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DNA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2)
이시윤의 어머니, 발렌티나는 마트에 들렸다가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놀라운 장면을 목격했다.
틈만 나면 동생을 두들기던 이시윤이 이시후를 데리고 어디론가 향하는 것이 아닌가. 그것도 다정하게 손을 잡고 인도해주면서.
사실은 도망가지 못하게 붙잡아둔 것이지만, 그녀로선 자세한 내막을 알긴 힘들었다.
“시윤아! 시후야!”
응원할 때 빼고는 평생 큰 목소리 몇 번 내지 않았거늘. 이번에는 어찌나 놀랐는지 크게 외쳤다.
“어디 가는 거야?”
형제가 종종걸음으로 다가오자 발렌티나가 세상 다정한 목소리로 물었다.
“운동장이요.”
“왜? 동생 괴롭히려는 건 아니지?”
“글쎄요. 일단 같이 축구나 하려고요.”
이시윤은 거짓말하지 않았다.
수틀리면 언제든지 두들겨 패버릴 예정인지라.
말투에도 그런 기색이 역력했다.
하지만, 발렌티나는 이미 ‘동생과 축구’라는 개념에 사로잡혀 신경조차 쓰지 못했다.
어찌나 감격했는지 눈가에 작은 눈물방울을 만들 정도다.
‘그 난폭했던 시윤이가···.’
장남은 여러모로 완벽했다.
외모는 물론이요, 학업도 훌륭했다.
심지어 운동은 특출났다.
어렸을 때부터 시작한 축구로는 이미 지역에서 알아주는 유망주였다.
-부럽다. 시윤이 엄마.
-나도 저런 아들이 있었으면.
-시윤이 같이 키우는 법 좀 알려줘.
동네 엄마들의 부러움을 한 몸에 샀지만, 마냥 좋지만은 않았다.
훌륭한 아들 덕분에 콧대를 치켜올리기엔 이시윤의 성격이 너무 더러웠기 때문이다.
난폭, 오만 그 자체.
해서, 어렸을 땐 가정 상담도 받아보고 정신과도 갔었다.
혹시나 사이코패스나 소시오패스가 아닐까 하는 우려였지만, 다행히도 아니었다.
아무튼. 그랬던 장남이 동생과 함께 축구를 하러 간다니. 그녀가 그토록 꿈꾸던 우애 좋은 형제의 시작으로 보였다.
“엄만 너무 기뻐. 용돈이라도 줄까?”
“괜찮아요.”
“그래? 알았어. 그럼 재밌게 놀다 와. 다치지 말고. 저녁 시간엔 늦지 말고 와. 엄마가 맛있는 거 해둘게.”
“단백질 함량 높은 걸로 부탁해요.”
조금 이상한 대답.
그러나, 발렌티나는 이성을 반쯤 놓은 상태라 신경 쓰지 못했다. 원래도 이시윤은 저런 타입이었고.
“자, 그럼 다시 가자.”
“으, 응.”
다시금 걸음을 놀리는 두 형제.
누가 보아도 도축장에 가는 도축업자와 돼지의 뒷모습이었지만, 발렌티나는 끝까지 눈치채지 못했다.
**
잠시 뒤, 형제는 집 앞 미니 초등학교에 도착했다. 작지만 잔디 구장을 보유한 덕분에 이시윤이 자주 찾는 장소다.
그의 모교이기도 했으나 그런 건 그에게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시윤이 왔냐?”
경비 할아버지가 다가와 닫힌 정문을 열어줬다.
“오늘도 연습해? 고놈 참, 대견해.”
“뭘요. 먹고 살려면 뭐든 해야죠.”
“허허. 말버릇 하곤.”
이시윤은 귀여운 손주로서의 재능은 털끝만큼도 없었지만, 경비 할아버지는 그를 상당히 귀여워했다.
길이 위험하다며 공을 맡아두곤 올 때마다 직접 꺼내주는 수고를 할 정도였다.
이시윤은 이에 대해선 딱히 감사의 말을 전하진 않았다. 그저, 나중에 성공하고 집 한 채 사줬을 뿐이었다.
“자, 여기 공이다. 어? 그런데 뒤에, 시후? 시후 아니냐? 맞지?”
“아, 안녕하세요. 할아버지.”
“맨날 게임만 하던 녀석이 어쩐 일로 형을 따라왔어? 살을 빼려고?”
“저도 잘 몰라요.”
경비 할아버지는 스윽, 이시윤을 쳐다봤다. 이시후의 대답이 만족스럽지 않으니 대신 하라는 무언의 압박이다.
“재수 좋으면 살을 빼는 거죠. 재수 없으면 피를 빼는 거고.”
“허허. 뭔 말을 그렇게 흉하게 하누.”
“뭐, 일단은 축구 할 거예요.”
대답을 마친 이시윤은 공을 건네받고 성큼성큼 운동장으로 걸어갔다.
인조 잔디의 촉감이 발밑으로부터 올라왔다. 조금 전까지 월드컵 구장의 천연 잔디 밟고 와서 그런지 영 마음에 들지 않는다. 절로 인상이 구겨졌다.
“히익.”
뒤따라온 이시후가 신음성을 내질렀다. 갑자기 형의 기분이 나빠졌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비상사태다.
“왜 그래? 뭐, 됐고. 야, 귀 파고 잘 들어. 네가 잘하면 앞으로 돼지라고 안 부를게.”
“진짜?”
언제 떨었냐는 듯 얼굴이 벚꽃처럼 화사하게 폈다.
“난 거짓말 안 해.”
“그건 알아. 그런데 뭘 하게?”
“귓구멍에 공구리 쳤어? 방금 할아버지한테 말했잖아. 축구 한다고.”
