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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공의노래 님의 서재입니다.

사슬의 학살자와 오두막의 손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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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천공의노래
작품등록일 :
2021.04.09 16:55
최근연재일 :
2021.08.02 07:50
연재수 :
118 회
조회수 :
8,025
추천수 :
231
글자수 :
613,867

작성
21.06.24 07:50
조회
37
추천
2
글자
12쪽

78화

+와 +사이의 글은 외국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DUMMY

“호위대장. 적이 정말로 아사르군더니움입니까?”

“그렇습니다. 지금 엘렌 성에서 구원군이 오고 있으니 빨리 말을 타고 피하셔야 하옵니다.”


황후가 품속에서 떨고 있는 딸을 보다가 저 멀리 서있는 적에게 고개를 돌린다.


“아니, 황제 폐하의 대리로서 내가 군을 지휘합니다.”

“예? 하오나 위험하옵니다. 게다가 우리 군은 수가······.”

“도망치다 잡히는 것보다 호라의 구원군이 올 때까지 그 조금만 버티면 되지 않습니까? 페르투륵사. 그대를 아에리나 황녀 호위의 총책임자로 임명함과 동시에 후열의 지휘를 맡기겠습니다.”


리나를 품에서 떼어내 페르투륵사에게 넘긴다.


“항명하는 자는 반역으로 간주해 죽이고 목숨 바쳐 싸우는 이는 그 곁에 다가가 격려하십시오. 나는 전열로 가서 군을 지휘하겠습니다.”

“어마마마!”

“아에리나. 잘 들으세요.”


황후가 쭈그려 앉아서 리나의 양 뺨을 붙잡고 말한다.


“아에리나는 위대한 크레센타 제국의 황녀이고, 황제 폐하와 이 어미의 사랑하는 딸입니다.”


그리고 왼쪽 가슴에 찬 브로치를 가리킨다.


“이게 바로 그 증거입니다. 반드시 잃어버리지 마세요.”

“마마! 적이 더 다가옵니다!”


황후는 그렇게 급히, 제대로 된 작별도 못 한 채 전열로 간다.


“어마마마······.”

“마마. 어서 이쪽으로 오시지요. 저희도 곧바로 출발해야 합니다.”


황후의 명대로 페르투륵사는 병사들을 나눈다.


“황후 마마께서 우리와 함께 싸우신다! 모두 황녀 마마를 목숨 바쳐 지키고 호라의 구원군이 올 때까지 전열을 지원한다!”


보급 등 비전투 인원으로 구성된 후열의 병사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며

불리한 상황을 타파하려고 애쓴다.

그 가운데에 리나는 멍하니 서서 꿈이 아닐까, 하고 생각하다

페르투륵사가 부르는 소리에 정신을 차린다.


“마마. 저희와 함께 지도부에 있으면 됩니다. 이쪽으로 오시지요.”

“하지만 어마마마가······.”

“황후 마마 걱정은 안 하셔도 됩니다. 육지라고 해도 저희는 정예군입니다.”


리나가 걱정스레 전열 쪽을 보다가 페르투륵사를 따라 임시 지휘소로 움직인다.


병사들이 들어와 알아듣지 못할 말을 하고

페르투륵사도 그에 맞춰 알아듣지 못할 명령을 내리니,

어떤 상황인지 리나는 도저히 알 수가 없다.


“괜찮습니다, 마마.”


그나마 적의 공세가 약해졌다는 말은 알아들었을 때

페르투륵사가 땀을 닦으며 다가와 말한다.


“호라의 구원군이 제때 도착해 오히려 적이 포위되었다고 합니다.”

“어마마마는요?”

“마마께서도 무사하십니다. 적의 진형이 뚫리면 호라의 구원군이 마마를 보호할 겁니다.”


무슨 말인지 잘은 모르겠지만, 페르투륵사 얼굴을 보니 정말로 괜찮은 모양이다.

다른 장수가 급히 달려와 보고하기 전까지는.


“장군 큰일이오! 적이 우회해서 후열을 노리고 있소!”


그 말에 지휘소에 있던 모두가 돌아본다.


“적의 공세가 약해진 게 아니라, 구원군을 피해 초원으로 달려가 우릴 공격할 심산인가 보오!”


상황이 심각해졌다는 건 리나도 눈치챘다.

페르투륵사가 무의식적으로 칼손잡이에 묶인 천을 손가락으로 문댄다.


“후열에 전투 가능한 인원은?”

“거의 없소.”

“잠깐, 공병이 있지 않소?”


다른 장수가 계책을 낸다.


“마침 우리 바로 옆이 숲이니 빠르게 나무를 베어 방어벽을 만들고 보급용으로 가져온 무기를 들립시다.”

“급조한 방어벽이라도 시간은 벌 수 있을 테고, 그렇다고 마마를 한참 전투 중인 전열로 모실 수도 없으니 일단 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이대로 아무것도 안 할 수는 없으니 말입니다.”


