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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채색의 마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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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masquerR
작품등록일 :
2018.08.02 17:46
최근연재일 :
2020.05.08 00:06
연재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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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5 2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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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못된 시작들#8

DUMMY

간혹 머릿속에 스며드는 마력이 모종의 방해 마법이 아닐까 시오르는 걱정했다. 다름 아니라, 마력이 직접적으로 몸에 영향을 주면서 온갖 생리적인 문제가 발생했다. 오한이 밀려왔지만 온몸은 뜨거웠다. 마법으로 억누를 수 없는 두통이 그를 멈춰 세운 것도 벌써 세 번째.


하지만 해방감만큼은 어느 때보다 굉장했다. 항상 막혀있는 듯한 흐름이 완전히 뚫려서 원하는 대로 마력을 움직일 수 있다. 몸이 기억하는 마법과 자신이 배우려고 했던 마법의 괴리가 드디어 납득이 갔다. 이전에는 너무나도 당연했던 길이 막혀있다면, 더욱 그렇게 느껴질 수 있다.


마력은 사람마다 타고나는 게 전부 다르다고들 한다. 당연히 그에게 맞는 방식도 있는데, 너무 이론적으로 시작한 게 지금의 문제를 만드는 것이다.


"...다 왔다."


그 부분은 눈을 감고 침을 삼키는 것으로 무시했다. 어차피 효율적인 흐름을 제어하지 못하니, 하던 대로 움직이면 멈춰있는 마력은 조금씩 따라올 것이다. 시간이 없으니 기존의 방식을 최대한 끌어올리는 식으로 해야만 했다.


검은 마력이 수백 번은 충돌할 때에, 라흐벨은 일그러진 공간 바깥으로 튕기듯 나왔다. 팔 끝에 매달린 이빨 자국은 피 대신 마력을 뿜어내게 했다.


"누나!"

"...시오르?"


당황한 라흐벨은 시오르를 자세히 바라봤다. 서 있는 것만으로 내뿜는 마력이 의미하는 바를 알아들었기에, 복잡한 감정은 얼굴로 올라왔다. 분노한 것처럼 구겨지고 험상궂은 표정이지만, 시오르는 겁내지 않았다. 단지, 화내고 있는 부분이 없잖아 있다는 것은 알았기에 주먹에 힘이 들어갔다.


비틀어진 정경 속에서 튀어나온 나엘은 뿔 끝에서 수십 갈래의 빛줄기를 쏟아냈다. 검게 빛나던 끝이 투명하게 변해가며 모습을 감췄지만, 아무런 흔적도 없는 궤적 끝까지 영향력을 끼쳤다. 갈라진 바닥과 무너진 건물이 자아내는 먼지가 모든 존재를 뒤덮었다.


시오르는 힘을 쥐어짰다. 도무지 관측할 수 없을 만큼 좁디좁은 먼지 사이로 스며드는 마력. 혼란스럽게 배치된 수많은 마법. 모든 것을 하나로 끌어모아서, 눈동자 위에 새기고 할 수 있는 모든 생각을 퍼부었다.


나엘은 형상이 존재하지 않았다. 수백 개의 마법이 겹겹이 둘러서 형체를 가지는 정령이며, 마력의 영향을 사실상 받지 않는 인간이다. 납득할 수 없는 상태에 고개를 젓고 싶었지만, 그런 상대가 자신을 노린다면 시선을 돌려선 안 됐다.


"안돼!"


거대한 방어막이 돌연 하늘에서 떨어진 것처럼 나타나자, 나엘은 수십 명의 살점을 물어뜯은 이빨을 옆으로 돌렸다. 대신, 손을 변형시켜서 그의 방어막을 도려냈다. 제대로 완성하지 못한 탓인지, 푸른 방어막은 가죽 주머니가 터지듯이 무너졌다.


쏟아낸 비명과 함께, 나엘과 눈이 마주친 시오르는 반사적으로 구체를 띄워서 나엘에게 던졌다. 바닥에 네 차례에 거쳐 꽂힌 공격은 빗나갔지만, 나엘은 확실하게 경계하는 움직임을 보였다.


"...어이가 없군."

"누구 계약자인데 너무 얕본 거 아닌가? 시오르, 괜찮지?"

"일단은. 이제 어떻게 하지?"

"할 일이 좀 많지만.... 과격한 연습 겸 계약을 이행하자."


