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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공의노래 님의 서재입니다.

사슬의 학살자와 오두막의 손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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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천공의노래
작품등록일 :
2021.04.09 16:55
최근연재일 :
2021.08.02 07:50
연재수 :
118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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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31
추천수 :
231
글자수 :
613,867

작성
21.06.21 0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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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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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글자
11쪽

75화

+와 +사이의 글은 외국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DUMMY

본래 황제는 축제 기간 내내 축제장에 있어야 하나

그날은 황태자의 역량을 시험하기 위해

행군이 끝난 뒤부터 황태자가 일을 보도록 맡겼다.


황태자가 성군의 재목이고 젊은 나이에도 능력이 뛰어나다는 소문은

밀궁까지 흘러들어올 정도였다.


그렇게 황태자에게 일을 떠넘긴 황제는

문득 축제를 즐기지 못한 딸이 떠올랐을까,

황후와 함께 밀궁을 방문했다.


그리고 밀궁에서 일하는 이들은, 시녀장과 호위대장부터 각 부처 막내까지

아무도 황제 부부를 반가워하지 않았고,


그곳에는 부부가 만나러 온 황녀가 없었다.


후일 페르투륵사가 말하길


황제가 밀궁에서 일하는 이들 모두를 즉시 사형시키려 했으나

페르투륵사가 자신의 가문을 걸고

둘을 찾아오겠다고 하여 기회를 줬다고 했다.


츠레니시아와 같이 궁을 빠져나오기 전 마주쳤을 때

페르투륵사는 이미 모두 알고 있었다.


“페르투륵사는 나랑 츠레니시아를 최대한 빨리 데려가면 아바마마의 화도 줄어들 줄 알았대.”


군인의 본분이라는, 자신이 가져야 할 직업의식 역시 한몫했으리라.


“마마.”


그렇게 페르투륵사는 츠레니시아가 매번 광장 얘기하던 걸 떠올려

광장을 샅샅이 뒤졌고, 페르투륵사와 마주쳤을 때 리나도 깨달았다.


“폐하께서 찾으십니다.”


꿈이 끝났음을.



******



“바른대로 고하라!”


밀궁 앞마당.

병사 몇이 화로에 달군 쇠꼬챙이로 츠레니시아의 다리를 찌르자

그 비명이 방에 갇힌 리나의 귀까지 닿는다.


“누구냐. 누구의 사주로 황녀를 밖에 데려간 것이냐.”


제 딸이 방에서 귀를 틀어막고 우는 것도 모른 채 츠레니시아를 계속 다그친다.

아니, 창문을 못 닫도록 창문 곁에 호위병을 둔 걸 보면,

일부러 본보기로 삼으려고 더 비명을 지르도록 하는 걸지도 모른다.


아예 마법으로 바깥의 광경을 방 안에 보여줄 정도니.


“소, 소신은,”


몇 시간 전까지 보였던 웃음은 온데간데없고

피투성이가 되어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한다.

힘겹게 입을 열고 소리를 낸다.


“그저 황녀 마마가 세상을 보았으면 했을 뿐이옵니다.”

“다시 찔러라.”


다시 쇠꼬챙이가 츠레니시아를 파고든다.

황후는 눈을 감으며 고개를 돌리고,

황제는 이번엔 옆에 묶여있는 페르투륵사에게 묻는다.


“네놈은 어찌 둘이 축제에 간 걸 알았느냐?”


착잡한 표정으로 입술을 앙다물다 답한다.


“마마께 세상을 보여주자는 츠레니시아의 말을 거절했사옵니다.”

“그럼 지금 저자의 말이 진짜란 말이냐?”


축 늘어진 츠레니시아를 보며 혀를 찬다.


“정녕 네 그 알량한 동정심 때문에 반역을 저질렀다는 말이냐?”

“폐하. 반역이라는 말은 과하······.”

“닥치라!”


페르투륵사가 용기 내어 츠레니시아를 변호해보려고 하나

황제가 다물라며 소리친다.


“짐의 명을 어겼는데 어찌 반역이 아니란 말이냐! 아에리나를 생각하는 짐의 마음을 어찌 너희가 이해하지 못한다는 말이냐!”

“황녀 마마를 생각하신다는 분이,”


이제 다 끝났다고 생각한 건지 츠레니시아가 하고 싶던 말을 꺼낸다.


“딸을 이런 깊은 궁에 가둬 세상을 모르게 하고,”

“다물라 했다!”

“딸이 보는 앞에서 사람을 이리 함부로 대하십니까.”


황제가 팔걸이를 내리치자 병사들이 다시 츠레니시아를 찌르고

비명이 밀궁을 채운다.

병사들이 조금 떨어졌을 때 츠레니시아가 웃으며 페르투륵사에게 말한다.


“그러게 너도 같이하지 그랬어.”

“뭐?”

“어차피 이렇게 될 거, 마마한테 세상이라도 보여줬으면 좋았잖아.”


