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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공의노래 님의 서재입니다.

사슬의 학살자와 오두막의 손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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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천공의노래
작품등록일 :
2021.04.09 16:55
최근연재일 :
2021.08.02 07:50
연재수 :
118 회
조회수 :
8,166
추천수 :
231
글자수 :
613,867

작성
21.06.15 07:50
조회
37
추천
1
글자
11쪽

69화

+와 +사이의 글은 외국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DUMMY

검은 망토가 피에 물들듯 불꽃이 밤하늘을 핥고,

검은 돌에 흰 돌을 던져 깨뜨리듯 비명이 고요를 더럽힌다.


새까만 하늘을 핥아대는 불꽃 사이에서 횃불을 들고 혼자 가만히 선다.

위즈를 두려워하는 이들은 모두 스러지니

살아남은 이들은 위즈를 신경 쓰지 않는다.


남은 건 이날을 영원히 기억하라고 불로 흔적을 남기는 것.

저 앞에 불이 사람을 덮치기에 몰래 살짝 불길을 돌린다.


이제 다 끝났다.

마지막 일이 풀리지 않더라도, 복수는 마쳤다.

그렇지만 역시 기분이 나쁘다.


-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잘못했어요,


아이가 울며 아비의 주검을 감싸는 걸 봐서 그런 걸까,

사방이 불인데도 속이 서늘하여 몸이 떨린다.

힘들 거란 예상은 했으나 그 이상으로 당장 멈추고 주저앉고 싶다.


전투마법을 배우며 전장에 나가봤지만,

실습생 신분이라 실제로 한 건 병참 자원봉사뿐.

이런 건 실습에서도, 책도, 교수도 알려주지 않았다.


“후.”


찬 숨을 내쉬고 열기를 폐 깊숙이 들이마신다.

고통스러워 차라리 좀 더 나아진다.


라스와 경기장에 같이 섰던 게

마치 이곳에 처음 왔을 때처럼 아주 오래된 것 같다.


“형님! 어디 계십니까!”


멀리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린다.

하지만 여기서는 안 된다.

무시하는 척 좀 더 걸어가 사람이 거의 없는 곳으로 라스를 이끈다.


“형님!”


다행히 라스는 위즈의 생각대로 잘 따라오고

위즈는 원하는 곳에 다다라서야 걸음을 멈춘다.

라스가 숨을 고르고 입을 닦은 뒤 거칠어진 목소리로 말한다.


“왜 그런 겁니까, 형님.”


위즈는 뒤를 흘끗 보더니 손에 든 횃불을 옆의 건물에 던진다.

이제 대단원이다.

남은 건 라스가 정답을 말하는 것뿐.


“형님, 멈추십시오. 지금이라면 모두 돌이킬 수 있······.”

“돌이켜?”


말을 맺지도 못하고 공중으로 떴다가 뒤로 날아가 바닥에 구른다.


“돌이켜 봤자,”


위즈가 손을 뻗자 불붙은 나무토막 하나가 날아온다.


“어차피 지옥이잖아.”

“그럼 지금은 지옥이 아닙니까? 온 사방이 불타고 다들 울부짖는데? 멈추라고 했습니다, 형님.”


칼을 들고 다가오는 라스를 이번에는 밀어내지 않는다.


“제가 책임지겠습니다.”


청년이 칼을 거꾸로 잡고 형의 어깨를 쥐며 말한다.


“제가 책임져서라도 이 일을 무마시킬 테니까, 제발.”


아니다.

원하는 대답이 아니다.


“왜 넌 나를 끌어안았느냐. 네 길을 갔다면 지금쯤 승승장구했을 것을.”


일부러 라스 말투를 흉내낸다.


“형님을 버리고 부귀를 얻은들 무슨 가치가 있겠습니까.”

“어리석은 놈. 그러니까 네가 이렇게 고생하는 게다.”


다시 달려들기 쉽도록 가볍게 날리고, 라스도 역시 가볍게 착지한다.

그런데 발소리와 함께 상정하지 못한 불청객이 난입한다.


“놈이 저기 있다!”

“잡아!”


가병 몇이 몰려와 위즈를 붙잡으려고 한다.


“이 살인마가!”

“살인마?”


꼴에 라스를 시험해보겠다고 했으면서 그 말에 흔들려 병사를 벽으로 날려 척추를 부러뜨린다.


“그자들이 내게 한 짓은 정당한 행위이고, 내가 한 건 살인이야?”


그리고 몇은 몸에 마력을 직접 넣어서 과부하로 터뜨린다.


“무, 무스······.”

“가병은 무슨, 그 인간들 친위대 주제에.”


평소에 하던 생각이 자신도 모르게 입 밖으로 나오고,

그런 만큼 동정심도 들지 않는다.


“증원 병력을 불러! 놈이 여기에 있다!”

