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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공의노래 님의 서재입니다.

사슬의 학살자와 오두막의 손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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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천공의노래
작품등록일 :
2021.04.09 16:55
최근연재일 :
2021.08.02 07:50
연재수 :
118 회
조회수 :
8,172
추천수 :
231
글자수 :
613,867

작성
21.07.02 07:50
조회
32
추천
2
글자
12쪽

86화

+와 +사이의 글은 외국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DUMMY

오두막이 한참 불타던 그때.

아니, 오두막에 들어온 직후부터 리나는 오두막 아래 서고에 들어와 있었다.


- 만약에 적이 방어막을 뚫으면, 그다음으로 가장 안전한 곳은 여기야. 기억해 둬.


정말로 방어막을 뚫을 줄이야.

그리고 위즈 말마따나 방어막이 뚫린 뒤에는 가장 안전한 곳이라고 했으니,

어쩌면 데스트리아누스는 이런 일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던 걸까.

그것보다,


‘+어떡하지? 어떻게 도울 방법이······.+’


서고에 난 창으로 바깥이, 위즈가 밀리는 상황이 훤히 보인다.

혼자서도 잘 싸우기에 역시 위즈구나 생각했는데

어느 순간부터 점점 힘이 빠지고 마법도 아슬아슬하게 맞춘다.


‘+도와줘야 하는데, 빨리 가서 나도······.+’


같이 싸우겠다던 그 호기로운 모습은 어디로 간 걸까.

위즈가 싸우는 모습을 볼 때마다 숲에서 겪었던 일이,

테르막시아의 눈이 떠올라 몸을 움직이기가 힘들다.


서고에 걸린 마법 때문에 이 안에서 방어 마법으로 위즈를 도와줄 수도 없고,

위즈도 리나의 소재를 숨기는 만큼 함부로 나설 수도 없다.


‘+나도, 나도······+’


무엇보다 저 사이에서 싸울 용기가 도저히 나지 않는다.

위즈 옆에서 죽고 죽이는 그 살육을 직접 보니 더더욱 나가고 싶지가 않다.

가족이라고 말했던 그 위즈가 저기서 고통받더라도.

뒤로 물러나 책장에 기대며 바닥에 주저앉고 그대로 무릎에 얼굴을 파묻는다.


타인을 지키겠다고, 타인이 자신을 위해 죽는 게 싫다고 마법을 배워놓고

이 모양인 자신이 개탄스럽다.

이래서야 츠레니시아와 페르투륵사를 잃었던 그 순간과 다를 게 없지 않은가.


결국 이렇게 또 하나의 가족을 눈앞에서 잃는다며 의미 없는 자책만 계속한다.


그렇게 한참, 적이 위즈를 저격해 위즈의 얼굴 일부를 날리고

그대로 오두막에 불을 붙인다.

깜짝 놀라 허둥대다 급히 창밖을 보는데 위즈가 쓰러져있다.


“+아, 안 돼!+”


당장 가서 도우려고 사다리를 올라가는데 오두막이 불타고 있다.

그래도 괘념치 않고 어떻게든 위즈와 같이 싸우려 발을 내딛는데,


- 멈춰.


누가 잡은 것처럼 확 뒤로 당겨져 다시 서고로 떨어진다.


“+아얏!+”


리나가 방금 딛으려 했던 그 자리에 대들보가 떨어진다.

정말로 큰일 날 뻔했다는 생각에 구멍을 올려다보기만 할 뿐,

다시 밖으로 나가려 하지도 않는다.


결국 그뿐이다.


위즈를 구하겠다는 리나의 용기는 불타는 대들보 하나도 넘지 못할 정도로 작다.


“+정말 그뿐이야?+”


갑자기 들려오는 목소리.

혹여나 등 뒤에서 당긴 존재의 정체일까 싶어 급히 돌아보는데 뒤에는 아무도 없다.


“+그 뿐······.+”


대신에 처음 보는 상자와 책 한 권이 떨어져 있다.

급박한 그 상황에 홀린 듯 다가가 책을 집는다.


“에아로시스.”


귀신을 보는 아이에 대한, 호라의 전래 동화.

리나도 크레센타 말로 번역된 그 책을 여러 번 읽었다.

재밌다면서 페르투륵사에게도 읽어봤냐고 했더니,


- +인상적이었습니다. 특히 귀신을 무서워하다가 여러 일을 겪으며 그 공포를 극복했다는 게 말입니다.+


“극복······.”


에아로시스는 단순히 평범하게 살기 위해서 어떻게든 그 공포를 극복했다.

그런데 리나는 당장 저 앞에서 가족이 죽어나는데도 무섭다고 여기에 숨어만 있다.


- 왜 마법을 배우고 싶다고 나한테 말했어?


굳이 완벽할 필요 없다고 했을 때 위즈가 물었다.

지금까지 책에 나온 마법을 따라 하고 싶어서, 오직 흥미로워서 배우겠다고 했다.


- 리나 네가 내 등을 지켜줘야 해.


그러나 이제 완벽하게 쓸 이유가 생겼다.

