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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채색의 마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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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masquerR
작품등록일 :
2018.08.02 17:46
최근연재일 :
2020.05.08 00:06
연재수 :
81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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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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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474,693

작성
19.05.23 1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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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경계#1

DUMMY

한참을 걷다가 지친 일행은, 잠시 길가에 놓인 바위에 앉았다. 오순도순 모여서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은 멀리서 보면 새 같이 보일 것이다. 그 중, 제일 신이 난 것은 단연 세라스였다. 자신을 보는 시선도 적으니 단추까지 풀고는 팔을 휘저으며 자기 경험을 이야기했다.


구석에 앉아있던 시오르는 손바닥에 펴놨던 마법진을 지우고 일행을 바라봤다. 염색한 것을 과시하는 듯이 붉은 머리카락을 찰랑거리던 세라스. 머리끈까지 풀고는 무언가 즐겁게 말하는 모습이 제법 재미있었다. 반대로, 그만큼 가까운 거리임에도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듣지 않고 있다는 뜻이었다.


누군가 자신의 어깨를 두드리자, 그는 고개를 돌렸다. 나르시아는 푸른 숲에 가리진 것처럼 자연스레 빛나고 있었다. 마치 강물처럼 흘러내린 푸른 머리카락은, 방금 고개를 돌려서 흐트러진 상태였다.


"내 말 듣고 있어?"

"아, 죄송해요. 잠깐 다른 생각 하느라."

"그럼 다행이네. 마법진을 갑자기 뭉개길래 놀랐어."

"마법 쓰다가 딴짓 하면 위험하잖아요."

"예나 지금이나 그런 건 깐깐하네."

"목숨이 걸린 일인데 당연하죠."


'네가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라는 나르시아의 중얼거림을 듣지 못한 채, 시오르는 다시 자신의 팔을 바라봤다. 그곳에 흐르는 마력은 파도처럼 거세게 몸을 휘감았다. 무리해서 소모한 일이 많았기에, 조금은 쉬는 게 나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재미있다고 느껴졌다. 어째서인가 친숙하게 몸은 마력을 끌어냈다. 자신에게 새겨진 낙인이 우습다고 말해질 정도로, 남들이 보기엔 그의 수준은 평범한 마법사 정도는 됐다. 세라스의 말을 빌리면 '출력이 이 정도로 된다는 게 더 신기하다'라고 할 수 있다.


동경하던 힘을 누구보다 쉽게 익혀가는 과정은 그에게 즐거운 비일상을 가져다줬다. 게다가 자신을 아껴주는 이들에게 도움이 되니, 더욱 보람찬 일이다. 하루가 멀다 하고 긁어모은 지식은 그를 점차 마법사로서 갖춰주기 시작했다.


오늘도 날씨는 좋았다. 햇볕이 쬐기 좋을 정도로 따뜻했고, 바람은 간지럽지 않을 정도로 살살 불었다. 이런 날에는 누나랑 놀곤 했다며 그는 추억을 더듬었다. 고작 1년인데 즐거운 시간이었다. 그런 그녀는 지금까지 소식이 없다.


라흐벨은 괜찮은 걸까? 그런 생각을 했지만, 괜한 걱정 같았다. 남들이 말한 그녀의 수준은 세계가 두려워할 정도로 강한 존재다. 사실상 그녀가 언제 돌아오느냐가 걱정될 정도였다. 아직도 손등 위에 감춰진 표식이 남아있음이 느껴지는 만큼, 그녀의 안전은 괜찮은 듯했다.


"그보다 얼마만큼 온 거예요?"

"내가 보기엔 지르빌은 오늘 내로 지나치겠는데."


나르시아는 제복 안쪽 주머니에서 지도를 꺼냈다. 대충 자신이 있는 위치를 손가락으로 누르고, 예상 경로를 따라 움직였다.


"아닌가, 좀 모자란가."

"언니! 그때 기억하지? 우리 옷 맞추러 갔을 때!"

"언제?"

"아, 그때 있잖아! 저번에 입고 갔을 때, 결혼하냐고 들었던 그거."

"아. 그때 좋았지. 그 모자란 녀석 콧대 눌리는 게 보일 지경이었다니까."

"언니 말 들었지? 그만큼 나 정도면 괜찮다는 말이야."


레아는 뻘쭘한 듯 웃고 있었으나 세라스의 말에 긍정해주고 있었다. 그런 눈치가 보이니 나르시아는 헛웃음을 내뱉으며 시오르에게 말했다.


"이해해줘. 자랑하는 걸 너무 좋아해서 말이야. 늘 하던 말이 같으니 원."

"이제 보니 뭔가 생략된 것 같다 했더니...."


제복을 털고 일어선 나르시아는 일행을 보며 말했다.


"자, 얘들아. 출발하자."

"벌써?"

