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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공의노래 님의 서재입니다.

사슬의 학살자와 오두막의 손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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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천공의노래
작품등록일 :
2021.04.09 16:55
최근연재일 :
2021.08.02 07:50
연재수 :
118 회
조회수 :
8,026
추천수 :
231
글자수 :
613,867

작성
21.06.11 07:50
조회
38
추천
2
글자
11쪽

65화

+와 +사이의 글은 외국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DUMMY

“만약 지금의 나라와 가문, 그리고 가문과 가주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무엇을 선택하겠습니까?”

“······네?”

“갑자기 무슨, 자다가 봉창 두들기는 소리를 하느냐?”


멍하니 셋이서 무르니수스를 바라보는데 낯빛이 변하지 않는다.


“중요한 일이라 그렇습니다. 무엇을 선택하시겠습니까?”

“저라면 나라를, 그리고 가문을 선택하겠습니다.”


라스가 먼저 답하자 위즈도 고개를 끄덕인다.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가문이랑 그 가주를 각각 선택하기에는 꼬라지가 영······. 그런데 왜 그러십니까?”


둘의 대답에 무르니수스가 안심하며 숨을 내쉬고는,

주위를 조금 살폈다 조용히 말한다.


“황제 폐하께서 저들을, 그러니까 테 살베니움 가문을 주시하고 계셨다는 건 알고 있었겠지요?”

“예. 어느 정도는······.”

“그러면 왜 주시한다고 생각합니까?”

“귀족의 본분을 잊어서가 아닐까 싶습니다.”


고개를 젓는다.


“‘아사르군더니움’이라는 단체를 압니까?”

“네. 학교 다닐 때 들었던 이름입니다. 5대 황제 말에 호라를 공격하려 했다고······.”

“그리고 이게 아사르군더니움 소속 인원들이 갖고 다닌다는 징표입니다.”


무르니수스가 고개를 끄덕이며

품에서 이상한 문양이 새겨진 나무판 하나를 꺼낸다.


물론 중요한 이야기는 맞지만,


“그런데 왜 이걸 제게······.”

“테 살베니움의 가주와 원로들이 형님분과 라스를 본가로 데려간 이유를 알고 계십니까?”

“제가 가진 성물 때문 아닙니까? 나중에 제가 죽어 성물을 물려줄 걸 대비해서······.”

“그럼 왜 성물을 노린다고 생각하십니까?”



이유야 굳이 찾지 않아도 뻔하지 않을까.

성물을 물려받았다는, 후계자라는 그 상징은 가문 내에서 아주 크니까.

그런데 무르니수스가 고개를 젓는다.


“물론 그 상징 역시 크겠지만, 아시다시피 형님분께서 가진 그 성물은 먼 옛날 에리하까지 땅에 떨어뜨릴 정도로 강합니다. 그리고 당연히,”


마음만 먹으면 한 지역 안의 모든 성을 함락시키고도 남는다.


“······그러면 상징보다 힘을 노린다는 겁니까?”

“하지만 굳이 그럴 필요 있습니까? 이미 테 살베니움 가문은 대귀족입니다. 거기서 힘을 얻어봤자······.”


말하면서 그게 뭘 의미하는지 안 라스가 점점 얼굴을 굳힌다.


“라스. 아니, 여러분. 지금 테 살베니움은 아사르군더니움과 동맹을 맺고 있습니다.”

“정말 반역이라도 저지른다는 겁니까?”

“믿을 수 있는 이야기가 맞습니까?”

“황제 폐하께서 믿을 만한 이들을 모아 얘기하셨습니다. 이후 공론화시키시겠지만, 호응하는 이들도 필요하니 말이지요.”

“증거는 있습니까?”

“폐하께서 아사르군더니움에 계실 적 문서를 직접 보셨다고 하셨네. ‘테 살베니움’이라는 이름을. 물론 가문 전체가 아니라 일부 인원이기는 하지만, 큰 문제라는 사실은 변함없지.”


라스가 하얗게 질린 얼굴로 묻는다.


“정말로 저희 가문이 반역을 일으키려 한다는 말입니까?”

“그래. 물론 군사를 일으키지 않을 수도 있지만, 아사르군더니움과 우호적인 관계라는 것 자체가 반역행위니 말이야.”

“그럼 왜 처벌하지 않는 겁니까? 폐하께서 젊으실 적에 봤으니 제위에 오르시자마자 행동에 옮기셨다면 저희는······.”

“아무리 폐하의 말씀이라 해도 개인의 기억만을 근거로 처벌할 수는 없으니까. 맞느냐?”

“맞습니다, 아버님.”

“미쳐가는구나!”


노인이 화내며 탁자를 주먹으로 내리친다.


