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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공의노래 님의 서재입니다.

사슬의 학살자와 오두막의 손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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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천공의노래
작품등록일 :
2021.04.09 16:55
최근연재일 :
2021.08.02 07:50
연재수 :
118 회
조회수 :
8,171
추천수 :
231
글자수 :
613,867

작성
21.06.20 07:50
조회
36
추천
2
글자
11쪽

74화

+와 +사이의 글은 외국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DUMMY

츠레니시아는 그대로 리나를 데리고 번화가를 거니니

리나에게는 온 사방이 신기한 것투성이다.

분명 책으로, 책에 있는 삽화로 본 적 있는 풍경이지만,

무서울 정도로 생소하고 신기하다.


“사람이 줄어들지를 않네.”


물론 행진 때도 사람이 많아 조금 무서웠지만,

이미 여러 책에서 행진 때 사람이 많이 몰린다는 구절을 봐서 그런지

그렇게 놀랄 정도는 아니었다.


하지만 행진이 끝나고도 사람이 줄어들기는커녕

축제를 즐기려고 더 늘어난다는 말은 들은 적도 글로 읽은 적도 없었다.


길가에 펼쳐진 여러 노점과 그 뒤에 있는 가게,

손님을 끌어들이려고 애쓰는 사람들.


평소보다 훨씬 시끌벅적한 광경이 어지럽다.


“언니. 저건 뭐야?”

“응?”


그러다 리나가 길 양옆에 난, 쇠로 된 나무를 가리키며 묻는다.


“저건 가로등이라는 거야. 날이 어두워지면 저기서 불이 켜져.”

“어떻게?”

“저녁에 가로등 관리하는 사람이 저 뚜껑을 열고 불을 켠대.”

“마법으로 하는 거야?”


황궁에서는 마법으로 불을 켜고 이따금 멋을 위해 횃불을 걸어둔다.

당연히 그 횃불도 마법사가 켠다.


“아니. 사람이 긴 막대기 끝에 불을 붙이고 그대로 저 가로등에 옮겨.”

“어······, 그럼 막대기에는 마법으로 불을 붙이는 거야?”


알게 모르게 마법으로 편하게만 살아온 리나 반응이 귀여워

츠레니시아가 살짝 웃는다.


“아니. 굳이 마법을 안 써도 불은 얼마든지 붙일 수 있어.”


그런 걸 본 적이 없으니 상상이 안 가 고개만 끄덕인다.

이번에는 거리에 앉아 노래하는 이들을 가리킨다.


“저 사람들은?”

“거리의 악사네. 저 사람들은 책에서 봤지?”

“응. 데스트리아누스한테 용 무찌르는 힌트를 줬어.”

“그렇지만 어떤 노래를 어떻게 부르는지는 안 나오지?”


고개를 끄덕이자 츠레니시아가 리나를 데리고 가까이 가서 노래를 듣는다.

혹시나 바로 옆의 행인이 자신의 정체를 눈치채지 않을까 무섭지만,

다행히 다들 노래에 빠져있다.


현 위에서 뛰노는 손가락과 작은 체구로 웅장하게 소리치는 북.

궁에서 이따금 들리던 노래들보다 더 빠르고 흥겨운 음악.

책이 말하던, 가슴이 따뜻한 음악이 뭔지 조금은 감이 온다.


행인 몇이 노래를 듣다가 악사들 앞에 놓인 악기 가방에 뭔가를 떨어뜨린다.

리나가 저게 뭐냐는 표정으로 츠레니시아를 올려다본다.


“노래가 마음에 들면 감사의 표시로 돈을 내는 거야.”

“그래? 그런데 나······.”


노래가 마음에 들었던 모양이다.

츠레니시아가 품에서 지갑을 꺼내 은화 몇 닢을 건넨다.


“자, 가서 직접 줘.”

“괜찮아? 이거 언니 돈이잖아.”

“괜찮아, 괜찮아.”


리나가 은화를 받고 우물쭈물하다가 악사들 앞에 서서

다른 사람들처럼 악기 가방에 돈을 넣는다.

뚱뚱한 남자가 하프를 치며 말없이 고개를 꾸벅이니

리나는 쑥스러워하며 츠레니시아에게 달라붙는다.


“부끄러워?”


리나는 츠레니시아의 팔에 얼굴을 반쯤 파묻으면서도 눈을 반짝이며 음악을 듣는다.

악사들과 눈이 마주쳐도 피하지 않는다.


곧 노래가 끝나고, 관객의 박수에 악사들은 앉은 채로 고개를 숙이며 감사를 표한다.

츠레니시아와 리나도 손잡고 다른 곳으로 움직인다.


“어? 저기 개다.”

“개?”


츠레니시아가 가리킨 곳에 작은 강아지와 아이들 셋이 뛰어가고 있다.


“진짜 개네?”


책에서나 보던 개가 거리를 뛰어가고 있다.

