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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공의노래 님의 서재입니다.

사슬의 학살자와 오두막의 손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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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천공의노래
작품등록일 :
2021.04.09 16:55
최근연재일 :
2021.08.02 07:50
연재수 :
118 회
조회수 :
8,168
추천수 :
231
글자수 :
613,867

작성
21.06.27 07:50
조회
34
추천
2
글자
12쪽

81화

+와 +사이의 글은 외국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DUMMY

호라 제국 동부, 엘렌 지역, 엘렌 성.

집무실에 앉아 업무를 보고 있는 영주 블라스투스 데 살베니움.


“전쟁이 너무 길어지는데.”


혼잣말하듯 옆에 있는 비서에게 중얼거린다.


“그래도 오래 버티지 않습니까.”

“적들도 오래 버텨서 문제지요.”


얼마 전 첩자가 보고하길, 숲에 있는 병력 중

마법사를 상대하기 위해 만들어진 부대가 모두 궤멸했다고 했다.

아무리 우두머리가 무능하다고 해도 병사들까지,

심지어 엄선해서 뽑은 병사들까지 무능할까.


그리고 그런 부대를 물리칠 만한 사람은 오직 한 명.


‘형님.’


적에게 공격받아서 똑같이 공격했을 수도 있고,

오히려 적을 찾아다녔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한 가지 중요한 건 위자드리아누스가 살아있다는 것이다.


‘숲에 식량도 부족할 텐데.’


화살에 맞아 피투성이가 된 채 집무실 창문으로 날아든 매는

라스에게 편지를 전하고 그대로 기절했다.

다행히 목숨은 부지해 지금 전서구들을 괴롭히고 있으나

다시 돌려보내기엔 바깥이 너무 위험하다.


‘지금 오두막에서 지내는 건 두 명. 같이 지내는 사람은 아에리나 황녀일 거라고 크레센타 황후가 직접 얘기했고.’


식량을 보급했어야 하는 날짜는 진작 넘었다.

잘 싸우고 있는 것 같기는 하지만,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까.


“영주님. 제 말 듣고 계십니까?”

“어, 어?”


비서가 점잖게 책상을 두드린다.


“미안합니다. 무슨 얘기였지요?”

“식량이 부족하다는 얘기였습니다.”

“아, 그래. 그렇지요.”


지금 위즈 걱정할 때가 아니다.


성이 큰 만큼 평시에 많은 식량을 비축해뒀고

무기나 갑옷, 화살도 쌓여있었지만,

전쟁이 이 정도로 길어질 줄은 몰랐다.


적이 성을 가로지르는 강을 이용해 잠입하거나 독을 풀까 봐

그 주위를 폐쇄하고 바로 우물을 팠어도 상황은 최악이다.


“얼마나 부족합니까?”

“지금 이대로라면 한 달 안에 모든 자원이 바닥날 겁니다.”

“한 달······. 그럼 자원 소모를 지금보다 절반 이상 줄이면?”

“그걸 생각해서 한 달이라고 보고한 겁니다.”

“그 정도나?”


라스가 이마를 괴며 한숨을 내쉰다.


“당장 지원받지 않으면 엘렌 성은 함락될 겁니다. 아니면 그 전에 항복할 수밖에 없지요.”

“엘렌을 점령한다고 해도 지금 상태로 다른 지역까지 갈 수는 없겠지요. 적어도 제국은 지켰습니다.”


하지만 항복하면 분명 놈들은 라스와 병사들은 물론, 백성들까지 해치리라.

절대로 그 꼴은 볼 수 없다.


“황군이 엘렌 지역으로 들어오지 않는 이상 이길 방법이 없는데.”


병사들의 사기도 바닥을 치는 지금,

황군이 저 멀리 보이면 그나마 며칠이라도 더 버틸 수 있을지 모른다.


“형님분께 부탁하는 건 어떻습니까?”

“형님께? 어떻게?”

“형님분께서 보내신 매를 이용하는 겁니다. 그 매도 적들이 활을 쏜다는 건 알 테니 어떻게든 피해서 가지 않겠습니까?”

“나쁘지는 않지만, 최후의 수단으로 사용해야 합니다.”


지금 그나마 외부와 연락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

라스가 매 부리미는 아니더라도

이따금 얘기할 때마다 매가 말을 알아듣는 눈치였다.


“그 매한테 어떻게든 부탁하면 형님이 아니라 황군에게도 편지를 보내줄지도 모르니까.”


전쟁이 시작한 지 꽤 오랜 시간이 지났는데도

황군은 엘렌 지역에 발도 들이지 못하고 있다.

천혜의 요새라는 점이 약점으로 작용할 줄이야.


“당신은······.”


라스가 서류를 멍하니 보며 말하자 비서가 라스를 쳐다본다.


“엘렌 지역을 공격할 때 어디로 하겠습니까?”

“그나마 성공 가능성이 가장 큰 곳은 북쪽 아니겠습니까? 그중에서도 서북쪽이 가장 나을 겁니다.”

“역시 그렇지요?”


