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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공의노래 님의 서재입니다.

사슬의 학살자와 오두막의 손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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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천공의노래
작품등록일 :
2021.04.09 16:55
최근연재일 :
2021.08.02 07:50
연재수 :
118 회
조회수 :
8,170
추천수 :
231
글자수 :
613,867

작성
21.06.09 07:50
조회
41
추천
2
글자
12쪽

63화

+와 +사이의 글은 외국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DUMMY

“야. 위즈. 왜 아침부터 얼굴이 죽상이냐?”

“내가 뭐 죽상 아닌 적 있었나.”


이젠 인사말이 되어버린 토운의 말.

위즈는 턱짓으로 저 멀리 앉아있는 주크를 가리키자

웃으며 위즈의 등짝을 후려친다.


“뭘 저런 거 가지고. 그러고 보니 마지막 성적 나왔던데 어땠냐? 나는 뭐 나쁘지 않던데.”

“나야 언제나 낙제점 바로 위 점수지.”


꼴에 대 귀족 가문이라고, 아무리 온 학교가 나서서 박해해도

가문 이름에 먹칠할까 봐 절대 낙제점은 주지 않는다.


“저 머저리는 자기 성적이 전부 선생들이 만들어 준 성적인 건 알까?”

“알아도 문제고 몰라도 문제지.”


주크가 진짜로 잘 하는 약초학 쪽 말고는

전부 선생들이 주크에게는 유리하게,

위즈에게는 불리하게 만든 시험문제로 시험을 치렀다.

그리고 필기는 당연히 선생들이 채점하면서 답을 바꿨다.


“그것보다 우리 가주가 너 찾아갔다며? 뭐래?”

“뭐긴, 매번 똑같은 협박이지. 대 귀족 가문 낯 더럽히지 말라거나 그런 거.”

“그 양반 치매인 것 같더라. 네가 이해해.”


가주 본인도 지금 테 살베니움이

멸문형(滅門刑) 받기 직전이라는 걸 알고 있을 텐데.


“반역 모의로 오해받을 만한 말도 하길래 그걸로 협박하고 돌려보냈어.”

“녹음 안 했냐?”

“진짜로 그런 말을 내뱉을 줄은 몰랐지. 그것보다, 너. 대학은 어떻게 할 거냐?”

“갑자기?”

“이제 졸업까지 한 학기 남았는데, 미리 생각해야지.”

“됐어, 무슨. 난 간다고 해도 가주가 막을걸.”


주크가 가질 열등감을 위즈에게 재능이 없다는 말로 포장해서

어떻게든 막으려 하리라.

거기에 성적도 안 좋고, 대학이 의무도 아니니 위즈는 갈 방법이 없다.


“그건 걱정하지 마. 우리 가문에서 지원할 테니까.”

“어? 왜?”

“왜긴. 테 살베니움의 후계자잖아. 우리 가문에서도 너랑 친분 쌓아두면 좋으니까 그렇지.”

“어차피 너희도 대귀족인데, 뭘.”

“그래도 내가 너랑 친하다는 말 듣고 아버지가 좋아는 하시더라. 야, 어때?”

“대학이라······.”


처음부터 못 갈 거로 생각했기에 뜬금없기도 하고 당황스럽기도 하다.


“너랑 네 동생 둘 다 지원해주실 생각이시라던데, 아마 내일 즈음이면 학교에 공문 도착할걸?”

“네 말대로 나야 좋지만, 괜찮겠냐?”

“뭐가.”

“이러다가 너희 가문이랑 우리 집안이랑 완전히 척 질 수도 있는데?”


토운이 뭘 그런 걸 신경 쓰냐는 투로 손을 내젓는다.


“척 져 봐야 너희 집안만 손해지. 우리 집안을 봐. 승상가(家) 다음으로 폐하께서 가장 신임하시는 가문 아니냐.”

“정확히는 우리 가문만 안 신임하지.”


어찌 되었든, 위즈에게는 나쁜 이야기가 아니다.

무엇보다 주크를 골릴 좋은 기회이기도 하고.

그래서 그 호의를 받아들이기로 한다.


“그런데 넌 어디 갈 생각인데?”

“전투마법 쪽으로 갈 생각이야.”

“전투마법? 군인 되려고?”

“아니.”


전투마법과는 애초에 군인을 키우기 위해 만들어져서

마법뿐만 아니라 군사학에 관련된 것들도 배운다.


“그럼 왜 가려는 거야?”

“그게, 나는 딱히 사고를 친 것도 아니고 하니까 언젠간 가주 자리를 물려받을 거란 말이야?”

“그렇겠지.”

“그런데 우리 영지 남쪽, 아니 호라 남쪽에는 아라바제 왕국이 있잖아. 나중에 가주가 되면 가장 먼저 내가 앞장서야지.”

“무슨 그런 쓸데없는 짓을.”


위즈가 혀를 차지만 토운은 신경 쓰지 않고 계속 말한다.


“생각해봐. 사막을 건너 침공하는 적들. 그리고 그 앞에서 앞장서서 싸우는 체테누스 집안의 젊은 가주!”

