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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공의노래 님의 서재입니다.

사슬의 학살자와 오두막의 손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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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천공의노래
작품등록일 :
2021.04.09 16:55
최근연재일 :
2021.08.02 07:50
연재수 :
118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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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613,867

작성
21.06.22 0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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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글자
12쪽

76화

+와 +사이의 글은 외국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DUMMY

“아에리나. 이 어미가 왔습니다.”


모두가 가장 즐거워하는 건군 축제 4일 차 밤.

아무도 모르게 한 시녀가 죽었다.


“아에리나. 문 좀 열어보세요.”


반역자로 죽은 츠레니시아는 계속 이 깊은 궁에 가뒀던 황제와 달리

리나를 밖에 데리고 가서 세상을 보여줬다.

언제나 리나를 생각한다는 황제는 자기 뜻을 어겼다는 이유로 츠레니시아를 죽였다.


“아에리나.”

“마마. 어서 문을 여십시오.”


황후가 데려온 시녀가 문을 흔들어보지만,

리나가 이미 옷장으로 막아둬서 열리지 않는다.


“아에리나. 어미와 얘기 좀 합시다.”


황후가 애타게 부르나 대답이 돌아오지 않는다.


“황후 마마. 아무래도 황녀 마마께서는······.”


시녀가 고개를 젓고 황후는 아랫입술을 깨문다.


“황후 마마.”


낯빛이 어두운 페르투륵사가 무뚝뚝한 목소리로 말하며 다가온다.


“이만 돌아가시지요.”

“호위대장······.”


그날 밤, 검은 하늘을 가른 칼은 팔이 떨려서 츠레니시아의 목을 어중간하게 베었다.

울면서 억지로 그 모습까지 봤다.

츠레니시아의 마지막을 두 눈에 제대로 담았다.


주위에서 다들 흐느낄 때 황제는 흔들림 없는 목소리로 페르투륵사를 부른다.


“사파르누카 사람 페르투륵사. 네가 저지른 반역 방조죄에 대한 벌을 내리겠다.”


이젠 페르투륵사까지 잃는 걸까.

벽에 등을 기대고 우는데 뜻밖의 말이 들린다.


“아에리나를 위협하는 반역자를 제거한 너를 새로이 호위대장에 임명한다.”

“예?”


뜻밖의 승진.


“그리고 저 반역자의 겉옷을 벗겨 직접 아에리나에게 건네줘라.”


그게 바로 페르투륵사가 받은,

츠레니시아에 비하면 상이나 다름없는 처벌이었다.



******


“하지만 그건······.”

“응. 페르투륵사한테는 분명 벌이었겠지.”


벗을 죽이고 얻은 자리인데 영광스러울 리 없다.

거기다 리나에게 직접 츠레니시아의 겉옷까지 줘야 하니까.


“하지만 그때 난 그걸 생각할 겨를조차 없었어. 단편적으로만 보면 벗을 팔아넘기고 벼슬을 얻은 거니까.”


페르투륵사 역시 거부했다.

그때 리나가 듣지 못했을 뿐.


페르투륵사는 명령대로 츠레니시아의 겉옷을 들고 다녔으나

당연히 리나는 받으려 하지 않았다.

아니, 아예 사람을 보고 싶지 않았다.

전부 싫었다.


“아직도 그걸 전해주지 못한 건가요.”

“그렇습니다, 마마.”


황후가 한숨을 쉬고는 문을 향해 말한다.


“아에리나. 폐하께서 분명 심하게 하셨다는 건 인정합니다. 아에리나의 마음을 헤아리지 않으셨다는 것도 맞습니다.”


자신을 이해한다는 그 말투에 구역질이 올라오려고 한다.

심하게 했다? 헤아리지 않았다?

겨우 그런 말로 끝날 일이라고 생각한 걸까?


“그래도 한 가지는 알아두세요. 폐하는, 그리고 이 어미는 언제나 아에리나를 사랑하고 언제나 아에리나를 위해 이런다는 것을.”


그 말을 뒤로하고 멀어지는 발소리가 들리고 이어 무릎 꿇는 소리가 들린다.


“마마. 부디 받아주십시오.”


새 호위대장인 페르투륵사를 맞이하려면

분명 리나가 받아들여 줘야 하나

리나는 도저히 페르투륵사의 얼굴을 볼 수가 없다.


- 둘은 왜 맨날 붙어있어요?

- 저희 둘 다 막내라서 그나마 친해요, 마마.

- 아니, 마마가 저희 둘을 부르셨잖습니까.


리나가 기억하기 전부터 친했다면서.

책을 꼭 껴안고 다시 눈물을 흘린다.


- 마마. 오늘은 무슨 놀이를 하실 생각이십니까?

- 여기 이 책에 나온 놀이.


츠레니시아가 선물해줬던, 기사가 괴물을 죽이고 공주를 구하는 책은

너무 많이 읽어 이제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바랬다.


- 페르투륵사가 괴물이고 츠레니시아가 공주예요. 자, 칼 주세요.

- 마마? 이거 진짜 칼입니다.

- 괜찮아요. 나 안 다쳐요.

