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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공의노래 님의 서재입니다.

사슬의 학살자와 오두막의 손님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완결

천공의노래
작품등록일 :
2021.04.09 16:55
최근연재일 :
2021.08.02 07:50
연재수 :
118 회
조회수 :
8,029
추천수 :
231
글자수 :
613,867

작성
21.06.07 07:50
조회
37
추천
1
글자
11쪽

61화

+와 +사이의 글은 외국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DUMMY

소리가 목에서 나오질 않는다.


“리나!”


위즈가 급히 리나 앞을 가리려고 하지만, 이미 늦었다.


“아, 아, 아,”


상상은 했지만, 현실은 더 참혹했다.

찢긴 몸뚱어리들 아래에 깔린 채 똑바로 서서 이쪽을 노려보는 머리.

위즈가 팔을 뻗어 시체까지 없애고, 몸으로 리나 앞을 막는다.


“괜찮아?”


다가가 리나를 꼭 끌어안는다.

그래도 계속 감지 못한 테르막시아의 검은 눈동자가 눈앞에서 아른거린다.


“천천히 숨 쉬어. 들이마시고,”


급하게 숨을 몰아쉬는 리나 옆에서 조용히 말한다.

위즈도 겪어본 일이니까.

곧 다시 겪을 일이기도 하고.


“내쉬고.”


무시하는 건지 듣고 있는데도 진정이 되지 않는 건지, 계속 숨을 몰아쉰다.

위즈가 리나를 최대한 진정시켜보려고 슬픈 목소리로 말한다.


“전쟁은 낭만적이지 않다고 그랬지. 그리고 리나 너도 싸우는 건 즐겁지 않다고 했고 말이야.”


아예 겉옷을 벗어 리나의 머리를 덮고 얼굴을 가린 뒤 머리를 쓰다듬는다.


“즐겁지 않은 수준이 아니야, 싸움은. 끔찍하지.”


예로부터 싸움을 즐기는 영웅은 많았다.

하지만 그런 영웅들의 이름이 전해 내려온다는 건,

그만큼 싸움을 즐기는 이들이 적다는 얘기일 터.


“특히 목숨을 건 싸움은 더 끔찍해. 눈앞에서 생명이 꺼져가니까.”


이미 불씨도 남지 않은 주검들을 보며 속으로 탄식한다.


“그래서 그렇게 말한 거야. 이게 마지막이면 좋겠다고. 이런 일을 할 때마다, 언제나 그런 생각을 해.”


악몽 속에서 다가오는 시체는 차고 넘친다.

하나만 있어도 잘못을 비는데 끝을 모를 정도로 많아 고통만 가득하다.


“내가 위험하다고 숲에 내보내지도 않고 그랬을 때, 리나 네가 무슨 생각을 했을지 다 알고 있어. 너무하다고 생각했을 테고, 나와 같이 싸우고 싶어 마법을 배운 거라고 말하고 싶었겠지.”


리나는 아무 생각 없이 그냥 ‘싸우고 싶다’라는 이유로 위즈를 따라올,

그런 철없는 아이가 아니다.

그랬으면 위즈가 자면서 발작을 일으킨다는 얘기를 굳이 꺼내지도 않았으리라.


“그래도 이런 건 보여주고 싶지도 않고, 알게 해주고 싶지도 않았는데. 알더라도 책에 나오는 정도만 알았으면 했는데.”


고통받는 사람만 늘어날 뿐이니까.

그 말에 리나가 옷 속에서 울기 시작한다.


“미안, 해.”


코를 훌쩍이며 말한다.


“미안해. 미안해.”

“괜찮아. 널 미워하지 않아.”

“말 안 듣고 나와서 미안해.”

“이미 지나간 일이야. 안 혼낼 테니 진정해.”


머리를 쓰다듬다가 토닥인다.


“도망, 도망치려고 했는데, 팔을, 잡히니까, 마법이, 안, 나갔,”

“오히려 그게 대단한 거야. 마법을 쓴 흔적이라도 남아있던데? 나는 처음 싸울 때 마법 못 썼는걸.”

“정, 정말?”

“응. 심지어 난 상대가 사람이 아니라 보급부대를 습격한 멧돼지였고.”


대답하는 걸 보면 조금은 진정한 모양이다.


“네게 그런 방법으로 마법을 가르친 내 탓이야. 자책하지 마.”

“내가, 마법, 써서, 도망쳤으면, 위즈가, 이런 일, 안 해도, 됐을 텐데. 이 사람, 들도, 안 죽었을, 텐데.”


리나가 계속 훌쩍이며 말한다.


‘어차피 나한테 죽을 운명이었을 텐데.’


멀리서 사람들이 다가오는 소리가 들린다.

그래도 거리는 유지하려는 걸 보니 아마 위즈의 마력을 감지한 모양이다.


“리나, 일단 돌아가자.”


등을 가볍게 두드린다.


“적들이 더 몰려오는 모양이야.”