그렇게 속삭인 라흐벨은 손가락 끝에 점을 그려냈다. 나타난 검은 점이 서로 이어지고, 그 위에 검게 물든 산양의 모습이 떠올랐다. 털 뭉치처럼 모인 마력이 조금씩 풀어지며 제자리를 찾아갔다.


"계약의 조건은 마왕, 룬의 일당을 이 세상에서 완전히 배제하는 것."

"허나 우리는 정령이자 인간. 어느 곳에도 속하지 않기에 그런 일은 일어날 수 없다. 그런 우리를 배제하겠다고 말하는 것인가?"

"그럼. 그 비열한 상태를 묶어둘 마법. 그걸 완성하기 위해, 수많은 인간의 지혜를 얻어왔지."


완성된 마법진은 해석할 수 없었지만, 시오르는 그 정교한 마법진에 넋을 잃을 뻔했다. 실오라기도 빠져나오지 않는 마력과 교묘하게 겹쳐지고 은폐된 시야. 다만, 세상의 힘을 빌리는 만큼 바깥에 드러나야 할 부분을 정확히 드러낸 형태. 마법의 수준이 다른 존재가 쏟아내는 지식은, 탐욕스러울 정도였다.


"그럼.... 시오르, 오래전에 맺은 대로 정해진 일을 이행해라."


시오르의 손등에 검은 산양이 다시 나타났다. 절대 지워지지 않는 계약의 흔적은 그의 마력을 끌어다가 무언가를 억지로 시전했다. 그는 단지 고통을 참으면 됐고, 모든 건 라흐벨의 의지대로 이어졌다.


다만, 그와 동시에 스며드는 정보는 시오르가 감당할 수 없었다. 라흐벨의 마법이 속삭이는 진실에 시오르는 억지로 깨어났다. 파르르 떨리는 입술을 겨우 움직여, 자신이 이해한 것을 되물으려고 했다.


하지만, 라흐벨은 고개를 돌린 채 입술을 다물고 있다. 더 대답하지 않겠다는 의지가 그의 가슴을 아프게 했다.


"이걸 위해서...?"


라흐벨은 답하지 않았다. 대신, 시오르의 마법을 모방한 듯이 보이는 사슬을 쏟아냈다. 나엘은 교묘하게 공격들을 피해갔지만, 자신의 운명을 직감한 듯, 돌연 움직임을 멈췄다.


땅 아래에서 솟구친 사슬은 그대로 나엘의 전신을 관통하고 지나갔다. 한순간에 꼬챙이가 된 나엘은 낮은 숨소리를 내다가, 시오르를 바라봤다. 그의 눈빛 안에는 슬픔과 두려움, 나엘이 찾고자 했던 것이 가득 담겨있었다.


"아아, 그런 것인가.... 찾았다. 드디어 찾았다!"


나엘은 비릿한 미소를 보이며 온몸을 비틀었다. 자신의 육체를 구성하는 마법을 억지로 부숴나가며 자해한 나엘은 주변을 향해 난폭한 공격을 쏟아냈다.


계약을 이행하기 위해 잠시 무방비로 놓였던 시오르. 다급히 나엘의 발악에 방어막으로 대처했지만, 효과는 좋지 못했다. 살갗을 스치고 지나가는 마력은 그의 온몸에 비틀림을 만들어냈다. 무언가 꼬이고 엉키다가 멋대로 터지기도 했지만, 라흐벨은 그가 쓰러지지 않도록 지지했다.


상처는 치료하지 않은 채, 일으킬 수밖에 없었던 라흐벨은 자신의 상황에 한탄했다. 성 바깥에서 몰아치는 마흐니의 군단이 진격하는 것을 저지하고, 솔과 싸우고 있는 프라하를 지원하며, 수도로 찾아온 종복들을 색출하여 처리하는 일이 동시에 이뤄진다. 이러한 일은 겨우 진행될 뿐이고, 결국 본제나 다름없는 시오르와의 계약이 후순위로 밀리고 말았다.


"젠장...."


차라리 비정하게 다른 것들을 내던지면 편해질 것을 안다. 하지만, 부여잡은 것을 내던지는 것을 그녀의 마음이 허락하지 않았다. 이 자리에서 누구보다 멀쩡히 있어 줘야 할 사람은 시오르다. 물론 이것이 지극히 개인적인 이유거나, 반대로 그래야만 할 당위성이 있다는 것도 아니다.