페르투륵사가 곧바로 결단을 내리고 다른 장수들이 명령을 내리러 움직인다.


“걱정 마십시오, 마마.”


칼집 채로 칼을 들어 보여준다.

핏자국이 굳어 색이 변한 천 조각.


“반드시 마마를 지키겠습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작전은 실패했다.

호라의 구원군이 돕기에는 늑대를 탄 적 기병대가 너무 빨랐다.


“장군! 이대로라면 모두 죽을 거요!”


그리고 그 때문에 방어벽을 구축하기도 전에 적이 후열에 들이닥쳤다.

얼마 안 되는 전투병과 비전투병, 시종과 시녀들 모두 처참히 갈려 나갈 뿐.

방어벽 위에 쌓인 시체벽이 무색하게도

적은 파죽지세로 리나가 있는 곳을 향해 다가왔다.


“마마를 피신시켜야 하오!”

“하지만 어디로······.”


그 끔찍한 광경을 보이고 싶지 않아 페르투륵사는 리나를 천막에 넣어두고 바깥에서 대책을 의논한다.

당장에 페르투륵사도 후방에서 활을 쏘며 싸우는 상황.


“숲. 숲으로 데려가시오. 숲으로 가면 뭔가 뾰족한 수라도 생기지 않겠소?”


도망칠 곳.

나무가 빽빽해 칼을 휘두르는 건 물론 걷기도 힘들어 보이는 숲.


“숲에 들어가서 싸울 수는 없지 않소.”

“알고 한 소리요.”

“뭐요?”


근처에 있는 병사들이 말없이 페르투륵사를 바라본다.


“그럴 순 없소! 같이 싸워야······.”

“장군. 우리는 황후 마마와 황녀 마마를 지키기 위해 있소.”


전우를 위해 싸우기 이전에 명령을 위해 싸우는 군인이다.


“마마를 모시고 숲을 지나 엘렌 성으로 가시오. 장군이 호라 병사를 데리고 이쪽으로 오면 우리도 포위를 뚫겠소.”


포위를 뚫는 것도, 그 전에 호라의 병사들이 올 때까지 버티는 것도 불가능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적도 숲에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마마!”


얘기하던 장수가 천막 안으로 들어가 한쪽 무릎을 꿇는다.

초조해하며 밖에서 하는 얘기를 듣고만 있던 리나가 화들짝 놀란다.


“마마께서 성으로 들어가시는 동안 소신들이 이곳을 끝까지 지키겠습니다.”

“네?”

“마마를 위해 싸울 수 있어서 영광이었습니다!”


다른 병사들도 천막 바깥에서 소리치고는 싸우러 간다.


“나 때문에······, 죽는 거예요?”


책에서 보던 것과는 전혀 다른 전쟁.

그나마 피 튀기는 장면을 보지 않아서 다행일까.


“그럴 리가 있습니까, 마마. 성에서 뵙겠습니다.”


죽는다.

저 장수를 보는 건 지금이 마지막이다.


“······가시지요, 마마.”


죽지 말라고 말하기도 전에 페르투륵사가 들어와

리나를 낚아채듯 들고 천막 뒤로 빠져나간다.

그리고 얼굴을 자기 몸에 대어 뒤를 보지 못하도록 억지로 막는다.


“페르투륵사.”

“마마. 보지 마십시오.”

“그렇지만, 저, 나 때문에,”

“저희가 있어봤자 방해만 될 뿐입니다.”


고함과 창칼이 부딪치는 소리가 거세게 몰려오다가 이내 나무에 파묻힌다.

저기서 죽어가는 이들, 리나 때문에 죽어가는 이들.

리나를 지키기 위해 죽어가는 이들.


만약 리나를 지킬 필요 없을 정도로 리나가 강했다면,

저들은 저기서 죽을 필요 없지 않았을까.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지, 나무가 우거진 탓에 하늘도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

적이 숲까지 쫓아오는 통에 성 쪽으로 가지 못하고 점점 숲 가운데로 들어간다.

잠시 멈춰 숨을 고르는데 영 마음이 심란하다.


“마마. 전에 위자드리아누스 테 살베니움 얘기하셨잖습니까.”


분위기를 바꾸고 싶었는지 페르투륵사가 입을 연다.


“······위자드리아누스?”

“네. 학대를 못 견디고 도망친 마법사 말입니다.”


잠시 생각하다가 고개를 끄덕인다.


“그 마법사가 도망친 게 바로 이 숲입니다.”

“진짜요?”


그 얘기를 듣자 당장에라도 마법사가 튀어나와 위협할 것 같다.


“왜 그리 생각하십니까?”

“자기 가족을 죽였다고 그랬으니까.”


물론 리나도 황제와 대립하기는 했지만, 죽이고 싶다고 생각한 적은 없다.

