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천공의노래 님의 서재입니다.

사슬의 학살자와 오두막의 손님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완결

천공의노래
작품등록일 :
2021.04.09 16:55
최근연재일 :
2021.08.02 07:50
연재수 :
118 회
조회수 :
8,022
추천수 :
231
글자수 :
613,867

작성
21.07.03 07:50
조회
37
추천
2
글자
11쪽

87화

+와 +사이의 글은 외국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DUMMY

“섬멸.”


다시 앞으로 뻗은 손에서 검은빛이 광음과 함께 일직선으로 나가더니

정원을 가로질러 방어막에 난 구멍 너머까지 이어진다.

순식간에 적진 한가운데에 길이 생겼고,

아르노를 포함한 많은 병사가 무기나 신체 일부만 남기고 그대로 사라졌다.


하지만 실패했다.


이걸로 모두 끝내야 했는데

하필 마법을 쓰는 순간에 잠시 정신을 놓아 아직 많은 병사가 살아있다.

그나마 두려움에 계급도 나이도 상관없이 뒷걸음질 치지만.


“말했잖아. 절대 못 도망친······.”


두려움에 떨며 몇이 오줌을 지리고 몇이 자리에 주저앉을 때

위즈가 갑자기 머리를 부여잡는다.

눈두덩이 아프고 빈속을 쥐어짜는 기분.


절멸에 박멸에 궤멸에 섬멸, 그리고 망치에 맞았던 것과

일어나자마자 썼던, 피로를 늦추는 마법.

이젠 정신이 도저히 버티질 못하고 눈이 점점 감긴다.


입을 가리고 뒷걸음질 친다.

위벽이 서로 달라붙은 느낌과 마법을 쓰기에는 위험할 정도로 심하게 떨리는 손.

위즈의 상태가 이상한 걸 알고 적들이 예의주시한다.


- 연습 때 제대로 안 할 거면 실전에서도 쓰지 마.


토루마가 위험하다고 했던 섬멸 마법.

마력을 모았다가 한 번에 터뜨리는 그 특성상 몸에 무리가 올 수밖에 없다.

위즈야 마력이 무한하다는 그 체질 때문에 별다른 피해가 없지만,


‘연습할 때 제대로 할걸.’


지금 이건 전적으로 위즈 탓이다.

눈은 감겨가고 뇌는 작동을 멈추려 하고 손은 힘도 제대로 들어가지 않는 상황.


“저, 전군! 전투태세를 갖춰라! 자세를 흐트러뜨리지 마!”


들어올 때 아르노 곁에 있었고 아르노 다음으로 짬이 높아 보이던 적.

그 외침에 병사들이 공포 속에서 다시 정신을 부여잡는다.


“내가 앞장선다, 따라와! 놈은 이제 제대로 서지도 못한다!”


확실히 수가 많으면 어떤 상황에서든 대처할 수 있구나.

지금까지 주로 혼자 싸워왔던 위즈였고,

그래도 늘 이겼기에 머릿수의 중요성을 몰랐는데.

다가오는 적들을 사슬로 공격하지만, 적들이 보고 피할 정도로 사슬이 느려졌다.


“전군! 돌격!”

“돌격!”

“돌격하라!”

“사단장님의 복수를!”

“놈의 목으로 죽은 전우를 위로하자!”


앞장서서 달려오는 아르노의 부관과 뒤따르는 병사들.


“같이 생활하는 지휘관. 아르노만 그런 게 아니었구나.”


웃을 힘조차 없을 정도로 얼굴이 풀렸다.

몸이 본능적으로 반응하기를 바라며 사슬 한 가닥을 뽑아 양 끝을 양손에 묶는다.


“죽어라!”


먼저 다다른 병사가 창을 내지르자 사슬을 살짝 헐겁게 해서

가운데에 고리를 만든 뒤 창을 통과시키고 다시 당긴다.

그대로 병사 뒤로 가 창을 놓치게 하고 공중에 뜬 창을 잡아서

그 뒤에 오는 병사에게 던진다.


뒤에서 몸을 돌려 방패로 치려는 병사는 재빨리 사슬로 가슴을 꿰뚫는다.


“다음.”


