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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공의노래 님의 서재입니다.

사슬의 학살자와 오두막의 손님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완결

천공의노래
작품등록일 :
2021.04.09 16:55
최근연재일 :
2021.08.02 07:50
연재수 :
118 회
조회수 :
8,019
추천수 :
231
글자수 :
613,867

작성
21.06.26 07:50
조회
37
추천
2
글자
11쪽

80화

+와 +사이의 글은 외국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DUMMY

평소처럼 위즈가 숲에 나간 뒤 오두막.

오두막 생활에도 익숙해져 혼자 여유로이 현관 계단에 걸터앉아 차를 마신다.


‘루미는 뭐 하고 지낼까.’


숲으로 나갈 때 자신이 있으니 걱정하지 말라는 그 말을 마지막으로

루미를 못 본 지도 며칠 지났다.

아니, 리나가 가위에 눌렸을 때 풀어준 것 역시 루미일 수 있지만,

그래도 시간이 많이 지났다.


루미 말과 달리 테르막시아에게 잡히고,

위즈가 잔인하게 싸우는 모습도 보는 등

좋지 못한 일을 잔뜩 겪었지만,


‘그래도 결말은 좋으니까.’


루미가 말했던 그 ‘다 잘 될 거’라는 게

이렇게 오두막에서 황녀가 아닌 리나라는 신분으로 지내는,

그런 의미이리라 막연히 짐작한다.


멀리 칼에 달린 천이 휘날린다.

솔직히 크레센타 시절이 그립지 않다고 한다면 분명 거짓말이다.

모두가 다 해주는 그 삶은 분명 편하고 지금보다 더 여유로웠다.


- 리나를 부탁해.

- 소신 페르투륵사, 마마를 지킬 수 있어서 영광이었습니다.


하지만 어느 곳에나 감시의 눈이 있고 행동거지 하나도 예를 갖춰야 하며,

자신의 실수가 타인의 죽음으로 이어지던 그곳으로 돌아가고 싶지는 않다.


책속에 빠진 이 꿈에서 그저 그리움 속에 남겨두는 게 더 낫다, 싶다.

바깥에서 겪은 모든 게 오히려 낮잠 자다 겪은 꿈이라고 생각하면서.


다 마신 찻잔을 들고 오두막에 들어가 씻은 뒤,

오두막 안을 청소할 겸 거실에 널브러진 종이들을 치운다.


겉으로는 깨끗해 보이나

탁자 하나만 옆으로 옮기면 사방팔방이 종이로 가득하다.

나중에 찾기도 힘들 텐데 왜 굳이 이렇게 두는 걸까.


이 구석에 종이들이 쌓인 걸 보면 꼭 리나가 못 보도록 숨긴 것 같기도 한데,

솔직히 위즈도 리나가 오두막 청소하곤 하는 걸 아니까 그건 아니리라.


“시조의 고서에 있는 옛 우리냐 세상의 식물.”


거기에 이렇게 호라 말도 읽을 수 있으니까.

머릿속으로 한 번 번역한 뒤에 이해하는 그런 번거로움이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옛날보다 훨씬 빠르고 익숙해졌다.

여기서 위즈와 지내기로 했으니 이따금 생각도 호라 말로 하려고 노력하기도 한다.


“아사르군더니움 퇴치 계획.”


이미 위즈가 아사르군더니움을 해치우고 다니는 건 아는데

그래도 위즈가 힘들지 않았으면 한다.

이기적이나 리나한테는 적보다 위즈가 우선이니까.


끈으로 묶어둔 한 뭉텅이 종이에는 위즈가 적에게서 탈취한 지도들도 껴있다.

피묻은 종이에 깜짝 놀라기는 했으나 이내 마음을 다잡는다.


‘이 많은 수를 혼자 상대하는 걸까.’


그리고 이 많은 수가 아사르군더니움 전체가 아니라

리나를 쫓아 숲에 들어온, 적의 일부일 뿐이다.


대체 얼마나 많은 이들이 호라를 공격한 건지.


그 외에는 리나가 이해하기 힘든 내용이라

다른 종이 뭉텅이를 들어 제목을 읽어본다.


“엘렌 성 탈환 지원 계획······, 응?”


본래 엘렌 성에서 식자재를 지원받는 만큼

위즈가 엘렌 성 탈환을 계획하는 것 자체가 이상한 건 아니다.

그런데 문득 이상한 느낌이 들어 내용을 들여다보는데,


- 숲을 나가 적의 후방을 공격하여······.


‘숲을 나간다고? 위즈가?’


분명 위즈는 가문에 있을 때 저지른 짓을 또 할까 봐 숲 밖에 못 나간다고 했다.

어떻게든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성 탈환을 돕겠다는 걸까, 아니면,


‘나한테 거짓말이라도 한 걸까?’


문제는 그뿐만이 아니다.

