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천공의노래 님의 서재입니다.

사슬의 학살자와 오두막의 손님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완결

천공의노래
작품등록일 :
2021.04.09 16:55
최근연재일 :
2021.08.02 07:50
연재수 :
118 회
조회수 :
8,046
추천수 :
231
글자수 :
613,867

작성
21.06.05 12:15
조회
40
추천
1
글자
11쪽

59화

+와 +사이의 글은 외국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DUMMY

“헉!”


리나가 숨을 급히 들이마시며 눈을 뜬다.


“어, 어?”


리나가 앉은 풀밭 주위에 숨이 끊어진 적병들이 널브러져 있다.

온 사방의 나무가 넘어져 있는데 그 아래에도 적병이 깔렸고,

파헤쳐진 풀 대신 잘려나간 팔다리가 땅에 박혀있다.

다시 기절할 뻔했지만, 어떻게든 정신을 붙잡는다.


‘기절?’


그러고 보니, 아까 위즈가 끌어안은 뒤부터 기억이 없다.

뭐라고 얘기한 것 같기는 한데.


쿵쾅대는 심장 소리에서 주의를 돌려 주위에서 나는 소리에 집중한다.

조그마한 소리도, 희미하게 들릴 법도 한 숨소리도 들리지 않는 걸 봐선

아무래도 다 죽은 모양이다.


‘전투는? 전투는 끝났나?’


아니면 전장을 옮긴 걸까?

위즈 성격상 리나를 떨어뜨리고 다른 곳에 가서 싸울 것 같지는 않지만,

어쩌면 리나를 다치게 하기 싫어서 다른 곳으로 움직였을지도 모른다.


“위즈?”


조심히 위즈의 이름을 불러본다.

손가락을 움직이고, 팔과 다리를 움직인다.

기대고 있던, 허리가 꺾인 나무를 짚고 일어난다.


“위즈? 거기에 있어?”


절그럭.

대답하듯 한쪽에서 쇠사슬 소리가 들려온다.

의미 없는 행동일지도 모르지만, 손을 들고 마법을 쓸 준비를 하며 앞으로 간다.

한 번 마법이 안 나왔다고 해서 계속 못 쓰는 건 아닐 테니까.


위즈를 찾으러 갈 때처럼 썩은 내가 나지는 않아도 역겨운 건 참을 수가 없다.

어디에도 멀쩡히 누워있는 시체가 없다.


- 싸우는 게 재밌을 거 같아?


책에서 주인공이 악당들을 무찌르는 장면을 볼 때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던 모습.

전투 장면을 읽을 때마다 주인공이 멋있게 칼을 휘두르는 상상만 했지,

악당이 쓰러지는 모습은 떠올린 적 없었다.


- 솔직히 기대도 되고?

- 응. 마법으로 싸우는 건 본 적 없으니까.


위즈가 싸우는 걸 상상할 때도 적을 물리치는 위즈만 생각했고

위즈에게 쓰러지는 적은 생각하지 않았다.


- 위즈 그때 심하게 뒤척였어. ‘안 돼’라고 말하면서.


몸을 살짝 떤다.

학살을 저지르며 이런 걸 봤고 리나를 지키려고 숲에서도 같은 짓을 벌였다.

죄책감 같은 걸 느끼지 않는 이라면 모를까,

이런 광경을 보고 위즈처럼 악몽을 꾸며 발작을 일으키는 게 당연하다 싶다.


‘거기에 위즈는 직접 저질렀으니.’


사슬 소리가 점점 가까워진다.

처음 위즈가 적을 죽인 걸 봤을 때는 공포 때문에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

그다음에 위즈가 싸우는 걸 봤을 때는 전혀 다른 사람 같아 무서웠다.


“저기 봐. 요정이 직접 행차하시네.”


사슬에 묶여 나무에 걸린 테르막시아의 한쪽 팔은 이미 검게 타서 흔적만 남아있다.

테르막시아의 말에 고개를 돌린 위즈의 피로에 전 눈이

마치 오면서 봤던 시체의 눈 같다.