“성 수비 병력까지 투입해!”

“우리만으로는 안······.”


소리치던 병사의 목을 붙잡는데

매번 가주의 앞잡이 노릇을 하며 위즈와 라스를 괴롭히던 병사다.

속이 시원해서 괜스레 웃음이 나온다.


“멈춰!”


어느 틈에 라스가 다가와 위즈를 뒤에서 끌어안는다.


“놔.”

“멈춰. 폭주하지 마.”

“놔.”

“더는 안 돼. 더는 선을 넘으면 안 돼.”


아직도 정답이 아니기에 다시 한번, 이번에는 험하게 날린다.

그리고 흔들리며 병사의 목이 부러진다.


“내가 놓으라고 했지.”


다만 라스도 안전하게 착지하고는 다시 달려온다.


“내가 이런 꼴 보려고 그 고생을 한 줄 알아?”

“그럼 무슨 꼴을 보려고 했는데. 뭘 원했는데.”


라스가 휘두른 칼은 여전히 위즈에게 닿지 않는다.

그 사이에 다시 문제를 낸다.


“넌 단 한 번도, 복수를 생각한 적 없어? 우리가 이런 꼴로 살아도 아무 생각 안 들었어?”

“복수야 얼마든지 생각했지만, 지옥은 바라지 않았어. 단 한 번도.”

“그렇다면 네가 바라던 건 뭔데?”


위즈가 날린 마력창을 아슬아슬하게 피한다.


“이런 끔찍한 세상에서 꿈꾸던 건 뭔데?”

“나는!”


그리고 라스가 크게 휘두른 칼을 위즈가 빠르게 만든 방어막으로 막는다.


“저는······.”


청년이 숨을 헐떡이며 말한다.


“형님을 구하고, 부모님을 찾고, 가문을 원래대로 되돌리고,”

“저기다! 모두 이쪽으로 모여!”

“그 정도뿐이었습니다.”

“그러니까 네가 어리석다는 거야.”


성 수비 병력이 몰려온다.


“잡아! 여기서 못 막으면 성까지 끝이야!”

“성까지 끝낼 생각은 없었는데,”


보라색 눈을 빛내며 씩 웃는다.

미친 척 하다가 정말로 미쳐버린 걸까.


“한번 해 볼까?”

“아니. 그렇게 두지 않아.”


다시 덤벼든 라스를 마력만으로 밀어내고

본능적으로 마력창으로 라스의 머리를 노린다.


‘아······,’


다행히 라스도 본능으로 창을 피했지만,


‘하마터면······.’


이제 공격할 때마다 라스를 상대로 선을 넘지 않을까 계속 불안하다.

싸움이 길어질수록 오히려 라스가 더 차분해진다.


“여긴 내가 지킬 겁니다, 형님.”


칼을 들고 제대로 자세를 잡은 채 말하는 그 모습이

마치 소설 속 주인공 같아 내심 자랑스럽다.


“그래, 뭐. 이제 관객도 다 모였고. 곧 멸화군(滅火軍)까지 올 테니.”


다른 병사들이 더 몰려오기 전에 다시 또 부딪힌다.

위즈의 마력창을 피하는 라스와 라스의 칼을 마력방패로 막는 위즈.

그러고 보니, 만약 라스가 틀린 답을 하거나 끝까지 정답을 말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서로 빠르게 움직이고 격하게 싸우느라 아무도 둘 사이에 끼어들지 않는다.


그렇게 싸우길 한참, 점점 위즈 눈에 보이는 건 라스의,

자신과 원로들과 가주와 똑같은 보라색 눈동자 뿐.


거리가 멀어지면 불리한 건 라스다보니

끝까지 물러서지 않고 칼을 휘두르는데

정작 위즈는 다른 생각을 한다.


같은 눈동자를 가진 원수들과 그간 계속 느꼈던 가문의 폐단.

그리고 그 모든 게 빚어낸, 가문을 향한 증오.


싸움에 홀린 것이었을까, 증오에 홀린 것이었을까, 아니면 그 모두였을까.

위즈가 점차 제대로 마법까지 쓰며 싸우기 시작한다.


집을 삼키던 불이 라스까지 삼키려고 다가오고,

허공에서 솟은 물과 먼지가 라스의 시야를 가리며,

마력으로 만든 분신이 일제히 창을 내지른다.


“잠······.”


그걸 모두 피하고 칼로 마력방패를 때리는데

보이는 건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는, 텅 빈 눈.

위즈는 그대로 당황한 라스를 마력창으로 찌르려다,


“형님!”


창이 닿기 직전에야 정신을 차리고 아슬아슬하게 팔을 멈춘다.

그 사이에 라스가 위즈의 팔을 직접 밀쳐내고는 품으로 파고든 뒤 칼을 내지른다.


‘내가 뭘······, 설마 또······.’