“차라리 군인을 해, 그럴 거면.”

“군인이 되면 영지를 지키지 못하는걸? 어디로 배치될 줄 알고.”

“그니까, 군인은 하기 싫고, 나라와 영지는 지키고 싶어서 전투마법을 가겠다는 거야?”

“바로 그거지.”


당연히 위즈가 이상하게 볼 줄 알았는데,

위즈는 오히려 오른손을 턱에 대고 진지하게 생각한다.


“그러면 스콜라스 대학으로 가겠네?”


엘렌 지역 바로 아래에 있는 스콜라스 지역에는 호라에서 두 번째로 큰 대학이자 마법 분야에서는 온 세상에서 가장 뛰어나다는 말이 나오는 스콜라스 황립 대학이 있다.


혹자는 대학이 스콜라스에 세워진 이유가 마법에 능통한 테 살베니움 가문 곁에 두되 엘렌 지역의 힘은 늘리지 않기 위해서라고 하는데, 아무튼.


“네 성적 정도면 스콜라스 대학도 문제없을 테고, 문제가 있어도 가문이 적당히 뒤 봐줄 테고.”

“그렇겠지.”

“군인이라.”


막연하게 싸우기 싫어서 가주한테도 고개를 숙여왔으니 군인이라는 진로는 생각조차 해본 적 없다.


“어차피 어디로 배치될지 모른다면, 엘렌 지역에서 벗어날 가능성도 크지 않을까?”

“뭐야. 군인 되려고?”

“아니, 된다기보다는······. 나쁘지는 않을 것 같아서.”


위즈를 위아래로 훑어본다.


“뭐. 왜.”

“아니, 군인 되기에는 적합하지 않은 몸 아니냐?”


덩치가 좀 있는 토운과 달리 위즈는 힘 좀 쓰라고 말하기 미안하게 생겼다.

그냥 전형적인 마법사다.


“그거야 뭐, 마법으로 어찌어찌 되지 않을까. 평소라면 몰라도 싸울 때 정도만큼은.”

“하지만 마 엘구룬을 맞는다면?”

“그거에 맞을 정도면 이미 죽었겠지. 아무튼, 군인이라. 나쁘지는 않을 것 같은데?”

“괜찮겠냐? 면접에서 떨어질지도 몰라.”

“그건 너희 가문에서 어떻게 좀 해줘.”

“장난하냐.”

“그래도 뭐, 마력이 무한이라는데 황군에서도 눈독 들이지 않을까?”


그 말에 토운이 고개를 끄덕인다.


“그렇겠네. 체력만 받쳐주면 쉬지 않고 싸울 수 있으니까.”

“거기다가 군인이 돼서 나름대로 지위를 높이면 가문에 복수도 할 수 있고.”

“너, 사실 그게 목적이지?”

“뭐, 어때. 죽이려는 건 아닌걸.”


슬슬 수업이 시작될 시간이라 책을 챙긴다.


“그런데 아마 내가 전투마법과로 간다면, 주크도 같이 갈 거야.”

“왜? 걔도 전투마법과에 관심 있었어? 난 당연히 약초학 쪽으로 갈 줄 알았는데.”

“아니. 걔 의지랑은 상관없어. 아마 가주가 보낼 거야.”

“감시용으로?”


고개를 젓는다.


“아마 열등감이나 그런 걸 거야. 자기 자식들도 직계에 뒤처지면 안 된다는, 그런 거 있잖아.”

“가주가 너희 가족만 괴롭히는 게 아니네.”

“그렇지. 주크가 저 꼴인 건 아마 그 탓이 클걸?”

“하긴. 나도 할아버지가 그렇게 괴롭혔으면 저렇게 됐을지도 몰라.”


그렇다고 주크가 불쌍하지는 않다.

그렇게 따지면 계속 얻어맞으며 살아온 위즈는 뭐가 되는가.


“뭐, 굳이 군인으로 안 가도 되고. 솔직히 네가 간다고 해서 흥미가 생기는 거지, 난 전투마법 자체에는 그렇게 관심이 가지 않아.”

“그래도 봐서 괜찮다 싶으면 우리 가문에서 채용할걸.”

“취직 걱정은 덜었네.”


어깨를 으쓱인다.


“내 동생은 카누악으로 가려고 하더라.”

“카누악? 그 북쪽에 있는 지역?”

“응. 거기에 본 에레체인 본가가 있잖아. 거기서 검술을 배우고 싶다더라고.”

“누구랑 다르게 벌써 진로를 정했네.”


위즈를 흘끔 본다.


“뭐, 걔는 덜 견제 받다보니 어릴 때부터 진로가 뚜렷했으니까. 재능도 있는 것 같고.”

“카누악이라. 할아버지가 본 에레체인 가문에 직접 연락해야겠네.”


“그렇게 토운이 도와줘서 대학에 들어갈 수 있었어. 그다음부터는 우리 가문 때문에 힘든 일은 없었지.”


라스는 본 에레체인 가문에 맡겨져 칼과 창 쓰는 법을 배웠고,

위즈는 엘렌 남쪽 스콜라스 지역에서 대학에 다녔다.