다가오는 중갑병이 뒤에서 활시위를 당기는 궁병 몇.

우선 중갑병이 발 디딜 곳에 사슬을 솟아나게 해서 발을 뚫고 묶어버린다.


“으아아악!”


그리고 마 엘구룬이 반짝이는 화살이 날아오는 순간에 맞춰 마법을 쓴다.


“절멸.”


방어막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마력을 많이 쓰다 보니

화살촉은 검은 사슬에 닿자마자 마력을 모두 흡수하고 깨져버린다.

마법을 쓰자마자 살짝 졸 정도로 피곤한 상태라

제대로 된 동물이 아닌 기괴한 촉수 괴물 모양이나,


싸우는 데는 충분하다.


곧이어 달려오는 적병들은 촉수에 차례차례 꿰어 죽어간다.


‘이거, 진짜로 큰일 나겠는데.’


눈앞에 보이는 적이 죽어가는 건지 죽이러 오는 건지

구별이 안 될 정도로 시야가 흐릿하다.

다 포기하고 싶을 정도로 몸이 나른해진다.

촉수도 점점 느려진다.


“이 괴물놈! 죽어라!”

“아!”


살짝 졸았을 때 어느새 가까이 온 적이 칼로 위즈를 찌르려 하고,

위즈는 가까스로 몸을 옆으로 굴린다.

이어서 칼을 휘두르려던 병사는 칼이 위즈에게 닿기 전에 촉수에 찔려 죽는다.


“헉, 헉,”


몸 상태가 말이 아니다.


‘이거, 진짜 죽겠다.’


구멍이 14개가 난 채로 죽어가는 병사를 보고도 잠이 제대로 깨지 않는다.

등 뒤에 쓰러져있는 리나를 생각하며 침을 삼키고 눈을 살짝 감았다가 뜬다.


“위자드리아······!”


그러다 결국 칼에 옆구리를 베인다.

적의 손을 잡고 가슴 한가운데를 없애 죽이지만,

상처도 아프고 정신도 못 차리겠다.


“계속 쏴! 화살이든 마법이든 계속 쏴! 놈이 밀리고 있다!”


그 말대로 위즈는 점점 촉수 괴물 속으로 들어가고 있다.


‘낮에도 무리했는데, 아까 그냥 눈곱만 떼고 나올걸.’


절멸 마법과 사슬, 방어막으로 최대한 막아보나

잔상처가 늘어가며 계속 뒤로, 또 뒤로 물러난다.


“아······.”


그러다가 다리에 힘이 빠져 주저앉는다.

적이 창으로 내려찍고 위즈는 몸을 돌려 피하는데 다시 앞을 볼 여력도 없다.

꼴에 죽기는 싫어서 창을 잡고 억지로 몸을 돌리나 사지가 점점 무거워진다.


눈이 따갑다.

입이 말라간다.

손가락에 힘이 사라진다.


‘이렇게 죽으려고 그 고생을 했나?’


창 주인이 품에서 칼을 뽑고, 위즈와 서로 노려본다.

이대로 휘두르기만 하면 위즈도 제대로 막지 못할 상황.

수많은 생각이 스쳐 지나간다.


아주 어릴 때 봤던 부모님.

라스.

토운.

대학 때 친해진 애들.

그리고 리나.


- 위즈, 위즈.


하고 두 번씩 이름 불러주는 게 내심 좋았는데.


“위즈!”


그래도 한 번이라도 불러줬다.


‘어?’


들릴 리 없는 리나 목소리.

이어 칼이 위즈 바로 옆에 떨어지고 적이 목에 감긴 덩굴을 풀려고 버둥거린다.


“위즈! 앞에 화살!”


그 말에 급히 사슬들을 올려 화살촉을 깨뜨린다.


“리나, 너······.”


장갑 없이 순수 자기 마력만으로 싸우러 나온 리나.

연달아 다가오는 적을 넝쿨로 발을 걸어 넘어뜨리니

그 모습이 자신보다도 더 믿음직스럽다.


“나는 괜찮아. 마력 다 쓰기 전에 위즈가 기절시켜서 회복했어. 위즈야말로 괜찮아?”

