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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공의노래 님의 서재입니다.

사슬의 학살자와 오두막의 손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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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천공의노래
작품등록일 :
2021.04.09 16:55
최근연재일 :
2021.08.02 07:50
연재수 :
118 회
조회수 :
8,167
추천수 :
231
글자수 :
613,867

작성
21.07.01 07:50
조회
36
추천
2
글자
11쪽

85화

+와 +사이의 글은 외국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DUMMY

제발 도망가서 더는 싸우지 않았으면 한다.


“전군!”


그런데 아르노는 물러서지 않고

오히려 두려워하는 병사들 앞에 우뚝 서서 위즈와 마주 본다.


“살고 싶으면 목숨 걸고 버텨라! 무너지면 몰살이다!”


병사들이 호응하면서 소리치자 위즈가 살짝 당황한다.


“정말로 버티려고?”


손을 이리저리 움직이니 맹수들이 더 거세게 적을 몰아세운다.

그런데 병사들도 아르노처럼 물러서지 않고 방패로 맹수의 공격을 막는다.


“막아! 이 정도면 버틸 수 있어!”

“방패만 갖다대지 말고 몸으로 같이 밀어!”

“마법병! 발을 받칠 만한 걸 좀 만들어봐!”


아르노의 말 한마디가 그렇게 힘이 되었을까.

지휘관인 아르노도 부하들 곁에서 맹수들을 밀어내느라 그런 걸까.

나름 열심히 싸우고 있는데도 적의 사기가 줄어들질 않는다.


‘따로 믿는 구석도 없을 텐데.’


테르막시아와 그 부하들 각자가 뛰어난 전사였다면,

아르노와 부하들은 훌륭한 지휘관과 수족.

위즈의 마법을 보고 곧바로 제대로 된 대처를 내리고 본인도 옆에서 같이 싸운다.


‘훌륭한 지휘관이라.’


지휘하듯 양팔을 크게 벌리자 맹수들이 다시 풀어져 긴 사슬 울타리가 되고,

적은 밀리지 않으려 방패를 든 채 발을 땅에 박는다.


“겨우 이 정도로 우리를 몰아낼 수는 없다!”

“몰아낼 생각 없어. 애초에 여기 들어온 이상 살려 보내진 않을 테니.”


팔을 든 채로 살짝 튕기자 울타리가 가장 앞에 있는 병사들을 세게 친다.

아직 사용한 마법은 사슬로 동물을 만드는 절멸뿐.

절멸 마법을 유지하려고 위즈가 계속 마력을 넣다 보니

마 엘구룬으로 맹수들을 상대할 수는 있어도 마력 채로 없앨 수는 없다.


‘마법이 안 통하면 물리 공격으로 부수는 수밖에.’


계속 사슬 울타리를 튕기자 중갑병들이 뒤로 밀리며 구르고,

그 뒷열 중갑병들도 넘어진다.


“으아아아!”

“으아악! 다리! 다리!”

“모두 칼 집어넣어! 자칫하다가는 우리끼리 찌른다!”


병사들이 몸을 못 가누는 모습에 위즈가 허탈하게 웃는다.


“정신 차리고 일어나! 여기서 잘못했다가는······.”


아르노도 칼로 땅을 짚고 일어나다가 다시 넘어진다.

적들은 계속 방어막 쪽으로, 구멍이 없는 방향으로 밀리고

마법병들이 곧 방어막에 부딪힌다.

그대로 벽에 등을 기댄 채 마법을 쓰려고 하지만,

방어막이 반응해 이내 쓰려던 마법에 지져진다.


“마법 멈춰! 방어막이 마법을 그대로 반사한다!”


눈치 못 챈 다른 마법병이 똑같이 하려고 하다 일제히 비명만 지르고 죽어간다.

위즈는 참상에 이를 악물며 사슬벽을 없앤다.


“적이라고 해도 존중은 해야 하는 거 아닌가? 그렇게 비웃을 정도로 우리 꼴이 우습던가?”


아르노가 만신창이가 된 채로 비틀거리며 일어난다.

아름답던 갑옷은 흙과 풀물로 얼룩졌다.


“존중? 함부로 생명을 죽이면 안 되니 살려달라, 이 말인가?”


떨리는 손을 눈치 못 챘는지, 그 틈에 등 뒤로 손을 숨긴다.


“그런 게 아니오. 목숨 걸고 싸우는데 그걸 바라는 건 사치이자 염치없는 행동이지.”


방패로 땅을 짚고 칼을 움켜쥔다.


“그래도 죽은 내 부하들 모두 전사요. 전사가 전사를 죽일 때는 최소한 예의란 게 있어야 하는 법이오.”


웃다니, 혹시 이 악물고 버티려는 걸 보고 착각한 걸까.


“그런 건 당신 수괴한테 부탁하고, 나한테 강요하지 마.”


사슬을 채찍처럼 휘두르나 영 힘에 부쳐 아르노에게 닿지 않는다.