대하가 있는 서쪽과 바다가 있는 동쪽, 절벽이 많은 남쪽보다는

엘렌보다 고도가 높은 카쿠스 지역에서 공격하는 게 더 나을 것이다.

물론 더 낫다는 게 쉽다는 뜻은 아니다.


“엘렌 쪽에서도 같이 공격하면 더 쉬울 것이고요.”

“연락할 수단이라도 있다면.”


등받이에 등을 기대며 한숨을 내쉰다.

진짜 위즈가 숲에서 나와 적들의 뒤를 쳐주기를 바라는 수밖에 없다.


“그래도 나오지 않겠습니까? 데리고 있는 황녀를 엘렌 성에 데려오려면 말입니다.”

“글쎄. 2년 넘게 안 나오던 양반이 저 대군을 뚫고 오려고 할까요.”

“그래도 데스트리아누스의 후계자라고 불리잖습니까. 그 마법 실력으로······.”

“나도 그 양반 마법 실력은 잘 모릅니다. 마력이 많다고는 하지만, 제대로 쓴 걸 직접 본 건 아니니.”


하물며 속성도 안 정했다는데.


“그리고 무엇보다 형님이 황녀 정체를 모를 수도 있습니다. 전에 받은 편지에는 ‘황녀’가 아니라 ‘크레센타에서 온 여자아이’라고만 적혀있었으니까.”

“그래도 많은 시간이 지났잖습니까. 지금이면 눈치챘거나, 서로 얘기했거나 하겠지요.”

“설마. 그 양반이 본가에서 저지른 일을 말했느냐는 둘째치고, 황녀 정체를 직접 알아낼 정도로 눈치가 빠르지는 않습니다.”


그것만큼은 확실하다.

그때 문밖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나더니 한 외국인이 들어온다.


“영주.”

“황후 마마. 무슨 일이십니까.”


호라 옷차림을 한 크레센타의 황후, 에르나스트라 스케루드.


젊을 때 공부를 많이 했다는 얘기는 들었지만,

만나자마자 호라 말로 인사할 때는 기겁했다.

흰 머리칼에 붉은 눈동자를 한 사람 입에서 자기 나라말이 나올 줄 누가 알았을까.


“오늘도 좋은 소식은 없습니까?”


심지어 억양도 제대로 된 서울 말씨다.

라스는 책상 뒤에서 나와 황후가 앉은 탁자 곁으로 간다.


“안 그래도 좋은 소식이 있습니다.”

“좋은 소식? 무엇이오?”

“일전에 첩자가 전하기를,”


라스가 특수조 궤멸 얘기를 하는 동안,

비서가 차와 다과를 가져다 탁자에 놓는다.


“역시 데스트리아누스의 후계자인가. 영주의 형님분 실력은 대단한 모양입니다.”

“황녀 마마를 지키기 위해 발버둥 쳤을 뿐일 겁니다.”

“적들이 아에리나를 붙잡았다는 얘기는 없고?”

“그렇습니다.”


황후가 차를 한잔 마신다.


“그래서, 식량은?”

“예?”

“식량 말이오, 식량.”


그 말에 살짝 스쳐 가는 라스의 표정만 보고 황후는 한숨 쉰다.


“영주의 형님 분과 내 딸이 이 엘렌 성을 무너뜨릴 수 있지만, 영주와 내가 저 숲을 무너뜨릴 수도 있습니다.”

“네, 맞습니다.”

“다른 계책은 없습니까? 땅굴을 판다거나 하는 방법 말입니다.”

“안 됩니다. 적이 성문 앞에만 있다면 모를까, 수만의 대군으로 성을 포위한 이상 오히려 굴을 파다 무너져 그 틈새로 놈들이 들어올 수 있습니다.”

“그러면 가장 이상적인 방법은 무엇입니까?”


라스가 차를 마시고 답한다.


“제 형이 숲에서 나와 적들의 시선을 끌고 그사이에 기병대가 돌진해 포위망을 뚫어 북쪽으로 가는 겁니다.”

“북쪽에 뭐가 있습니까?”

“호라 황군이 대기 중일 겁니다. 엘렌으로 들어오는 가장 쉬운 곳이니까요.”


그래 봤자 확률론이다.

단 하나라도, 특히 위즈가 숲에서 나오지 않는다면 이 계획은 반드시 실패한다.


“영주. 나는 지금껏 그 어느 곳에서도 군과 백성이 하나 되어 싸우는 모습을 보지 못했습니다. 특히 저번에 아녀자들도 돌을 날라 적에게 퍼붓는 모습은 인상 깊었어요.”


그렇게 말하면서 집무실을 나선다.


“부디 그 모두가 슬픔에 빠지지 않길 바랍니다.”

“노력하겠습니다.”


라스도 따라 일어나 고개를 숙이고, 곧 문이 닫힌다.


“하······.”


다시 책상 앞에 털썩 주저앉는다.


“유일한 전략이 운에 맡기는 것뿐이라니.”

“그래도 그 방법이라도 남았잖습니까. 차라리 운에 맡길 수도 없는 것보다야 낫지요.”