그런데 생각에서 멈추지도 않고 실행에 옮기다니.


“글쎄요. 제 생각은 다릅니다.”

“사람을 죽여도 된다는 말이에요?”

“아니요. 그저 그 사람의 말도 들어보자는 겁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얼마나 힘들었는지, 그 방법밖에 없었는지.


“범죄를 저지른 건 나쁜 일이고 반드시 처벌해야 합니다. 하지만 마음속으로 그 사람 자체가 나쁜지 정하는 건 조금 더 신중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츠레니시아처럼.


“그리고 무엇보다 그 마법사가 우리를 도와줄지도 모르고요.”

“그래도 도망자 신분인데 숲을 돌아다닐까요? 나 같으면 무서워서라도 계속 숨어있을 텐데.”

“그러면 우리가 찾아가서 도와달라고 하죠.”


리나를 보호해주고 아직 죽지 않은 크레센타 군인을 살려달라고.


“자, 다시 움직일 시간입니다, 마마.”

“아직 힘들지 않아요?”

“빨리 움직여서 돌아가야지요. 다들 걱정할 테니.”


그런데 페르투륵사가 일어나려던 리나를 밀친다.

그리고 뒤로 자빠지는 리나를 향해 칼을 거꾸로 쥐고 휘두른다.


“꺄악!”


리나와 페르투륵사 사이에

가벼운 무장을 한 아사르군더니움 병사가 하늘에서 떨어지고

그대로 등에 칼을 맞아 쓰러진다.


“마마! 일어나십시오!”


정신 차릴 틈도 없이 페르투륵사가 리나의 손을 잡고 달린다.

하지만 늑대 떼가 나무에 부딪히면서 가까이 다가온다.


“하다못해 마법사라도 있었으면.”


어느새 따라잡은 늑대를 칼로 찌르고 달리다가 나무에 부딪힌다.


“윽!”

“페르투륵사!”

“마마! 엎드리십시오!”


리나를 노리던 늑대에게 대신 자기 왼팔을 내어주고는

이를 악물며 머리를 찔러 죽인다.

뭐라도 씐 듯 늑대 대여섯을 죽이는데 꼭 칼에 묶인 천이

페르투륵사의 칼을 같이 휘두르는 것 같다.


몇 번 더 공격받고는 홀로 늑대들을 무찌른 뒤

다시 조금 움직이다가 주저앉는다.


“페르투륵사! 괜찮아요?”


피를 너무 많이 흘린 건지 상태가 좋지 않다.

페르투륵사는 혼자 뭔가를 생각하다가 리나에게 말한다.


“그때, 그날, 츠레니시아를 지키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네?”

“저도 반역을 저질러서라도 츠레니시아를 지키고 싶었지만, 녀석이 한 말 때문에,”


- 리나를 부탁해.


“걔가 원하는 대로 마마의 곁에 있으려면 죽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페르투륵사가 가장 힘들 거라던 시녀장의 말이 떠오른다.


“마마께서 소신을 용서치 않으셔도 괜찮습니다. 그저 말씀드리고 싶었습니다.”

“페르투륵사, 난······.”


멀리서 병사들이 다가오는 소리와 함께

페르투륵사가 언제 지쳤나는 듯 힘차게 일어난다.


“마마! 달리십시오! 돌아보지 말고 달리십시오!”


만약 여기서 막지 못하면 리나도 죽는다.


“이렇게 된 거, 이 숲에 숨었다는 마법사라도 찾으십시오!”

“허나,”

“빨리! 지금 적병도 같이 오고 있습니다!”


저 멀리 나무 사이에서 반짝이는 쇠붙이.

그나마 늑대들은 페르투륵사만 노려서 상대할 수 있었으나

병사들까지 합세하면 얘기가 달라진다.


지금이 마지막 기회다.


“페르투륵사!”

“네?”

“지금까지 내 곁을 지켜줘서 고마웠어요! 그리고 나, 페르투륵사를 원망한 적 없어요!”


아무리 미워할 사람이 필요했다고 해도

차마 페르투륵사를 가슴 깊이 미워할 수는 없었다.

그저 미워한다고 착각했다는 걸 예전에 깨달았다.


“소신 페르투륵사, 마마를 지킬 수 있어서 영광이었습니다.”


칼에 묶여 흔들리는 천 조각.

헛것일 수도 있으나, 리나에게 손을 흔들고는

몸을 돌려 페르투륵사와 함께 칼을 쥐는 츠레니시아가 보였다.


다가오는 적은 홀로 남은 페르투륵사에게 정신이 팔리고, 리나는 울면서 숲을 뛴다.

다른 곳을 지나던 적 몇이 리나를 발견하나

마치 요정처럼 순식간에 나무 사이로 사라진다.


“나는 크레센타의 호위대장, 페르투륵사다!”


멀리서 어렴풋이 들리는 목소리.


“나를 죽이지 않는 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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