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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채색의 마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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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masquerR
작품등록일 :
2018.08.02 17:46
최근연재일 :
2020.05.08 0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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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5.30 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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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경계#2

DUMMY

인부들은 바쁘게 움직일 무렵, 시오르는 출입을 제한하는 줄 앞에 서서 구경했다. 석궁과 갈고리가 달린 밧줄을 맨 용병들은 바쁘게 유적 근방을 들렸다. 뒤따르는 수레에 실린 짐승들의 몰골은 여러 의미로 참담했다. 변질되어서 턱을 삐져나온 이빨과 머리를 가르고 자란 뿔은 불길할 지경이다.


핏물이 뚝뚝 떨어지는 와중에도, 그것들을 해체해서 열심히 담고 있었다. 라흐벨이 설명하길 저렇게 식량을 때우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아니면 내다 팔아서 추가 보수가 되는 식이기도 했다. 그렇기에 비릿한 피 냄새에도 용병들은 기분이 좋아 보였다.


반면 탐사단은 무척이나 피곤해 보였다. 나무를 베어서 밑동을 책상으로 쓰고 있었는데, 그 앞에 있는 이들의 표정은 곤란함이 묻어나왔다. 거리도 제법 가까웠던 만큼 그들이 하는 대화도 잘 들렸다.


"아무리 생각해도 여기거든?"

"계산이 틀렸을 확률은 없어?"

"카노드가 밤낮을 새가며 한 계산이야. 틀렸다면 전제가 잘못된 게 분명해."

"지금까지 기록에 문제가 없었잖아."

"끙.... 그럼 다시 생각해보자. 라비스터네 방언이라면 이거 머리 깨나 깨지겠는데."


바닥에 놓인 석판과 탐사 도구로 보아, 이 근방에 무슨 유적이 있어서 조사하는 것 같이 보였다. 그들 뒤로 펼쳐진 깊은 구덩이는, 분명 유적을 찾기 위해 파놓은 땅이 분명했다.


"라비스터네라.... 어디서 들어봤는데...."

"나투르 대륙의 최초의 제국이지."

"깜짝이야!"


레아는 뒷짐을 진 채로 그의 주변을 맴돌았다. 갈색 바지와 걷어붙인 소매는 그녀가 이곳에서 일하는 것처럼 보이게 했다.


"언제 왔어?"

"나르시아 님이 눈치채셨길래, 내가 데려온다고 했지. 물론 구경할 만큼 다 보고 갈 거지만."

"고마워."

"이런 거 가지고 뭘."


그녀는 메고 있던 가방이 무거웠는지, 그녀는 그것을 내려놓았다.


"그보다 라비스터네가 왜?"

"아, 저분들이 이야기하고 있길래."

"상당히 옛날 유적을 찾는 거구나."

"레아도 관심 있어?"

"아냐, 나도 알고만 있어. 5백년 전의 세계라는 건 그렇게 쉽게 짐작할 수 없으니 말이야."

​​

그녀의 말에 시오르는 눈을 감고 생각했다. 역사 속에서 지워진 시대, 그리고 그 시대를 상징했던 한 문명. 그 짧은 몇 줄만으로 가슴이 벅찬 느낌을 받았다. 미지의 세계. 소년이 가지기엔 나쁘지 않은 야망이다.


카노드는 안경을 고쳐 쓰며 터덜터덜 조사 구역으로 돌아왔다. 그러다가 시오르와 레아를 발견하고는 방향을 틀어서 다가왔다.


"마을로 돌아갈 마차를 준비해뒀는데, 아직 볼 일이 있으신가요?"

"아, 아니에요. 어떤 일을 하시는가 궁금해서."

"사실 보시는 대로죠. 과거 기록 찾아서, 파고, 뒤지고, 꺼내고."

"그래도 굉장하시네요. 라비스터네의 언어만 해도 꽤나 대단하잖아요. 언어를 익히는 게 이름난 마법사도 힘들어하는 일인데."


레아의 칭찬에 카노드는 기분이 좋았는지 입꼬리가 올라갔다.


"아니, 뭐.... 그렇게까지 대단한 건 아니고...."

"카노드 씨, 그런데 정확히 뭘 찾으시는 건가요?"

"아, 신들의 마법이 남겨져 있었다는 신전입니다."

"초월마법과 계승마법인가요?"