“리나.”


그래서 이번에도 무섭다.



******



“리나.”


잔뜩 피로에 전 목소리로, 이상한 자세를 하며 다가오는 리나를 부른다.


“자세 안 잡아도 돼. 내가 다, 다······.”

“다 죽였지. 내 동료들. 전부 죽였어.”


위즈가 차마 말을 맺지 못하자 테르막시아가 뺏어서 대신 말한다.

그러자 팔다리가 각각 다른 사슬로 묶인 테르막시아가 고통에 찬 비명을 지른다.


“걱정 안 해도 돼. 너를 위협할 사람은 당분간 없으니까.”


그렇게 말하며 그만하라는 듯이 테르막시아 쪽을 향해 손을 내젓자

고문이 끝난 건지 테르막시아가 축 늘어진다.


“이긴, 거야? 위즈가 이겼어?”


테르막시아를 흘끗 보고 조심히 말한다.


“응. 이겼어.”

“그래, 이겼구나.”


리나가 살짝 미소 지으며 그렇게 말한다.

하지만 기뻐서 웃는 게 아니다.

그저 크레센타에서 다른 사람을 대할 때처럼, 형식적으로 웃는 것일 뿐.


“이겼어······.”


이겼다.

책에 나온 주인공처럼, 위즈가 수많은 적을 무찌르고 이겼다.

그런데 왜 승리의 희열이 느껴지지 않을까.


“위즈 말대로, 싸우는 건 즐겁지 않구나.”


나지막이 그렇게 말한다.

살아남았는데, 아사르군더니움에게 끌려가지 않아도 되는데.

그 안도감 너머에 살아남았다는 죄책감이 살짝 보인다.


“맞아.”


리나의 말을 듣고 위즈가 몸을 다시 돌리며 말한다.


“전쟁은 낭만적이지 않아.”


책 속의 주인공이 칼끝을 빛내며 적을 벨 때는 언제나 그 자리에 영광이 남지만,

현실에서는 꺼져가는 생명만이 남는다.


“미안한데, 다 이겨놓고 그런 말 하지 말아줘.”


테르막시아가 만신창이가 된 몸으로 말한다.


“그러면 내가 뭐가······.”


말을 끝맺지 못하고 비명을 지른다.


“졌으면 가만히 있어.”


마법을 너무 많이 쓰고 피도 너무 많이 뒤집어쓴 위즈가 피곤한 목소리로 말한다.

다시 고문이 끝나자 테르막시아가 울부짖는다.


“차라리 빨리 죽이지, 그래? 어차피 살아나도 마법도 못 쓸 테고, 이대로 돌아가 봤자 할 수 있는 것도 없는데!”


테르막시아가 위즈를 죽이려는 그 순간에,


- 궤멸.


위즈는 궤멸 마법을 쓰려고 모아뒀던 마력을 그대로 테르막시아에게 집어넣었다.

그리고 자신의 한계치를 넘는 마력을 한 번에 주입당한 테르막시아는

과부하가 와서 마력 그릇 자체가 타버렸다.

시조 때부터 후계자에게 전해 내려오는, 유서 깊은 방법.


- 마력이 몸에 제대로 흡수되기 전에 마법으로 바꾸면, 즉 마법으로 공격하면 된다.

- 그게 안 통하더라도 마력을 한계 이상으로 흡수시켜버리면 알아서 몸이 붕괴한다.


두 번째 방법을 글자 그대로 저질렀다.

마력을 흡수하던 몸이 이제 마력 자체를 담을 수 없는 몸으로 되어버린 것이다.


“진짜, 마법사의 인생을 망쳐버리는 마법이라니. 이건 너무하잖아.”

“원래 그런 마법 아니야. 이 방법으로 끝낸 게 차라리 다행일걸.”


애초에 그렇게 마력을 모을 필요도 없었다.

마력 효율만 따지면 절멸이나 박멸, 그 외의 마법들보다 더 마력이 적게 들 정도니.

