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masquer_R

무채색의 마법사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완결

masquerR
작품등록일 :
2018.08.02 17:46
최근연재일 :
2020.05.08 00:06
연재수 :
81 회
조회수 :
9,392
추천수 :
82
글자수 :
474,693

작성
19.11.14 09:18
조회
42
추천
0
글자
19쪽

정말로 잃어버린 것#9

DUMMY

시오르는 아무 말 없이 마력의 흐름을 살폈다. 마력 자체를 변형하는 것은 영혼에 조작을 가하지 않는 이상, 성립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런 마법은 마법이라 불리지 않고, 저주라고 말해지지만 시오르는 그 발상에서 한 가지 묘수를 떠올렸다. 분명 나르시아라면 마법진을 구동하여 유지하는 식으로 갔을 것이라고.


그는 짐승이 변질되는 원리를 이용하기로 했다. 우연히 얽힌 마력 탓에 짐승이 변질되고, 그 얽힌 형태와 내용에 따라 어떤 상태가 되느냐 결정된다. 문제는 이를 의도적으로 유도하는 방법인데, 이를 위해서 한동안 그는 자신의 서재를 뒤져야만 했다. 야생동물 서식지에 관한 자료부터 짐승들의 해부기록, 통상적인 마법진 구조까지 알아봤다.


마법진은 마법을 포장하는 일이다. 그것을 편히 들고 다니기 위함인지, 타인도 쓸 수 있게 하기 위함인지는 시전자에 따라 다르다. 어쨌든 영창과 마법진이 발명된 것은, 짐승들이 변질되는 것에서 착안한 일이다. 처음부터 짚으며 나아가는 게 중요하다 여긴 시오르는 자신의 다짐을 다시 떠올렸다.


"역설, 반전."


완전히 마력의 흐름을 막으면 오히려 더 위험하다. 일부만 거꾸로 흐르게 하거나, 흐름 자체를 완전히 뒤집어야 한다. 지켜봤던 마력이 시오르의 마법에 의해 역류를 시작했다. 이제 그가 해야 할 일은 두 흐름이 충돌하지 않게 막는 것이다.


이미 숱한 실패로 인해, 마력석 부스러기가 바닥을 가득 채웠다. 여러 방법으로 시도했지만, 여전히 시오르의 수준으로 성공할 수 없었다. 레아도 한쪽 구석에서 홀로 열심히 시도해봤지만, 엎어지면서 마력석 두 개를 깨부순 탓인지, 주눅 든 채로 쓰는 마법은 하나 같이 그 전보다 더 못났다.


"잠깐, 잠깐! 이러면 안 되는데!"


결국 마력석 하나가 또 박살이 나며 바닥에 떨어졌다. 흐름을 완전히 반전시키지 못해, 기껏 만든 흐름이 난폭하게 튀며 마력석을 터트린 것이다. 이 모습을 앉아서 지켜보던 세라스는 한숨을 쉬었다.


"야, 마법진으로 유지하려고 해도 말이지. 그 정도 세세한 작업은 간단하게 되는 게 아니잖아."

"역시 혼자서는 무리일까...."

"그러겠지. 나르시아 언니라도 와줬으면 좋겠는데, 바쁘다고 하니 진전이 없네."


세라스는 제복을 대충 의자에 걸쳐두고 앉았다. 소매가 팔꿈치와 무릎을 넘어가지 않는 짧은 옷은, 시오르로 하여금 라흐벨을 떠올리게 했다. 그녀와 다른 점이라면 단순히 시원한 차림을 했다는 점이다.


바닥에 널브러진 가루를 빗자루로 쓸어 담은 레아는, 그 안에 아직 마력이 남은 파편이 있나 훑어봤다. 혹여나 잔여 마력과 겹쳐서 사고가 나면 안 되기에, 나름 중요한 일이다. 시오르는 알렌이 건네준 마력석을 잠시 바라봤다. 다음엔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하던 중, 알렌은 그에게 말을 걸어왔다.


"형, 이 정도면 오늘은 쉬는 게 낫지 않겠어? 피곤해 보이는데."

"괜찮아. 아직 해도 안 졌고, 성과가 슬슬 나타나고 있어서 오히려 밤새워야 할 것 같아."

"...평소에는 자는 거지?"


