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엘I

어느새 로리 영주가 되었습니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엘I
작품등록일 :
2017.11.18 19:16
최근연재일 :
2019.12.07 05:31
연재수 :
67 회
조회수 :
26,180
추천수 :
328
글자수 :
407,411

작성
17.12.02 06:04
조회
387
추천
3
글자
12쪽

뜻밖의 외출 2편

DUMMY

버스터가 마음에 들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사라지는 것을 원하는 것은 결코 아니었다.

“으...!”

그런 생각으로 머리가 가득 찬 아델라는 그 비좁은 공간을 빠져나가기 위해 악착같이 기었다.

“왜 쓸데없이 나가가지고!”

흙에 더러워지는 옷과 피부, 머리카락을 아랑곳하지 않고 열심히 기어간 결과. 곧 반대편으로 머리를 내밀 수 있었다.

머리를 내미니 보이는 것은 늘어서있는 건물 사이로 난 골목들. 그리고 어느새 본격적으로 쏟아지기 시작한 비였다.

“하여간 꼭 문제를 일으켜도 이런 날....”

쏟아지는 비 덕분에 땅이 온통 진창으로 변했고 몸이 젖어 슬슬 한기가 도는 것은 덤이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몸에 묻은 흙이 그런대로 씻겨 내려가 신경이 덜 쓰인다는 점 정도였다.

부욱

“엑?!”

틈에서 기어 나오던 아델라가 그 기분 나쁜 소리에 놀라 뒤를 돌아보자 바닥에 붙어있던 날카롭게 튀어나온 벽에 옷이 찢어지고 말았다.

완전히 틈에서 나와 제대로 확인해보니 마치 치파오처럼, 치마 오른쪽이 허벅지 위쪽부터 쭉 찢어져있었다.

“....”

그 시대에도, 지역에도, 신체연령에도 맞지 않은 파격적인 복장에 할 말을 잃었다.

그렇게 아델라가 잠시 제정신을 못 차리고 있던 사이. 누군가가 철퍽대며 진창을 걷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 철퍽대며 걷는 발소리가 자신에게 다가오는 것 같았기에, 아델라는 자연스럽게 발소리가 있는 쪽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응?”

아델라가 고개를 돌리자 눈에 띈 것은 사람이 아니라 다른 동물이었다.

“...돼지?”

흔히 여러 매체에서 보았던 그 친근해보이던 돼지는 아니었다.

하지만 튀어나온 코와 엄니, 덥수룩한 털은 돼지, 그 중에서도 멧돼지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설마 성 안에까지 야생 멧돼지가 들어오지는 못했을 테니 틀림없이 다른 누군가가 소유한 돼지였다.

아델라는 물론 실제로 돼지를 보는 것은 처음이었으나 그다지 신경 쓰진 않았다.

왜냐하면, 돼지였으니까.

그러나 돼지 쪽은 그렇지 않았는지 아델라에게로 천천히 다가왔다.

그리고 아델라가 찢어진 치마를 어떻게든 해보기 위해 치마를 이리저리 움직이자 갑자기 ‘꾸힉’하는 괴성을 지르더니 곧장 달려오기 시작했다.

“뭐, 뭐야?!”

그런 돌발적인 돼지의 행동에 당황한 아델라가 급히 도망치기 시작했다.

아델라는 전혀 알지 못했으나, 중세 시기만 하더라도 가축으로 기르던 돼지는 야생성이 강하게 남아있어 상당히 위험한 존재였다.

그나마 다행히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느낀 아델라는 있는 힘을 다해 뛰었지만, 계속해서 가까워지는 발자국 소리로 인해 돼지가 자신보다 빠르다는 사실을 것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쏟아지는 비로 시야가 흐릿한 것도, 땅이 온통 진흙탕인 것도, 입고 있는 옷도 모두 불편했기 때문에 더욱 그랬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고 판단한 아델라는 급히 진로를 변경했다.

“으읏!”

그 때문에 관성을 이기지 못하고 건물 벽에 부딪히긴 했지만 부딪히는 즉시 벽을 밀며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약간 넓어진 골목으로 나온 아델라는 슬쩍슬쩍 뒤를 확인하며 돼지가 자신과 달리 관성을 못 이기고 그대로 달리거나, 넘어지는 것을 기대했다.