아이들이 어른들에게 부딪치고 있지만,

모처럼 축제라 그런지 조심하라는 소리만 하고 보내준다.

개가 뛰어간 반대쪽에서 소란이 일어 고개를 돌린다.


“아니, 당신이 먼저 쳤잖아!”

“무슨 소리야? 당신이 먼저······.”


한쪽에서 사람들이 험악하게 싸우는 것도 신기하기만 하다.

곧 치안병이 달려와 둘을 연행한다.


“저 사람들은 어디로 가?”

“치안 관리소. 거기에서 훈계도 하고 죄를 지었으면 재판소로 넘기기도 해.”

“한번 가보고 싶어.”

“안 돼. 가면 우리가 누구인지 전부 설명해야 하는걸?”


물론 가서 황녀라고 말해도 믿지 않고 이상한 애 취급하며 돌려보내겠지만,


“그러면 안 갈래.”


그걸 모르는 리나는 무서운 모양이다.

문득 풍겨온 냄새에 고개를 돌린다.


“왜?”


리나의 시선을 따라가 보자 버터에 구운 감자를 파는 노점이 있다.


“저거 먹고 싶어?”


먹고 싶지만, 황제가 언제나 어른스럽게 행동하길 강요해서 그런 건지

몸이 쉽게 움직이질 않는다.

츠레니시아는 리나의 손을 잡아끌고 노점으로 간다.


“아저씨. 이거 얼마예요?”


노점 주인이 대답하자 츠레니시아가 품에서 돈을 꺼낸다.

그 사이에 주인은 종이 그릇에 작은 알감자를 담고

지갑을 집어넣는 츠레니시아가 아니라

리나에게 직접 준다.


“감사합니다.”

“가, 감사합니다······.”


츠레니시아가 지갑을 넣으며 답하자 리나도 우물쭈물하다가 고개를 숙인다.

둘은 근처에 비어있는 의자에 앉아 감자를 나눠 먹는다.


“어때? 맛있어?”


입을 우물거리며 고개를 끄덕인다.


“전에 대장님이 사다 줬는데 그때보다 더 맛있는 것 같아.”

“그래? 뜨거워서 그런가?”


그것보다는 주변 풍경이 달라서가 아닐까.

어느새 해가 기울고 서쪽 하늘이 붉게 변한다.


“다 먹었어? 이리 줘.”


츠레니시아는 근처에 있는 쓰레기통에 종이 그릇을 넣고 다시 움직인다.


“이제 어디 가?”

“엄청나게 멋진 곳.”


테르막시아가 싱긋 웃으며 다른 사람들 사이를 지나간다.

얼마나 걸었을까, 슬슬 지루해질 즈음에 탁 트인 곳이 나온다.


“자, 도착!”


사람들을 제치느라 힘들었던 츠레니시아가 외치나 리나의 귀에는 들리지 않는다.

마침 석양으로 붉게 물든 하늘과 그 빛을 받아 빨갛게 녹는 황금 분수대.

이곳저곳에 세워진 아름다운 가로등, 석양과 그림자로 붓질한 것 같은 지붕.


“여기가 키냑에서 가장 유명한 장소인 아루바네 광장이야. 여길 보려고 외국에서 사람들이 찾아오고 그래.”


크레센타가, 리나의 먼 조상이

예전에 이 땅을 지배한 크레시아 왕국을 물리치고 그 기념으로 세운 광장.

사람이 바글바글하다고 그 아름다움이 줄지는 않는다.

아름다움을 묘사한 글을 아무리 읽어도

눈으로 직접 보지 않는 이상 생생히 느낄 수 없다.


“어때?”


황금 분수대 위에는 크레센타를 세운 초대 황제가

말에 탄 모습으로 하늘을 향해 칼을 찌르고 있다.

차가워 손이 얼어붙을 동상은 붉게 빛나며 묘하게 살아서 하늘을 달릴 것 같다.

아바마마와, 그리고 묘하게 황태자와 리나와 조금 닮은 얼굴.


“멋있어.”

“그렇지?”

“응. 그리고······.”


광장도 광장이지만, 리나가 가장 아름답다고 여긴 건 사람들의 얼굴이다.

벗과, 연인과, 가족과 같이 돌아다니며 축제를 즐기는 얼굴에는 행복이 서려 있다.


‘어쩜 저렇게 행복한 표정을 지을 수 있을까?’


문득 책에서 본 글귀가 떠오른다.

리나가 좋아하는 데스트리아누스의 이야기에 이터널리아누스라는 인물이 나오는데,

사람들을 괴롭히는 괴물들을 무찌르고 데스트리아누스에게 말했다.


- 벗이여! 자유를 되찾은 이들의 얼굴을 보게! 이제 이들에게 근심도, 걱정도 없네!


그 말에 데스트리아누스는 살다 보면 시련은 다시 찾아오리라고 답했지만,

이터널리아누스는


- 그래도 이들은 자유롭네. 이제 어떤 시련이 와도 자신의 길을 직접 선택할 수 있지 않겠나.