그 말에 시오르가 어설픈 웃음을 짓자, 알렌은 한숨이 절로 나왔다. 단시간 내에 결과가 나오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는 법이다. 아무리 천재라고 하더라고, 시간을 들이는 일까지 참견할 수 없다.


어떻게 보면, 지금의 시오르는 타인의 탄식을 절로 부르는 것 같다고 알렌은 생각했다. 어딘가 모자란 것도 그렇지만, 꽤 억척스러운 면도 보였다. 처음 보는 것을 탐내는 일은 이전에도 그랬지만 좀 더 절제되고 차분하게 탐색했다. 그러니까, 지금 시오르의 행동은 이전의 모습과 분명 달랐다.

​​

"레아 누나가 알면 기절할 거야."

"괜찮아. 같이 샜어."

"...그럼 이 자료들 전부?"

"응.... 흐갸아악!"


레아는 두 사람의 눈치를 살피다가 자신도 모르게 헛웃음을 지었다. 그 탓에 일어난 바람이 흙먼지를 끌고 올라왔다. 한순간에 마력석 가루를 뒤집어쓴 레아는 당황하며 켁켁거렸다.


혹시 모를 사고 탓에, 시오르는 다급하게 마력석 가루를 마법으로 밀쳐내고는 그녀의 상태를 살폈다. 혓바닥 깊이 들어간 가루를 본 그는 책상 위에 있던 물병을 끌어온 뒤, 그녀에게 마시도록 했다. 입안에서 우물거리던 레아는 다행히 가루를 모두 게워냈다.


"켁켁...."

"괜찮아?"

"정말 오늘은.... 너무 운이 없네...."

"맞아. 언니, 혹시 저주라도 걸린 거 아닐까 걱정스러운데."


의자에 앉아있던 세라스는 오늘 하루 동안 레아에게 있었던 일을 떠올렸다. 계단에서 엎어지고, 화단으로 발이 미끄러져서 가시에 찔리고, 시종이 잘못 내어온 음료를 마시는 등, 불운한 하루의 연속이다. 처음 봤던 때 이후로도 이러니, 정말 저주가 걸린 게 아닐까 걱정까지 될 정도였다.


"아냐, 그냥 지지리 운이 없는 거야."

"우선 혹시 모르니까 다시 확인해보자. 바깥에 있는 사람들 불러올게."

"부탁할게, 세라스. 그리고 레아."

"응?"

"잠시만 있어 봐."


시오르는 가죽 장갑을 낀 손으로 레아의 턱을 닦아주었다. 물과 함께 내려온 가루가 남아있었기에, 시오르는 깔끔히 털어주고는 레아를 바라봤다.


"됐다."

"아.... 어, 고마워."


알렌은 형의 행동에 놀랐다. 그의 스승이자, 자랑스러운 인맥 중 한 명인 프라하가 알려준 것은 의외로 쓸모없는 부분이 많았다. 그 중, 연애는 그와는 상당히 거리가 먼일이라 생각했는데 지금 보면 꼭 그런 것만은 아니라고 생각이 들었다.


사소한 행동에 반한다고 했던가. 알렌은 고개를 저었다. 이미 저건 그에게 빠진 사람이다. 세라스의 말처럼 시오르에게 과한 정성을 다하는 게 당연할 정도로. 이런 감정을 눈치도 못 챌 형은 분명 아니라고 느껴졌다.


세라스가 레아를 데리고 나갔을 때, 그는 살짝 떠볼까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도 그리 필요 없을 것 같았다. 시오르의 귓가는 붉게 피어올랐다.


"형, 나는 연애 대찬성이야."

"뭐, 뭐, 뭐?"


화들짝 놀란 시오르는 팔을 열심히 내저었다.


"형이 사랑을 하게 될 줄 몰랐는데. 이런 반응도 흥미롭고."

"...그렇지만 레아가 그만큼 좋은 사람인걸."


시오르는 장갑을 벗고 책상을 짚었다. 그녀와 열심히 공부한 끝에 많은 것을 알 수 있었다. 지금까지 다다른 것은 분명 그녀 덕분이다. 호감이 쌓이는 것은 당연히 시간문제였다.


"절친한 사이였고, 지금도 그래. 근데 레아랑 있다 보면 나도 모르게 의식하게 된단 말이야."

"어떤 의미로?"

"사실 기억을 잃기 전에 우린 애인이었던 게 아닐까?"