그저 그게 테르막시아를 상대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싶어 변형시켜봤을 뿐.


- 이 마법은 네 무기가 될 거야.


‘뭐, 어때. 이겼으니까.’


딱히 상관 없는 부분이겠지만, 어쨌든 그 자가 말한 대로 하기에는 영 꺼림직 하다.


“왜 안 죽이는 거야? 요정이 옆에 있어서?”

“어. 그대로 두고 가도 내가 멀어지면 사슬이 풀려 알아서 떨어져 죽을 테니까.”

“그래도 괜찮을까?”


때마침 바람이 살짝 분다.

테르막시아가 바람을 맞으며 한숨을 내쉬고 말한다.


“네가 간 뒤에 우리 편이 온다는 생각 안 해?”

“내가 마력 뿌리는 범위 밖에서는 그 사슬이 유지되지 않고, 너희 편은 나한테 걸리지 않으려 내 마력 범위 안으로 들어오지 않을 텐데, 살 수 있을 것 같아?”

“당연하지. 내가 네 마력 범위 안에서도 들키지 않았던 거, 기억 안 나?”


위즈가 뿌린 마력의 범위 밖에서 기다리다 아슬아슬하게 테르막시아를 받아내면 살 수 있을지도 모른다.

마력을 흡수할 수 있는 만큼, 공기 중에 짙게 흩어진 마력에도 민감하니까.


“확실히 그러네.”

“그러니까 차라리 죽이는 게 나을걸? 내가 살면 네게 불리할 뿐이잖아.”


테르막시아는 위즈에 대해 많은 걸 알고 있다.


“아줌마. 내 속성이 뭔지 알아?”

“속성이야 뭐, 대충은 눈치챘어. 문제는 전혀 말이 안 된다는 거지만, 세상은 넓고 듣도 보도 못한 속성도 있을법하지.”


거기에 이것 말고는 설명이 안 된다.


“소멸. 다시 말해서, 없애는 것.”


피부에 손이 닿은 이는 피부가 부식되듯 근육이 드러났다.

사슬에 공격받은 팔은 치유력이 없어져 낫지 않는다.

번개를 바로 위에 떨어뜨려도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번개가 사라진다.


“끝에 창이 달린 사슬을 주로 쓰기에 헷갈렸는데, 그것만 제외하면 딱 보이더라.”

“사슬이나 창은 그냥 내 취향이니까.”


위즈가 손뼉을 세 번 친다.

맘껏 손뼉 쳐주고 싶지만, 너무 힘들다.


“정답이야. 내 속성은 소멸.”


몸을 틀어 리나를 보면서 말한다.


“어둠의 성질 중 고요함. 아무것도 없을 때 세상은 고요해져. 그렇기에 내 마법은 모든 걸 없애는 소멸이야.”

“없어지는 것······.”


전에 위즈가 그릇에 담긴 물에 마력을 뿌리고 조종하려고 하자

물이 처음부터 그랬다는 듯이 없어진 적이 있었다.


- 특이체질이라 예시를 못 보여 준다고.


“그럼 그때 말한 특이체질이라는 게 위즈의 속성을 말한 거였어?”

“응. 내가 쓰는 모든 마법은 이 속성이 스며들어있거든. 마력에도 어느 정도 있고. 그래서 어떤 마법을 쓰든 내 속성이 조금은 묻어나와.”


물을 움직이는 정도의 작은 마법은 위즈의 속성을 가릴 수 없을 정도다.


“하지만 그런 속성은 들은 적 없어. 대체 어떻게 한 건데?”


테르막시아가 공중에서 외치자 위즈가 뒷짐을 지고 리나에게 말한다.


“내가 어떻게 이 속성을 정했다고 했지?”

“어? 그, 어둠이 직접 정해줬다고 하지 않았어?”


위즈가 고개를 끄덕이며 테르막시아를 올려다본다.

테르막시아는 위즈를 쳐다보다가 그게 무슨 소리냐는 표정으로


“그게 무슨 소리야?”


라고 묻는다.


