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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공의노래 님의 서재입니다.

사슬의 학살자와 오두막의 손님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완결

천공의노래
작품등록일 :
2021.04.09 16:55
최근연재일 :
2021.08.02 07:50
연재수 :
118 회
조회수 :
8,038
추천수 :
231
글자수 :
613,867

작성
21.06.03 07:50
조회
35
추천
2
글자
11쪽

57화

+와 +사이의 글은 외국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DUMMY

“자, 지금부터,”


위즈의 눈이 그 어느 때보다 밝게 빛난다.


“살충제로 가득한 이 안에서 사람과 해충, 누가 먼저 쓰러지는지 보자.”


손가락도 까딱하지 않았는데 온 사방에 사슬이 가득 찬다.


“아니, 우리는 인간이다.”


이날을 위해 훈련한 병사들이라 어느 정도 피하지만,

점점 더 빨라지는 사슬에 병력의 절반이 순식간에 피해를 보았다.


“네가 죽이면서 벌벌 떨던, 바로 그 인간이야.”


테르막시아가 위즈의 집중을 방해하려고 그렇게 말하고

붕대로 싸맨 팔로도 단검을 꺼내 들지만, 쥐는 순간부터 이미 불안하다.

오른손을 들자 사슬이 다가와 뱀처럼 머리를 갖다 댄다.


“너희는 그저 다른 사람들을 괴롭히는 범죄자야.”

“그러면 우리를 괴롭혔던 이들은? 그 사람들은 뭔데?”

“그 사람들도 나쁜 사람이지. 하지만 범죄로 해결하는 건 옳지 않아.”

“너는? 넌 그랬으면서?”

“그래서 내가 숲을 못 나가고 여기에 있잖아.”


위즈가 오른손을 가볍게 위로 휘두르자 사슬로 만든 뱀이 테르막시아에게 날아간다.

테르막시아가 양팔을 들어 단검으로 막지만,


“으윽!”


이미 다친 오른손은 제대로 힘을 못 쓰고 단검을 놓친다.

단검은 공중으로 떴다가 그대로 시체 하나에 박히고,

뱀은 계속 날아가다가 위즈에게 달려오던 창병 하나의 머리 위로 떨어진다.

테르막시아가 왼손에 든 단검으로 어떻게든 공격하려고 빈틈을 노리는 사이에

위즈는 계속 말한다.


“대체 왜 증오하는 상대와 똑같이 더러워지려고 하는 거야?”

“더러운 세상이 바뀌려면 더러운 웅덩이에 발을 담가야지.”

“세상이 바뀐다고?”


위즈가 대놓고 비웃는다.


“그런 꼴로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거야? 자기 처지에 비관해서 범죄나 저지르는 주제에?”

“함부로 말하지 마!”

“너나 함부로 말하지 마.”


그렇게 말하며 노려보자 갑자기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다.

마치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너를 위해서 세상이 바뀌어야 한다고? 네가 뭔데? 너희가 뭔데?”


테르막시아가 목을 움켜쥐고 바람 빠지는 소리만 낸다.


“자기 처지를 비관만 하는 사람은 세상을 바꿀 수 없어. 세상은 자신을 바꿀 줄 아는 사람을 위해 바뀌는 거야.”


위즈가 손뼉을 가볍게 치자 그제야 다시 목소리가 나온다.

컥컥, 하고 소리를 내며 목을 풀던 테르막시아가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며 말한다.


“네가 뭘 안다고 그런 말을 하는 거야?”

“직접 봤거든. 자기 처지를 비관만 하던 사람과 자신을 바꾼 사람 모두.”


자기 처지를 비관하며 방에만 틀어박혀 있다가

돌이킬 수 없는 짓을 저지르고 은둔한 자.

똑같이 처지를 비관하다가 자신을 먼저 바꾼 후 기회를 잡아

자신을 둘러싼 세상까지 바꾼 자.


“무엇보다 너희가 핍박받기 싫다면서 다른 사람을 핍박하려고 하는데, 그게 멀쩡해 보일 리 없잖아.”

“그렇게 간단하게 생각하지 마. 우리는 달라. 우리는 이뤄낼 거야.”

“어떻게? 그 위대하신 분이랑 손잡고?”

“함부로 말하지 마! 너 따위가 함부로 입에 담을 수 있는 분이 아니시다!”

“왜? 뭐, 사람이 아니야? 아니면 힘이 좀 센가?”

“그분은, 그분은,”


- 네 억울함도, 네 업보도 내가 모두 짊어지겠다.


유일하게 테르막시아를 이해해주고 직접 찾아와 받아준 사람이다.

다른 건 몰라도 그 사람이 욕먹는 걸 가만히 보고 있을 수 없다.


“그 정도면 한번 만나보고 싶네.”


저 뒤쪽에서 총병 하나가 위즈의 머리를 조준한다.


“그런데 말이야. 왜 난 괴물이고, 네 위대하신 분은 왜 위대하신 분이야?”

“뭐?”