"그건 아닐 거야."

"정말?"


알렌은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형이 그렇게나 아끼는 사람이라면, 이 일에 대해 완전히 함구해달라고 하거나 소식을 대신 전해달라고 했겠지. 게다가 집에서도 이야기할 때는 정말, 맹우가 아닐까 싶을 정도였다고. 애인이 아니라."

"그건.... 신기하네."

"어쨌든 형도 연애할 줄 안다는 사실을 알아서 다행이야."

"그런 게 다행이라니. 과거의 나는 연애도 모르는 비정한 사람이라도 됐다는 것 같잖아."

"반은 맞지. 귀족 자제들끼리 모였을 때도 친구 이상은 안 갔고, 맨날 동네 애들이랑 놀러 다니고."

"슬픈데, 그 말...."

"칭찬이야, 칭찬. 아무튼 도와줄 일 있으면 말해."

"그러니까 네가 형 같다."

"내가 형 할까? 키도 크고 말이야."

"원하면 얼마든지."


두 남자는 그렇게 이야기하고는 사전에 약속한 듯이 주변을 정리했다. 간단한 잡담도 이어가며 일을 마친 그들은 다시 마력석 앞에 섰다.


"어디까지 해결했어?"

"우선 세라스와 누나의 상태를 재현하는 거에는 성공했다고 할까? 아니면, 재현에 가까운 상태가 되었다고 할까?"


마력의 흐름은 무척이나 안정적으로 유지됐다. 하지만, 그 흐름이 마법진의 형태로 흘러내리며 스스로 속성을 부여했다. 억지력이 부여한 특성 덕에 마력은 뜨겁게 뭉치기도 하고, 차갑게 흐르기도 했다.


"마법진의 크기는 상관없어. 결국 문제는 마력의 얽힘이 어딘가에서 새로운 흐름으로 이어진 거야. 흐름을 꼬아서 만들었으니까 당연한 일이긴 한데."

"분명 누나는 완전히 통제했다고 여기고 시도했지."

"그래. 그럼 예상치 못한 흐름이 생기는 건 역시 손을 뗀 그 순간이거나, 자연에 있는 마력과는 다른 개인의 마력에 다른 흐름이 흘렀거나 하겠지. 그래서 확인 겸, 상쇄하려고 반전을 시도한 건데...."


입맛을 다진 시오르는 머리를 매만지며 말을 이었다.


"복잡해. 우리가 그나마 이런 마법에 능한 가문이라서, 이 짧은 시간에 이 정도 자료를 구축한 거지만...."

"어쩔 수 없지. 이게 쉽게 해결됐으면 두 사람 다 마법 뻥뻥 재끼고 있을 테니까."

"그래도 실마리는 충분히 잡았어. 꼬인 흐름을 잠시 고정하고, 그사이에 이런 마법이랑 이런 준비를 거치면...."


책상에 놓인 자료를 건네준 시오르는 밝게 웃었다. 알렌은 자신의 견식으론 업적을 알아낼 만큼은 아니었기에 처음엔 놀랐으나, 그 뒤에는 혹시 모를 부작용과 대처법에 대해 더 빼곡히 조사한 게 보였다. 중간에 다른 글씨체는 분명 레아의 조언이고, 그사이에 적힌 사담들은 피식 웃음이 나오게 했다.


"왜?"

"아니, 너무 형다워서."

"그런가?"

"문제는 다음이겠지. 근본적으로 되돌리는 방법."

"시간 내로는 될지 모르겠네. 세 번째 달이 오고 이틀이나 지났으니...."


알렌은 시오르가 수도로 올라가야 하는 날짜를 떠올렸다. 세 번째 달, 그리고 열 번째 날이 오면 왕궁과 테사르노 본당으로 향하게 된다. 지워져 버린 낙인과 악녀 라흐벨, 그리고 세상을 떠도는 루니르노. 중대한 일이 그를 두고 움직였다.


게다가 이르미온이라 밝힌 암살자들에게 노려지는 것 같다는 말에 알렌도 당황했다. 괴담으로 남은 끔찍한 이름이, 세상에 떠오르기 시작한 이유가 그의 형 때문이면 억울함을 누구에게라도 토로하고 싶은 심정이다. 그런 나쁜 일은 더는 자신들에게 일어나고 싶지 않았다.


"그래도 아직 세 번째 날이야. 시간은 넉넉하단 말씀."