“그런데 왜 그걸 저희에게 알려주십니까?”


무르니수스가 손을 모으며 말한다.


“일단 앞서 얘기했듯 형님분과 라스가 본가로 끌려간 게 가주와 아사르군더니움 간의 우호적인 관계에서 비롯되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부모와 떨어진 게 단순히 가주의 아집만은 아닌 이야기.

이 가족은 더 큰 사건의 피해자일지도 모른다. 아니, 그럴 가능성이 크다.


“또한, 테 살베니움은 건국 이전부터 많은 공을 쌓았던 가문입니다. 폐하께서는 그저 귀족 중 하나로만 여기시는 모양이지만, 호라 사람들은 ‘테 살베니움’이라는 이름이 가진 의미를 알고 있지요.”


시간의 성물을 가졌던 이들의 후예인 만큼,

이들 가문은 호라의 황제와 승상 가문처럼

시간이 호라를 지켜보고 있다는 증거다.


“가문을 되살려달라는 게냐?”


노인이 퉁명스레 말하자 무르니수스가 고개를 끄덕인다.


“네. 폐하께서 정말로 테 살베니움에 멸문형을 내리기 전에 어떻게든 옛 모습으로 바꿔주십시오.”

“저희에게 가문의 실세가 되어라, 이 말씀이신 거지요?”

“바로 그겁니다.”


라스는 위즈를 보기만 하고 위즈는 다과를 하나 집어 입에 넣는다.


‘실세라.’


“그렇게 약속하신다면 제가 부릴 수 있는 황군을 풀어 춘부장과 자당 찾는 걸 도와······.”

“무슨 소리를 하는 게냐. 넌 폐하의 군인이야.”


노인이 아들의 어깨를 잡는다.


“황군을 개인적인 용도로 쓰다니, 네 어머니가 용서하지도 않을 게다.”

“맞습니다. 그렇게까지······.”

“가문 사람들을 모두 풀고 연락망을 돌리는 정도면 충분하다.”

“예?”


놀라는 위즈와 달리 무르니수스는 고개를 끄덕인다.


“말씀을 따르겠습니다, 아버님.”

“아니, 정말 괜찮습니다.”

“젊은 마법사. 아니, 위자드리아누스 테 살베니움.”


노인이 위즈를 지긋이 바라본다.


“부모와 자식의 관계는 하늘이 정한 것이오. 서로 끊는 것도 있을 수 없지만, 상관없는 타인이 끊는 건 더더욱 말이 안 되오.”


노인의 말을 듣고 있자니 커다란 발이 짓누르는 기분이다.


“그리고 그렇게 끊어진 천륜을 잇는 건 마땅히 해야 할 도리. 부디 우리가 돕도록 해 주시오.”

“아닙니다. 저 혼자 해낼 수 있습니다.”

“그대는 부모를 찾기 위해 다니다가 이곳에 흘러왔소. 그리고 우리는 그런 그대를 돕겠다고 한 거고.”


본 에레체인은 응보로 유명하다.

단순히 복수만 할 뿐 아니라 행동에 대한 보상에도 철저하다.


“자신을 바꾼 자만이 세상을 바꿀 수 있고 직접 헤매는 자만이 길을 찾을 수 있소.”


그리고 그런 만큼, 아무것도 하지 않은 자에게는 아무것도 해주지 않는다.


“다짜고짜 그대를 돕겠다는 것이 아니오. 그대가 답을 찾아다녔기 때문에 돕겠다는 것이오. 늙은이의 호의를 동정으로 보고 거부하지는 마시오.”

“그······.”


언젠가 부모님이 돌아올까 봐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기다리기만 했다.


“······렇다면 한 가지, 부탁이 있습니다.”

“무엇이오? 말해보시오.”


그러다가 기다리지 않고 직접 일어나 찾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이건 세상이 바뀐 걸까?

스스로 바뀌었기 때문에 부모님이 훨씬 더 가까워지는 걸까?


“기억하는 모든 걸 말씀드리겠습니다. 단서로 사용될 수 있는 모든 것을요. 하지만 고향 집 위치까지만 찾아주세요.”

“위치만? 그대의 부모님을 모셔오지 말고?”

“네. 되도록 접촉도 안 해주셨으면 합니다.”

“이유를 물어봐도 되겠소?”

“그냥, 제 고집입니다.”


이 고집도 언짢게 여기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그렇게 하겠소.”


다행히 노인은 고개를 끄덕인다.


그날 밤, 위즈는 오랜만에 깨끗이 씻고 손님용 건물 마당에서 하늘을 보며 걷는다.

달이 밝아 오히려 별이 흐릿해 보인다.


“형님.”


라스가 마당으로 들어온다.