그 틈을 타 병사들이 모여 그 앞을 막는다.


“사단장님을 지켜라!”

“위자드리아누스!”


병사 몇이 내지른 창을 사슬로 묶어 돌리고는

제자리에서 도는 병사 하나를 발로 걷어찬다.

사슬로 칼을 만들어 베려고 하자

다른 병사가 재빨리 창으로 팔을 쳐 궤도를 바꾼다.


“모두 뒤로 빠져라! 진형을 갖춰!”

“사단장님! 마법병 절반이 죽고 남은 절반은 중상입니다!”


제대로 된 갑옷도 없이 방어막과 병사들 사이에 끼어 피해가 컸을까.

방패를 들고 위즈 바로 앞에서 동료를 빼내려고 애쓰는 모습에

아무것도 안 하고 빤히 보고만 있다.

일사불란하고 끝까지 동료를 챙기는 적들이 꽤 인상적이기는 하지만,


“존중이라니. 남의 땅에 멋대로 쳐들어오고,”


그렇다고 봐줄 생각은 없다.


“죽어라!”


병사 하나가 아르노의 명령을 어기고 멋대로 달려든다.


“멈춰! 놈이 공격한······.”

“해방이라는 명목 아래 무고한 백성들을 괴롭히고,”


사슬로 창끝을 잡아 빼앗고 그대로 병사의 목을 찌른다.

쓰러지는 병사의 방패를 사슬로 들어 방패벽에 던지자

그 무게에 물결처럼 요동친다.


“유일한 죄가 황족인 것밖에 없는 아이를 쫓았으면서 존중? 정말로 존중해주기를 바래?”

“놈은 하나다! 몰아세우면 우리가 이길 수 있어! 다시 방패를 들고 일어나라!”


오른손 손끝은 위로, 왼손 손끝은 아래로 해서 바탕손을 가까이한다.

양 바탕손 사이에 검은 구체가 생긴다.


“차라리 이대로 모두······.”

“사단장님! 신호입니다!”


뒤에서 병사 하나가 말하자 위즈도 저 멀리 붉은 빛이 반짝이는 걸 눈치챈다.

위즈의 손 사이에서 시작되던 마법이 꺼지고 아르노가 외친다.


“엎드려!”


그러자 병사들이 일제히 방패를 뒤집어쓰고 풀밭에 엎드린다.

마법병들은 구멍 쪽에서 최대한 멀어지며 손으로 머리를 가린다.


‘저격?’


급히 마력을 뿜어내 바로 앞에 방어막을 만들지만,

마력을 얼마나 모았다가 쐈기에 방어막이 제 역할도 못 하고 깨진다.

그나마 팔로 궤도를 바꿔 치명상은 피했어도 큰 충격을 버티지 못해

위즈는 뒤로 구른다.


“맞췄다!”

“놈이 쓰러졌다!”


하늘과 풀이 번갈아 보이다가 풀과 축축한 흙에서 멈춘다.

이미 날아간 얼굴 한쪽에 손을 대서 상처를 없애고

곧바로 자세를 잡아 적을 상대하려 한다.


“놈과 오두막이 같이 맞았어!”

“······뭐?”


급히 고개를 돌리는데 정말로 오두막 지붕이 불타고 있다.


“아, 안 돼!”


뒤에 있는 적들은 생각도 않고 오두막으로 달려가려고 한다.

데스트리아누스의 유산이라는 사실이나

오두막에 있는 수많은 살림살이와 책보다도,

지하실에 안전히 있을 리나가 더 걱정된다.


“리나!”

“놈을 막아!”


허리에 통증이 느껴지나 싶더니 다시 바닥이 다가온다.

옆에 굴러가는 적의 방패.

병사들이 어느새 다가와 위즈를 넘어뜨리고 방패로 짓누른다.


“이것들이 감히!”


위즈의 몸에서 수많은 사슬이 튀어나와 병사들을 공중으로 날리는데

아슬아슬하게 피한 병사 하나가 위즈의 머리를 망치로 후려친다.

일말의 비명도 없이 그대로 자리에 쓰러진다.


“계속 쳐라! 정신 차리지 못하게!”


차라리 창칼이라면 모를까, 머리가 흔들려 제대로 정신을 붙잡을 수도, 마법을 쓸 수도 없다.

그저 빨리 정신 차릴 때까지 무의식적으로 사슬을 몸에 두를 뿐.


- 금방 처리하고 돌아올게. 그러니까 오두막에서 기다리고 있어 줘.


그 말이, 자신이 했던 그 말이 리나를 해쳤다는 그 사실에

온전하지 못한 정신으로도 견디기 힘들다.

당장 가야 하는데, 빨리 몸을 움직여서 리나를 구해야 하는데.


- 위즈는 어떤 상황에서도 날 지켜줄 테니까.


“박멸.”


묵직한 타격음이 연달아 들리더니 병사들이 사방으로 날아간다.