"정말 다행이야. 사람 둘 늘었을 뿐인데 이 정도나 결과가 나오니까."

"다른 마법사들은 이 이상으로 더 잘 알겠지?"

"당연하다면 당연하지. 다만, 다른 분야의 마법에 완전한 이해를 한다는 건.... 상상도 못할 인지력을 보인다는 의미지만. 그런 사람이 현자라 불러 마땅한 거고."


고개를 끄덕이던 알렌은 누군가 문을 여는 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푸른 제복이 흩날리자, 알렌은 대체 무슨 일로 온 것인지 이해하지 못했다.


"시오르, 알렌. 내가 사비를 쓰는 건 뭐라고 안 하겠다만, 마법공방을 쉬게 두지도 않고 며칠이나 있는 거지?"

"그럴 필요가 있으니까."

"그만큼 성과는 자신 있다는 소리겠지?"


알렌의 날 선 말투에 나르시아는 시오르를 노려봤다. 알렌의 입장에선, 자기가 화난 것을 시오르에게 화살을 돌리는 것으로 보였다. 당연한 일이지만, 시오르는 기분 상하는 느낌도 없이 웃는 얼굴로 자기가 적은 것들을 보여주었다.


"여기."


자료를 넘겨받은 나르시아는 조용히 종이를 넘겼다. 점차 옆으로 째졌던 눈매가 느슨하게 풀리며, 비대하진 동공을 보기 좋게 했다. 시오르는 마력석과 수정으로 고정한 마력의 흐름을 가리키며 말했다.


"레아 덕에 사람의 흐름이랑 최대한 비슷하게 하고, 지금 누나랑 세라스의 상태를 재현해냈어. 어딘가 잘못 꼬인 흐름이 있을 텐데 그 부분만 집어낼 수 있으면 해결책을 찾는 것도 어렵지 않을 거야."

"이걸 며칠 사이에 해냈다고?"

"우리한테 건네줬던 자료 덕분에 가능했어. 실험했던 부분에 세세한 부분만 바로잡으니까 가닥이 확실하게 잡혔어."


나르시아는 가슴이 먹먹해지는 게 느껴졌다. 몇 달간 혼자서 어떻게든 해왔던 일이, 고작 며칠 사이에 추월당했다. 그렇게나 노력해온 일이 기억도 없는 녀석에게 따라잡혔다고 생각하니 그녀로선 어이가 없었다. 허망한 감각만큼이나 비겁한 마음이 다시 기어 올라왔다.


"아직 해결책은 무리지만, 이걸 기반으로 어떻게든 연구하다 보면 답이 나올 것 같아."

"이런 걸 하고 있다고 보고라도 하지 그랬어? 직접 안 봤으면 마법사들을 대동해서 따질 일이야."

"미안. 가능하면 결과가 나오면 그러고 싶어서."


머쓱해진 시오르는 나르시아 앞으로 걸어왔다.


"뭐라도 도움이 되고 싶었어. 기억도 없고, 힘도 없어서 매번 보호만 받는 건 너무 민망해서...."

"가만히 있어만 줘도 합격이야. 내가 당장 너한테 계약마법을 바라는 것도 아니고, 우리 가문을 일으켜달라고 기대하지 않아. 넌 아직 보잘것없는 마법사니까."

"그보다, 정말 그 일로 온 거야?"

"온종일 동생들이 마법공방에만 있겠다고 하면, 가주로서 확인은 해야지."


알렌과 눈이 마주친 그녀는 고개를 돌렸다. 그도 더는 볼 것 없다는 듯이 고개를 돌리고 시오르에게 다가갔다. 어딘가 어색한 분위기에 시오르는 착잡함을 느꼈다. 그래도 걱정해줘서 방문해줬다는 사실에 조금은 안도하며 그녀가 고개를 돌리는 것을 봤다.


"그럼 별일 없으면 저녁 시간에는 맞춰 오겠다는 의미로 알겠어."

"아, 맞아. 누나."

"왜?"

"혹시 시간 나면 도와줄 수 있어? 세라스의 상태는 확인했는데, 누나의 상태는 아직 모르잖아."

"그 정도는 이미 알고 있는 거 아니야?"

"내가 툭 보고 다 아는 정도는 아니잖아. 게다가 누나가 있으면 분명 해결책을 쉽게 찾을 수 있을...."