라고 했다.


“자, 리나. 광장을 구경해볼까?”


저 붉은 하늘이 가슴 속을 물들인 걸까.

묘하게 흥분되고 가슴이 세차게 뛴다.


“저기 저 사람들은 뭐야?”

“어디?”


광장 주위를 돌면서 보인, 커다란 판에 뭔가를 하는 사람들을 가리키며 묻는다.


“응. 거리 화가야. 저렇게 즉석에서 그림을 그려주고 파는 거지.”

“그림? 그리는 거 봐도 돼?”

“응. 가볼까?”


가까이 가보자 화가들 옆에 그림들이 쭉 놓여있다.

화가마다 그림체가 다른지 같은 석양 하늘이 다른 모습으로 담겨있다.


“이건 뭉툭하고, 이건 뾰족하네.”


리나가 별생각 없이 느낀 점을 중얼거리자 바로 앞에 있던 화가가 웃으며 말한다.


“아이구, 아가씨가 그림 볼 줄을 아는구먼.”


속으로 생각한 줄 알았던 리나는 화들짝 놀라며 사과하지만, 화가는 손을 저으며 웃는다.


“나중에 훌륭한 비평가가 되겠어.”

“그러면 자네 그림은 그 자리에서 찢기겠구먼.”

“아니, 이 사람이!”


화가들이 농을 주고받으며 소리 내어 웃는 사이에

리나는 부끄러워하며 이번에도 츠레니시아 뒤에 숨는다.

마침 한 무리의 사람들이 광장을 돌다 이쪽으로 몰려오고,

츠레니시아와 리나도 자연스럽게 화가들과 멀어진다.

그런 와중에도 리나의 머릿속에는 방금 화가가 한 말이 계속 떠오른다.


‘나중에······, 비평가······.’


언제나 갇혀 지내고 책으로만 세상을 봐왔던 리나한테

‘꿈’이나 ‘장래 희망’은 책에 나오는 단어 중 하나일 뿐이었다.

애초에 황녀 신분으로 그런 꿈을 이룰 수 없다는 걸 알기에

뭐가 되고 싶은지 생각한 적 없었다.


“아, 리나! 저기 봐봐!”


츠레니시아의 말에 리나가 현실로 돌아온다.

저 멀리 누군가가 가로등 뚜껑을 열고

작은 불꽃이 붙은 긴 막대를 갖다 대자 가로등에 불이 붙는다.


“우와!”


곧이어 다른 가로등에도 불이 붙고, 리나의 더욱 얼굴도 환해진다.

상상하기 힘들었던 장면을 직접 보니 그 기쁨이 더 크다.

석양에 더해 가로등 불빛까지 있으니

분수대가 마치 불타올라 하늘을 탐하는 것 같다.


“언니. 저기, 저 사람들은 뭐야?”

“광장 가운데에서 춤 공연하는 사람들이야. 서로 팀을 짜고 다른 팀이랑 대결도 한대.”

“저기 저 사람들은?”

“어······, 그냥 관광객인데?”


해는 졌으나 빛은 지지 않는다.

붉은 하늘은 푸른빛을 거쳐 짙어져도 사람들은 신경 쓰지 않고 축제를 즐긴다.


“리나. 어때? 재밌어?”


처음 보는 세상, 처음 보는 풍경, 처음 보는 사람들.


“어떤 책에도 이런 건 안 쓰여 있었어.”


악당을 무찌르고 보물을 찾고 나라를 세우는 이야기는 수도 없이 많았다.

하지만 이런 일상은 어떤 이야기꾼도 말해주지 않았다.

가로등을 켜는 사람도, 노래를 연주하고 돈을 받는 악사나 화가도,

심지어 길거리에 흔히 돌아다니는 개도.


“고마워, 언니.”


리나가 활짝 웃는 모습에 다시 츠레니시아의 얼굴이 굳더니 가슴을 움켜쥔다.


“아, 저기 저 사람들은 뭐 하는 거야?”

“글쎄? 가까이 가볼까?”


리나가 가리킨, 광장 중앙 쪽으로 발걸음을 옮기려는데

사람들 너머로 익숙한 실루엣이 보인다.


“어?”


츠레니시아의 얼굴이 굳자 리나도 고개를 돌린다.


“마마.”


가벼운 일상 복장에 칼을 숨긴 페르투륵사가 둘 앞에 선다.

착잡하고 어찌할 바를 모르겠으며, 당장 울 것 같은 얼굴.


“페르투륵사. 네가 왜······.”

“돌아가셔야 합니다, 마마.”


밤하늘 아래 별처럼 수 놓인 가로등과 그 주위에서 즐거움에 맞춰 춤추는 이들.

츠레니시아가 선물해준, 다시는 잊지 못할 꿈같은 하루.


“폐하께서 찾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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