“말 그대로야. 어둠에게, 헤즈라에게 직접 가르침을 받았었어.”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 그런 일이 일어날 리 없잖아. 안 그래, 요정님?”


테르막시아가 리나를 보며 말한다.

사실 리나도 전에 들었을 때는 위즈가 헛것을 봤거나

다른 누군가가 자기가 어둠이라고 거짓말하며

위즈를 가르친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했었다.


하지만 테르막시아도 위즈의 속성에 대해 처음 들어봤다고 했고, 거기다


- 안녕, 언니. 위즈는 안에 없지?

- 그대의 선한 마음이 평생토록 보상받기를.


리나도 그런 신기한 경험을 해 봤기에 고개를 젓는다.


“난 위즈를 믿어.”

“어?”

“위즈는 나한테 거짓말 못 하니까.”


위즈가 살짝 놀랐다가 이내 입꼬리를 아주 살짝 올린다.


“딱 봐도 거짓말인 게 뻔한데 그걸 믿다니.”


테르막시아가 지쳤는지 바람 빠지는 목소리로 말한다.


“순수한 거야, 아니면 거짓말을 하고 있으니까 똑같이 거짓말을 믿어주기로 한 거야?”

“어? 거짓말?”


리나를 엄지로 가리키며 말한다.


“리나가 거짓말을 했다고? 나한테?”

“아, 거짓말과는 거리가 조금 있나?”


리나와 눈이 마주친 테르막시아가 씩 웃는다.


“정체를 숨긴 거니까.”


흡, 하고 숨을 들이마신다.

그러고 보니 테르막시아는 리나의 정체를 알고 있다.

위즈에게 들키고 싶지 않았던, 크레센타에서 살던 리나의 모습.


“아니, 그건 아니지.”


리나가 긴장한 걸 보지 못한 위즈가 손을 저으며 말한다.


“애초에 나도 리나한테 내 정체를 숨겼는걸.”


리나가 정체를 모르길 바라서 위즈도 정체를 숨겼다.

궁금하지 않았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지만,

그 호기심을 참을 정도로 리나에게 본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다.


“뭐, 이런 것도 그렇고 처음 만난 날 반응도 그렇고, 진즉 눈치챘겠지만.”

“그래. 아까 얘기해보니 네 정체를 알고 있더라.”


침을 뱉듯 말한다.


“위자드리아누스 테 살베니움. 테 살베니움 본가를 불태우고 제 친족들을, 특히 원로들을 죽인 학살자.”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사슬의 학살자와 오두막의 손님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88 87화 21.07.03 39 2 11쪽
87 86화 21.07.02 32 2 12쪽
86 85화 21.07.01 36 2 11쪽
85 84화 21.06.30 39 2 12쪽
84 83화 21.06.29 37 2 11쪽
83 82화 21.06.28 43 2 12쪽
82 81화 21.06.27 34 2 12쪽
81 80화 21.06.26 38 2 11쪽
80 79화 21.06.25 41 2 12쪽
79 78화 21.06.24 38 2 12쪽
78 77화 21.06.23 34 2 12쪽
77 76화 21.06.22 36 2 12쪽
76 75화 21.06.21 36 2 11쪽
75 74화 21.06.20 36 2 11쪽
74 73화 21.06.19 33 2 11쪽
73 72화 21.06.18 32 2 12쪽
72 71화 21.06.17 33 2 11쪽
71 70화 21.06.16 37 1 11쪽
70 69화 21.06.15 37 1 11쪽
69 68화 21.06.14 36 2 11쪽
68 67화 21.06.13 36 2 11쪽
67 66화 21.06.12 38 2 11쪽
66 65화 21.06.11 39 2 11쪽
65 64화 21.06.10 37 2 11쪽
64 63화 21.06.09 41 2 12쪽
63 62화 21.06.08 53 2 11쪽
62 61화 21.06.07 38 1 11쪽
61 60화 21.06.06 55 1 11쪽
» 59화 21.06.05 41 1 11쪽
59 58화 21.06.04 37 1 11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