위즈를 위험에 빠뜨리지 않고, 위즈의 등을 지켜줘야 한다.


‘+나는······.+’


책에서 작은 열쇠 하나가 떨어진다.

어디에 쓰는 건지, 누가 이런 일을 한 건지 짐작이 간다.


주저하지 않고 곧바로 상자의 자물쇠를 풀어 뚜껑을 열자

그 안에는 이상한 것들이 덕지덕지 붙은 장갑이 있다.

그 위에 작게 그려진 마법진.


‘+위즈는 마법진 못 그린다고 했지.+’


서고에는 데스트리아누스가 연구하면서 만든 여러 유물이 있다고 했다.

그리고 방어 마법만 배운 리나가 이 상황에서 가장 절실하게 필요한 것.


- 일시적으로 마력이 넘치는 장갑 같은 게 있대.


장갑을 끼자 속이 울렁거리더니 온 정신이 팔로 옮겨진 기분이다.

그리고 상대가 누구든 당장이라도 싸울 수 있을 것 같다.


“여기가 제일 안전해.”


바로 옆에 누가 있다는 듯 가까이에서 들리는 목소리.

그렇지만 리나는 돌아보지 않고 고개만 젓는다.


“여기가 안전하든 아니든 그런 건 상관없어.”

“그걸 쓰면 한동안 못 일어날 텐데?”

“괜찮아. 그 전에 위즈가 끝내 줄 거야.”



******



“막은 건 좋은데.”


정말 갑자기 나타난 방어막이 아니었다면 죽었을지 모른다.

적어도 당장은 못 싸우고 적에게 붙잡혔겠지.


“리나, 너, 괜찮겠어?”

“솔직히 모르겠어. 위즈가 말했던 대로 마력이 쑥쑥 빠져나가는 기분이라.”

“그러면 물러나 있어.”

“싫어. 나도······.”

“그냥 싸우지 말라는 게 아니야.”


잠이 확 깨서 이제 날아오는 화살을 사슬로 치울 정도는 되었다.

최대한 리나가 방어막을 쓰지 않도록 위즈가 더 열심히 싸운다.


“저 방어막 깨진 곳 보이지?”


병사들이 더 들어오려고 하는데 위즈가 사슬로 최대한 막아두고 있다.


“놈들을 모두 쫓아내고 저길 고쳐야 해. 그런데 리나 네가 제정신이 아니면 한참 뒤에나 고칠 수 있겠지.”

“내가 고치는 거야?”

“우리가. 내 마력으로, 리나 네가 마법을 쓰는 거야. 전에 얘기했잖아.”


둘의 호흡이라면 충분히 해낼 수 있을 거라고.


“그러니까 이제 그 장갑······.”

“위즈 지금 제대로 못 싸우지?”


놓친 화살을 리나가 방어 마법으로 튕겨낸다.


“빨리 끝내자, 우리. 그렇게 내 마력도 아끼고, 방어막도 빨리 고치······.”


말을 끝맺기도 전에 리나가 비틀거린다.


“고, 고치고.”

“빨리 벗어, 리나. 그거 안 좋아.”


오죽하면 시조의 일기에도 실패작이라는 이름이 붙었을까.


“그리고 리나 네가 싸우는 꼴 난 못 봐. 네 손에는 피 묻히지 않을 거니까.”

“위즈 혼자서 짊어지려고 하지 마.”


어떻게든 중심을 잡고 걱정하지 않도록 무사한 척하는 리나.

분명 리나의 마력량이 적지 않은데도 벌써 저렇게 상태가 안 좋은 걸 보면

정말 시조도 감당 못 했을 만하다.


“우리는 가족이잖아. 어려운 게 있으면 같이······.”

“리나.”


말을 맺지 못하고 순식간에 사라지는 마력을 버티지 못하며

그대로 자리에 주저앉는다.

전방에 있던 방어 마법도 사라진다.


그러나 위즈는 오두막이 불타던 때와 달리

풀밭에 누워 죽은 듯 숨 쉬는 리나를 조용히 내려다보기만 한다.

그저 장갑만 빼줄 뿐.


“지금은 쉬고 있어.”

“전군 돌격!”


피곤해도 아직 싸울 수 있다.

아니, 리나가 바로 옆에 누워 어떻게든 싸우게 했다.

조금 앞에 굳게 서서 적들을 맞이한다.


“박멸.”


일부러 적이 아주 가까이 다가와 창에 찔리기 직전이 될 때 즈음까지 기다린 뒤,

그대로 박멸 마법으로 적들을 공격한다.

임계치를 넘은 마 엘구룬은 순식간에 깨져 제 기능을 못 하고

병사들의 몸에 예쁜 구멍이 생긴다.


“절멸.”


피로가 다시 몰려오지만, 어떻게든 참고 싸운다.

뱀이 병사들의 발목을 물고 늑대가 팔을 물며,

까마귀가 빠르게 내려와 투구 사이로 눈을 쪼아댄다.

다만 이제 슬슬 지쳐서 위력이 약하다.


‘그것까지 써야 하나.’