이 일은 인간이 감당하지 못할 위기를 안겨준다. 그런 상황에서 마법을 유지할 정신력을 유지하는 건 중요했다. 그리고 지금의 시오르는, 과거와는 다르게 참아낼 재량이 없었다. 채워졌던 부분이 비어버렸기 때문에 망가지기 쉬웠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목숨을 기꺼이 내던지고 있다. 결코 이런 일은 있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라흐벨은 알고 있다. 이것은 체념이자, 자살이나 다름없는 일이 되고 만다. 과거에는 분명 타인을 구하는 일에 자신을 등한시해선 안 된다는 걸 깨닫고 있었을 것이다.


그 사실을 현자 시나한에게 배웠다고 몇 번이고 혼자 중얼거리는 것을 들었었다. 이타심은 이기심과 다르지 않다며, 욕심과 헌신 사이를 유지했다. 하루하루의 행복에 만족하며 더 나은 미래가 있으리라 낙천적으로 살아가는 법을 알았다. 그렇다면, 아무리 괴로운 짐을 품었더라도 부정적인 감정만큼은 떨쳐낼 수 있다는 걸 알았다.


"계약자는 즉시 계약을 이행해라."


시오르는 스스로 팔을 뻗었지만, 두려움을 완전히 이겨내지 못했다. 당연히 자신이 이래야만 한다고 믿고 있을 뿐이다. 그게 모두를 위한 일이라며 자신을 속인 채.


"세계 바깥에 머무는 정령은 들어라. 이 말은 너희를 이 세계에 고정하기 위함이니, 너희는 내 부름에 응하여 얼굴을 드러내라."


라흐벨이 지정했을 문구가 시오르의 입에서 멋대로 나왔다. 조종당하는 느낌이 분명히 들었지만, 시오르는 검디검은 파도에 몸을 맡기고 있었다. 꽉 붙잡지 않으면 안 될 일이 그를 기다렸고, 그는 살아남기 위해 단 한 가지를 제외한 모든 것을 내려놔야만 했다.


"부름에 응하겠다, 마법사 시오르."


그리고 그의 문구에 대답한 것은, 다름 아닌 사슬에 묶인 채로 망가져 가는 나엘의 형체였다.


"나는 너보다 강대한즉, 고개를 조아리고 스스로 피를 흘려 그 용기를 증명해라."

"으...으으...."

"그래. 라흐벨, 이 방법은 인정하지. 네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 알았으니, 네 계약자에게 순순히 넘기지 않겠다는 것도 알고 있겠지만 말이야."


시오르의 마력은 직접 그의 팔뚝을 크게 베어냈다. 격통이 밀려오자 시오르는 자신도 모르게 팔뚝을 부여잡았지만, 피는 멈출 생각을 하지 않고 바닥에 떨어졌다. 점차 머리가 어지러워진 그는 마법으로 고통을 없앴으나, 온몸에 힘이 빠지는 것을 막을 순 없었다.


"나와 그 녀석을 억지로 계약시킨 뒤, 계약으로 우리를 유폐하겠다는 거잖아? 정말이지 네년의 머리에서 나왔을 법한 발상이면서, 무척이나 만족스러운 사실이다."

"...시오르."

"참을 수 있어.... 참을 수 있어...."


팔뚝을 부여잡은 시오르는 낮게 숨 쉬며 중얼거렸다. 정신을 잃고 쓰러지는 것은 막아야만 했고, 자신의 의사와 상관없이 그런 상태에 빠지는 것은 원치 않았다. 마법으로 상처를 복구하려고 했지만, 정령들과의 대화는 언제나 정령들의 마법이 우위를 점한다. 인간이 불러서 끌려 나왔다면, 정령이 인간들의 세상에 머물기 위한 대가는 소환한 이가 감당해야 한다.


그 조건으로 어떤 것을 요구하더라도, 마법과 전혀 상관없어 보이더라도. 언제라도 돌아갈 수 있는 정령의 호의를 사는 건 그렇게나 힘들었다.


라흐벨은 더는 시오르에게 위해를 가하지 못하도록, 사슬에 마력을 밀어 넣었다. 사슬이 망가질 기세로 떨려오자, 나엘은 그르릉 거리며 울부짖다가 추욱 늘어진 채로 입을 열었다.


"어떻게든.... 진행하겠다라...."

"닥치고 빨리 계약해!"