- 제가 다칠까 봐 그렇습니다.


언제나 셋이 같이 놀았으면서 어떻게 츠레니시아를 죽일 수가 있을까.

어쩌면 이 일을 핑계로 높은 벼슬을 갖고 싶었던 게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든다.


“마마. 황제 폐하의 명령을 수행해야 합니다. 문을 열어주소서.”


그놈의 명령, 명령, 명령.

어제부터 계속 쿵쿵거리는 이상한 소리를 내며

문밖에서 열어달라고 할 때마다 증오심만 커진다.


‘배고파.’


그나저나 어젯밤부터 아무것도 안 먹었다.

그나마 오후에 먹었던 것도 옷장으로 문을 막는데 다 써버렸다.


‘어제 먹었던 것······.’


츠레니시아가 떠올라 빈속에 헛구역질한다.

신물이 올라온다.


“흑, 흑,”


눈물이 이불과 책을 다시 적신다.

츠레니시아한테 돈도 못 갚았는데.


“언니······.”


부탁했던 그 호칭으로 죽은 이를 부른다.


그렇게 허기에 지쳐 잠이 들었을 때.

어디선가 풍겨오는 맛있는 냄새에 배를 부여잡으며 눈을 뜬다.


“일어나셨나요, 마마?”


깜깜한 방안에서 들리는 목소리에 고개를 들자

시녀장이 책상 위에 놓인 초에 불을 켠다.

문득 시녀장도 츠레니시아를 보호해주지 않았다는 생각에 멀어지려고 하는데,


“아!”


시녀장이 갑자기 리나를 껴안는다.


“죄송합니다. 멋대로 들어와서. 하지만 마마께 진지를 드려야 했습니다.”

“저, 저기,”

“그리고 정말로 죄송합니다.”


어깨에 물방울이 떨어진다.


“츠레니시아를 지키지 못해서.”


어릴 적 악몽을 꾸고 울고 있으면 어떻게 알았는지 다가와서 껴안아 주던 시녀장.

그 따뜻한 냄새에 화가 살짝 풀려 조용히 묻는다.


“왜 변호하지 않았어요?”

“저희는 마마를 위해 존재합니다. 만약 츠레니시아를 함부로 변호했다간 저희의 일을 다 하지 못하고 죽는 이만 늘어났을 겁니다.”


물론 리나도 그걸 모르지는 않으나,

그래도 다들 츠레니시아를 위해 싸워줬으면 했다.

어쩌면 이것도 어른이 되지 못해서 그런 걸까.


“방에는 어떻게 들어왔고요.”

“다 방법이 있지요.”


시녀장이 훌쩍이는데 배에서 꼬르륵거리는 소리가 난다.


“배고프시지요. 간단히 빈속에 먹을 걸 가져왔습니다.”

“나, 그······.”


츠레니시아의 죽음을 애도하고 있는데 음식을 먹는다는 게 죄악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시녀장은 신경 쓰지 않고

살짝 식은 수프와 빵을 쟁반에 올려 리나 앞에 놓는다.


“자, 드세요.”


시녀장이 스푼으로 수프를 떠서 입 앞에 갖다 대지만, 리나가 머뭇거린다.


“마마.”


역광 속에서 주름진 얼굴이 살짝 반짝인다.


“죽은 이의 의중을 알 수는 없지만, 마마의 몸이 상하는 걸 츠레니시아가 원했겠습니까?”


딱히 그 말 때문은 아니다.

그저 언제나 진지하던 시녀장이 슬퍼하는 걸 목소리로도 느꼈을 뿐.

입을 열고 수프를 받아먹는다.


“어떠십니까. 맛있습니까?”


천천히 고개를 끄덕인다.


“여기, 빵도 같이 드시지요.”


빵 끝을 조금 떼어 건네자 리나가 어리광부리듯 입으로 받아먹으니

평소 같으면 어른스럽게 굴라고 잔소리했을 시녀장도 가만히 입에 넣어준다.

입안에 퍼지는 수프 향에 빵까지 씹으니 츠레니시아와 먹었던 감자가 떠오른다.


“우읍!”

“마마!”


리나가 토하려는 줄 알고 시녀장이 급히 다가가 입 바로 아래에 손을 갖다 대지만, 리나는 울먹이면서도 억지로 삼킨다.

콧물이 흘러나와 훌쩍이자 손수건을 갖다 대준다.


“더······.”

“그만 드신다고요?”


무리했나 싶어 쟁반을 치우려는데 리나가 시녀장의 손목을 잡고 고개를 젓는다.

그리고 심호흡한 뒤 말한다.


“더 줘요.”

“괜찮겠습니까?”


리나가 새빨개진 눈으로 빵을 수프에 찍어 입에 욱여넣는다.

이렇게 둬도 괜찮을까 싶을 정도로.


“마마. 천천히 드세요.”

“정신 차려야 하니까.”


우물거리며 말한다.


“츠레니시아가 원했던 대로, 밖에 꼭 나갈 거니까.”

“저도 도와드리겠습니다. 반드시 마마가 바깥세상을 볼 수 있도록. 폐하가 마음을 돌리도록.”


