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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공의노래 님의 서재입니다.

사슬의 학살자와 오두막의 손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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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천공의노래
작품등록일 :
2021.04.09 16:55
최근연재일 :
2021.08.02 07:50
연재수 :
118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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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17
추천수 :
231
글자수 :
613,867

작성
21.06.08 0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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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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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글자
11쪽

62화

+와 +사이의 글은 외국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DUMMY

데스트리아누스 테 살베니움.

호라의 첫 번째 승상이자 개국 공신이고, 모든 테 살베니움의 시조.


“초대 황제는 할아버지께 엘렌 지역을 영지로 주고, 엘렌 성을 하사했어. 크레센타 식으로 말하면 엘렌을 다스리는 제후지.”

“그러면 초대 황제 때부터 계속 엘렌을 다스린 거야? 테 살베니움 가문이?”

“맞아. 그런 셈이지.”


아무튼, 일련의 사건으로 눈동자가 보라색이 된 데스트리아누스와 그 자손들은

호라 동부에서 대대로 살아왔다.


“특히 마법사가 많이 났는데, 대표적으로 나이트리아스 테 살베니움이라는 분도 있어.”

“아. 그 사람 알아. 호라가 멸망 직전까지 갔을 때 앞장서서 나라를 구했다고 했지?”

“응. 그 할머니도 가주셨고, 후계자셨으며, 나 이전에 유일하게 이 오두막에 들어오셨던 분이야.”

“그럼 여기서 살았어?”

“아니. 그냥 들어만 왔대. 지혜를 빌리러 갔다는 말을 보면 아마 책을 찾으러 왔던 모양이야.”


이후 시간의 선택을 받은 ‘아사르군더니움 출신’ 가디우나투스는

차기 황제가 되어 제위에 오르고,

호라 안에 있는, 아사르군더니움과 내통하는 모든 이들을 색출해내기 시작했다.


“그때 테 살베니움 가문도 의심받았지.”

“정말? 왜?”

“나도 자세히는 몰라. 아사르군더니움에 있을 때 문서에서 봤다던데.”

“그래도 대귀족 가문인데, 다들 왜 의심하냐고 그러지 않았어?”

“아니.”


고개를 젓는다.


“당시 테 살베니움은 속까지 제대로 썩어있었거든. 그래서 다들 그럴 법도 하다, 하고 생각했지. 나도 아니길 바랐지만, 그럴 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했으니.”

“썩어있었다면······.”

“대표적으로, 원로들이 가주 선출을 좌지우지했어.”


테 살베니움은 공식적인 맏이의 핏줄을 ‘직계’라고 부르는데,

아무런 힘이 없어도 그 명칭이 가진 위엄 때문에

원로들은 언제나 눈엣가시로 여겼다.


그러다 어느 순간 직계가 아닌 곳에서 가주가 나오자

원로들은 이를 기회로 여겨

직계 쪽 사람들을 엘렌 성 밖으로 몰아내기 시작했다.


“왜 성 밖으로 몰아낸 건데?”

“엘렌 성의 테 살베니움 본가가 가진 상징성이 커서 그런 거야. 시조 때부터 대대로 살아온 곳이니까.”

“호라 사람들은 상징성을 되게 중요시하나 보네.”

“응. 솔직히 그게 무슨 의미가 있나 싶기도 하지만, 이젠 나도 그냥 그러려니 하고 있어.”


원로들은 가주를 등에 업고 직계 쪽 원로들을 몰아냈으며,

심지어 가주도 자신들이 멋대로 뽑았다.


“나라에서 안 막았어?”

“외부에서 건드리기에는 가문 자체가 너무 컸어.”


이제 전부 원로들의 뜻대로 되나 싶었을 때.

가주 시험에서 밀렸던 직계 출신 인물의 증손자가

데스트리아누스의 성물을 가지고 엘렌 서쪽 아르다 지역에서 태어났다.


“성물? 혹시,”


먼 옛날, 니롯샤-아루바네 스케루드가

용을 쫓아 이 세상으로 올 때 시간이 준 선물.


“빛으로 만들어진 칼도 있고, 갑옷으로 변하는 눈동자도 있고, 무조건 상대를 죽일 수 있는 장갑도 있고, 또 뭐더라? 마력이랑 관련된 거였는데?”

“하르피치아나, 야크라파스나카, 츠리시타케루스. 그리고 무한한 마력, 메르타시아키나.”


위즈가 자기 가슴에 손을 대고 말한다.


“데스트리아누스 할아버지가 받았다는 메르타시아키나는 원래 가졌던 이가 죽으면 이후 새로 태어나는 세대에서 무작위로 누군가가 갖고 태어나.”

“갖고 태어나다니?”

“선천적으로 마력이 무한하다는 거야.”