“아니. 안 괜찮아.”


조금만 더 망설였으면 리나한테 섬멸 마법 쓰는 모습을 들켰겠지.


“리나, 미안. 악몽 꿀 텐데 괜찮아?”

“응. 그럴 각오하고 오두막 밖으로 나왔던 거니까.”

“요정이다!”

“저기 요정이 있다! 요정만 잡고 후퇴한다!”


갑자기 적들이 일제히 리나에게 시선을 돌린다.

빨리 여기서 도망치고 싶은 걸까,

위즈를 공격하려던 병사들도 리나를 향해 돌진한다.


하지만 리나는 당황하지 않고

팔꿈치를 몸에 붙이고 손바닥을 위로 한 채 주먹을 쥐어

넝쿨로 적의 발을 묶는다.


“으아악! 뭐야?”

“너, 넝쿨?”


갑옷과 방패가 무거워서 그런지 제대로 몸을 못 가눈다.


“빨리 일어서! 넝쿨은 칼로 끊으면 된다!”

“마법을 배워봤자 변수보다 약하다! 마법병!”


얼마 안 남은 마법병들이 불덩이를 쏘자 이번에는 방어막을 만들어서 막는다.

조금씩 금이 가는 걸 보면 아직 부족한 모양이지만,

리나는 오히려 깨져가는 방어막으로 가까이 온 중갑병을 밀쳐 다시 넘어뜨린다.


‘생각보다 잘 싸우네.’


마법병이 계속 불덩이를 날려도 방어막을 다시 만들며 꿋꿋이 막는다.


“궁병! 마 엘구룬으로 잡아!”


그제야 리나를 무시하면 안 된다고 판단하고 명령하자

하늘에 반짝이는 화살촉이 별자리를 이룬다.

리나는 중갑병들 눈에 흙먼지를 날리고 방어막으로 하늘을 가린다.


“안 돼!”


방금까지 움직이지도 못하던 위즈가 달려가 몸을 날린다.

방어막이 사라지기 직전에 화살에 박혀 깨지고 그대로 바닥에 박힌다.


“위······.”

“저 화살 화살촉 마 엘구룬으로 만들어졌어. 지금 리나 네 상태로는 못 막아. 그러니까,”


이어서 날아오는 화살을 사슬로 막는다.


“방어막으로 막지 말고 나한테 맡겨.”

“나도 위즈랑 같이 싸울 거야.”

“응. 제발 부탁할게.”


솔직히 든든하다.

막 걸음마 떼는 아기로 여겼는데 당황하지 않고 적을 상대할 줄이야.


“리나 네가 테르막시아랑 싸우면서 많이 성장했다는 건 알겠어. 하지만 불가능한 건 불가능한 거야.”


리나는 저 화살을 절대 막을 수 없지만 적을 방해하는 건 충분히 할 수 있다.


“화살은 방어막으로 막으려고 하지 말고 피해. 그리고 최대한 적을 방해해줘.”

“내가?”

“어. 지금 내 몸 상태로는 제대로 싸울 수 없어.”


방금도 정말로 죽을 뻔했고.


“그러니까, 리나.”


리나 눈을 가리고 다가오는 적을 사슬로 꿰뚫는다.

그리고 시체가 바닥에 쓰러졌을 즈음에 양손으로 리나의 얼굴을 붙잡는다.


“같이 싸우자. 제대로, 내 뒤를 부탁해.”

“······정말?”

“응. 굳이 손에 피를 묻힐 필요는 없어. 하지만 적어도 내가 죽지는 않을 정도로,”


눈에 물을 뿌려서 앞을 못 보게 하고,

흙먼지를 적셔서 기분 나쁘게 만들고,

넝쿨로 넘어뜨리고.


“방어막으로 내 등을 지켜줘. 할 수 있겠어?”

“응!”


리나가 살짝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위즈도 싸울 수 있겠어?”

“조금은 잠 깼어. 그 약한 방어막으로 화살 막으려 하는 게 어찌나 무섭던지.”


그걸 증명이라도 하듯

절멸 마법이 제대로 늑대 형상을 갖춘 채 위즈 곁으로 기어 온다.