마력으로 싸우는 게 아니라 마력을 이용하는 만큼

쏠 때마다 매번 다시 만져야 하지만, 그래도 마법병처럼 짐이 되지는 않는다.


“나도 이래저래 마법을 잘 쓴다거나 특이한 체질이다거나 하는 이유로 괴물로 불렸는데, 그 사람도 마찬가지일 거 아니야.”


조준경에 위즈의 관자놀이가 보인다.


‘잡았다.’


“그 숭고하신 뜻도 이해 못 하는 너 따위 괴물과 동급 취급하지 마. 그분의 실력은 지프메에 가깝고, 그분의 이상은 정말로 세상을 바꿀 정도니까. 죽음마저도 그분을 건드리지 못······.”


탕.

옆에서 총소리가 울린다.

다른 병사들처럼 테르막시아도 이상한 기분이 들어 입을 다문다.


“인, 것······.”


신경 쓰지 않고 계속 말하던 위즈는 말을 끝맺지 못하고 입꼬리가 살짝 올라간 그 상태로 테르막시아의 눈앞에서 사라진다.

머리에서 흩뿌린 피가 허공을 수놓고 위즈는 옆으로 기울어진다.


“어?”


털썩, 하고 소리가 나서 눈을 돌려보자 위즈가 쓰러져있다.

찬란히 빛나던 눈빛은 사슬과 함께 사라진 채로.


“됐나? 성공했나?”


유일하게 직접 쏜 총병만 입가에 미소를 띠며 고개를 든다.

다른 병사들도 하나둘 바닥에 쓰러진 위즈와 주위를 적신 피를 보고 중얼거린다.


“저놈 죽은 거 맞아? 다른 곳도 아니고 머리에 맞았는데?”

“아무나 빨리 가서 확인해 봐.”

“저래놓고 일어나는 거 아니지?”


중심을 잡으려 비틀거리는 위즈.


“이, 으, 으어, 으,”


총알이 제대로 먹혔는지 말을 내뱉지 못한다.

비틀거리며 테르막시아를 손가락으로 가리키고는 뭐라고 소리를 내는데

그 손가락마저 제대로 테르막시아를 가리키지 못한다.

관자놀이에서 흐르는 피를 억지로 손으로 막아도 오히려 손이 붉게 물든다.


“······빨리,”


그걸 본 지휘관들은,


“빨리 달려들어!”

“놈의 목을 가져와!”

“수급은 우리 거다!”


기회라고 여겼는지 명령만 내린다.

그래도 몇몇 병사가 명령대로 위즈에게 다가가지만,


‘요정은······.’


테르막시아는 눈을 리나에게 돌린다.

아직 잠들어있는 리나.


‘설마?’


바로 옆의 병사를 붙잡아 외친다.


“너, 당장 놈이 쳤다는 막으로 가.”

“예? 왜, 왜 그러십니까?”

“빨리! 지금······.”

“어? 이놈 지금 웃은 거 아······.”


위즈가 미소 짓는 걸 눈치챈 조장 하나가 말을 끝내지 못하고 사슬에 꿰여 죽는다.


“어? 뭐······.”


사슬은 사라지지 않고 옆에 있던 다른 머리들도 이어서 하나하나 뚫고 지나간다.


“엎드려!”

“공격한다!”


테르막시아가 조원들에게 외치자 조원들이 다친 테르막시아를 몸으로 덮고, 방패병이 가장 앞에서 막는다.


“이럴 때가 아니야! 당장 놈이 쳐놨다는 막으로 가서 마 엘구룬으로 깨!”

“예?”

“놈이 그나마 정신 못 차렸을 때 빠져나가야 해! 빨리!”


다른 조도 방패병이 살아남은 자기 조장을 보호하면서 물러나고,

다른 병사들은 주위로 오는 사슬을 칼이나 도끼로 쳐낸다.


“대체,”


그 가운데에서 머리가 피투성이인 채로 위즈가 멀쩡히 일어난다.


“대체 저건 뭐야?”

“사람이기는 한 거야?”

“저놈, 머리에 구멍이 난 건 분명한 것 같은데.”


수급을 논하던 하던 조장들은 사슬에 관자놀이가 꿰여 공중에 매달려있고,

살아있는 조장들은 조에서 위즈와 가장 먼 곳에 자리한다.


“하긴, 이런 거 보면 내가 생각해도 괴물 같기는 해.”


위즈가 손을 들고 관자놀이를 슥 문지르자

손이 지난 부분에 묻어있던 피는 물론, 구멍까지 사라진다.

씩 웃으며 테르막시아를 본다.


“너, 어떻게 살아난 거야? 사람이긴 해?”


놈이 탄에 맞고 쓰러지는 걸 눈앞에서 분명 봤고,

놈이 쓰러져 숨을 거둔 것도 확인했다.

위화감이 느껴지기는 했어도, 분명 놈은 죽었다.


“아니, 죽지 않았어. 죽은 거나 마찬가지긴 한데, 아무튼.”