사슬들을 수없이 쏟아내고도 조금 지치기만 할 뿐, 마법은 끊이지 않던 위즈.


“설마, 그럼······.”

“응. 그래서 내가 ‘데스트리아누스의 후계자’라고 불려.”


직계면서 맏이, 거기에 성물까지.


“그럼 정말로 위즈는 마력이 무한한 거야? 마력을 뿌리고 다닌다는 것도······.”

“어. 메르타시아키나를 갖고 있으니까.”

“혹시 보여줄 수 있어?”

“다른 성물들과는 달리 이건 보여주고 말고 하는 게 아니야.”


말 그대로 마력이니까.

아이가 태어났을 때도 복잡한 절차를 거쳐 확인해야 한다.


“그럼 왜 적들이랑 싸울 때는 강한 마법만 막 쏘고 그러지 않았던 거야?”

“마력량이 무한이지, 배출량은 아마 너보다 작을 거야. 그래서 나도 큰 마법을 쓸 때는 마력을 모아야 해.”


직계에 성물을 가진 아이가 태어났다는 소문은

당연히 원로들에게 큰 위협이었다.


안 그래도 예전과 달리 권위적인 모습만 보이고

평범한 백성들을 수탈한다고 미움을 사는 상황인데,

쫓겨난 이들 중 ‘데스트리아누스의 후계자’가 나타났으니까.


“그래서 원로들은 계획을 짰어. 직계라는 이름은 뺏을 수 없지만, 성물은 뺏을 수 있으니까.”

“설마······.”

“아니야. 리나 네가 생각하는 그런 건 아니야.”


위즈가 손을 내젓는다.


“아무리 그래도 아기를 죽일 정도로 무도하지는 않았어.”

“그래? 그럼······.”

“그렇다고 위험을 무시할 정도로 어리석은 것도 아니었지.”


차마 죽일 수 없다면 죽을 때까지 보고 있으면 된다.

직접 죽일 수 없다면 스스로 목숨을 끊게 하면 된다.


“그래서 나랑 라스, 그러니까 내 동생은 어렸을 때 부모님과 생이별하고 둘만 본가로 왔어.”

“둘만? 그러면 부모님은?”

“나중에 얘기해줄게. 일단은 계속 들어줘.”


리나가 고개를 끄덕이고 위즈는 이어 말한다.


“처음에, 그러니까 내 증조부를 이기고 가주가 되신 분은 여러모로 좋은 분이라고 들었어. 직접 원로들의 횡포도 막으려고 했고.”


하지만 뒤를 이은 자식들은 그 인품까지 물려받지는 못했던 모양이다.



******



“아직도 안 일어났느냐!”


테 살베니움 본가 가장 구석진 곳에 있는 건물.

용케 사랑방에서 여기까지 온 가주가 온 집안이 떠나가라 소리친다.


“지금이 몇 시인데 아직도 방에 있는 게냐!”


해도 뜨지 않은 새벽 5시.

아이들이 일어나기에는 너무 이른 시간이다.


“어서 온 집안 마당도 쓸고 해야지! 언제 일어나서 언제 다 할 생각이느냐!”


신을 신은 채로 마루에 올라가 문을 쾅 소리가 날 정도로 열자

아이 둘이서 급히 이불을 개고 있다.


“이 게으른 것들. 부모가 이리 가르치더냐?”

“어차피 일하는 사람 따로 있으면서.”


라스가 들으라는 듯 투덜대자 위즈가 급히 라스의 손목을 붙잡고

역정을 내려는 가주 앞에 엎드리며 말한다.


“죄송합니다. 제 동생은 제가 잘 가르치겠습니다. 부디 노여움을 푸시지요.”

“잘 가르치겠다고? 네가?”


가주가 코웃음 치더니 위즈의 머리를 발로 찬다.


“형!”

“진작 잘 가르쳤어야지!”


옆으로 두 바퀴 구르고 엉거주춤 몸을 일으킨다.

코에서 피가 흐른다.


“이게!”


라스가 가주에게 덤벼들려고 하자 위즈가 라스의 옷자락을 잡는다.

라스 바로 코앞에서 가주의 발이 스쳐 지나간다.


“이거 놔!”


라스가 옷을 당기지만, 위즈는 라스를 밀쳐내고 다시 가주 앞으로 가 엎드린다.


“죄송합니다. 다시는 이런 일 없도록 하겠습니다.”


꿉꿉한 냄새를 풍기는 이불에 붉은 꽃잎이 새겨진다.

가주는 위즈를 내려다보며 혀를 끌끌 차더니 발로 머리를 툭툭 건드린다.


“이런 게 후계자라니.”


역겹다는 듯 쳐다보는 보라색 눈동자는 이내 문밖으로 시선을 옮긴다.


“아니, 형, 왜 말렸······.”

“라스.”


위즈가 손등으로 코를 막고 일어난다.

