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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공의노래 님의 서재입니다.

사슬의 학살자와 오두막의 손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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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천공의노래
작품등록일 :
2021.04.09 16:55
최근연재일 :
2021.08.02 07:50
연재수 :
118 회
조회수 :
8,045
추천수 :
231
글자수 :
613,867

작성
21.06.06 10:20
조회
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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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글자
11쪽

60화

+와 +사이의 글은 외국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DUMMY

“위자드리아누스 테 살베니움. 테 살베니움 본가를 불태우고 제 친족들을, 특히 원로들을 죽인 학살자.”


테르막시아가 위즈의 정체를 폭로하지만,

리나는 알고 있었다는 듯 고개를 돌리고 위즈는 아무 말 없이 노려보기만 한다.


“어? 화 안 내? 요정님도 안 놀라고?”

“어차피 리나도 다 알고 있었다고 그랬잖아.”

“학살자라는 말도 알고 있었어?”


테르막시아의 말에 위즈가 고개를 돌리자 리나는 위즈를 흘끔 쳐다본다.

그러고는 다시 시선을 테르막시아로 돌리며 고개를 끄덕인다.


“기절했다가 눈을 떠서 주위에 있는 시체를 봤을 때부터 마음의 준비는 끝났어요.”

“뭐, 리나가 그렇지 않았다고 해도 기절시킬 때부터 이미 드러낼 각오는 했어. 손에서 하나를 놓아야 한다면 리나의 목숨을 붙들 테니까.”


싸움이 금방 끝나 리나가 전장 밖에서 깬다면

어떻게든 얼버무려 숨길 수 있었겠지만, 그 방법은 영 내키지 않는다.

이런 광경을 어떻게 잊을 수 있을까.

그리고 리나는 그 와중에도 위즈를 위해서 믿는 척을 해줬겠지만.


“물론 이렇게 걸렸으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식으로 지낼 수는 없겠지?”


리나를 돌아보지 않고 말한다.


“슬슬 크레센타로 돌려보내야겠어.”

“위, 위즈!”


크레센타로 돌아간다는 말에 리나가 당황한다.

만약 이 상황에 리나가 크레센타로 돌아간다면

혼자 남은 위즈는 잘 지낼 수 있을까?

리나한테 이런 장면을 보여줬다는 죄책감에 최악의 선택을 하지 않을까?


“나, 나는 여기에 계속 있어도······.”

“맞아. 어떻게 돌려보낼 건데?”


위즈를 전담하던 병력이 몰살당하긴 했지만, 그래도 아직 숲에 남은 인원은 많다.

대기조에 들어가지 않았을 뿐, 위즈를 상대할 만한 이들도 있고.


“그리고 숲을 나간다고 해도, 엘렌 지역 밖으로 나가지 못할 거야. 엘렌 지역에 있는 모든 성이 우리의 손에 떨어졌으니까.”

“‘모든’이라니. 정작 엘렌 성은 함락시키지 못했잖아.”

“곧 함락시킬 거야. 위대하신 그분의 군대니까.”

“프레그가 지휘하는 군대겠지. 너희 군단장이 프레그인데 뭘 바래? 기록 보니 가관이더구먼.”


그 말에 테르막시아의 말문이 막힌다.


“그리고 너희 모두와 싸우는 게 아니라 리나를 엘렌 지역 밖으로 데려가는 것 정도라면 할 수 있어.”

“어떻게 데리고 나가게? 엘렌 지역만 해도 넓은데?”


당장 성에서 숲 입구까지도 안 쉬고 뛰어서 하루는 족히 걸린다.

말을 타면 한나절까지도 줄일 수 있을지 모르지만.


“엘렌 지역 한가운데나 마찬가지인 이곳에서 어떻게 나가려고? 숲 밖에서 마주치는 우리 군과만 싸운다고 해도 엄청나게 많을 텐데?”

“괜찮아. 적어도 나는 너희처럼 굶으면서 싸우지는 않을 테니까.”


식량이 부족하다고는 해도, 리나를 밖으로 데려갈 때 필요한 양은 있다.

고기가 부족해서 문제지.


어쨌든, 리나를 다른 지역으로 데려가면서 위즈도 같이 나가면

도움을 받을 수 있으리라.


엘렌을 공격하려고 주둔하는 부대와 만나서 도움을 받고,

그 지역 중심 성에 가서 도움을 받고,

그 지역에 있는 테 살베니움 분가의 도움을 받고.


‘다른 지역에 사는 우리 집안사람들은 원로들을 싫어했다니까.’


가장 큰 문제인, 위즈 본인이 숲 밖으로 나갈 수 없다는 건 생각하지 않는다.


“그나저나 계속 이렇게 있을 거야?”


테르막시아가 어떻게든 사슬에서 풀려나려고 몸을 버둥거려 본다.