그러나 돼지는 아델라와 똑같이 급하게 방향을 틀어 몸을 벽에 부딪쳤지만 곧바로 괴성을 지르며 달려오기 시작했다.

“흐아?!”

돼지의 모습을 확인하며 달리던 아델라가 갑자기 고꾸라졌다.

앞을 제대로 주시하지 않아 발밑에 있던 도랑을 미처 확인하지 못한 탓이었다.

뭐라고 형용하기 힘든 고약한 냄새가 풍기는 흙탕물에 얼굴을 박은 아델라는, 곧 자신이 돼지에게 쫓기고 있다는 것을 떠올리고 급히 고개를 들었다.

“...!”

뒤를 돌자 순식간에 가까워진 돼지가 보였다.

일어나서 달리기도 전에 돼지가 자신을 따라잡을 것이 확실했다.

그렇게 아델라가 의욕을 잃고 돼지가 자신을 해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실낱같은 희망에 자신의 생명을 걸려던 순간.

“물 뿌린다!”

갑자기 들려온 그 외침과 함께, 근처에 있는 건물의 창문에서 정체를 알고 싶지 않은 탁한 액체가 뿌려졌다.

“꾸히익!”

그 액체는 기막히게도 자신에게 달려오던 돼지의 얼굴에 뒤집어썼고 갑작스럽게 날벼락을 맞은 돼지는 그야말로 멱따는 소리가 뭔지 보여주며 이리저리 날뛰기 시작했다.

그 광경을 잠시 멍하니 쳐다보던 아델라는 곧 정신을 차리곤 벌떡 일어나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여전히 어쩔 줄을 몰라 하며 이 건물 저 건물 들이받던 돼지를 확인하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던 찰나.

“아델라!”

빗소리와 발자국 소리 사이로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자신의 이름을 부른 누군가를 찾기 위해 지나친 골목으로 뒷걸음질을 쳐 돌아가자, 골목 가운데에 가만히 서있던 검은 고양이가 눈에 들어왔다.

“너, 너!”

그리고 버스터를 본 아델라가 바로 화를 내려했다.

그러나 그때. 버스터가 서있는 아래로 옅은 붉은 물이 흐르고 있는 것이 보였다.

“너...다쳤어?”

“약간. 그보다 빨리 이쪽으로 와. 저 녀석이 정신 차리기 전에 몸을 숨겨야해.”

아델라는 그 말을 듣는 즉시 버스터가 있는 골목으로 몸을 숨겼다. 돼지가 다시 자신을 따라오는 것만은 절대 사양이었다.

“따라와. 큰길까지 데려다줄게.”

버스터는 골목을 따라 걸었고 아델라는 계속 버스터를 쫓았다.

“너 죽을 뻔한 거 알고 있어?”

버스터가 슬쩍 돌아보며 아델라에게 물었다.

“...위험하다고 생각은 했지만 그 정도야?”

분명 그 돼지가 위험하다는 생각은 했으나 자신이 돼지에게 죽을 거라고 생각하진 않았던 아델라였다.

“저렇게 배가 고파서 먹을 걸 찾아다니는 녀석들은 사람도 잡아먹는다고? 너 같은 어린애들 말이야.”

그 돼지가 자신을 먹을 것으로 보고 미친 듯이 따라왔다는 사실에 아델라가 몸서리를 쳤다.

“저, 정말로?”

아델라는 차마 돼지가 사람을 잡아먹는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아 되물었으나 버스터의 대답은 충격적이었다.

“몇 달 전에 잡아먹힌 애가 한 명 있었지.”

돼지한테 잡아먹혀 죽는다. 이 얼마나 어이없는 사인인가. 아델라는 자신이 그렇게 죽을 뻔했다는 사실이 믿기지가 않았다.

“그, 그럼 혹시...네가 구해준 거야?”

등장한 타이밍이 아무리 생각해도 자신을 지켜보고 있던 것 같았고 혹시 이 말하는 고양이라면 뭔가 특별한 능력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기에 든 의문이었다.

“내가 돼지 얼굴에 X물을 뿌려서 널 구해줬느냐고 하면, 당연히 아니지.”

“...그럼? 날 지켜보던 거 아니었어?”

“어떻게 도와줄지 고민하면서 지켜보긴 했지. 마지막에 네가 넘어졌을 때는...그 녀석 눈이라도 할퀴려고 준비하고 있었고.”