위즈가 세운 작전이 성공해서 엘렌 지역을 되찾았을 때

호라 제국은 바로 리나를 찾을 터.


적이 리나는 물론 리나의 시체도 사용하지 못했으니 적이 리나를 잡았을 리 없고,

그러면 당연히 저들은 숲을 수색할 것이며,

엘렌 성 성주도 제 형인 위즈에게 리나에 관해 물을 것이다.


그렇다면 위즈는 그 순간에 뭐라고 답할까.

어쩌면 이건, 리나를 크레센타로 보내려는 계획이 아닐까.


종이를 모두 정리한 뒤 다시 밖으로 나와 무덤 앞에 간다.


페르투륵사의 칼과 츠레니시아의 옷자락이 같이 있으니

정말로 그 둘이 곁에 있는 기분이다.

위즈가 무덤을 만든 뒤부터 혼잣말이 하고 싶을 땐

이곳에 와서 수다를 떨다가 간다.


“역시, 아니겠지?”


그리고 말을 하다 보면 리나의 고민을 풀어주려고 이런저런 얘기를 해주는 것 같다.


“위즈는 분명 날 여기에 있게 해주겠다고 했으니까.”


애초에 아사르군더니움은 호라를 침공한 적인 동시에

오두막에 와야 할 보급을 막아버린 존재다.

위즈가 어떻게든 적을 무찌르고 엘렌 지역을 탈환하려는 이유는 충분하다.


“그리고 어떻게든 나를 숨기려고 애쓸 수도 있잖아.”


이 넓은 숲에서 위즈가 리나를 만난 것 자체가

기적에 가까울 정도로 낮은 확률일 테니까.

수긍하듯 바람과 함께 옷자락이 흩날리는데 다른 생각이 든다.


‘다시 만나겠다고 했는데.’


어마마마가 바깥일 체험이라고 이런저런 일을 가르쳐준 덕에

위즈와 그나마 무난히 지냈다.

지금 입고 있는 이 옷도 어마마마가 아니었으면 만들지도 못했을 테고.

주머니에서 황족의 상징인 브로치를 꺼내 보석을 문지른다.


이대로 죽은 사람인 양 살아도 되는 걸까.

조그마한 죄책감이 가슴 한켠을 찌른다.


“그렇지만 어마마마도 나를 지키려고 목숨을 바치실 뻔했으니까.”


페르투륵사와 츠레니시아처럼.

테르막시아가 별 얘기 안 한 걸 보면

적들이 어마마마를 못 잡은 모양인데

그걸 다행으로 여기며 지내야 할까.


“그래도 이렇게 하면 오히려 어마마마가 죄책감에 빠지실 텐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다른 이들의 슬픔을 막기 위해서는 리나가 크레센타로 돌아가야 할 테고,

다른 이들의 희생을 막기 위해서는 리나가 호라에 남아야 한다.


“······나!”


그때 문득 멀리서 위즈의 목소리가 들린다.

볼일을 마친 위즈가 정원 안으로 들어와 리나를 향해 손을 흔들고 있다.

리나도 언제 고민했냐는 듯 활짝 웃으며 마주 손을 흔든다.


‘차라리 위즈를 데려가면 어떨까.’


리나도 크레센타에 돌아가고, 위즈는 싸우다 죽을 리 없다.

돌아간다고 하더라도 위즈와 작별하는 건,

위즈를 이곳에 버려두고 가는 건 생각조차 하기 싫다.

정말로 그게 최고의 답이 아닐까.


“뭐 하고 있었어?”

“그냥. 무덤 앞에서 혼자 하소연했어. 위즈가 종이에 막 이것저것 쓰고는 아무 데나 버려둔다고.”

“어? 그거 봤어?”

“응. 왜?”

“아니. 어때? 그거 내용도 읽었어?”

“제목만 읽고 안은 제대로 안 봤어.”


위즈의 반응을 보려고 눈을 살짝 든다.


“그래? 나중에 읽어볼래? 이런저런 것들 썼는데 다른 사람 눈에는 어떨지도 궁금하네.”


흔들리지 않는다.

역시 기우였던 걸까.


위즈의 몸에서 나는 은은한 피 냄새.


아마 위즈는 모르는 모양이지만, 비릿한 냄새는 예전부터 맡았고

위즈가 하는 일을 알고 나서는 더 확 느껴진다.


그렇지만 위즈도 리나도 암묵적 규칙처럼

이 오두막 안에서 아사르군더니움 얘기를 꺼내지 않는다.

다만 이전에 위즈가 말한 적 있다.


- 리나 네가 모든 걸 알고 나니 확실히 마음이 편하기는 하다.

- 혼자 짊어졌을 때와는 전혀 다르게 아무 말 안 해도 위로가 돼.


대신 확실히 위로해 주기 위해

위즈가 자주 머리 쓰다듬는 걸 가만히 둬야 했지만,

그마저도 좋았다.