“그러면? 그러면 어떻게 탄에 머리를 맞고도 죽지 않았다는 거지?”

“내가 아까 말했잖아.”


- 너희는 절대로 날 죽일 수 없어.


“그 말 그대로야.”


어떤 무기를 들고 와도,

어떤 계획을 세워도,


“너희는 절대로 날 죽일 수 ‘없어.’”

“뭐?”


위즈가 머리를 꿴 사슬을 가까이 불러오더니

잔뜩 떨리는 손을 들고 가로로 팔을 휘두른다.

추수한 알곡이 바닥에 떨어진다.


“그나저나 신기하네. 어떻게 내가 멀쩡하다는 걸 알았지? 당신을 처리할 좋은 기회였는데.”

“보통 기절을 시킨 장본인이 죽으면, 적어도 싸울 상태가 아니면 기절한 사람은 일어나.”


하지만 리나는 계속 잠들어있었다.


“시간을 설정할 수 있다고 해도 마법을 쓴 당사자가 죽으면 아무 소용없어. 하지만 요정은 일어나지도, 움직이지도 않더라.”

“그걸 생각 안 했네. 이 정도까지 밀릴 줄은 몰랐으니.”


위즈가 아쉽다는 듯이 말하자 테르막시아가 고개를 젓는다.


“아니, 넌 알고 있어도 일부러 깨우지 않았을걸?”

“무슨 말이야?”

“너, 요정한테 이런 장면 보여주고 싶지 않아서 기절시킨 거잖아.”


피로 붉게 물든 숲과 머리에 총을 맞은 위즈.

만약 위즈가 철저히 한다고 리나를 깨웠다면

리나는 일어나자마자 그 참상을 봐야 했을 것이다.

그리고 시체나 다름없는 위즈가 일어나는 것과

조장들이 일제히 머리를 꿰뚫리는 걸 마주하겠지.


“그래. 그 말이 맞겠다.”


위즈가 순순히 고개를 끄덕인다.


“맞겠다니?”

“사람이 모든 행동을 생각하고 하지는 않잖아. 나도 본능적으로 리나를 깨우지 않은 모양이다, 그런 거지.”


애초에 죽기 직전까지 갔다가 살아나는 건 계획에 없기도 했고.

테르막시아가 위즈를 노려보다가 입을 연다.


“넌 우리보고 정신병자 같다고 했지만, 내 눈에는 네가 더 정신병자 같아.”

“왜? 나는 사람을 죽여놓고 너희보고는 하지 말라고 해서?”

“그런 얘기가 아니야.”


위즈의 손을 가리킨다.


“아까도 계속 말했지만, 너 계속 손 떨고 있잖아.”


그 말에 위즈가 반사적으로 오른팔을 움켜쥔다.

그런다고 떨리는 게 멈추지는 않지만.


“대체, 누가 진짜 너야?”

“어?”

“여기서 이렇게 사람을 죽이는 너와 사람이 죽는 모습을 보고 두려워하는 너. 둘 중 어느 쪽이 바로 너야?”


적이라고 판단하자마자 잔혹하게 처형하는 위자드리아누스.

그러면서도 매일 두려움에 떨며 악몽에 고통스러워하는 위자드리아누스.


‘진짜 나라.’


잠시 생각해보다가 입맛을 다시고는 양손을 뒤로 숨기며 말한다.


“나도 몰라. 둘 다 나일 수도 있고 둘 다 내가 아닐 수도 있지. 하지만 그게 중요한 건 아니잖아.”

“응?”


별 움직임 없이도 사슬이 계속 사방을 채운다.


“지금까지는 내심 적으로도 인정 안 했지만, 방침을 바꾸지. 적어도 테르막시아 당신은 나를, 그리고 리나를 위협할 적이야.”


위즈는 묵묵히 오른손을 들어 오른쪽을 가리키고 사슬들은 그에 맞춰 움직임이 변한다.

갑자기 자신들을 공격하지 않고 조여오자 병사들은 무슨 일인가 싶으면서도 곧바로 위즈를 공격하려든다.


“잠깐, 멈춰!”


다른 조장이 그런 병사들을 진정시킨다.


“모두 거리를 둬!”


솟아나서 위즈 주위로 모여 돌던 사슬들은 위즈가 오른팔로 위를 가리키자

위즈 위에 모여 커다란 공처럼 뭉친다.

아사르군더니움 군이 멍하니 그 모습을 본다.


“사실 이거, 공간이 좁으면 못 쓰는데 너희가 넓은 길로 우릴 이송해서 다행이야.”


공이 두 개로 갈라지고, 기다란 다리 같은 게 하나씩 솟더니

8개까지 나온 다리가 각각 나무를 꿰고 몸통을 공중에 띄운다.


“뭐, 뭐야, 저거?”

“거미? 거미 맞나? 거미 같이 생겼는데?”


방패병들이 방패를 들 생각도 못 하고 보고만 있고,

위즈는 조용히 한숨을 쉰 뒤 주문을 읊는다.


“절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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