아무래도 그 기가 막힌 오물투척은 정말 우연이었던 모양이었다.

그렇지만 버스터가 자신을 구하기 위해 그런, 직접 돼지의 눈을 할퀴려고 하고 있었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괜히 머쓱해졌다.

“그, 그런데...그 상처는 뭐야? 왜 다쳤어?”

목 근처에 상처가 있는지 그 근처만 색이 훨씬 진했다.

“다른 성격 나쁜 고양이한테 다쳤어. 내 친구가 자기 구역을 침범했다나.”

혹시 돼지에게 다친 건가 했지만 그건 아닌 모양이었다.

그런 대화를 나누며 걷던 중. 버스터가 멈춰 섰다.

“이 앞으로 나가면 큰길이야. 넌 길을 모를 테니까 아무나 붙잡고 성문으로 데려다 달라고 해.”

그리고 그 말을 들은 아델라가 당황하며 소리쳤다.

“성까지 데려다 주는 거 아니었어?!”

설마 버스터가 자신을 혼자 보내리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기에 그 충격은 더욱 컸다.

“여기는 성 입구에서 거의 정확히 정 반대거든. 넌 아니겠지만 난 많은 사람, 말, 마차가 오가는 길을 가려면 목숨을 걸어야한다고? 짧은 거리도 아니라 그건 힘들어.”

“그럼 왔던 길로 되돌아가서...! 아....”

물론 골목길로도 성까지 돌아갈 수 있겠지만 그곳에는 방금까지 아델라를 먹잇감으로 봤던 돼지가 있었다.

골목길로 가다가 다시 돼지를 만나지 말란 법은 없었다.

“돼지가 네 냄새를 기억할지도 모르고, 가능성이 그렇게 높진 않지만 이 피 냄새를 맡고 따라올 수도 있어.”

버스터가 자신의 상처를 눈짓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말하지만 돼지가 널 공격할 때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기껏해야 틈을 보다가 급소를 공격해보는 것뿐이야. 그걸 믿을 바에는 그냥....”

“알았어, 알았어. 시키는 대로 할게.”

아델라가 생각하기에도 그냥 대로로 가는 것이 나을 듯싶었다.

그리고 그렇게 버스터의 제안대로 움직이기 위해 대로로 나가려던 아델라를 버스터가 멈춰 세웠다.

“잠깐만.”

아델라가 다 결정됐는데 뭐 더 할 말이 남았냐는 듯 물었다.

“...뭔데?”

“아무래도 네가 첫 외출이라 신경을 좀 쓴 것 같은데, 내 생각에는 가리는 게 좋을 것 같아.”

“....”

물론 그 말은 아델라의 찢어진 옷을 가리키는 것이었다.

“...아주 비꼬는 솜씨가 예술이네.”

아델라가 그렇게 중얼거리자 버스터가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예술에 일가견이 있지.”

그 대답에 아델라는 고개를 내저으며 포기했다.

“그래 잘났어....”

그리고 버스터의 충고대로 찢어진 곳을 가리려던 아델라가 행동을 멈췄다.

“어떻게 가리지?”

“저걸 써.”

버스터가 앞발로 아델라의 뒤쪽을 가리켰다.

그곳에 있는 것은 줄에 널려있던 큼지막하고 누런 천이었다.

“...다른 사람 거잖아?”

“저런 것 따위를 영주님이 써주신 다는데 오히려 영광이지.”

버스터의 말대로 영주가 이런 물건을 마음대로 쓰는 것이 문제없을지도 모르지만 역시 신경 쓰이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정 신경 쓰이면 돌아가서 보상해주면 되잖아?”

잠시 고민해봤지만 역시 그게 최선이었다. 어차피 가진 것도 없는 아델라가 합법적으로 몸을 가릴만한 뭔가를 구할 수는 없을 테니 말이다.

“설마, 도둑으로 잡히는 건 아니겠지?”

천을 잡으려던 아델라가 멈칫거리며 물었다.

“네 꼴을 보면 분명 영주님으로 봐주진 않겠지만...비가 이렇게 오는데 아직도 안 걷은 걸 봐봐. 네가 가져가는 줄도 모를걸?”

결국 아델라는 천을 힘껏 잡아당겼다.

“이 정도면 됐겠지.”

