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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공의노래 님의 서재입니다.

사슬의 학살자와 오두막의 손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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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천공의노래
작품등록일 :
2021.04.09 16:55
최근연재일 :
2021.08.02 07:50
연재수 :
118 회
조회수 :
8,020
추천수 :
231
글자수 :
613,867

작성
21.06.14 07:50
조회
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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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글자
11쪽

68화

+와 +사이의 글은 외국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DUMMY

처음 보여준 그 모습과 달리 위즈는 생각보다 손쉽게 제압되었다.

가장 먼저 달려든 라스를 벽으로 밀치고 병사들을 공격하나 했지만,

겨우 마 엘구룬 갈고리에 무릎을 꿇었다.

마치 계획이라는 것처럼.


“엘렌 성 치안대(治安隊) 대장입니다.”

“네, 네.”


치안대 대장이 다가와 멍하니 체포 장면을 보던 라스를 부축해 일으킨다.


“이쪽으로 오시지요. 우선 치료하고 그 뒤에 가셔야 합니다.”

“잠깐, 저 사람은 제 형······.”

“압니다만, 지금은 가해자와 피해자입니다. 우선 따라오시지요.”

“······네.”


이래저래 묻고 싶은 게 많은 모양이나 순순히 부축을 받으며 따라간다.


“저, 제 형은 그러면 어떻게 되는 겁니까?”

“일단 어······, 원로와 가주를 살해한 죄로 재판에 끌려가겠지요.”

“재판?”


조금 생각하더니 외친다.


“재판은 테 살베니움 가주, 그러니까 엘렌 성 영주가 하잖습니까?”

“그렇습니다.”

“영주가 죽었는데 그럼 가문 원로가 합니까?”

“그렇지요. 다른 일이면 관리가 하겠지만, 가문과 연관된 일은 가문에서 처리합니다.”

“그게 무슨······. 그건 그냥 복수하는 거잖습니까?”


부축하던 치안대 대장이 한숨을 쉰다.


“그게 당신 가문에서 계속해오던 관습이자 전통입니다. 저희는 따를 수밖에요.”


혹시 가문은 직계가 밀려나기 전부터 이미 썩기 시작했던 게 아닐까.


많은 이들이 존경해 마지않는 나이트리아스 테 살베니움도,

그 밖의 여러 훌륭한 선조들도,

데스트리아누스 테 살베니움도 그랬던 것 아닐까.

그저 그들의 위세와 이름에 가려졌을 뿐.


위즈의 선조를, 직계를 이기고 가주가 되었다던 그 사람은

어쩌면 직계가 누리던 폐단을 없애려고 했던 건 아닐까.


방금 죽은 그 가주의 핏줄만이 문제가 아닐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이번 일은 사안이 사안이다 보니 오늘 안에 재판이 시작될 겁니다.”

“따로 변론 같은 건······.”

“변론이고 뭐고 직접 죽였으니까요. 아까 봤잖습니까.”

“그래도 폐하께서 아시면 가만두지 않으실 겁니다.”

“도련님. 정신 차리십시오. 도련님의 형님은 지금 살인범입니다.”


라스에게야 정신을 놓은 불쌍한 형이지만, 다른 이들에게도 그럴까?


“······재판은 언제입니까?”

“늦어도 오늘 저녁에는 할 겁니다.”

“어차피 처벌은 정해졌으니까?”


사형.

황제가 모든 이야기를 듣고 직접 판결을 내리면 모를까

남은 원로들은 무조건 사형을 내리리라.



******



치안대 대장 말대로 재판은 저녁에 시작되었다.

재판을 맡은 이는 가장 앞장서서 위즈와 라스를 괴롭히며 가주에게 아부하던 이.

하필 오늘 외부에 일이 있어 나갔다가 화를 피했다.


“지금부터 금일 참사에 관한 재판을 시작한다.”


재판장 뒤에 앉아있는 원로들과 주크.

아마 주크를 차기 가주로 올릴 생각이었으니 보고 배우라는 의미이리라.


“놈을 데려와라.”


위즈가 마 엘구룬이 주렁주렁 매달린 사슬에 꽁꽁 묶여 끌려온다.

딱히 저항하지도 않는다.


“그리고 살아남은 피해자는······.”


눈살을 찌푸리며 라스를 본다.


“블라스투스 테 살베니움.”


아예 대놓고 이름을 부르고 한숨 쉰다.


“도저히 인정 못 하겠다는 얼굴이네?”


위즈가 낄낄거리며 재판장을 올려다본다.


“안타깝지만, 라스는 아무것도 몰라. 아마 지금도 내가 정신을 차린 건지 놓은 건지 구분 못 하고 있을걸?”

“다물어라, 이 살인마! 신성한 법정이다!”

“가문 안에서 이 일을 처리하는데 퍽.”

“닥쳐!”


앉아서 몸을 떨던 주크가 소리친다.