"아주 정확해, 레아 양. 초월 마법에 대한 단서만 나와줘도 감지덕지 하지만, 만약 아직 유적 안에 신들이 내려준 힘이 남아있다면 그대로 계승 받을 수 있어. 마법의 역사를 뒤집을 만한, 모든 고고학자들이 탐내는 일이지."


어깨에 힘이 들어간 그는 무언가 아쉬웠는지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뭐, 어디까지나 우린 전설이나 민담 같은 거에 의존하다 보니 확률이 너무 낮지만 말이야. 비리든 가문처럼 특수한 재질의 강철이라도 발견하면 좋을 텐데."

"특수한 강철이요?"

"마력을 흡수하는 강철이야. 이게 단지 마공학 장비처럼 보관하는 거라면 괜찮지만, 검이나 갑주로 쓰면 상대의 공격을 마력째로 집어삼키는 무시무시한 재질이야."


그 말에 시오르는 무언가 떠올랐다. 분명 미세 가문의 두 사람도, 그런 걸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그것 때문에 그 꼴을 당한 거였으니 더욱 선명했다.


"하지만 기이한 건, 잡는 것만으로 마력을 흡수해버린다는 거지. 사용자도 온전치 못해. 그런데 그게 가공된 형태가 있는 거로 봐서는, 분명 과거에는 누군가 사용한 것 같아."

"혹시.... 그 강철, 미세 가문이랑 관련이 있나요?"

"미세? 글쎄요. 그쪽이 비리든에서 갈라져 나온 가문이긴 하지만, 그렇게까지 영향력을 가진 게 아닐 텐데...."


자신의 질문에 곰곰이 생각하던 카노드. 그는 역시 모르겠다며 팔을 내저었다. 다소 이해할 수 없다는 시선이 부담스러웠던 시오르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여러 사건이 있었거든요. 그런데 비슷한 소문이 있길래 궁금해서요."

"소문이라.... 너무 의존하지 않는 게 좋습니다. 안 그래도 이상한 소문 많이 떠돌아다녀서 괜히 머리도 아프고."

"하지만 사실일지 모르잖아요?"

"뭐, 그래도 대부분 가짜니까요. 그래도 귀족들이 수상한 모의를 한다던가, 어디서 병사들이 모인다던가. 이런 소문은 사실이 아니어도 불쾌하죠. 진상을 알아보기 위해서 다들 바빠져야만 하고. 괜히 혓바닥을 나간 말은 군마보다 잔인하다는 말이 있는 게 아닙니다."


자꾸만 삐뚤어지는 안경을 아예 벗어다가 제대로 쓴 카노드. 그의 표정에서는 찝찝함이 느껴졌다. 귀족들의 지원을 받는 만큼, 정치적인 일에 민감할 것이다. 그렇게 생각했기에 시오르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대신 레아가 시오르의 옆구리를 살짝 찌르며 속삭였다.


"시온, 슬슬 돌아가자."

"그래. 그럼 오늘 감사했습니다."

"저야말로 오늘 뵙게 되서 영광이었습니다. 시오르 님."


-------


마차 안으로 들어가자, 시오르와 레아는 반가운 얼굴을 마주했다. 조나단은 두 사람을 알아보고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그들을 반겼다.


"할아버지!"

"별일 없는 것 같아서 다행이구나."


레아는 조나단의 품에 안겨서 부비적거렸다. 검은 두건을 벗은 그는 앞에 놓인 일행을 보고는, 잠시 레아를 옆으로 움직였다. 한쪽 무릎을 꿇은 채로, 오른손을 가슴에 얹고는 고개 숙여 인사하는 모습은 상당히 정중해 보였다.


"조나단 커크. 리버스 가문의 여러분들을 뵙습니다."

"일어서세요, 조나단 씨. 제 동생이랑 레아가 많이 신경 쓰일 겁니다."

"그렇다면."


빠르게 정좌로 돌아온 그는 마차에 앉은 두 여자를 바라봤다. 세라스는 깍듯한 대접에 즐거운 미소를 짓고 있었고, 나르시아는 차분히 자신을 바라봤다. 레아는 할아버지의 팔을 잡고는 그간 어땠냐는 등 안부를 물었다.