옷 속에서 훌쩍이며 고개를 끄덕인 뒤 비틀거리면서 일어난다.


“자, 빨리 가야 하니까 업어줄게. 이리 와서 등에 업혀.”

“응.”

“옷으로 눈은 확실하게 가리고. 시체들 봐서 좋을 건 없으니까.”


리나의 다리를 확실히 잡아 떨어지지 않게 하고, 리나는 위즈 등에 얼굴을 파묻는다.

리나가 딸꾹질하듯 계속 훌쩍이면서 말한다.


“그때처럼, 또, 빠르게, 갈 거야?”

“그때라니?”

“처음, 만난 날. 나 기절, 시켰을 때.”

“아아.”


천천히 발을 떼며 말한다.


“아니. 못 쫓아올 정도로 거리만 벌리고 느긋하게 걸어가자.”


어차피 적들은 위즈 가까이 못 온다.


“빠른 게 언제나 좋은 건 아니니까. 낫는 것도, 잊는 것도.”


대답이 없다.


“응? 리나?”


등에 이마를 대고 잠자듯 숨을 내쉰다.


“자?”

“아니. 안 자.”

“자도 돼. 힘들었을 테니까.”

“위즈가 더 힘들었잖아”

“난 일상인걸.”

“그러니까.”


이마를 댄 채 고개를 오른쪽으로 살짝 돌린다.


“이런 걸 매일 했으니까 힘들었을 거 아니야.”


위즈가 입꼬리를 살짝 올린다.


“리나. 내가 무섭지 않아?”

“무서워.”


고민도 않고 대답한다.


“그럼 왜 나한테서 도망치지 않았어?”

“그래도 내 편이니까, 위즈는.”


사람을 죽이는 건 나쁜 일이지만,

자신을 지키겠다고 하는 일을 막을 정도로 리나는 정의롭지 않다.

그런 만큼 위즈에게 ‘사람을 죽였으니 나쁜 사람’이라고 소리칠 수도 없다.


“그래서 나도 숲 바깥으로 나오고 싶었어.”

“어?”

“위즈가 무슨 일을 하는 건지 확실히 알면, 좀 더 제대로 위로해줄 수 있지 않을까 해서.”


그냥 힘든가 보다 생각하며 하는 위로보다,

무슨 일을 하는지 알고 하는 위로가 더 좋을 거로 생각했다.


“마음만이라도 고마워.”


리나 얼굴이 보이지는 않아도, 고개를 살짝 돌리며 말한다.


“덕분에 조금은 더 걸을 수 있겠네.”

“어?”

“아니, 아니야.”


말없이 계속 걸어도 서로 무슨 생각 하고 있을지, 어떤 마음일지 느껴진다.


그렇게 걷길 한참.

점차 멀쩡한 나무와 피로 물들지 않은 풀들이 보인다.


“이제 벗어도 되겠어.”


위즈의 말에 리나는 겉옷을 머리에서 걷어낸다.


“괜찮아? 다 울었어?”


대답 대신에 겉옷을 위즈 머리에 장난스럽게 올린다.

운 게 부끄러워서 억지로 밝은 척하는 걸까.


“오두막을 기준으로 하면, 꽤 멀리 왔구나.”

“멀어?”

“응. 순간이동 해서 잘 몰랐는데, 거리가 조금 있네.”

“나도 기절해서 몰랐어.”


‘처음 있던 곳과 그다음에 싸운 곳을 이으면 테르막시아의 부대가······.’


리나가 눈치채지 못하게 눈동자만 굴리며 다음 목표를 정한다.

이 일을 시작한 직후에는 부대를 습격해보기도 했지만,

위즈를 상대하기 위한 조도 생긴 걸 보면 많은 게 변했을 것이다.


‘다시 한번 공격해봐야겠지?’


피 냄새 대신 풀이 짓밟히며 풍기는 내음이 주위를 채운다.

방금까지 겪었던 게 꿈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로 푸른 숲이 주위를 둘러싼다.

이 나무들은 숲에서 참상이 벌어진다는 걸 알고 있을까.


“그나저나,”


리나가 조용히 말한다.


“위즈는 정말로 그 학살자였구나.”

“응.”


테 살베니움 가문 사람들을 학살한 마법사.


“대충 눈치채고 있었지?”

“응. 크레센타에서도 위즈에 대한 얘기는 널리 퍼져있거든.”

“정말?”

“신문을 본 적은 없는데, 나도 그 사건에 대해 듣기는 했어.”

“그럼 왜 말 안 했어?”


잠깐 뜸 들이다가 답한다.


“다른 사람일 줄 알았거든.”

“어?”

“솔직히 위즈한테 학살자라는 별명은 안 어울려서.”

“그거, 칭찬이야?”

“응. 칭찬이야.”


장난스럽게 말을 맺으니 아무리 생각해도 놀리는 것 같다.


“그리고 위즈한테 직접 듣고 싶었어.”

“크레센타에도 알려졌다면서?”