“너 때문에, 너 때문에 죄 없는 할아버님과 원로들이······.”

“죄? 죄가 없어? 그 사람들이 나랑 내 동생한테 한 짓을 생각하고도 그런 말이 나와?”

“죽여! 당장 저놈을 죽여!”

“정숙!”


주크가 이성을 잃기 직전에 재판장이 외치고

주위에서 사람들이 다가와 주크를 억지로 앉힌다.


“이거 놔! 이 더러운 것들! 내가 누군 줄 알고······.”

“누구긴. 죽은 가주를 믿고 나댔는데 상황이 변한 것도 모르고 소리 지르는 어린아이지.”


그 말에 더 화가 나 위즈에게 달려들려고 한다.

위즈는 재판장이 주크를 쫓아낼까 봐 큰 소리로 말한다.


“굳이 이런 재판을 할 필요가 있나? 어차피 판결은 정해졌을 텐데?”

“우리는 공정하게, 그리고 법도에 맞게 재판한다.”

“피해자가 가해자를 직접 판결하는 게 공정하고 법도에 맞던 건가?”


낄낄대는 소리를 무시하고 재판을 진행하려 하는데

위즈가 허리를 세우고 재판장을 바라본다.


“그만하자. 미친 척하는 것도, 아무 힘없는 척하는 것도 이제 지치니까.”

“뭐?”


어차피 계획은 순조롭게 이뤄졌다.

살아남은 원로들과 주크, 가주의 편에 서서

형제를 괴롭히던 이들 모두가 재판장에 모였다.


“저 정신 나간 놈 빨리 판결이나······.”

“잠깐만.”


재판장이 위즈의 의중을 눈치챘는지 이내 얼굴이 사색이 된다.

이렇게 될 걸 전부 예상하고 며칠 전부터 매일 이 근처에 마력을 뿌렸다.


위즈가 씩 웃자 마 엘구룬이 하나둘 연한 푸른빛으로 변하더니 깨지기 시작한다.


“마 엘구룬! 마 엘구룬 가져와서 부어! 마력 흡수할 수 있는 인원도······.”

“이미 늦었어.”


위즈의 눈이 빛나는 건 착각일까.

마 엘구룬에 이어 사슬이 박살 나고, 달려들던 병사들은 다시 뒤로 날아간다.


“대귀족이면 뭐해. 자기 마음에 안 든다고, 권력을 뺏기고 싶지 않다고 멋대로 다른 사람들을 죽이고 다니는데.”

“형님!”


라스가 이번에도 가장 먼저 달려들지만, 마 엘구룬도 칼도 없다.

보지도 않고 그대로 담장 너머로 날리고는 아무도 못 빠져나가게

재판이 열리던 마당을 방어막으로 감싼다.


“그리고 무엇보다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거릴 줄 안다는 것도 모르는데.”

“위자드리아누스!”


주크가 마법으로 방패를 만들고 위즈에게 달려든다.

계속 위즈를 이기라고 말하던 가주를 떠올리며 나름대로 용맹스럽게 공격하지만,


“커, 컥!”

“날, 뭐. 이겨보겠다고?”


위즈의 손이 방패를 손쉽게 뚫고 그대로 주크의 목을 붙잡는다.

팔에 마법을 써서 주크를 그대로 들어 올린다.


“그렇게 내가 미워? 그렇게 나를 괴롭히고 싶었어?”

“이, 이!”


왼손으로 위즈의 손목을 움켜쥐고 오른손으로 마법을 써도

위즈가 몸에 두른 방어막 때문에 튕겨 나간다.

주먹으로 때리려 해도 마찬가지다.


“봐. 몸을 방어막으로 두르는 거. 우리가 대학에서 배웠던, 아주 기초적인 거야. 하지만 넌 아직도 방패밖에 못 만들더라?”

“어, 어, 억.”


점점 숨이 멎으려 하자 바닥에 내동댕이친다.


“겨우 그 정도로······.”

“너 때문에!”


주크가 소리친다.


“너 때문에 내 삶이 이 꼴이 됐어!”

“뭐?”

“너 때문에 하고 싶은 것도 못 하고, 매일 비교당하고, 그런 내 속을 네가 알아?”

“그게 어쨌는데.”


발로 걷어찬다.


“나도 마찬가지야. 니 할아버지한테 끌려온 뒤부터 계속 느끼고 있다고.”


내려놓은 사이에 병사들이 달려들지만, 그대로 날아가 벽에 부딪혀 정신을 잃는다.

주크 앞에 쭈그려 앉아 머리카락을 잡고 눈을 마주친다.


“따스한 곳에서 몸 녹이는 동안 난 찬 바람 부는 온 집안을 쓸어댔고 먹고 싶은 거 마음껏 먹을 때 그나마 굶기지 않는 거에 감사하고 살았어. 너는 내 속을 알아?”