모양이 그럴싸해졌다고 해도 뭔가 보자마자 공포에 질려 죽을 것 같은 생김새지만.


“변수는 약해졌다! 공격! 공격!”

“위즈!”

“걱정하지 마.”


몸은 여전히 무겁다.

제대로 싸우려 하면 분명 창에 꿰뚫려 죽으리라.

그래도,


“우리가 이겨.”


정신만큼은 멀쩡하다.

마법은 조금 힘들지 몰라도 멍하니 서서 적의 창을 맞아줄 정도는 아니다.

달려오는 적이 다음에 어디를 밟을지도 확실하게 보인다.


“리나! 발을 묶어!”


위즈의 신호에 맞춰 리나가 넝쿨을 자라게 하자

병사들이 재빨리 몸을 숙여 칼로 넝쿨을 자른다.


‘지금!’


그 틈을 노려 팔을 교차시키자 땅에서 튀어나온 사슬뱀이 병사들의 가슴을 꿰뚫는다.

푸르던 넝쿨이 붉게 물들고 리나가 인상을 찌푸리며 눈을 살짝 돌린다.


“위자드리아누스!”


중갑병 대다수가 죽고 마법병 하나가 제 몸에 방어막을 두른 채 달려든다.

아르노가 데려왔던 마법병들은 모두 반사에 관련된 속성.

그걸 믿고 위즈에게 달려들었겠지만,


“리나!"


리나가 제때 마법사의 눈에 흙먼지를 뿌리고

사슬 멧돼지가 병사의 가슴을 세게 쳐 기절시킨다.


리나가 걸어준 마법인 걸까,

혼자 싸울 때보다 훨씬 힘이 솟는다.


“위즈! 옆!”


마법을 배운 중갑병인지 어둠 속에서 몸을 숨기고 다가와 위즈를 찌르려고 하지만,

리나가 먼저 방어막을 만들어 위즈를 보호한다.


“잘했어!”


그 찰나를 놓친 병사는 사슬 늑대에게 물려 어둠 속으로 끌려간다.


“하늘! 하늘에 화살!”


위즈가 손을 올리자 늑대 몸에서 나온 까마귀 떼가 세차게 몰려다니며

대신 화살을 맞고 땅에 떨어진다.

그 떨어진 까마귀 떼는 이리저리 몸을 비틀다 다시 본모습으로 돌아가

후방의 적을 공격하러 간다.


공격받고 있어도 아직 많은 적.

오두막 앞에 서 있는 건 겨우 두 명.


“그래도 할 수 있어.”


그렇게 비는 위즈 말을,

아무도 헛된 희망으로 여기질 못한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사슬의 학살자와 오두막의 손님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 87화 21.07.03 38 2 11쪽
87 86화 21.07.02 32 2 12쪽
86 85화 21.07.01 36 2 11쪽
85 84화 21.06.30 39 2 12쪽
84 83화 21.06.29 37 2 11쪽
83 82화 21.06.28 42 2 12쪽
82 81화 21.06.27 34 2 12쪽
81 80화 21.06.26 38 2 11쪽
80 79화 21.06.25 41 2 12쪽
79 78화 21.06.24 37 2 12쪽
78 77화 21.06.23 34 2 12쪽
77 76화 21.06.22 35 2 12쪽
76 75화 21.06.21 34 2 11쪽
75 74화 21.06.20 36 2 11쪽
74 73화 21.06.19 33 2 11쪽
73 72화 21.06.18 32 2 12쪽
72 71화 21.06.17 33 2 11쪽
71 70화 21.06.16 37 1 11쪽
70 69화 21.06.15 37 1 11쪽
69 68화 21.06.14 36 2 11쪽
68 67화 21.06.13 36 2 11쪽
67 66화 21.06.12 37 2 11쪽
66 65화 21.06.11 38 2 11쪽
65 64화 21.06.10 37 2 11쪽
64 63화 21.06.09 41 2 12쪽
63 62화 21.06.08 53 2 11쪽
62 61화 21.06.07 37 1 11쪽
61 60화 21.06.06 53 1 11쪽
60 59화 21.06.05 40 1 11쪽
59 58화 21.06.04 37 1 11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