"네가 해결책을 찾겠지."


나가려던 그녀는 발걸음을 돌려서 시오르를 향했다. 예상치 못한 반응에 시오르는 자신도 모르게 뒤로 물러섰다. 다가오는 그녀에게서 한기가 스며 나왔다.


"나 없이도 충분히 할 수 있잖아. 그 정도는. 가주가 어디 동네 순찰 다니는 자리도 아니고, 대체 왜 생각이 없어?"

"미...미안."

"아니면 뭐야? 또 네 독무대 꾸미는 노릇이나 하라는 거야? 내가 몇 달이나 한 일을 네가 끝내버려서 지금 얼마나 어처구니가 없는데."


격양된 목소리로 화를 내는 나르시아의 모습에 알렌은 혀를 차며 다가왔다.


"고작 그런 거 때문에 화내는 거야?"

"고작?"

"애초에 형이 노력해서 얻은 결과잖아. 그리고 누구보다 빨리 성과를 얻었다고 해도, 그건 곧 우리 가문의 일이고 세라스랑 누나 일이야. 감사하진 않아도 그런 일로 화내는 게 더 이상한 거 아니야?"

"알렌, 괜찮아."

"형!"


주눅 든 시오르는 고개를 숙이고 나르시아에게 말했다.


"내가 미안해. 이런 일 할 거면 미리 말했어야 했는데, 너무 독단적으로 나서서."

"그래, 그러겠지. 매번 네가 사과하고 끝나잖아."

"기억도 없는 형한테 말 진짜 곱게 한다."

"알렌, 너야말로 시오르 때문에 눈이 그렇게 상했으면서 자존심 상하지도 않아?"


본인 때문이라는 말에 시오르는 어리둥절한 눈동자로 알렌을 바라봤다. 보라색으로 마력이 흐르는 게 보이는 비틀린 눈동자는 이글거리듯이 시오르를 바라봤다.


"이렇게라도 안 했으면 죽었어! 게다가 형이 걸어둔 마법을 잘못 풀었던 의사들 잘못이거든? 형은 분명 그 사람들한테 이야기했었다고."

"그 사람들이 어떻게 얘 마법을 이해하는데? 시나한 님도 놀랄 정도로 그 잘난 능력을 자기가 풀면서 도왔어야지."

"그럼 피까지 토하면서 쓰러진 사람한테 그래야 해?"

"약 안 먹고 나간 본인 잘못이지. 내가 틀렸어?"


꼬리를 무는 언쟁에 시오르는 어쩔 줄을 모르고 두 사람 사이에서 눈치만 봤다. 싸우지 말라고 애써 말해봐도 그보다 더 큰 목소리에 금방 묻히고 말았다. 다급히 팔이라도 붙잡고 이야기 좀 들어보라고 하지만, 나르시아는 이거 놓으라고 소리치곤 그를 밀쳐냈다. 균형을 잃으며 쓰러지진 않았으나, 두 사람 모두 그 일로 더 싸움이 격해져만 갔다.


갑자기 왜 이렇게 된 것인가 이해하지 못한 시오르. 그만큼 두 사람의 싸움을 말리고 싶었기에, 힘겹게 두 다리를 움직여서 다시 그들에게 다가갔다. 격해지는 동작은 금방이라도 주먹다짐을 할 느낌이고, 서로 손이 닿는 거리에 가까워졌다. 혹시 마법으로 장벽이라도 세워두면 두 사람을 멈추고 미연에 방지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 그는 손에 마력을 집중했다.


팔에서 흘러나온 마력은 빠르게 두 사람의 발밑에서 벽처럼 솟구쳤다. 둘 다 잠시 움찔하는 것을 확인했기에, 드디어 대화를 할 수 있겠다고 생각한 시오르. 하지만 그의 생각과는 다르게 무언가 날아드는 소리가 들렸다.


"방해하지 말라고!"


나르시아의 손에서 솟구친 얼음은 그대로 시오르를 향해 날아갔다. 화가 난 채로 쓴 마법은 불안정하고 난폭했다. 다급하게 방어막을 펼쳐보지만, 이미 그것은 방어막 안쪽에 이른 상태였다. 둔탁한 소리와 함께 잠시 시야가 어두워졌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렌과 나르시아도 알았지만, 이미 때는 늦고 말았다.