주크가 손을 뻗으며 주문을 외우려고 하자 위즈가 먼저 주크의 입을 꽉 붙잡는다.


그대로 후려치려는 걸 몸을 비틀어서 빠져나오고는

주문을 외워서 위즈에게 불꽃을 날린다.

하지만 위즈는 주크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방어막을 만들어 막은 뒤

방어막 채로 날린다.


“자, 가족을 잃은 기분. 어때? 좋아?”


방어막에 부딪힌 주크가 바닥에 쓰러진다.


“조, 좋겠냐, 어?”

“그렇지? 싫지?”


머리카락을 움켜쥔 채로 얼굴을 바닥에 찍는다.

비명이 들리고 피가 튀겨도, 주위에서 소리를 질러도 무시하고

계속 바닥에 입을 맞추게 한다.


“그런데, 왜, 나한테는, 그렇게, 했냐고, 어? 왜 내 부모님을 죽이고 동생까지 죽이라고 했냐고!”


뒷 문장을 말할 때 머리카락을 놓고 일어나 발로 머리를 걷어찬다.

다행히 아직 정신이 붙어있다.


“무, 무슨, 나는, 모르,”

“네 속을 아냐고 묻기 전에 다른 사람 속이나 먼저 신경 써.”


마력으로 주크를 문 근처에서 멀뚱멀뚱 쳐다만 보던

원로들 쪽으로 날리는데 품에서 뭔가가 떨어진다.


울부짖다시피 소리치는 원로들과 어떻게든 몸을 일으키려는 주크를 두고

다가가 주워보니,


“뭐야, 이거.”


보자마자 헛웃음이 나온다.


“카누악에서 들었을 때는 설마 아니겠지 생각했는데, 그 원로한테 들었을 때도 설마설마했는데,”


아사르군더니움의 상징이 새겨진 나무판.

카누악에서 무르니수스 본 에레체인이 보여준 바로 그 나무판이다.


“정말 나라까지 팔아먹을 생각이었냐?”


그대로 던지려다 혹시 쓸 데가 있지 않을까 싶어 품에 넣어둔다.


“그놈의 열등감이 뭐라고 나라까지 팔아먹을 생각을 해?”

“나는, 나는······.”


주크가 억지로 일어서는 건 죽은 자기 할아버지를 위해서일까,

아직도 남은 열등감 때문일까.


“그, 모, 모든, 그, 핍박받는 사람들을, 위해서,”


아사르군더니움의 이상을 그저 읊기에 비웃는다.


“제대로 나라 팔지도 못하겠네. 그렇게 이상을 주입 당하기만 했으니.”

“아니야. 나는,”

“심지어, 뭐? 핍박받는 사람들을 위해서? 네가 그런 말 할 자격이 있어?”


성큼성큼 다가오자 두려워 떠는데 물러서지는 않는다.

그러고 보면 놈이 위즈와 라스를 괴롭히기만 했던 것처럼

위즈도 주크에 대해 제대로 알지는 못한다.

이렇게 의외로 심지가 굳다는 점도.


위즈가 마력으로 짧은 창을 만들어 양손에 쥐고는

주크가 아슬아슬하게 만든 마력 방패를 거세게 때린다.


“나도 그럴 수밖에 없었어!”


주크의 울부짖음이 이상하게 변명으로 들리진 않는다.


“할아버지가 그렇게 기대하는데 나보고 어떻게 하라고! 제대로 인정받으려면, 널 이기려면 이런 방법밖에 없단 말이야! 적어도 시키는 대로 잘하는 아이일 수밖에 없었다고!”

“말 잘 듣는 아이?”


양손에 쥔 창으로 다리를 후려치고 한숨을 쉰다.


“그래. 그럴 거야. 물론 넌 시키는 대로만 했겠지.”


그게 위즈를 괴롭히는 것이든, 아사르군더니움에 나라를 팔아버리려고 한 것이든.

주크를 내려다보며 숨을 고르자 다들 끝난 건가, 하고 위즈 눈치를 본다.


“그렇지만 시키는 대로 한 것도 죄야.”


주크가 주저앉은 곳은 담에 붙어있는 화단.

양 손으로 붙잡은 마력 방패를 손으로 간단히 밀고는

그대로 마력창으로 심장을 꿰뚫는다.


목이 피로 차 제대로 나오지 않는 말.

고개를 돌려 화단에 피어있는 꽃을 보더니 눈물 한 방울과 함께 금세 숨을 거둔다.

분명 숙원 하나를 마쳤는데 왜 이렇게 기분이 나쁠까.


“미, 미안해!”


혼자 쓴맛을 되새기니 원로들 사이에서 목소리가 나온다.


“사, 살려줘! 잘못했어!”


어차피 이미 선을 넘었고 돌이킬 수도, 당장 다른 방법을 찾을 수도 없다.

그렇게 절대 닿아서는 안 되는 대단원까지 위즈는 망설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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