그런 레아 옆에 앉아있던 시오르는 괜히 허전한 한 자리가 느껴졌다. 원래대로라면 있었을 라흐벨이 보이지 않았다. 뭔가 툭툭 말을 내뱉으면서도 잘 챙겨뒀던 그녀가 없으니, 조금은 아쉬웠다.


"일전에 시오르에게 도움을 주셨다니 감사합니다."

"별 일 아닙니다. 게다가 리버스 가문에는 여러 의미로 은혜를 입은 적이 있어서 당연한 보응입니다."

"저희는 한 게 아무것도 없습니다. 당연한 일이죠."

"신세를 진 적이 있으셨나요?"


시오르의 질문에 조나단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우리 같은 무리는 다른 분들이 보기엔 일종의 무장집단이라, 영지 내로 출입하는 건 허락받기 힘들어서 말이다. 하지만 리버스 가문은 이런 규제가 없지."

"자, 아무튼 마을로 빨리 가자. 피곤하다."


세라스는 하품을 하며 마차 안에 앉았다. 언니가 대뜸 무릎을 툭툭 건들자, 무슨 의미인지 알아차리고 자세를 정자세로 고쳤다. 조나단이 마차 뒤를 툭툭 두드리자, 마부는 그 소리를 듣고 마차를 움직였다.


"그보다 그녀는 보이지 않는군요."

"...그럴 일이 있었어요."


시오르가 대답을 주저했다는 사실에, 조나단은 눈을 게슴츠레 떴다. 하지만 그 모습은 일순간에 지나갔기에 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숙달된 용병은 앞으로 내려온 머리를 올리고 다시 두건을 썼다.


"그래서 목적지는 다시 리든입니까?"

"맞아. 이런 상황에서 네메시스티아나 코넥스로 가는 방법은 배뿐이야."

"나라 중앙이 휑하기만한 교차로로 쓰인다는 건 애매한 일이죠. 기왕 가신다면 퍼거스 루타비스라는 선장을 찾아보시는 게 좋을 겁니다."

"퍼거스 아저씨요? 저도 그 생각 했는데."


그 말에 나르시아는 깨물던 손톱을 치우고 조나단을 바라봤다.


"누구죠?"

"세비지, 제 사위의 친구입니다. 성격이 워낙 호쾌하고 대충 사는 녀석인데, 나름 뱃사람들 사이에선 호평이 자자한 친구죠. 인맥도 넓어서 안면 정도 트신다면 분명 좋을 겁니다."

"호오, 그건 좋은 일이네요. 리든에 도착하면 찾아가도록 하죠."


나르시아는 조나단이 영리한 사람이라 생각했다. 귀족에게 인맥은 곧 영향력이다. 용병에게 인맥이란 수많은 기회를 붙잡을 수 있는 가능성이다. 그렇기에 유독 이해관계가 일치한다. 그러니 조나단의 말 뒤에는 귀족과의 연을 늘리려는 속셈이 선명하게 드러났다. 귀족이 아니라면 단지 늙은이의 추천으로 들렸을지도 모르지만, 분명 그것은 노련한 용병의 속셈이다.


하지만 그녀는 그것을 거절할 바보는 아녔다. 서로에게 좋은 일이라는 건 드문 일이다. 게다가 이미 그는 손녀 레아와 친구인 시오르라는 튼튼한 고리가 있지 않던가. 일을 그만둬야 할 나이가 넘은 것 같이 보여도, 피부에 새겨진 주름과 흉터는 그가 살아남을 수 있었던 비결을 대충 짐작하게 해줬다.


다만, 기괴한 것은 레아였다. 시오르는 레아를 절친한 사이로 여기긴 했어도 연인은 아니다. 그랬더라면 평민이었던 어머니에게 이 사실을 기쁘게 말했을 녀석이다. 그럼에도 두 사람 사이에서 연인의 느낌이 나는 것은, 레아의 헌신과 행동 탓일 것이다.


며칠간 다녀보며 느꼈던 불편함이 어째서인가 이런 일로 정체가 밝혀지는 것 같았다. 조나단은 레아와 시오르의 관계를 자신의 이익을 위해 이용하지 않는 좋은 사람이다. 그와 동시에, 그것을 영원할 것이라고 기대하지 않는 냉철한 사람이다. 마치 언제라도 깨질 수 있다는 생각을 하는 것 같았다.


"시오르."

"네?"

"아, 아니야. 혼자 뭐 좀 생각하느라."