“주크는 대학에 간 뒤에도 나를 어찌 해보려고 했지만, 전혀 통하지 않았지. 대귀족의 지위가 거기서는 아무런 의미 없었거든.”


오히려 귀족티를 내지 않는 위즈에게 사람이 꼬였다.


“그러면 대학에서는 친구가 많았어?”

“딱히. 이래저래 친하고 고마운 애들은 많지만, 토운만큼 가까운 애는 없지.”


아무튼, 지금까지에 비하면 대학 생활은 너무나 무난했다.

너무나 조용했고, 너무나 권태로웠고, 너무나 짧았다.


“아, 재밌는 이야기라면 하나가 더 있네.”

“뭔데?”

“내가 원래 속성을 안 정했다고 했잖아.”

“응. 여기에 와서 정했다고 했어.”

“토운도 안 정했었어. 지금은 모르겠지만, 적어도 대학 졸업 때까지는.”



******



“야. 이 논문 봤냐?”


하루는 토운이 종이 뭉치를 들고 위즈에게 와서 말한다.


“······뭐?”


위즈는 종이 뭉치, 아니 종이 장벽에 쌓여 잔뜩 피곤한 얼굴로 고개를 든다.


“나보고 또 논문을 읽으라고?”

“그러게 처음부터 좀 쉬운 과제 고르지.”

“처음에는 재밌어 보였다고······.”


위즈가 다 죽어가는 목소리로 중얼거리는데 토운이 들고 있던 논문을 건넨다.


“쉬는 김에 이거나 좀 읽어봐.”

“요약해.”

“아니 그냥 좀 읽어봐. 중요한 내용은 다 앞에 있으니까.”


대답하지 않는다.


“아, 진짜.”


그렇게 말하면서 대충 요약해준다.

요약이 끝나자마자 고개를 돌리며 말하는 걸 보면 듣고는 있던 모양이다.


“그거 테르막시아 박사 거 논문이지?”

“어떻게 알았냐.”

“뻔하지, 뭐. 매번 이상한 얘기만 하잖아.”


몸을 일으켜 논문을 받아든다.


“속성을 정하지 않은 상태에서 마력 수련을 하면 마력 그릇의 크기가 커진다니. 말이야 방귀야 이게.”

“그래도 지금까지 써놓은 걸 보면 다 말이 안 되는 그런 건 아니었잖아.”

“지금까지는 그랬고, 이제 앞으로는 헛소리만 하는 사람이 되는 거겠지.”


종이를 넘기며 뒤에 적힌 실험 내용을 본다.


“애초에 속성을 안 정한 마법사가 흔한 것도 아니고.”

“있잖아. 너랑 나.”


대학에 들어오기 전, 다들 속성을 정하는 데

위즈와 토운을 비롯한 몇은 정하지 않았다.

물론 그게 크게 이상한 건 아니지만, 위즈는 다른 애들과는 달리 이유가 있었다.


- 안녕?


지난 방학, 본가에 갔을 때 겪은 일이다.

그나마 잘 대해주던 어른들에게 인사라도 하려고 했는데, 선객이 와 있었다.

자신처럼 눈동자가 보라색인 여성이었다.


- 위즈, 너 곧 속성을 정할 때지?

- 그러면 일단 정하지 말아봐.

- 이번에 정하라고 하면 아직 뚜렷하게 원하는 속성은 없다고 해. 지금까지처럼 네게 뭐라고 할 수도 있지만, 속성 정하는 건 절대 강요하지 못하니까.

- 내가 나중에 선물을 줄 테니까.

- 응. 그러니까, 조금만 참아.


평소 같으면 무시할 법도 하건만, 위즈는 왜인지 순순히 말을 들었다.


“야. 그런데 애초에 나로는 실험 못 하잖아. 어차피 마력이 무한인데.”

“그래도 나 같은 범인(凡人)한테는 꽤 솔깃하다고.”

“이게 진짜였으면 다들 속성 안 정하고 마력 그릇부터 키우지. 안 그러냐?”

“그런데 그게 엄청나게 오래 걸린대. 힘들기도 하고.”


토운이 가리키는 곳을 읽자 그대로 적혀있다.


“아니, 이 정도면 그냥 안 하겠다. 매일 같은 수련만 몇 시간씩 한다고 쳤을 때 10년은 꼬박 걸린다니.”

“재능이 있으면 더 일찍 된다고 하잖아.”

“설마 그 아주 작은 가능성을 믿는 거야? 물론 그거야 네 마음인데······.”


계속 더 읽어보다가 덮고 책상 위에 툭 던진다.


“차라리 지난번에 썼던, 말이 아니라 동작으로 주문을 대체한다는 그 논문이 훨씬 신빙성 있어 보여.”

“그 정도냐.”

“솔직히······, 말이 안 된다고밖에 생각이 안 돼, 나는. 마력 그릇이 커진다니.”


머리를 긁적이고 토운에게 말한다.


“그래도 하겠다면 말리지는 않을 거야. 직접 증명해주면 나야 좋고.”

“그러면 더 하기 싫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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