몸을 억지로 틀어 살짝만 베이고 그대로 뒷걸음질 친다.

어쨌든 위즈와 달리 라스는 중요한 순간에 망설이지 않았다.

다시 한번 마력으로 라스를 제외한 모두를 저 멀리 날리고

라스도 거리를 벌리는 정도로 밀어낸다.


“이게 날 지키는 거냐?”


쓰라림을 참고 도발해본다.


“너는······.”

“형님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구하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형님이 사람들을 해친다면, 전 형님을 막아설 겁니다.”


옷자락으로 칼날을 닦는다.


“형님. 전 가주가 되겠습니다.”


서로 숨을 헐떡이는 사이에 라스가 말한다.


“카누악에서 스승님이 서신을 보내셨습니다. 가주는 자기 가문 사람을 지켜야 하고 영주는 자기 영지에 있는 사람을 지켜야 한다고.”


갑자기 몰려오는, 처음 느끼는 감정을 최대한 무시하고 라스의 말을 듣는다.


“그러니까 전 제 사람을 지키기 위해서 형님을 막겠습니다.”

“난 네 사람이 아니더냐?”


품에서 미리 적어둔 글을 꺼낸다.

대답에 따라 라스에게 쪽지를 줄지 말지 정할 것이다.


“모두를 지킬 수 있다면, 차라리 형을 저버리겠습니다.”

“······그래.”


이 자리에서 제 형을 죽여서라도 사람들을 지키겠다는 대답.

그 말에 분노하여 달려들 줄 알았지만,


“정답이다.”


위즈는 그 말에 안심하고 환하게 웃는다.

미쳤다고 생각한 건지 자세를 잡고 위즈를 노려보나,


“넌 가주가 될 자격이 있어.”

“예?”


위즈가 살짝은 허탈하다는 듯 한숨을 내쉰다.


“때론 손에 쥔 걸 놓을 때도 있어야지. 그래도 방금 그 말, 조금 더 빨리하면 어디가 덧나냐?”

“형님?”


칼이 무섭지 않다는 듯 라스 바로 앞에 가서 글을,

그리고 주크가 떨어뜨렸던 나무판을 직접 손에 쥐여 준다.

라스가 혼란스럽다는 표정을 짓는다.


“이게 무슨······.”

“곧 병사들이 여기로 더 몰려들 테니 빠르게 얘기할게.”


라스의 양어깨를 잡고 진지한 표정으로 말한다.


“일단 나무판은 주크가 떨어뜨린 거야. 아마 가주의 반역을 증명할 증거가 되겠지. 그리고 글에는 내가 카누악을 떠났을 때부터 어제까지 있었던 모든 일을 적어뒀어.”

“그럼 부모님을 찾으러 간 그 일도?”


그 말에 급히 열어보려고 하지만, 위즈가 손을 잡아 막는다.


“일단 듣고 나중에 봐. 무엇보다 절대로, 절대로 날 옹호하지 마라. 원로들이 무슨 짓을 했든 난 살인범이야. 나를 밟고서라도 어떻게든 가주가 돼라.”

“밟다니, 무슨 말입니까?”

“방금 네가 한 말을 기억해. 그 말이 너와 나를, 그리고 이 가문을 지킬 테니까.”


라스의 오른 손목을 붙잡고 잠시 주위에 귀를 기울인다.

멀리서 병사들이 다가오는 소리가 들린다.


“지금이다. 찔러!”


위즈의 의중을 제대로 파악한 모양인지,

위즈의 신호에 맞춰 라스가 온 힘을 다해 위즈를 찌른다.

칼이 위즈 옆구리를 살짝 베고 그대로 옷을 찢는다.


“저기 있다! 저기 놈이 찔렸어!”


병사들이 다른 병사들에게 소리친다.


“뭐해. 빨리 너도 뭐라고 외쳐봐.”

“네? 아, 그,”


라스가 숨을 깊게 들이마시고 외친다.


“여기 살인범을 잡았다! 빨리 와서 체포해!”

“여기로 모여라!”

“놈이 여기에 있다!”


병사들이 더 모여들어 라스가 위즈를 찌르는 모습을 보자

위즈는 뒤로 물러나며 살짝 베인 상처에서 난 피를 옷에 문지른다.


“어디로 가십니까.”


다른 병사들에게 들리지 않을 정도로 작게 묻는다.


“글쎄. 우선 숲에 숨어야지.”

“유르페르의 숲 말입니까?”

“어.”


한숨을 쉬고 다시 동생 얼굴을 본다.


“뒷일은 맡길게.”


검은 망토가 피에 물들듯 불꽃이 밤하늘을 핥고,

검은 돌에 흰 돌을 던져 깨뜨리듯 비명이 고요를 더럽힌다.

그리고 그 광경을 뒤로 한 채 위즈는 완전히 엘렌 성을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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