"우리는.... 죽음을 이끌고...오는 이들이니.... 죽는 것은.... 두렵지 않다.... 모든 것은 죽음으로.... 향한다는 걸.... 잊은...건 아니겠지?"

"모르는 새끼가 어디 있겠냐고! 빌어먹을 종복!"


빠르게 자신의 육신을 무너트린 나엘은, 금방이라도 사라질 듯이 옅게 변해갔다. 완전히 망가진 시야 안에서 뿜어져 나오는 불길과 간간이 들리는 칼 소리는 전쟁터를 떠올리게 했다.


나엘은 자신의 육체가 제대로 사라지지 않는 것을 그제야 깨달았다. 사실에 묶여있는 이상, 형체가 억지로 유지되는 것을 알고는 라흐벨을 노려봤다.


"내 허락 없인 못 죽어.... 하지만, 살지 않겠다고 계약 맺지 않으면 평생 이렇게 봉인해주지...."

"계약자가...불쌍하지도 않는...모양이군."


그렇지만 나엘은 킥킥대며 웃었다. 이런 방법을 택한 탓에, 일어날 일은 명확했다. 그걸 알면서도 이행하겠다니. 신들의 의지가 인간에게 멋대로 개입되지 못한다는 사실에 감사하며, 나엘은 앞발을 뻗었다. 사슬은 계약을 이행하겠다고 소모하는 마력을 지원해주기까지 했다. 상처는 회복되고, 무너진 몸은 금방 원래 모습을 드러냈다.


"계약을 원하는 이여, 내 이름은 나엘. 두려움에 가득 찬 사냥감의 죽음을 이끄는 이로써, 너에게 손을 내밀 것을 약속한다."


자신의 육체를 타고 들어오는 검은 마력이, 엄밀히 말하면 시오르의 마력이라는 사실은 너무나도 우스웠다. 이중으로 마력을 부담하는 시오르는 금방이라도 무너질 듯이 시야가 흐릿해져만 갔다.


그 순간, 시오르에게서 희미한 빛이 일어났다. 푸르게 빛나는 마력이 그 형체를 만들어냈지만, 무언가 찢어지고 망가진 듯이 한쪽에선 아무런 마력도 모이지 않았다.


"나는 상처를 원한다. 항상 핏방울에 두려움이 녹아있길 원한다. 네 영혼은 모든 밤마다 나에게 쫓길 것이며, 두려움에 몸부림치리라."


인간의 영혼. 그것이 실제로 모습을 드러내는 것은 이례적인 일 중, 제일 이례적인 일이다. 실체를 확인할 수 없는 것을 보이게 하는 일은, 마법을 만든 이가 저승을 관장하는 라흐베르의 권능임을 누군가는 알 것이다. 게다가 라흐벨의 잘못으로 명맥이 이어진 룬의 종복들은, 그녀와 비슷한 마법을 부릴 줄 알았다.


그렇기에 당연하게도, 인간이 볼 수 없는 광경을 불러일으켰다.


"나는 네 영혼을 취하리라."


차라리 사람이 비웃었으면 한다고 느껴질 만큼, 나엘은 행복한 표정을 지으며 시오르를 바라봤다. 영혼을 다른 존재에게 움켜 쥐이게 된 탓에, 극도로 불안정하고 위험한 상태에 놓였다. 계약이 아니었더라면 나엘은 시오르의 영혼을 쥐고 산산조각 내버리거나, 들판에 풀어주고 천천히 사냥해서 죽일 것이다. 라흐벨이 있는 한, 그는 죽을 수 없었다.


반대로, 그녀가 있기에 시오르는 죽을 수 없었다. 종복들과 계약해서 그들을 자신이 묶어둬야 한다. 그리고 그들이 요구하는 것을 내어줘야 했다. 그것을 어겨서 죽게 된다면 다시 풀려나가고 만다는 사실을 안다. 라흐벨은 이 부분에 있어서 무언가를 책임질 수 있는 듯했지만, 시오르는 그 사실을 신경 쓰지 않았다.


단지, 지금 모두를 구하기 위해선 돌아올 수 없는 선택을 몇 번이고 넘겨야만 했다.


"받아...들입니다...."

"좋다."


나엘이 뻗은 마력은 고요히 시오르의 영혼을 향해 다가갔다. 어루어만지듯이 주변을 움직이던 나엘의 마력은, 돌연 그의 영혼에 날카롭게 박혔다. 시오르는 일순간에 표정이 삐뚤어지며 게거품을 입가에서 쏟아냈다.