뒤로 넘어진 시오르는 머리를 부여잡고 신음을 흘렸다. 바닥으로 내리 앉은 목소리만큼 바닥에는 붉은 핏방울이 묻었다. 황급히 달려간 알렌은 시오르의 상태를 확인했다. 손이 살짝 힘이 풀린 듯, 피 묻은 손은 창백한 피부를 쓸고 내려갔다.


"시온?"


나르시아의 뒤에서, 문을 열고 들어왔던 레아는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지 못했다. 그랬기에 피 흘리며 쓰러진 그를 보자마자 비명을 지르며 달려갔다. 마찬가지로 상황을 이해하지 못한 세라스는, 손을 파르르 떨고 있는 나르시아와 눈이 마주쳤다.


나르시아의 귀에 들어오는 소리는, 다급하게 뛰고 있는 자신의 심장 박동 소리 뿐이다. 상황을 묻는 세라스의 목소리에도 그녀는 집중하지 못했다. 차가운 마력은 식지 않은 총구에서 나온 연기처럼 일렁거렸다. 정신을 차린 순간은, 시오르의 목소리가 들린 순간이었다.


"...괜찮...아...."

"아니, 뭐가 괜찮아! 하마터면 죽을 뻔했잖아!"

"사고잖아.... 그럴 의도도...없었고...."


알렌의 눈빛이 죽일 듯이 나르시아를 향했지만, 시오르는 필사적으로 알렌의 팔을 붙잡았다. 언제라도 쉽게 쳐낼 힘이지만, 알렌은 그 나약한 팔이 족쇄처럼 느껴졌다. 결국 입술을 꾹 다물고 주저앉았다. 레아의 치료 덕에 겨우 상반신을 일으킬 수 있었던 시오르는 머리를 부여잡은 채로 고개를 숙였다. 바닥에 떨어진 얼음 조각은 녹아서 흔적을 감췄다.


다행히, 피가 흘러준 덕에 뺨에 흐르는 물기는 보이지 않았다.


작가의말

한창 수능 중일 고3 여러분은 시험 잘 보세요!

이런저런 곳에서 조언 많이 받아서, 조금 더 노력하는 중입니다.
다음 작품에서 제대로 하고 싶은 만큼, 이번 작품도 헛된 일이 되지 않도록 정진하겠습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무채색의 마법사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4월 휴재 안내 20.04.02 48 0 -
공지 2월 휴재 공지 20.02.20 61 0 -
공지 12월 휴재 공지 19.11.28 62 0 -
공지 금주 휴재 공지 19.10.28 21 0 -
공지 8월 격주 휴재 공지 19.08.12 55 0 -
공지 4/25 휴재 공지 +2 19.04.11 91 0 -
공지 미리 말씀드리는 공지 19.03.14 252 0 -
공지 1/17 휴재 19.01.10 76 0 -
공지 업로드 관련 18.08.02 159 0 -
81 후기 20.05.08 92 0 1쪽
80 마지막 여명#5(完) 20.05.07 77 0 14쪽
79 마지막 여명#4 20.04.30 53 0 20쪽
78 마지막 여명#3 20.03.26 27 0 15쪽
77 마지막 여명#2 20.03.19 65 0 12쪽
76 마지막 여명#1 20.03.12 35 0 16쪽
75 잘못된 시작들#8 20.03.05 49 0 17쪽
74 잘못된 시작들#7 20.02.27 44 0 16쪽
73 잘못된 시작들#6 20.02.13 39 0 16쪽
72 잘못된 시작들#5 20.02.06 43 0 13쪽
71 잘못된 시작들#4 20.01.30 43 0 15쪽
70 잘못된 시작들#3 20.01.23 37 0 14쪽
69 잘못된 시작들#2 20.01.16 42 0 15쪽
68 잘못된 시작들#1 20.01.09 42 0 15쪽
67 갈라지는 비극#3 19.12.01 32 0 12쪽
66 갈라지는 비극#2 19.11.28 30 0 16쪽
65 갈라지는 비극#1 19.11.21 31 0 13쪽
» 정말로 잃어버린 것#9 19.11.14 43 0 19쪽
63 정말로 잃어버린 것#8 19.11.07 55 0 14쪽
62 정말로 잃어버린 것#7 19.10.24 38 0 14쪽
61 정말로 잃어버린 것#6 19.10.17 36 0 13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