마력이 부족해 쓰러진 만큼, 리나는 마력이 조금만 차도 다시 정신을 차릴 터.

그 마법을 쓰려면 당장 선택해야 하지만, 꺼려지는 것도 사실이다.

병사들이 절멸 마법을 뚫고 위즈에게 달려오자 위즈가 빠르게 절멸 마법을 풀고,


“궤멸.”


새까만 칼과 방패를 만드는, 제대로 된 궤멸 마법으로 적을 상대한다.


대학에 다니던 시절,

왜 마법사에게 무기 쓰는 법을 가르치고 시험 치르는지 도저히 이해가 안 갔는데

어둠에게 마법을 배우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특히 라스에게 부탁해서 칼 쓰는 법을 조금이나마 배우길 잘했다.


분명 똑같이 무기를 맞부딪히면 경력과 실력 모두 밀리는 위즈가

당연히 창에 꿰뚫렸겠지만,

위즈가 들고 있는 건 진짜 무기가 아니라 마법.


방패로 적이 찌르는 창을 막자 닿는 만큼 창이 사라지고

그대로 당황한 병사를 칼로 벤다.

이어 달려오는 병사에게 칼을 날린 뒤 다시 방패에서 칼을 뽑아

옆으로 접근하던 병사에게 휘두른다.


병사 몇이 리나를 노리고 다가오나 궤멸 마법은 총으로 변해

그 병사들에게 작은 구멍을 내주고,


오두막과 위즈를 동시에 노릴 때처럼 하늘에서 화살이 쏟아지나

지킬 대상이 리나였지 오두막이 아닌 만큼

커다란 방패가 모든 화살을 잡아먹는다.


그런 만큼 위즈도 순식간에 지쳐간다.


‘아직 괜찮아. 아직은.’


유난히 갑옷에 흠집이 많은 병사가

검술로 직접 상대할 생각인지 칼을 빼 들고 다가온다.


특이하게 생긴 저 검,

보통 마 엘구룬을 품은 검이 가진 외형이라고 들었다.


“받아라!”


기대를 저버리지 않기 위해 한 번은 마력을 조정해 제대로 맞부딪혀 주었고,

두 번째에 방패로 쳐서 그 칼을 없앴으며,

당황한 병사가 주먹을 휘두르자 배에 칼을 꽂는다.

투구 얼굴 가리개 너머로 튀어나온 수염에서 검은 피가 흘러내린다.


“후.”


피가 묻을 리도 없는 칼을 털고 도발하듯 방패를 두들기는 시늉을 한다.

여전히 남은 적은 많고, 일어나자마자 싸우려 들 리나는 정말 곧 일어나리라.


“솔직히 감동했소! 당신과 요정의 유대가 이토록 깊었다니!”


말을 걸 정도로 위즈가 충분히 지쳤다고 생각한 걸까.

그게 맞긴 하지만.


“제 가문까지 학살한 당신이 어째서 요정을 그리도 끔찍이 생각하고, 요정도 어째서 당신을 그리 끔찍이 아끼는 거요?”

“별 이유는 없어. 그저 가족이니까.”

“가족! 가족이라. 그 한 단어면 모든 게 설명되지.”


테르막시아처럼 비꼬지는 않는다.


“나도 물을 게 있어. 당신 부하들은 왜 저렇게 목숨 걸고 당신을 지키지?”

“당연히 내가 상관이고 저들이 부하이기 때문 아니겠소. 그리고 지휘관이 곁에서 싸우면 병사들도 목숨 걸고 저와 함께 싸우기 때문이오.”

“지휘관이면 후방에서 부하들을 관리해야 하지 않나?”

“그게 맞소만, 현장에서는 오히려 같이 생활하는 상관을 잘 따르오. 그대들의 관계와 비슷하지.”

“같이 생활한다라.”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고 아르노를 쳐다본다.

병사들은 돌격할 준비가 끝났고, 위즈도 마음의 준비를 마쳤다.


“당신 이름을 물어봐도 될까?”

“아르노. 아르노시아투크 시르치누스.”

“아르노시아투크 시르치누스. 내가 당신을 기억할게.”

“그건 내가 할 말이지, 위자드리아누스 테 살베니움.”


위즈가 고개를 끄덕이며 오른손 손끝은 위를, 왼손 손끝은 아래를 향 한 채

바탕손을 가까이한다.


“전군! 돌격 준비!”


바탕손과 바탕손 사이에 검은 구체가 생기고

위즈는 양손을 오른쪽 옆구리로 가져간다.


“돌격 준비!”

“돌격 준비!”


병사들이 복창하고 창을 내려 위즈를 겨눈다.

살아남은 마법병들이 마법을 썼는지 창이 조금씩 빛나고,

궁병들은 활시위를 당긴다.

위즈 주위가 살짝 어두워져도 다들 밤이라 그러려니 한다.


“돌······!”

“섬멸.”


짧은 주문 한 마디.

승리를 직감한 아르노의 미소는 검은 빛줄기 속으로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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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 63화 21.06.09 42 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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