“글쎄.”


천장을 빤히 바라본다.

엘렌 지역 다른 성을 권력으로 탈취하고 엘렌 성을 수만의 대군으로 포위한 적군.


“진짜, 그런 말도 안 되는 전략에 당할 줄이야.”


생각할수록 어이가 없어 웃음만 나온다.



******



상황이 좋지 않은 건 아사르군더니움도 마찬가지다.


“식량은 들어왔나?”

“그게······.”


엘렌 성 근처, 아사르군더니움 본진.

프레그가 잔뜩 위엄 섞인 목소리로 부하에게 묻는다.


“못 보내겠답니다.”

“뭐?”


인상을 팍 쓰며 부하를 돌아본다.


“그게 무슨 소리야?”

“자신들도 미리 반란을 막아야 하고 또 지금까지 많이 보내서 부족하다고 합니다.”

“다른 성들도 마찬가지인가?”

“그렇습니다.”


눈앞의 필통을 던져 부하를 맞춘다.

정말 자기 고집대로 일주일 치만 가져왔으면 어떻게 되었을까.


“이런 상황에서 배부르게 먹는 건 놈밖에 없구먼.”


대(對)위즈 특수조가 궤멸한 뒤 한동안 잠잠하나 했는데

얼마 전부터 습격이 다시 시작되었다.


아사르군더니움의 습격이 아니라 위즈의,

그것도 순찰조가 아니라 각 부대 본진을.


“그래도 소득은 있지 않습니까?”

“뭐. 오두막 위치를 알아낸 거? 그것도 확실한 게 아니라, 범위만 팍 좁힌 거 아닌가?”


위즈 위치를 알아냈다고 해도

상대할 만한 이들 거의 모두가 죽어 할 수 있는 게 없다.


“그럼 대군이 몰려가는 건 어떻습니까?”

“대군이? 그 숲에서?”

“요정이 같이 있으면 놈은 요정을 지키느라 제대로 싸우지도 못할 겁니다.”

“글쎄. 과연 그럴까.”


말도 안 되지만, 그래도 솔깃한 제안이다.

보고로 올라온 전투 시간이나 전투 흔적 같은 걸 보면 놈도 꽤 고전한 모양이니까.


“그리고 신무기도 있지 않습니까.”

“확실하지도 않은 그 무기로 놈을 쓰러뜨릴 수 있다고 생각하나? 심지어 설계도의 출처도 불분명한데?”


갑자기 어디선가 날아온, 방어막을 뚫을 수 있다는 신무기 설계도.

지금 자원 상태로도 충분히 만들 수 있고

이론상으로도 어떤 방어막이든 뚫을 수 있어 일단 만들어 두긴 했다.

제대로 작동만 한다면 놈의 근거지에 있을 방어막을 쉽게 뚫고 들어갈 수 있겠지만,


“이것마저 놈의 함정일 수 있지 않나.”

“그렇다고 이 기회를 날릴 수도······.”

“그 얘기는 나중에 하지.”


손을 젓는다.

여기서 병사들을 더 잃으면 엘렌 함락은 둘째 치고 돌아가지도 못하니

함부로 시도하기도 어렵다.

지금 상황을 타파할 가장 좋은 방법은

아사르군더니움 본성(本城)에서 지원받는 것.


“하지만 적들도 열심히 방해하고 있잖습니까.”


호라 북쪽 테히칸 산맥 너머 ‘금지된 땅’에 있는 아사르군더니움 본성.

거기서 엘렌을 지원해주려면 동쪽 바다를 통하는 수밖에 없지만,

크레센타와 호라의 해군이 어떻게든 틀어막고 있다.


“차라리 황후와 황녀를 잡았다고 크레센타에 거짓 협박하는 게 낫지 않을까?”

“그래도 우리가 다른 지역을 공격하거나 북쪽으로 돌아가지 않으면 놈들도 우릴 의심할 겁니다.”

“하긴, 또 크레센타만 보급을 막는 건 아니니.”


크레센타가 보급선을 막지 않는다고 해도 호라는 아랑곳하지 않고 막을 거다.


“그리고 동맹국의 황족이 붙잡힌 거니 호라 황제가 직접 출전할 위험도 있습니다.”


그 말에 괜스레 가슴 깊은 곳에서 공포가 스멀스멀 기어 올라온다.


“분명 우리가 주도권을 잡고 있는데.”


엘렌 전 지역을 손에 넣었고 호라는 엘렌에 발도 들이지 못한다.

엘렌 성은 곧 식량이 떨어져 항복하거나 결사 항전 할 테고.

그런데 여기서 나아가질 못한다.


“대체 이 전쟁을 어떻게 끝내야 할까.”


점령해놓고도 맘대로 쓰지도 못하는 성들.

무너지지 않는 가장 큰 성.

숲에 자리 잡고 턱밑에서 위협하는 마법사.


그리고 호라의 황제.


‘어쩌면 전쟁은 이미 끝난 게 아니었을까.’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억지로 위엄 있어 보이려고 한숨조차 내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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