“그래도 장본인이 바로 앞에 있잖아. 이유나 과정 같은 거, 변명이라고 해도 직접 들어보고 싶어.”


주관적이더라도 위즈의 생각만큼은 확실히 알 수 있을 테니까.


“뭐, 그렇구나. 내 정체를 안다는 거구나.”

“응.”


나름 악착같이 숨겼지만, 리나는 먼저 눈치채버렸다.


“이제 나도 위즈한테 해야 할 얘기가 많겠네.”


리나가 손가락을 까딱이며 위즈 어깨에 얼굴을 파묻은 채로 중얼거린다.

위즈의 정체를 알아버렸으니, 리나의 정체도 알려줘야 한다.

크레센타에서 어떤 사람이었는지, 어떤 삶을 살았는지,

주위에는 어떤 사람이 있었는지.


“할 얘기라니?”


그리고 위즈에게도 묻고 싶다.

어떤 삶을 살았는지, 학교생활은 정확히 어땠는지.

그리고 왜 그런 짓을 저질렀는지.


“예를 들면?”


그렇게 생각하던 리나였지만, 정작 위즈가 바로 물어보자,


“어······, 그것보다, 위즈는 왜 화가 나면 눈에서 빛이 나?”


라는 말밖에 할 수가 없었다.

조금이라도 위즈가 늦게 알아줬으면 해서.


“빛이 난다기보다는 내가 빛을 내는 거야. 딱히 어려운 마법도 아니고.”

“왜 빛을 내는 건데, 그러면?”

“전에 리나 네 등에 마력 날개를 만들어줬을 때 기억나?”

“응. 멋있었지.”


위즈가 등에 마력 날개를 만들어준 일은 아마 죽을 때까지도 잊지 못할 것이다.

지금도 눈을 감으면 떠오를 정도로 황홀한 광경이었으니까.


“그때 말했잖아, 마력으로 날개를 만들어서 주위에 마력도 흩뿌리고, 적에게 위압감도 주고.”

“그러면 적을 위협하려고 눈에서 빛을 내는 거야?”

“그렇지. 내 눈에서 빛이 나고 그럴 때 무섭지 않았어?”

“무서웠어. 특히 그 모습으로 혼난다고 생각하니까 더 무서웠어.”


그러다 생각난 걸 말한다.


“저, 위즈.”

“응?”

“아까 말한 것처럼, 돌아가도 안 혼낼 거지?”


위즈가 입을 다물고 웃자 몸이 위아래로 살짝 떨린다.


“글쎄? 내 말 안 들은 건 맞으니까 혼낼까?”

“아까는 혼 안 낸다면서.”


힘이 조금 더 돌아왔는지 위즈를 붙잡고 흔든다.

웃으면서 이리저리 휘청이던 위즈가 말한다.


“리나. 다음부터 안 그럴 거지?”


고개를 최대한 돌려 리나를 보려고 하는데 정작 리나는 부끄러워 눈을 피한다.


“안 그럴 거죠, 아가씨?”


다시 한 번 더 얘기하자 그제야 작은 목소리로 대답한다.


“응.”

“알았어. 이제 안 혼낼게.”


솔직히 그 정도면 호되게 혼난 거니까.

호기심을 못 이겨서 하지 말라는 짓을 했다가 사람이 토막 나는 꼴까지 봤다.

돌아가서 더 혼내 봤자 아무 의미 없으리라.


“리나. 여기서 잠깐 쉬어가지 않을래?”

“왜? 힘들어?”

“응. 조금 힘드네.”


계속 업고 오느라 무거웠을까 하고 생각한 리나는

그러자고 하면서 빠르게 위즈 등에서 내려온다.


“위즈. 옷은 내가 갖고 있을까?”

“아니, 아니. 괜찮아. 내가 갖고 있을게.”


위즈가 머리에 두르고 있던 겉옷을 치우지 않고 그대로 얼굴을 가린다.

살짝 비틀거리면서 옆에 있는 나무에 등을 기대고는 그대로 미끄러져 앉는다.


“리나. 부탁 하나만 해도 될까?”

“부탁?”


무서워도 자기편이라 괜찮다는 리나.

지금이라면 전부 말해도 리나를 잃지 않으리라.


“응. 모두 말해줄게. 내가 지금까지 어떤 삶을 살았는지, 왜 그런 짓을 벌였는지.”

“힘들면 굳이······.”


고개를 젓는다.


“아니야. 지금 말 안 하면 오늘 잠 못 잘 거야. 그러니까,”


조금 머뭇거리고 이어 말한다.


“내 얼굴은 보지 말아줘. 그거면 돼.”


그 끔찍한 경험을 다시 떠올리면서 리나를 볼 자신이 없다.

피가 날 정도로 손톱이 파고든 팔.


- 만약 울고 싶어도 네 앞에서는 울지 않을 거야.


리나는 별말 없이 고개를 끄덕이고 위즈가 기댄 나무의 반대쪽에

똑같이 등을 기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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