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프롤로그.
-경기 종료! 대한민국이 아쉽게도 브라질에 4-2로 패배했습니다. 이로써 2046, 한, 일 월드컵에서 4강 진출에 실패합니다···!
-드디어 도달한 8강이었는데요. 아, 44년 만에 2002월드컵의 영광을 재현하는 줄 알았어요. 무척 아쉽습니다.
-그래도, 8강! 자랑스러운 결과입니다. 최선을 다한 태극전사들에게 응원과 격려를 아끼지 말아 주십시오.
월드컵, 8강.
이상하게도 계속 튀어나오는 천재들 덕분에 기대가 지나치게 높은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으로서도 잘한 결과다.
아니, 아주 훌륭한 결과다.
그래서 모두가 ‘졋잘싸’를 외치며 박수를 보내주었다. 선수들도 아쉬움보다는 뿌듯함을 느꼈다.
하지만,
“씨발.”
한 남자만은 예외였다.
한국 대표팀 부동의 에이스이자,
발롱도르 4회 수상자이며,
리버풀의 전설적인 공격수.
폭군, 이시윤.
그는 전혀 만족스럽지 않았다.
울화통이 펑펑 터졌다.
“사람 새끼가 없네. 이걸 져?”
욕지거리가 절로 나왔다.
혈압이 미친 듯이 상승했다.
아, 도저히 참을 수 없다.
어떻게든 해소해야만 한다.
쾅!
로커의 문을 걷어찼다.
철제문이 폭발하듯 터져나갔다.
뿌직!
뇌혈관도 같이 터져나갔다.
이시윤, 33세.
현 세계 최고의 선수이자, 아시아 역사상 최고의 선수는 그렇게 영면했다.
**
아무것도 없는 새하얀 공간.
눈을 뜬 윤시윤은 주변을 쓱 둘러보고선 침을 탁 뱉었다.
“퉤, 역시, 지옥인가 보네.”
딱 보니 천국하고는 거리가 멀었다.
그렇다고, 실망한 것은 아니다.
평생을 모난 돌처럼 살았으니 당연한 결과라고 여겼다. 애초에 천국에 갈 거란 기대조차 없었다.
그렇게 태연하게 주위를 둘러보며 인상을 쓰고 있을 때쯤.
회색빛 안개에 휩싸인 사람의 형태가 바닥을 부유해 다가왔다. 절로 무릎을 꿇고 싶을 만큼 경건한 힘이 느껴졌으나,
“뭐냐?”
거칠 것이 없었다.
어차피 죽었는데 뭐가 무섭겠는가.
“난 축구의 신이다.”
축구의 신이 당당하게 자신을 소개하자 이시윤은 미간을 좁혔다.
“리오넬 메시? 걔 아직 안 죽었는데. 사칭하지 마라. 어디서 약을 팔아, 이 새끼가.”
“...그 아인 나의 아들이다.”
“뭐야? 그럼, 당신 탈세범이야?”
“...말을 말자꾸나.”
축구의 신은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신계에서 즐겨보던 녀석이라 대충 성격은 알았지만, 겪어보니 더 지랄 같았다.
“농담이야. 근데, 어이없긴 해. 축구의 신이라니. 뭔 그딴 신이 다 있어? 아, 그럼 혹시 빠따의 신도 있나?”
“당연히. 물론 신위는 나보다 밑이다.”
“옳게 된 신계네. 세계 인기 순위 8위짜리는 우리 밑에 있는 게 맞지.”
“암암. 그렇고말고.”
처음 만났지만 둘은 오래된 친구처럼 낄낄거렸다.
“큼큼. 아무튼. 내가 너의 영혼을 소환한 이유는 간단하다. 한 번 더 기회를 주기 위함인 것이야.”
“무슨 기회?”
“과거로 돌아가 다시금 삶을 누릴 기회. 하겠느냐?”
“글쎄?”
매혹적인 제안이었으나, 이시윤은 쉽사리 승낙하지 않았다. 상대의 존재에 대한 의심을 가진 것은 아니다.
그저, 마냥 편리한 서비스 따위는 세상에 존재할 리가 없다고 생각했을 뿐.
조건을 채우지 않는다면 다시 죽는다거나. 영혼을 뺏긴다거나. 아무튼 뭔가 뜯어내리라 봤다.
하지만, 기우였다.
“의심하지 말아라. 나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으니.”
“너무 좋은 조건인데. 도대체 왜?”
“네가 세상에서 가장 웃기게 죽은 현역선수다. 즉, 우리를 웃겨준 상이니라.”
“씁.”
이시윤은 배를 부여잡고 폭소를 터뜨리는 축구의 신을 쏘아봤다.
그나저나, 참으로 좋은 기회다.
다시 한번 삶을 살 기회라니.
이보다 더 좋은 것이 또 어디 있을까.
걷어차면 멍청이겠지.
“다시 한번 묻지. 수락하겠는가?”
“콜.”
“좋다. 잘 살아라.”
축구의 신이 손을 휘휘 내젓자 이시윤의 영혼에 밝은 빛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아, 마지막으로 한 가지 묻지. 이번에도 축구를 할 것이냐?”
“당연하지.”
“어째서인가?”
이시윤은 한쪽 송곳니를 드러내며 씨익 웃었다.
“업적작 마저 끝내야지.”
우승컵이란 우승컵은 다 모았다.
월드컵 우승컵 빼고.
- 작가의말
안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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