“너한테도 안 좋지 않아? 이러다가 우리 군이 몰려올 텐데.”

“그러게. 적이 이곳으로 몰려들면 곤란하지.”


위즈가 생각을 멈춘다.


“더는 사람을 죽이고 싶지 않으니까. 아무리 적이라고 해도.”

“정말로 진다는 생각은 안 하는구나.”

“당연하지.”


잠깐 쉬었다가 다시 말한다.


“하나만 물어볼게, 아줌마.”

“뭔데?”

“난 학생 때 아줌마가 쓴 논문을 나름대로 감명 깊게 읽었어.”

“그래? 그거 고맙네.”

“그런데 내가 학생이던 시절에 아줌마는 더는 논문을 쓰지 않았지. 즉, 내가 숲 바깥에서 살며 바깥소식을 듣고 있던 시절에 말이야.”


논문을 쓰던 ‘테르막시아’라는 인물이

갑자기 논문을 쓰지 않기 시작해서 이리저리 알아봤다.

분명 논문의 저자인 테르막시아는 와이바누스 출신이고,

크레센타가 바로 보이는 곳에 살았다.


“하지만 당신에 관한 이야기를 찾으면서, 단 한 번도 크레센타가 와이바누스를 공격했다는 말은 없었어.”

“전부 통제된 거야. 동맹 유지를 위해 언론도 말을 못 한 거지.”

“하지만 그걸 와이바누스 출신 학생과 크레센타 출신 학생도 모른다는 게 말이 돼?”


‘테르막시아’가 논문 쓰기를 그친 뒤로도

와이바누스와 크레센타 출신 유학생들은 방학 때마다 조국에 갔다 왔지만,

누구도 두 나라 사이에 전투가 있었다는 얘기는 하지 않았다.

테르막시아의 거주지 근처에 살던 애들도.


“꽤 예전이고 시간이 가면서 나도 점차 잊어버렸기에 헷갈렸지만, 이상한 점은 한두 가지가 아니야.”

“또 뭐가 있는데?”

“와이바누스 서부도 호라 북부만큼 아사르군더니움의 피해를 많이 본 곳이라고 들었어.”


그런 와이바누스 서쪽 지방 사람이 아무리 가족을 잃었다고 해도,

계속 괴롭히던 아사르군더니움에 들어가려고 할까?


“이해가 아주 안 되는 건 아니지만, 이상하기는 해.”

“저, 위즈. 그러면 뭐야? 저기 있는 저 사람은 가짜라는 거야?”


위즈의 말을 듣고 있던 리나가 묻는다.

테르막시아와 계속 눈을 마주 보던 위즈가 조심히 입을 연다.


“당신은 누구야?”


테르막시아가 씩 웃는다.


“글쎄?”

“테르막시아가 아니라는 걸로 이해하면 될까?”

“그건 네 맘이지.”


위즈의 얼굴을 본 테르막시아가 이어 말한다.


“왜? 네가 존경하는 학자의 명성을 내가 멋대로 뺏은 것 같아?”

“그런 건 아니야.”

“그런 것치고는 화가 머리끝까지 난 것 같은데.”


사슬이 새로 날아와 테르막시아의 목을 감는다.

위즈를 비웃던 테르막시아는 기침을 하며 묶인 팔에 힘을 준다.


“힘쓰지 말고 가만히 있어. 목 졸라 죽일 생각은 없으니까.”

“차라리, 빨리, 죽여.”

“그래. 슬슬 돌아가자.”


어디선가 어렴풋이 소리가 들려온다.


“어? 위즈, 지금 저 소리, 적이 오고 있는 거 아니야?”

“그럴 거야. 시간이 꽤 오래 걸렸고, 아무도 돌아오지 않았으니까 직접 수색하겠지.”

“아무도······.”


아무도 돌아가지 않았다.

모두, 모두를 죽였다.

말을 이해한 리나가 조용히 고개를 숙인다.


“만나서, 반가웠, 습니다, 요정님.”


테르막시아가 최대한 아래를 보며 표정이 어두운 리나에게 말한다.


“네?”

“아, 역시 고귀한 분은 이렇게 말하면 제대로 대답도 안 해주는 건가?”

“시끄러워.”


테르막시아가 비꼬자 사슬로 목을 조금 더 조인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리나는 테르막시아의 입을 보고 있었다.


“······.”


다행히 목소리는 나오지 않았다.

만약 위즈가 목을 조이지 않았다면.

테르막시아가 제대로 말했다면.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마.”


테르막시아의 얼굴이 정말로 파랗게 변하자

위즈가 사슬을 살짝 풀어 숨은 쉬게 하면서 말한다.


“아무튼, 여기서 작별이야, 아줌마.”


사지가 묶인 테르막시아는 대답하지 않는다.

위즈 말이 무슨 의미인지 알면서도 의연하게 위즈를 내려다본다.