너라도 있었으면 더 편하게 돌아다녔을 텐데, 라는 말에

페르투륵사가 차마 츠레니시아를 쳐다보지 못한다.

대신 황제를 보며 말한다.


“폐하. 감히 청이 있사옵니다.”

“말하라.”

“이자의 행동은 그저 잘못된 충정에서 나온 것이옵니다. 부디 자비로이 용서하시어 목숨만은 살려주시옵소서.”


황제가 기분 나쁘다는 듯 왕홀로 바닥을 두 번 두드린다.


“짐의 명령을 위반했는데 그걸 용서하라고?”

“어찌 황녀 마마를 해치려는 생각으로 그랬겠사옵니까. 폐하의 명령을 어겼으니 내치되, 부디 목숨만은 거두지 마시옵소서.”


황제의 심기를 거슬렀다는 이유로 페르투륵사 역시 같이 죽을 수도 있지만,

페르투륵사는 츠레니시아가 죽도록 가만히 보고만 있을 수 없는 모양이다.


“황녀 마마께서는 노실 때도, 무서운 일이 있을 때도, 슬픈 일이 있을 때도 늘 이 자를 찾았사옵니다. 마마께서 금일 같이 성 밖에 나간 것은 그만큼 이 자를 잘 따른다는 바,”


몸이 묶인 상태로 최대한 허리를 숙인다.


“또한 이 자가 마마께 많은 사랑을 드렸다는 의미이니, 부디 마마를 위해서라도 이 자의 목숨만은 보전케 하시옵소서.”

“시녀장. 저 말이 사실이느냐?”

“그렇사옵니다, 폐하.”


페르투륵사가 저렇게 말을 잘했던가.

아니면 절체절명의 상황이라 그런 걸까.


“허나 저자가 황녀를 데리고 밖에 나간 게 이번이 처음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리고 여기 있는 모두가 짐을 속이고 있을지도 모르지.”

“그렇지 않사옵니다.”

“네가 직접 말하라.”


황제가 츠레니시아를 가리키며 말하자 곁에 있던 병사들이

억지로 츠레니시아의 어깨를 잡아 몸을 일으킨다.


“황녀를 데리고 성을 나간 게 이번이 처음이더냐?”

“그렇사옵니다.”

“네 말을 어찌 믿지?”

“폐하. 만약 저자의 말이 거짓이라면 소신의 가문을 모두 베어버리십시오.”


페르투륵사가 곁에서 거든다.


“네 가문이 그렇게까지 할 가치가 있더냐?”

“소신의 조부는 선황의 휘하에서 큰 공을 세웠사옵니다. 폐하께서는 분명 만족하실 것이옵니다.”


어떻게든 츠레니시아를 살리려고 발악하는 페르투륵사.

황제가 오묘한 표정으로 그 모습을 보다 말한다.


“그대의 말도 일리 있다. 저 자가 정말로 황녀를 아꼈다는 점은 짐이 참작하겠다.”


페르투륵사를 비롯해 모두의 얼굴이 조금은 밝아진다.


“허나 이 일을 그냥 넘어가면 황녀는 또 성을 나갈 테고, 반역의 무리가 황녀를 해칠 터,”


도끼눈을 하고 손가락으로 찌르듯 츠레니시아를 가리킨다.


“이번 일은 짐이 엄히 벌하여 본보기로 삼겠다.”

“폐하! 부디······.”

“본래 너희 모두를 반역죄로 다스려야 하나, 아에리나가 무사히 돌아왔으니 너희에게는 벌을 내리지 않겠다.”


뜻밖의 결정에 모두 적잖이 당황한다.


“시녀장도 평소의 행실이 바르기에 이번에는 친히 넘어가겠다. 허나 호위대장.”

“예, 폐하.”

“그대를 파직하겠다. 황녀가 몰래 빠져나가는데도 알아채지 못했는데 어찌 황녀를 지킨다는 말이냐.”


분명 죽여도 아무 말 못 할 죄다.


“그래도 지금까지 그대의 충정을 보아 이후의 생활은 보장하마.”

“황은이 망극하옵니다.”


소리치던 것에 비하면 다들 처벌이 약하다 싶을 때.


“그리고, 너.”


황제가 페르투륵사를 가리킨다.


“네 죄가 무엇인지 알겠느냐?”

“마, 마마께서 츠레니시아와 나가려는 걸 알고도 막지 못한 것이옵니다.”

“그렇다. 그런 너의 죄는 저 반역자 다음으로 가장 크다.”


아랫입술을 윗니로 물고 손톱이 손가락을 파고든다.

아무리 잘못을 저질렀다고 해도 정말 벌을 주려는 걸까?


“저자를 묶은 밧줄을 풀어라.”

“······예?”


밧줄을 풀라고?

자유가 된 페르투륵사도 주춤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나다

황제 앞에 한쪽 무릎을 꿇는다.


“칼을 뽑아라.”