"​죽음이 너와 함께하리라."​


영혼이 망가지면 돌아올 수 없다. 저주가 그래서 무서운 마법이었다. 하지만, 이것은 저주가 아니더라도 직접 영혼을 일그러트리는 것.


시오르의 몸과 마음이, 종복의 손길에 의해 무너지고 망가졌다. 검게 물들었던 머리카락도 2할은 하얗게 변했고, 한층 더 창백한 얼굴이 되어서 바닥을 움켜쥐었다. 아직도 팔뚝에서 흐르는 핏줄기는 멈추지 않았다.


라흐벨은 즉시 자신의 마법으로 나엘 주변에 마력을 둘렀다. 검게 물든 구체가 나엘의 전신을 덮자, 나엘의 마지막 말이 새어 나왔다.


"이 방법도 영원한 게 아닐 텐데."


마법에 집중하던 라흐벨은 미간이 꿈틀거렸다. 하얗게 변한 머리카락도 금방 분홍색으로 돌아왔고, 검은 마력으로 이뤄진 육신도 탐스러운 빛깔의 살점으로 변했다. 아름다운 인간의 형상으로 돌아왔지만, 마력을 다했기에 어쩔 수 없이 일어난 일이다.


집중하지 못한 탓에 일부 마법이 엉망이 됐지만, 라흐벨은 개의치 않았다. 나엘의 한 마디가 그녀의 가슴에 화살을 연달아 꽂았다.


바닥에 엎어진 채로 기절하지 못해서 고통스러워하는 시오르는, 겨우 라흐벨의 발목을 부여잡았다. 순간 무슨 말을 내뱉을까 걱정했던 그녀는 조심스럽게 고개를 내렸다.


"아.... 하아으...."


시오르의 마력이 그녀의 몸을 타고 올라갔다. 힘을 다한 라흐벨에게 마력을 넣어주는 시오르. 그 모습에 라흐벨은 신이었던 존재에 걸맞지 않은 눈물을 지었다. 이런 상황에서도 자기 목숨은 안중에도 없을 수 있다는 사실에, 정령으로 격하된 이후로 자신이 얼마나 인간적으로 변했나 알아채고 말았다.


시오르는 죽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타인을 도울 수 있다면 기꺼이 목숨을 내던졌다. 레아와 다를 바 없는 모습에 그녀는 자기 잘못이라는 생각을 했다.


"아직 종복들이 남아있어.... 일어나...."


명령은 절대적이다. 계약을 이행하고자, 더 이상 일어날 수 없던 시오르를 억지로 일으켜 세웠다. 넘어질 것 같으면 마력은 그를 붙잡아 세웠고, 기절할 것 같으면 그를 찔러서라도 깨워냈다. 그렇게 몇 번은 발작을 일으켰고, 똑같은 고통에 여러 번 노출됐다.


의지가 금이 가는 소리가 들렸지만, 라흐벨은 이를 무시하고 그의 멱살을 붙잡았다. 손을 부여잡고 싶었지만, 자신이 약해져선 시오르를 이끌 수 없었다. 파멸과 고통의 길로 인도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말이다.


작가의말

날이 좀 풀리긴 했지만 크게 달라지는 게 없네요...

슬슬 바빠질 기간이지만, 노력해서 마무리 잘 하겠습니다.

오늘도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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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 후기 20.05.08 93 0 1쪽
80 마지막 여명#5(完) 20.05.07 77 0 14쪽
79 마지막 여명#4 20.04.30 54 0 20쪽
78 마지막 여명#3 20.03.26 28 0 15쪽
77 마지막 여명#2 20.03.19 66 0 12쪽
76 마지막 여명#1 20.03.12 35 0 16쪽
» 잘못된 시작들#8 20.03.05 50 0 17쪽
74 잘못된 시작들#7 20.02.27 45 0 16쪽
73 잘못된 시작들#6 20.02.13 40 0 16쪽
72 잘못된 시작들#5 20.02.06 45 0 13쪽
71 잘못된 시작들#4 20.01.30 43 0 15쪽
70 잘못된 시작들#3 20.01.23 38 0 14쪽
69 잘못된 시작들#2 20.01.16 43 0 15쪽
68 잘못된 시작들#1 20.01.09 43 0 15쪽
67 갈라지는 비극#3 19.12.01 33 0 12쪽
66 갈라지는 비극#2 19.11.28 30 0 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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