천을 뒤집어쓰고 벗겨지지 않도록 앞자락을 붙잡은 아델라가 이리저리 둘러보며 중얼거렸다.

“그럼, 난 그 고양이한테 복수를 하러 가야겠어. 내 걱정은 하지 마. 곧 돌아갈 테니까.”

다시 오던 길을 돌아가려는 버스터를 보며 아델라가 한마디 했다.

“...그러든가.”

버스터가 사라지는 것을 확인한 아델라는 바로 대로로 빠져나왔다.

그러자 비가 쏟아지고 있음에도 꽤 많은 사람들이 길을 오가고 있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그리고 그 중에서, 아델라가 자신을 성문까지 데려다 줄 사람으로 점찍은 것은 길 한쪽에 있는 간이천막에서 모닥불을 쬐고 있던 한 남자였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그 남자를 굳이 선택한 이유는 바로 기사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베르너나 칸터와 비슷한 수준의 갑옷을 차려입었을 뿐이었지만 왠지 그것만으로 꽤나 신뢰가 갔다.

“저기 부탁이....”

그 간이 천막으로 들어온 아델라가 기사로 보이던 남자에게 다가가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뭐?”

40대 초반 정도로 보이던 남자는 고개를 돌려 아델라를 쓱 보더니 본체만체하며 한 마디 했다.

“너무 빠른 거 아니냐 꼬마야?”

“...?”

남자가 어떤 오해를 했는지는 알 수 없었으나 이 상태론 아델라의 이야기를 들어줄 생각은 전혀 없는 듯했다.

“흠, 흠. 기사 맞지? 의뢰가 있어.”

아델라는 아예 확실히 분위기를 잡기로 했다.

“의뢰?”

“그래. 의뢰.”

저자세로 나가봤자 이 남자는 눈하나 까딱하지 않을 게 분명했다.

“...몰락한 귀족 아가씨인 모양인데, 어떤 의뢰를 하려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난 푼돈 가지고는 안 움직여.”

그 말을 들은 아델라는 속으로 자신이랑 말하는 게 누군지도 모르고 몸값을 높이려는 남자를 실컷 비웃었다.

“난 몰락한 귀족 따위가 아니라....”

그러나 거기까지 말하던 아델라가 뭔가 이상한 점을 눈치 챘다.

“어, 어라? 어라?!”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1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어느새 로리 영주가 되었습니다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38 사냥 1편 18.05.31 228 1 13쪽
37 믿음직한 친구 편 18.05.16 214 4 16쪽
36 이행 4편 18.05.13 195 6 14쪽
35 이행 3편 18.04.01 180 3 14쪽
34 이행 2편 18.04.01 177 2 15쪽
33 이행 1편 18.03.29 206 4 17쪽
32 서신 4편 18.03.25 247 4 14쪽
31 서신 3편 +1 18.03.18 235 4 13쪽
30 서신 2편 18.03.11 217 5 13쪽
29 서신 1편 18.03.04 292 6 12쪽
28 교육 4편 18.02.25 239 4 14쪽
27 교육 3편 18.02.11 244 2 14쪽
26 교육 2편 18.01.27 268 5 12쪽
25 교육 1편 18.01.14 280 4 13쪽
24 회수 5편 18.01.10 304 4 14쪽
23 회수 4편 18.01.06 279 4 14쪽
22 회수 3편 +1 18.01.03 308 3 13쪽
21 회수 2편 +1 17.12.21 328 2 12쪽
20 회수 1편 17.12.15 352 2 12쪽
19 뜻밖의 외출 6편 17.12.12 348 4 14쪽
18 뜻밖의 외출 5편 17.12.07 415 2 10쪽
17 뜻밖의 외출 4편 17.12.06 370 6 12쪽
16 뜻밖의 외출 3편 +1 17.12.04 479 4 12쪽
» 뜻밖의 외출 2편 +1 17.12.02 388 3 12쪽
14 뜻밖의 외출 1편 17.12.01 443 4 16쪽
13 버스터 3편 17.11.30 467 5 10쪽
12 버스터 2편 17.11.29 477 4 14쪽
11 버스터 1편 17.11.27 552 5 19쪽
10 이곳은 중세 5편 17.11.26 624 8 16쪽
9 이곳은 중세 4편 17.11.24 663 8 13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