대부분 방패로 마법을 막고 갑옷 일부만 망가졌으나

몇몇은 몸에 구멍이 뚫려 죽는다.


“진짜, 좀,”


입가를 닦으며 비틀비틀 일어난다.

그것보다 더 큰 일인 게 있다.


‘하필 방금 그 한 방 때문에······.’


빨리 정신 차리려고 일어나자마자 썼던 마법.

강제로 각성한 만큼 그 후유증이 빠르게, 그리고 더 심하게 온다.


평소 같으면 아직 한참 남았으나

절멸에 이어 급하게 쓴 박멸 마법과 하필 머리를 맞아 몸 상태가 심하게 안 좋다.

적들이 밀려났을 때 재빨리 불을 끄려고 하는데

손을 뻗자마자 이질감과 함께 고통이 느껴진다.


“으아아아악!”


마 엘구룬으로 만든 화살촉이 위즈의 손을 꿰뚫고 박힌다.

고통에 마법도 못 쓰고 웅크린다.


“계속 몰아쳐라! 놈에게 틈을 주지 마!”

“공격! 방패로 압사시켜!”


위즈는 이를 악물고 오두막 쪽으로 물러난다.

뒤로 빠졌다는 건 곧 더 많은 적이 정원에 들어온다는 것.


“으으윽!”


마법으로 바로 없앨 법도 하건만 고통과 피로에 제대로 쓸 수가 없다.

어쩔 수 없이 옷깃을 물고 눈을 질끈 감은 채 손에 박힌 화살을 뽑고는,

몸을 틀고 손만 뻗어 오두막에 붙은 불을 없앤다.


‘리나는? 리나는 안 나오나?’


나오지 말라고 했던 말 때문에 혹시 억지로 버티고 있을까.


“받아라!”


중갑병이 방패를 앞세우고 창을 꼬나쥔 채 달려들자

위즈가 살짝 풀린 눈으로 바닥에 사슬을 박는다.

적이 이제 마법도 제대로 못 쓴다고 생각한 중갑병은

공을 세울 생각에 웃으며 달려들지만,


“커억!”


땅에 박힌 사슬은 다시 방패와 병사 사이로 솟아나며

순식간에 목을 찌르고 뒤통수로 튀어나온다.

뒤이어 달려온 병사는 위즈가 날린 동료의 시체에 부딪히고,


“박멸.”


시체와 함께 날아온 위즈가 머리와 손, 발만 남기고 없앤다.

그리고 박멸 마법을 쓰자마자 피로가 더 빠르게 몰려온다.


“쏴라! 전열을 흐트러뜨리지 말고 멀리서 공격해!”


방어막 안으로 들어온 궁병들이 위즈와 오두막을 향해 불화살을 날린다.


‘안 돼! 너무 높아!’


급히 휘두른 사슬은 힘없이 흔들리고 화살 몇 개가 위즈 위로 넘어가면서

다시 오두막이 탄다.

바로 앞에서 날아오는, 마 엘구룬으로 된 화살.

위즈가 도망치라고 한 말만 믿고 오두막 안에 숨어있을 리나.


“······진짜.”


지금 상태로는 방어막으로 저 마 엘구룬 화살을 막을 수 없다.

여기서 위즈가 쓰러지면 리나도 위험하다는 건 알지만,

이대로 두면 리나는 불에 타 죽을지도 모른다.

거리낌 없이 몸을 돌려 불과 오두막으로 향하는 화살을 없애고

몸에 박힐 화살을 생각하며 눈을 질끈 감는다.

곧 온몸을 꿰뚫을 고통을 떠올린다.

고통을.


“어?”


하도 고통이 안 오기에 몸을 돌리자 화살이 바닥에 떨어져 있다.

그리고 위즈 앞에는,


“방어막?”

“위즈!”


리나가 오두막에서 나와 외친다.

그슬린 옷이나 머리칼보다 더 신경 쓰이는 건 팔에 찬 이상한 장갑.


“위즈! 나도 같이 싸울게!”


계속 날아오는 화살을 리나가 방어막으로 막으며 외친다.

배우는 속도가 분명 빠르긴 했지만,

마 엘구룬 화살을 튕겨낼 정도로 저리 실력이 뛰어나던가.


분명 마지막으로 본 리나 실력으로는

마 엘구룬 화살의 속도를 늦출 수는 있어도 저 정도는 아니었는데.


“아, 안······.”


리나와 같이 싸울 수는 없다.

그러다 혹여나 테르막시아가 그랬듯 아르노가 리나를 데려간다면, 리나를 잃으면,


“나도 위즈 잃기 싫어.”

“어?”


리나가 위즈 옆에 다가온다.


“나도 위즈가 다치는 거 싫고, 위즈가 아파하는 거 싫고, 위즈가 슬퍼하는 거 싫어.”

“하지만 이건,”

“나도,”


창을 꼬나쥐고 달려오는 중갑병을 방패로 후려치듯 옆으로 밀치며 말한다.


“나도 위즈 가족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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