식사가 끝난 뒤 시녀장의 무릎을 베고 눕고, 시녀장은 리나의 머리를 쓰다듬는다.

그러고 보니 바깥이 조용하다.

페르투륵사가 지쳐서 쉬러 간 걸까.


“······츠레니시아는 돌아오지 않는데.”

“네?”

“페르투륵사는 더 높은 벼슬도 받고 푹 쉬고 있고. 츠레니시아를 죽였으면서.”


증오가 묻어나는 목소리에 시녀장이 조심스레 리나의 어깨에 손을 올린다.


“밥을 안 먹은 건 마마뿐이 아닙니다.”

“네?”

“페르투륵사도 계속 굶고 있습니다. 문 앞에서요.”

“그렇지만 조용하잖아요? 계속 쿵쿵거리던데.”

“머리를 찧다가 지쳤는지 방 앞에서 엎드린 채 정신을 놓고 있었습니다.”

“그래도 싸.”

“마마.”


페르투륵사가 잘못한 게 아니라는 건 알지만,

그래도 페르투륵사가 잘못했다고 생각하고 싶다.


황제이자 아비인 그 사람을 미워할 수도 없으니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도저히 버티지 못할 것 같다.


“페르투륵사는 아무 죄가 없습니다.”


허나 시녀장은 그렇게 두지 않는다.


“왜 그자를 옹호해요?”


그러자 리나가 조용히, 차갑게 말한다.


“시녀장. 츠레니시아가 죽은 게 안 슬퍼요? 다 거짓말이에요?”

“슬픕니다. 그 아이도 제게는 자식 같았는데 당연히 가슴이 찢어질 것 같이 슬픕니다. 하지만 이 궁 안에서 마마만큼, 어쩌면 마마보다 더 슬퍼하는 이는 페르투륵사일 겁니다.”

“거짓말.”

“거짓말이 아닙니다. 마마께서도 유일하게 츠레니시아를 변호한 게 누구인지 아시잖습니까.”

“그렇다고 페르투륵사가 츠레니시아를 죽인 건 변하지 않잖아요.”

“페르투륵사는 그 모든 걸 혼자 짊어지기로 한 겁니다. 츠레니시아의 죄도, 우리 모두의 죄도, 그리고 마마의 죄도.”


리나의 목소리가 격양되어가자 이번에는 어깨를 토닥이고 모든 걸 얘기해준다.


“마마. 페르투륵사를 미워하고 싶은 건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미워할 대상이 잘못되었습니다.”

“그래도······.”

“페르투륵사는 앞으로 마마를 가장 가까운 곳에서 모셔야 할 사람입니다. 마마께서 페르투륵사를 미워하시면 아무도 마마를 위해 싸우지 않을 겁니다.”

“으으으······.”


옳은 말이나 견디기가 너무 힘들다.

아니, 어쩌면 미워하지도 않는 페르투륵사를

억지로 미워하려 해서 그럴지도 모른다.


“마마. 페르투륵사를 호위대장으로 받아주시지요. 그렇게 해서 츠레니시아의 목숨값을 갚으라고 하시면 됩니다.”


리나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울먹이는 걸 참으며 말한다.


“페르투륵사를 가서 재워요. 내일 아침에 꾀죄죄한 몰골로 임명할 수는 없으니까.”

“알겠습니다.”

“그리고,”


몸을 일으켜 나가려는 시녀장의 소매를 잡는다.


“오늘 옆에서 같이 자면 안 돼요?”


그 말에 시녀장이 살짝 웃고는 조심히 리나의 손을 소매에서 떼고

직접 자기 손으로 잡는다.


“다녀올 테니, 기다리고 계세요.”



******



“페르투륵사.”


평소에는 공부방이나 소꿉장난 때 전장으로 쓰이던 아에리나의 집무실.

그때마다 리나는 군주였고 페르투륵사와 츠레니시아는 기사였다.


“이곳에서 그대와 츠레니시아는 제게 목숨을 바치겠다고 했습니다.”


물론 소꿉장난으로 한 말이었으나,


“그렇습니다, 마마.”


페르투륵사는 별다른 반박을 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대는 분명 내 것인 츠레니시아의 목숨을 빼앗았지요. 난 그대를 용서하지 않을 겁니다.”

“송구하옵니다, 마마.”


시녀장이 츠레니시아의 옷가지를 가져다주자

리나가 작은 칼로 옷의 왼팔 소매를 자른다.


“이것을 칼에 묶으세요. 그리고 당신이 죽인 츠레니시아를 기억하며 나를 지키세요.”

“명을 받들겠습니다.”


페르투륵사가 소매를 긴 끈처럼 만들어 코등이 아래에 묶고 리나에게 넘긴다.

리나는 황제가 그랬듯 페르투륵사의 어깨를 칼끝으로 살짝 친다.


“사파르누카 사람 페르투륵사. 그대를 내 호위대장으로 임명합니다.”

“소신 페르투륵사. 마마를 위해 살겠습니다.”


칼 손잡이에서 늘어져 얼굴 앞에서 일렁이는 제 벗의 옷자락.

페르투륵사가 유품을 향해 맹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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