“당신이 아까 말했듯 이겨놓고 할 소리는 아니지만, 이런 일을 할 때면 언제나 이번이 마지막이면 좋겠다고 생각해.”


혼잣말하듯이 중얼거리고는 몸을 돌려 리나에게 다가간다.


“가자, 리나.”

“어, 어?”


위즈가 여전히 무섭지만,

그래도 같은 편이라 다행이라고 생각하면서 몸은 피하지 않는다.

리나의 어깨에 팔을 두르고 다시 오두막을 향해 간다.


“저, 위즈?”

“어?”

“저기 저, 테르막시아라는 사람은······.”


그렇게 말하면서 뒤를 보려고 하는데,

위즈가 손으로 리나의 머리를 잡고 돌리지 못하게 막는다.


“어, 어? 위즈?”

“리나.”


위즈가 리나의 귀에 대고 조용히 말한다.


“듣지 마.”

“어?”


위즈가 손바닥으로 리나 귀를 막는다.


“듣지 마. 아무것도.”

“듣지 말라니? 뭘······.”

“으, 으,”


뒤에서 목이 졸린 소리가 나더니 이어 전혀 생각지도 못한 소리가 난다.

사람 몸에서 날 수가 없는, 뭔가 뜯기는 소리.


“듣지 마. 절대 듣지 마. 지금은 아무것도 듣지 마.”


리나의 반응을 눈치챈 위즈가 리나의 귀를 좀 더 세게 막는다.

하지만 아플까 걱정해서 그런 건지 끝까지 아플 정도로 막지는 않았다.

지금 떨리는 건 위즈의 팔일까, 리나의 몸일까, 아니면 둘 다일까.


“왜, 왜?”


너무 떨려서 숨도 쉬기 힘들다.


“주, 죽인 거야?”

“응.”

“사, 살리려는, 거, 거, 아, 아니, 었어?”


위즈가 몸을 숙였는지 딱딱한 게 리나의 뒤통수에 닿는다.

귀에 대고 속삭이는데 목소리가 떨린다.


“살려둘 수 없어. 너무 많은 걸 알고 있으니까.”


- 원래 마법사들은 자기 속성을 잘 안 알려줘.


위즈는 원래 리나에게도 속성을 가르쳐주지 않으려고 했다.

만에 하나 리나가 적에게 잡힌다면 나중에 싸울 때 불리하기도 하고,

실제로 그렇게 되었으니까.


“걱정하지 마. 너는 죽이지 않을 거야. 아니, 다른 사람을 죽이는 한이 있어도 지킬 거야.”


리나에게는 직접 알려준 거지만, 테르막시아는 싸우면서 스스로 알아냈다.

그래서 더 위험했다.

살려두면 엘렌 성에도, 성에 있는 동생에게도 위협이 될 인물이다.


“그, 그래도, 그렇게, 잔인하게,”

“잔인? 무슨 생각하는 거야?”

“어, 어?”


혹여나 ‘잘못 생각한 건가’하고 이유 모를 안도감이 느껴졌지만,


“이건 기본이야. 이렇게 해야 놈들에게 경고가 되잖아.”

“겨, 경고?”

“응.”


한 놈도 남기지 않고 모두 없애버리겠다는 경고.

리나를 위협한다면 산산조각 내버리겠다는 경고.

위즈 혼자서도 모두를 상대할 수 있다는 경고.


“이렇게 경고라도 해 주지 않으면 해충들은 계속 달려들 테니까.”


물론 놈들은 계속 위즈와 리나를 괴롭힐 테고,

위즈는 계속 놈들을 죽이러 돌아다니리라.


“자, 계속 걸어가자.”


위즈가 몸을 살짝 숙인 채로 리나를 밀고 간다.


“지금 이건 그냥 악몽이라고 생각해. 전부 자고 일어나면 잊어버릴 일들이니까.”


주위의 송장들도 보지 않도록 양손 검지로 눈꺼풀을 살짝 누른다.

잔뜩 긴장한 채로 천천히 걷는다.


“일부러 좋은 생각만 해.”


안 그러면 공황에 빠질지도 모른다.

위즈가 그런 것처럼.


“너를 위해 웃던 사람들을 생각해.”


기계적이었지만, 그래도 웃어줬던 크레센타 사람들.

유난히 엄격했던 가족들.

조그마한 생채기 하나만 나도 호들갑을 떨던 위즈.


- 역시, 난 당신 같은 사람이 제일 싫어.


갑자기 테르막시아가 떠오른다.

테르막시아의 저주인 걸까, 그대로 죽은 이의 팔을 밟고 미끄러진다.


“어?”


위즈가 반응하기도 전에 리나는 자리에 주저앉고,


“자, 잠깐만! 눈 감아!”


저 뒤쪽에서 눈을 부릅뜬 채 이쪽을 노려보는 테르막시아의 머리와 눈이 마주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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