아니면 혹시······.”

“마법 때문에 그래, 마법 때문에. 저기 저 싹 사라져버린 풀밭을 봐.”


그래, 마법 때문이다.

겨우 그 버러지들 때문에 리나를 걱정시킬 수 없다.


“마법? 마법을 썼다고 이렇게 될 수도 있어? 나도 이렇게 되는 거야?”


걱정시켜버렸다.

손을 툭 내리고 실실 웃자 리나가 이상하다는 듯 보다가 위즈 뺨을 콕 찌른다.


“어쨌든 괜찮겠어, 위즈? 또 사람을, 사람을······.”

“죽였지.”

“그래도 괜찮아?”

“괜찮지는 않지만, 버틸 수 있어.”

“왜?”


눈동자를 돌려 리나를 본다.


“리나 네가 말했잖아.”


- 위즈는 어떤 상황에서도 날 지켜줄 테니까.


“그걸 기억하고 있어?”

“응. 어두운 과거를 짊어지고 공주를 지키는 기사 같다는 말도 기억해.”

“그, 그거······.”


얼굴을 살짝 붉힌다.


“그런 거 일일이 기억하지 마.”

“싫은데.”


리나가 그렇게 말해줘서 마음먹고 제대로 싸울 수 있었다.


“하. 피곤하다.”

“피곤해? 그럼 빨리 가서 자. 여기는 내가 지키고 있을게.”


그렇게 말하며 다시 책으로 시선을 돌린다.


“잠깐만. 그러고 보니까, 3일 걸리면 잠은 어떻게 자지?”

“3일 동안 여기 내버려 둘 것 같아, 내가?”


억지로 무거운 몸을 일으킨다.

그새 졸았던 걸까, 입가에 침이 흥건하다.


“빨리 끝내고 쉬어야지. 너도 곧 나처럼 될걸?”

“왜? 아, 그 마법?”


피로를 늦추는 대신 배로 늘리는 마법.

원래 그 후유증은 리나처럼 한참 뒤에나 오지만,

위즈처럼 마력을 써대면 똑같이 금방 피곤해질지도 모른다.


“리나 넌 안 피곤해?”

“글쎄, 괜찮은데. 혹시 아까 잠깐 기절했을 때 피로가 다 풀린 건 아닐까?”

“정말? 그러면 이 마법의 효율성이 엄청나게 올라갈 텐데.”

“그래서, 이거 3일 동안 어떻게 해?”

“3일은 마력이 리나 네 기준일 때고.”


리나 뒤로 가서 어깨에 손을 얹는다.


“여기 마력이 차고 넘치는 마법사가 있잖아.”

“그러면 위즈가······.”

“아니. 리나 네가 공부했으니까 네가 해. 마력은 내가 쓸게.”

“하지만 그거 위험하다면서?”


더군다나 위즈는 지금 피곤함에 절어 있다.

조그마한 실수도 위험한데, 이대로 믿고 맡길 수가.


“괜찮아. 전에 말했잖아. 그 정도는 내가 조절할 수 있어.”

“아니, 지금 위즈 상태가 말이 아니잖아.”


진짜로 위험할 거 같아서 리나가 빠져나오려고 몸을 이리저리 흔들지만,

위즈는 끝까지 놓지 않는다.


“괜찮아, 괜찮아. 전혀 위험하지 않아.”

“아니, 그,”

“애초에 내가 리나 너를 위험에 빠뜨릴 것 같아?”


위즈가 조용한 목소리로 속삭이지만, 리나한테 그게 따뜻하게 들릴까.

오히려 나락으로 떨어뜨리려는 악마의 속삭임일 뿐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대로 둘 수도 없고.”

“차라리 내가 여기서 지키고 있을게. 위험하다 싶으면 위즈 부르고. 그래, 차라리 위즈가 여기 옆에서 자. 내가 깨우면 되잖아.”

“아니, 그냥 빨리 끝내고 자고 싶어.”


리나가 울상을 짓지만, 위즈는 신경 쓰지 않는다.


“준비됐어?”

“아니, 그, 앗!”


말을 끝맺기도 전에 이상한 느낌과 함께 위즈의 마력이 몸에 들어온다.


“자, 빨리 시작해. 그러다 몸에 남을라.”

“으으,”


리나는 몸을 떨다가 급히 방어막을 고친다.

단면이 빛나며 수복되는 방어막을 보고도 위즈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피곤한가?’


그래도 정신을 놓지 않았는지 손톱 하나도 사라지지 않았고 얼마 안 지나서 방어막이 완전히 복구되었다.


“됐다. 끝.”


리나는 기지개를 켜며 말하고 위즈는 아직도 떨리는 손을 툭 내린다.

그리고 하품하는 리나를 빤히 쳐다본다.


“그래도 머리를 써서 그런지 많이 피곤하네.”


분명 눈 뜨고 있는데 왠지 위즈는 자는 것 같다.


“왜?”

“어?”

“왜 그렇게 쳐다봐? 얼굴에 뭐 묻었어?”


리나가 손으로 볼을 문지르자 위즈가 말없이 고개를 젓는다.

이상하다는 듯 보다가 자리에서 일어나 위즈에게 손을 내민다.


“자, 피곤하다고 했지? 빨리 돌아가자.”

“리나.”

“방어막도 고치고, 위즈도 도와주고. 이제 위즈는 나 없으면 안 되겠네?”

“리나.”


다른 사람이 저렇게 쏘아대듯 말하면 시끄럽다고 한소리 했을 텐데,

신기하게 리나가 저리 말하는 건 싫지 않다.


“응? 왜? 할 말 있어?”

“그······.”


살짝 울상을 짓고 리나의 손을 빤히 쳐다본다.

예전 같으면 무시하고 싸우다 도망쳤을 텐데 이제는 곁에 돌아오려고 싸운다.

대체 왜 이러는 건지 위즈도 모르겠다.


“······아니야.”


머뭇거리다 리나 손을 잡고 일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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