병사가 페르투륵사의 칼을 내밀어도

페르투륵사는 무슨 소리냐는 표정으로 황제를 바라만 본다.


“뭐 하고 있느냐. 명령이다. 칼을 뽑아라.”


칼을, 자기 칼을 뽑으라니, 자살이라도 하라는 걸까.

지금 여기서 소리를 지르고 난동을 부리면, 황제는 리나를 돌아보고 처형을 멈출까.


“네가 죄를 지었으니 네 손으로 죄를 씻어야 하지 않겠느냐.”


전에 페르투륵사가 말한 적 있었다.


- 전 폐하께서 원하신다면 언제든 목숨을 바칠 각오가 되어 있습니다. 그게 군인이니까요.


그래서 만약 스스로 목숨을 끊으라고 해도 들을 거냐고 물었는데,

페르투륵사는 주저하지 않고,


- 물론입니다.


라고 답했다.

닫히지 않는 창문,

끝으로 가는 페르투륵사.


“반역자를 베어라.”


칼끝을 목으로 향하려던 페르투륵사는 멍하니 황제를 본다.

황제는 무뚝뚝하게 반복한다.


“반역자를 베어라. 네 검으로 반역자를 직접 베란 말이다.”

“소, 소신은······.”

“명령을 어기겠다는 게냐?”

“폐하! 저 자에게 부디 자비를 베풀어 주시옵소서!”


페르투륵사가 칼을 떨어뜨리며 바닥에 엎드리지만, 황제는 말을 바꾸지 않는다.


“네가 직접 반역자를 벤다면 짐은 반역자의 죄와 이곳에 있던 이들의 죄를 없던 것으로 하겠다. 그저 징계만 내릴 뿐.”


시녀장과 호위대장을 비롯한 모두의 죄를 짊어지고

자신의 가문에도 어떤 피해를 끼치지 않으며,


츠레니시아는 그저 궁에서 일하던 중

불의의 사고로 안타깝게 사망했다고 처리되리라.


“허나 네놈이 그걸 거부한다면, 여기에 있는 모든 이들은 궁 깊은 곳에서 반역을 꾀하던 이들이 되어 목이 베일 것이고, 가문 역시 화를 피하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저 반역자는,”


숨을 고르고 왕홀 밑부분으로 츠레니시아를 가리킨다.


“온몸을 산산조각내어 젓갈로 담가 온 나라에 보내겠다. 반역자의 가문은 완전히 뿌리 뽑힐 것이고 오늘 이곳에서 있었던 일은 시간 너머로 사라질 것이야.”

“폐하, 제발······.”

“일어서서 칼을 쥐어라. 짐의 명령이다.”


페르투륵사가 어쩔 수 없이 다시 일어서고는 츠레니시아를 쳐다본다.

말없이 페르투륵사를 마주 보는 츠레니시아.


“빨리 베어라.”


이 깊은 궁에 배치받았을 때 막내라는 공통점으로 친해진 츠레니시아를,

같이 리나와 소꿉장난하던 츠레니시아를,

페르투륵사는 정말로 벨 생각일까.


“폐하. 어찌 황녀를 위하신다는 분이 이렇게나 잔인하시옵니까.”


황후가 이건 아니다 싶어 항의하나 황제는 흔들리지 않는다.


“황녀를 지킬 수만 있다면 상관없소.”

“하오나,”

“폐하.”


갑자기 입을 연 츠레니시아에게 황제가 눈을 돌리더니 턱짓으로 말하라 한다.


“황녀 마마께 자유를 주십시오. 책이 아닌 눈으로 직접 세상을 보게 해주십시오.”

“그건 짐이 판단할 일이다.”

“그렇다면 적어도 모두 마마를 위해 살았다는 것만은 알아주십시오.”


황제는 아무 말 없이 츠레니시아를 보다가 나지막이 묻는다.


“그게 마지막 말이더냐?”

“마지막 말은 아니오나 한 가지 청이 있사옵니다.”

“말하라.”

“부디 마마께서 계신 곳을 향해 마지막으로 인사할 수 있도록 해주시옵소서.”


황제가 조금 쳐다보다 병사를 향해 턱짓한다.

츠레니시아도 밧줄에서 풀리고 그대로 무너지며

리나가 있는 쪽을 향해 몸을 숙인다.


“페르투륵사.”


츠레니시아는 끝까지 목숨을 구걸하지 않았다.

황제가 페르투륵사에게 손짓하자 울면서 칼을 쳐드는데,

정작 츠레니시아는 은은히 웃고 있다.

마지막 추억을 떠올리는 걸까.


“베어라.”


높이 쳐든 팔은 심하게 떨리고 입으로는 계속 중얼거린다.


“미안해. 미안해. 미안해.”


황녀를 찾아온 걸 후회한다.

차라리 찾지 않았으면 죽지도, 죽이지도 않았을 텐데.


“리나를 부탁해.”

“베어라!”


아무도 모르는 황궁 깊은 곳.

붉은 목련꽃이 흩날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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