누리끼끼한 이불에는 낙엽과 붉은 꽃잎이 어우러져 춤춘다.


“닦을 것 좀 줄래?”

“아니, 형······.”


라스가 뭐라고 항의하려다 한숨을 쉬고 행주를 건넨다.


“왜 그렇게······. 안 맞아도 됐었잖아. 괜히 나 때문에 한 대 더 맞을 뻔하고.”


위즈는 대답 대신 코를 움켜쥐며 웃기만 한다.

그래야만 한다.


- 네가 네 동생을 지켜 주렴.

- 그리고 꼭 살아남아야 한다.


마지막으로 한 약속을 지켜야 하니까.


학교에 꼬박꼬박 출석은 하지만, 학교를 좋아하지는 않는다.

어차피 학생이고 선생이고 다들 가주의 손자인 주크 놈 눈치를 보니.


“야. 위즈.”


바로 저놈이다.


“야. 더러운 핏줄.”


저놈은 자신과 위즈가 친척이라는 걸 잊어버린 걸까?


“왜, 친애하는 친척?”

“친척 같은 소리 하네. 우리 집에 팔려 온 놈이.”

“팔려온 게 아니라 너희 할아버지한테 끌려온 건데?”

“그래? 그 말, 가주님께 그대로 말해볼까?”

“뭐라고 말하게? 나한테 말로 져서 너무 억울하니 대신 혼내 달라고?”


그 말에 라스가 옆에서 풉, 하고 웃음을 터뜨린다.


“뭐야. 웃겨?”


주크가 라스를 노려보며 말하지만,


“왜. 네 얼굴 부숴놓으면 더 웃길 것 같은데, 한번 해 볼까?”


라고 맞받아친다.

라스에게 호되게 얻어맞은 때가 생각났는지

더 말하지 않고 뒤로 한 발짝 물러난다.


“굳이 힘 빼지 마. 가자.”

“응.”

“야! 야! 더러운 핏줄!”


학교엔 저런 애들 천지다.

그래도 평소 성격대로 생활할 수 있어 본가보다는 훨씬 낫다.


“혼자서는 싸우지도 못하면서.”


라스가 낄낄거린다.

참고로 전에 라스가 주크를 때려눕혔을 때,

그것도 못 이기냐며 가주가 오히려 주크를 혼냈다.

그땐 맘 놓고 주크와 싸우는 라스가 솔직히 부러웠다.


“싸워서 이기기도 했지만, 적어도 난 저런 찌질이한테 굴복하지 않는 친구들이 있다고. 그걸 좀 부러워해.”

“그래. 참 부럽구나.”

“형도 이왕이면 친구를 사귀는 게 어때?”


뒤를 가리키는 손짓으로 대답을 대신한다.

주크가 분을 삭이지 못하고 가방을 차자

주위에 있던 친구, 아니 부하들이 급히 달려가 받는다.


“내 주위에는 다 저런 놈들뿐인걸.”

“저 바보들 말고. 그 형이 있기는 하지만, 친구는 많을수록 좋으니까.”

“친구라기보다는 귀찮은 놈인데.”


“그 토운사나스라는 사람이 위즈가 말한 사람이지?”

“응. 학교에서 사귄, 딱 한 명뿐인 친구.”

“토운사나스, 체테누스.”


리나가 음미하듯 이름을 읊는다.


“토운사나스가 전학오고 처음 만났을 때, 걔가 먼저 다가왔어.”

“위즈는 뭐 했는데?”

“그냥 앉아있었지, 뭐. 내가 일부러 거리를 뒀거든.”

“왜?”


살짝 몸을 뻗어 약하게 기지개를 켜고 말한다.


“나도 처음부터 친구가 없지는 않았어. 주크가 뭐라고 하든 신경 쓰지 않고 친하게 지내주던 애들도 있고, 오히려 주크와 싸우던 애들도 있었지.”

“그런데?”

“일부는 가족이 다른 지역으로 쫓겨났고, 대부분은 점점 주크 편을 들었어.”


주크 옆에서 낄낄거리던 애 중에는 위즈와 친하게 지내던 애들도 섞여 있었다.


“그래서 그랬던 거야. 그 애도 다른 애들처럼 주크랑 지낼 줄 알았거든.”

“그럼 어떻게 친해진 거야?”

“그냥, 뭐, 얘기하다 보니 잘 맞더라고.”


- 너 같이 다른 애들을 부하로 보고 부리는 애보다, 너희같이 할 말도 제대로 못 하고 굽신거리는 애들보다, 위자드리아누스 그 한 명이 훨씬 나아.


토운을 무시하고 혼자 돌아다니다 우연히 엿들은 그 말.

위즈가 없을 때 토운사나스가 주크 패거리와

말다툼하던 걸 듣고 마음을 바꿨다고는 차마 말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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