“어찌, 평안하십니까?”

“네 말투 때문에 방금 막 불편해졌구나.”

“여기에서 계속 지내시면 익숙해지실 겁니다.”

“됐어.”


오랜만에 형제끼리 웃는다.


“기억나는 건 다 말해줬고?”

“네. 솔직히 저야 아주 어릴 때였으니 거의 기억나지 않지만 말입니다.”

“그래도 그렇게 해야 실수가 줄어들 테니까.”


호라 북쪽 테히칸 산맥과 붙어있는 카누악 지역.

그래서일까, 같은 공기도 시원하게 느껴진다.


“그런데 갑자기 왜 부모님을 찾으러 여행을 떠나신 겁니까? 제가 아는 형님은 절대 그럴 분이 아닌데 말입니다.”


굳이 한 소리 하지 않고 살짝 웃기만 한다.


“우리가 끌려가던 날, 아버지가 말씀하셨어. 너를 꼭 지키라고. 반드시 살아남으라고.”


그 말은 위즈가 지금까지 버티도록 한 원동력이자, 자신을 잊게 만든 독이 되었다.


“너는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나는 나름 너를 지키려고 이래저래 포기한 게 많았지. 물론 널 탓하는 건 아니야. 그 말이 아니더라도 그건 의무나 마찬가지니까.”


그러다 졸업할 때가 다가왔고, 진로를 생각하면서 주위를 둘러봤다.


“나는 아무것도 정하지 못했는데, 나아갈 방향도 모르겠는데, 주위에서는 내 꿈을 묻더라. 뭐가 될 거냐, 어떤 직업을 갖고 싶냐.”


어린 줄만 알았던 동생은

목표를 정해 검을 배우러 이 카누악 지역까지 왔고,

이상한 논문만 읽던 친구는 이미 어릴 때부터 나름 원대한 꿈을 갖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나도 앞으로 나아가려고, 아버지한테 말하려고 그런 거야.”


널 지켜냈다고.

네가 꿈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고.


“그렇게 해야만 그 속박에서 벗어날······.”

“저도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라스가 위즈의 말을 자른다.


“어?”

“아버지는 제게도 비슷한 말을 했습니다.”


- 형 혼자서 버티기는 힘들 거다. 그러니까 네가 형을 지탱해 주거라.


“그래서 칼 쓰는 법을 배우러 온 겁니다. 형님 곁에 서서 형님을 지탱하고 지키기 위해서요.”


멍하니 동생의 얼굴을 본다.

작고 여리던 기억 속 동생은 어느새 듬직해져 위즈보다 키가 커졌다.


“네가 팍 어른스러워진 게 아니라, 내가 아직도 어린 거였구나.”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다시 달을 본다.


“넌 따라오지 마.”

“네?”

“내가 먼저 부모님이 계신지 확인하고 네게 연락해줄 테니까 계속 수련하고 있어. 확실하게 찾으면 그때 같이 만나러 가자.”

“먼저 뵙는다는 줄 알았습니다.”

“그럴 리가 있을까. 내가 부모님을 그리워하는 만큼 너도 그리워하고 있을 텐데.”


라스도 같이 웃으며 달을 보다가 몸을 돌린다.


“피곤하실 텐데 일찍 주무시지요. 회포를 풀 시간은 많으니까요.”

“그래. 내일 보자.”

“혹시나, 혹시나 새벽에 위치를 찾았다고 해도 몰래 도망가지 마십시오.”

“응.”


절대 다시는 도망치지 않겠다고,


“당연하지.”


적어도 그때까지는 다짐했다.



******



“그렇게 본 에레체인 가문의 도움을 받아서 원래 살던 곳의 위치를 좁힐 수 있었어.”


목적지는 아르다 지역 어느 작은 성의 시골 마을.

성에 들어가기 전까지는 몰랐으나 들어서자마자 맞게 찾아왔다는 걸 깨달았다.


“성 바깥에 보이는 산, 성안의 번화가, 성을 가로질러 흐르는 냇물. 많은 게 바뀌었지만, 많은 게 그대로였어.”

“하지만 부모님은 거기에 안 계셨구나.”


기억을 더듬어 도착한 고향.

지붕이 절반 이상 무너져 내리고 잡초로 무성하던 집은

불량배들의 아지트로 전락했다.


“다른 곳으로 이사 가신 거야?”

“근처에 사는 분한테 여쭤보니 나랑 라스가 끌려간 직후에 동쪽으로 갔다고 했어.”

“동쪽? 동쪽이면 여기 엘렌 지역 말하는 거야? 하지만······.”

“맞아.”


차분하게 고개를 끄덕인다.


“이미 돌아가셨어. 우리가 끌려올 즈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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