무심코 입 바깥으로 나온 말에 시오르가 반응하자 그녀는 당황했다. 하지만 시오르는 살짝 웃으며 대답했다.


"난 그렇게 걱정 안 해도 돼."

"그래. 그래 보여."


나르시아는 쓰려오는 속을 진정시켰다. 늘 이런 식이다. 그는 남을 걱정하는 것에 재능이 있다고 말할 정도로 이타적이었다. 비록 기억을 잃고 그 수준과 정도가 약해졌어도, 사람의 본성은 바뀌지 않는다는 것을 몇 번이고 입증했다. 몇 번이고 그는 용서하고 위로했다.


비록 그의 추측은 틀렸어도, 그의 말은 간단했다. 무심코 자신의 이름을 되뇔 정도로 자신을 생각해주고 있다. 그러니, 걱정을 끼치고 있으니 너무 걱정하지 말라는 말이다. 성자라도 되는 마냥 후광을 두르는 것 같았다.


옛날의 시오르가 떠오를수록, 나르시아는 속이 불편했다. 자꾸만 그 빛이 자기 뒤로 그림자를 늘어트리는 것 같았다. 족쇄같이 무겁고 텁텁한 그림자를.


당사자는 그 사실도 모른 채, 덜컹거리는 마차 안에서 생각이 깊어져만 갔다. 잃어버린 과거, 죽을지도 모르는 두려움, 새로운 곳으로 나아가는 걱정. 비일상이 가져다주는 감정은 온전히 밝고 즐거운 것이 아니다. 그 사실을 납득했기에 가슴이 무척이나 뛰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그런 생각은 옅어져 갔다. 책 속에만 있던 영웅들의 일대기를 떠올리는 것만으로 그는 미래를 긍정적으로 바라봤다. 고난 끝에 행복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험난한 여정 속에서도 같이 있어 주는 이가 있다. 자신에게 대입하는 것만으로 그에게서 많은 짐이 사라졌다.


무엇보다 자신을 생각해주는 친구가 있다. 자신을 위해 노력하는 가족이 있다. 잊기 힘들 정도로 좋은 인연이 있다. 세상의 주인공은 자신이 아니더라도, 자신의 삶에선 자신이 주인공이기에 이 행복을 감사히 취했다. 누군가는 누리지 못했을 이 삶을 불평하는 것은, 이런 삶을 만들어준 이들과 이렇게 살지 못한 이들을 모두 모욕하는 것이니까.


마차는 덜컹거리며 우거진 풀숲을 헤쳐나갔다. 포장된 도로는 마차가 덜컹거리지 않게 그들을 이끌었다. 새는 다가온 마차에 놀라서 날아갔다. 그리곤 붉은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리며 멀어져가는 마차를 바라볼 뿐이다.


작가의말

정신차려보니 벌써 여름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여러분들은 여름 대비 하고 계신가요?

오늘도 어김없이 보러와주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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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 후기 20.05.08 92 0 1쪽
80 마지막 여명#5(完) 20.05.07 77 0 14쪽
79 마지막 여명#4 20.04.30 53 0 20쪽
78 마지막 여명#3 20.03.26 27 0 15쪽
77 마지막 여명#2 20.03.19 65 0 12쪽
76 마지막 여명#1 20.03.12 35 0 16쪽
75 잘못된 시작들#8 20.03.05 49 0 17쪽
74 잘못된 시작들#7 20.02.27 44 0 16쪽
73 잘못된 시작들#6 20.02.13 39 0 16쪽
72 잘못된 시작들#5 20.02.06 44 0 13쪽
71 잘못된 시작들#4 20.01.30 43 0 15쪽
70 잘못된 시작들#3 20.01.23 37 0 14쪽
69 잘못된 시작들#2 20.01.16 42 0 15쪽
68 잘못된 시작들#1 20.01.09 42 0 15쪽
67 갈라지는 비극#3 19.12.01 32 0 12쪽
66 갈라지는 비극#2 19.11.28 30 0 16쪽
65 갈라지는 비극#1 19.11.21 31 0 13쪽
64 정말로 잃어버린 것#9 19.11.14 43 0 19쪽
63 정말로 잃어버린 것#8 19.11.07 55 0 14쪽
62 정말로 잃어버린 것#7 19.10.24 38 0 14쪽
61 정말로 잃어버린 것#6 19.10.17 37 0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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