마치 남들이 리나를 위해 희생했듯이,

리나도 위즈를 위해 뭔가 할 수 있다는 거니까.


“위즈. 나 배우고 싶은 마법 있어.”

“전에 가르쳐 준 거면 기초는 완벽한데.”

“그래도. 더 배우고 싶어. 여기서 크게 할 일도 없고.”

“뭐하러 그런 귀찮은 짓을 해.”


위즈가 제발 그러지 말라는 투로 얘기한다.

물론 귀찮게 할 생각은 없는데 그렇게나 귀찮은 걸까.


“속성이나 그런 건 아니더라도 조금 더 공부해보고 싶어.”

“속성을 안 정하면 힘들 텐데.”

“위즈도 숲에 와서 속성 정했다면서? 위즈 친구도 그렇고.”

“그래서 힘들었어.”

“그래도 뭔가 멋있지 않아? 숲에 사는 마법사 가족.”


무슨 생각을 하는지 감이 안 잡힌다.


“하긴, 공부한다는 게 나쁜 건 아니니까.”

“그러면 가르쳐줄 거야?”

“가르쳐주기 전에, 우선 무슨 마법을 공부할지 정하자.”


말 그대로 기초인 마법들은 다 가르쳤고 리나도 이제 수준급으로 쓴다.


“오두막에 있는 책 보다가 배우고 싶은 게 생겼어.”

“거기 있는 마법들은 어려울 텐데.”


그렇다고 갑자기 수준을 확 높이면 안 된다.


“일단, 어떤 마법이야?”

“잠깐만.”


그 말과 함께 리나가 먼저 오두막으로 뛰어간다.

새삼 다리를 다쳤던 리나를 숲에서 주웠던 게 생각나 감회가 새롭다.


위즈가 오두막에 들어가자 마침 리나가 책을 들고 온다.


“자, 이거.”


방어막에 관한 책이다.

리나가 책을 펼쳐 한 페이지 전체를 차지한 그림을 가리킨다.


“이거 그림 멋있어. 배울래.”


리나를 쳐다보고 책을 쳐다보길 세 번.

위즈가 귀를 후비고 다시 묻는다.


“뭐라고? 잘못 들은 거 같아.”

“이 책에 있는 마법 배우고 싶어. 그러면 이 그림이 마력으로 나타나려나? 아니면 마법진?”

“리나, 이거······.”


옛 호라 말을 천천히 해석하고 말한다.


“이거 그림은 그냥 마력이 움직이는 원리? 그런 거야.”


마법을 쓸 때 이 그림이 나타나지 않는 건 물론, 마법진으로 그리지도 않는다.


“그리고 애초에 난 마법진 못 그려. 그 시간에 한 번 더 공격하지.”

“뭐? 정말? 그러면 마법약은? 만들지는 않아도 쓸 수는 있지?”

“쓸 수야······, 쓸 수 있나? 애초에 마법약을 쓸 일이 없었는데.”


마력이 더 빨리 회복되도록 해주는 약은 위즈에게 무용지물이고,

뿌리면 불이 붙거나 하는 약도 비효율적이다.

애초에 마법약은 부족한 마력을 대체하기 위한 수단이니까.


“그런 거 배우고 싶으면 다른 사람을 찾아야 해.”

“그러면 아사르군더니움이 물러나야겠네?”

“그렇지. 배우고 싶어?”


고개를 세차게 끄덕인다.

책에 나온 마법사들은

다들 마법약으로 신기한 일을 벌이거나 마법진을 그려 함정을 만들곤 했다.

딱 한 명 빼고.


“그래. 나중에 꼭 배우게 해줄게. 아무튼, 방어 마법이라.”


시조가 직접 쳤다고 하는, 정원을 둘러싼 방어막.

마법으로 만들어 따로 보수할 필요도 없고

만든 사람이 만든 사람이다 보니 적이 뚫기도 힘들다.

아마도.


‘그래도 자신만 보호하는 방법도 있고. 방어막에 대한 거의 모든 걸 적어놓은 것 같으니까 괜찮을 것 같은데.’


리나가 아사르군더니움과 마주치지 않는다고 해도

적과 싸울 일이 살면서 한 번쯤은 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위즈가 겪었던 그 끔찍한 경험을 리나도 겪게 하고 싶지도 않다.


“해석해야 해서 당장 가르쳐주기는 힘들지만,”


책을 덮으며 말한다.


“번역본을 만들어서 줄게. 지금 딱히 하는 일도 없고.”

“정말? 아니, 잠깐만. 위즈 이제 숲 안 나갈 거야?”

“당분간은 쉴래. 너무 힘들었어.”


책을 옆에 두고 리나 머리를 쓰다듬는다.


“한동안은 이것만 해야지, 뭐. 방어 마법 배워서 나쁠 거 없고.”


리나가 좋아하다가 다시 위즈를 본다.


“방어 마법? 무슨 소리야?”

“······너, 정말로 그림만 보고 고른 거야?”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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