“알았어. 근데, 공구리가 뭐야?”
“몰라도 돼.”
“역시 형은 아는 게 많구나. 그런데, 나 축구 해본 적 없어.”
“알아.”
나름대로 친형인데, 그걸 모를까.
온종일 게임만 하고 산다는 것쯤은 타인에게 무관심한 이시윤도 알았다.
“원래 다 처음이 있는 법이야.”
“그래도···.”
“처음으로 운동장에서 처맞기 싫으면 그만 징징거려라.”
“빠, 빨리 축구하고 싶어졌어.”
이시윤은 이시후가 이제야 마음의 준비를 마치자 흡족해하며 오른발로 공을 멀리 찼다.
이제 갓 중학교에 올라가는 소년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은 멋진 자세.
세련미를 넘어 노련미까지 보였다.
“허허. 거참. 대단해.”
지켜보던 경비 할아버지가 탄성을 내질렀다. 축구에 문외한인 그가 봐도 멋졌다.
하지만, 정작 본인은 영 마음에 들지 않아 얼굴을 와락 구겼다.
‘몸이 달라서 그런가. 어색하네.’
신체의 성장이 덜 끝난 문제도 있었고, 뭐랄까. 동기화가 덜 된 느낌이다.
아무튼, 이건 차차 성장과 훈련으로 극복하면 되는 일.
지금은 먼저 해결해야 할 일이 있다.
“뛰어가서 공 가져와.”
“응!”
이시후는 명령이 떨어지자마자 열심히 달렸다.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뛴 것이겠지만, 이시윤의 눈에는 중풍 걸린 노인네가 뛰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이런 혹독한 평가에도 불구하고 그의 입꼬리는 올라갔다.
‘생각보다 빠르다. 역시, 쓸만해.’
달려본 적도 거의 없던 녀석이, 그것도 뚱뚱한 녀석이 상당히 날래다.
만약, 살을 빼고 달리는 법을 배운다면? 분명, 훨씬 더 빨라지겠지.
“헉헉. 형 가져왔어.”
“...야, 공을 손에 들고 오면 어떡하냐. 축구가 뭔지는 알잖아. 혹시 까먹었어? 물리치료로 기억나게 해줘?”
입꼬리가 다시 내려갔다.
“한 번 더 간다.”
이번에는 제대로 공을 몰고 돌아왔다. 당연히도 자세는 엉망이었다.
그러나, 공을 모는 간격은 일정했다.
‘공에 대한 감각도 있다.’
이시윤, 그는 한 시대의 정상에 올랐던 남자다. 수없이 많은 천재를 보아왔고 그보다 훨씬 많은 수재를 보고 직접 상대해봤다는 이야기다.
그런 그에게 축구에 대한 재능을 알아보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오히려 천직일지도 몰랐다.
“이번에는 내가 공을 뺏을 테니까 공을 한번 지켜보면서 드리블해봐.”
“응.”
초심자에겐 상당히 어려운 행동이다.
그래서 이시윤도 뒤뚱거리는 동생을 슬쩍슬쩍 밀어보기만 했다.
꿈적도 하지 않는다.
더 강하게 밀어봤다.
비틀거리며 넘어질 듯 말 듯 했지만, 버티어냈다.
덕분에 이시윤의 입꼬리가 또다시 올라갔다.
‘균형감각도 있다.’
어느 정도의 힘도 있으리라 봤다. 자고로 무거운 살을 붙이고 살려면 힘은 자연스럽게 따라왔으니까.
‘속도, 균형감각에 공에 대한 감도 있어. 역시, DNA는 거짓말 안 해.’
더 지켜보긴 해야겠지만, 이 정도면 긁어볼 만한 복권이었다.
“잘했어. 처음치고는 축구를 잘하네.”
“정말? 헤헤. 신난다.”
“마지막으로 하나만 더하자.”
“좋아. 좋아!”
이시후는 형에게 난생처음 칭찬을 받고선 잔뜩 신이 났다.
“한 자리에 계속 있을 테니까, 나한테서 공을 뺏어봐.”
“밀어도 돼?”
“어. 뭐든 해. 죽통만 갈기지 말고.”
이시윤이 자리를 잡자 곧바로 이시후가 달려들었다.
물론, 당연히 상대되지 않았다.
체중으로 밀어붙여 보아도 공에 발끝 하나 대지 못했다.
발을 휘휘 내저어봐도 현란한 볼컨트롤 덕분에 공의 그림자만 건드렸다.
하지만, 이시후는 포기하지 않았다.
형에게 또 칭찬받고 싶다는 욕망.
이미 받은 칭찬 덕분에 생긴 고양감.
돼지라고 불리지 않을 희망.
그리고 어렵고 무섭기만 했던 형과 함께 땀을 흘린다는 즐거움.
이 모든 것들이 합쳐지자 어린 이시후의 집중력은 무한대로 높아졌다.
‘할 수 있어!’
이시윤이 공을 슬쩍 끌어 뒤로 옮기는 그 찰나의 순간.
이시후가 발을 쭉 뻗었다.
발가락을 뻗었다고 해도 될 필사적인 태클.
툭.
놀랍게도, 기어코 공을 건드리는 데 성공했다.
데굴데굴.
힘없이 조금 벗어나는 축구공.
그 공을 잠시간 멍하니 바라보던 이시윤은 시선을 돌려 동생을 바라봤다.
아무리 힘을 쭉 빼고 했다지만, 진짜 뺏어낼 줄이야. 동생 녀석은 적어도 사기보단 축구에 재능이 있었다.
“시후야.”
동생의 이름을 얼마 만에 불러보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았다.
“넌 오늘부로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의 중앙수비수다.”
이시윤의 얼굴엔 모처럼 진득한 미소가 걸려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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