"빨리 가야 편히 숙소에 발 뻗고 쉬지."

"하긴, 얘 마법 솔직히 무섭다니까."


세라스는 엄지손가락만 편 채로 옆에 있는 시오르를 지목했다. 그 사실에 민망한 듯, 그는 머리를 매만졌다. 안 그래도 오늘도 한 번 엎어질 뻔했기에 세라스의 질타는 자연스레 이어졌다.


"이번엔 제대로 할게."


그래도 일행은 시오르를 믿었다. 마력의 반절을 잃고도, 숱한 마법 사용에도 지치지 않고 그들을 칼립소 지역 안까지 끌고 온 건 시오르의 능력이었으니까.


-----


한창 나아가던 그들은 속으로 무언가 잘못된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분명 지도를 따라온 것 같은데 지르빌이 나오지 않았다. 게다가 칼립소 지역 출신인 레아조차도 처음 보는 길이라고 말한 후, 모두가 속으로 '지금이라도 돌아가야 하나'라는 생각을 했다.


다져진 길인 것을 보아, 분명 마차 같은 게 오가는 길임은 분명했다. 그러니 마을로 가는 길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조금만 더 나아가면 분명 자신들의 위치를 정확히 알 수 있으리라. 그 생각으로 다들 조용히 걷고 있었다.


애매하게 틀어진 길은 나르시아의 책임이다. 그렇기에 그녀는 손톱을 깨물면서 지도를 훑어봤다. 숲으로 우거진 탓에 주변 지리가 분명하지 않다. 만약 갈림길 중 하나에서 잘못 들었다면, 정말 갈피를 잡을 수 없을 정도로 길이 틀어졌을 수 있다.


그러던 중, 시오르는 무언가를 발견하고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어? 저기 뭐가 있다."

"어떤 거?"


레아는 손가락 방향을 따라 시선을 돌렸다. 그곳에는 마차 몇 대가 멈춰있었다. 게다가 사람들도 여럿 움직이고 있었고, 짐도 많이 풀어놓은 상태였다.


"벌써 자리 펴야 할 시간인가?"

"작은 마을이라도 있을 수 있지. 그럼 나부터 갈게."

"세라스, 천천히 가."


나르시아와 세라스는 먼저 사람들이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그런데 마을은 아닌 것 같네."

"왜?"

"저기 내려둔 거, 보통은 야영 장비거든. 게다가 숫돌이랑 갈고리 같은 건...."

"어레, 이 앞은 조사 구간이야. 더 가도 흙무더기랑 돌덩이뿐이고."


뒤에서 들린 목소리에 두 사람은 고개를 돌렸다. 밤을 샌 것처럼 헝클어진 머리카락과 대충 깎인 턱수염은 남자가 한창 바쁜 사람임을 보여줬다. 갈색 바지 안으로 넣어 입은 셔츠는 흙투성이였고, 그런 옷에 넣는 작은 수첩 또한 많이 헤진 상태였다.


"혹시 우리 구면인가?"

"어, 초면일걸요."

"그럼 됐어. 요새 짐승들도 난리인데, 어쩌다가 이런 깊은 산 속으로 산책을 나선 거야?"


머리를 긁적이던 남자는 안경을 고쳐 쓰고는 시오르와 레아를 훑어봤다. 그러다가, 무언가를 알아차리고 레아를 가리켰다.


"너 혹시 커크 씨의 손녀딸이니?"

"아, 네. 그건 어떻게...."

"술자리서 자주 들었거든. 그림으로 볼 땐 꽤 어렸는데."


남자가 손을 내밀자, 레아는 얼떨떨한 표정으로 악수했다.


"요새는 그림으로 남기는 사람은 적잖아요."

"그렇긴 하지. 뭣하면 수도로 가서 사진기로 찍으면 그만이니. 아, 소개가 늦었네. 카노드 하이만."

"레아 에리스에요. 여긴 제 친구 시오르 데피드구요."

"...잠깐. 시오르?"


카노드는 그제야 자신이 느끼던 기시감의 정체를 알아차린 듯, 손가락을 튕겼다. 그런 와중에 저 멀리서 걸어오는 두 귀족을 보고는 확신했다.


"이거, 나르시아 님 아니십니까!"

"카노드. 당신이 여기 책임자였나요?"

"또 이 아저씨야?"

"아저씨라뇨, 결혼하긴 했다만.... 아무튼, 오랜만에 뵙게 됐네요."


나르시아가 청한 악수에 고개를 숙이면서까지 악수한 카노드. 그리고, 머지않아 무언가가 어긋난 것 같은 기분에 고개를 갸우뚱했다.


"그런데 분명 이 분은...."

"사정이 좀 있어서 말이야. 기억을 잃었거든."

"역시 그런 겁니까? 처음 봤을 때 뭔가 익숙하더라니...."

"보통 얘가 짧게 자르고 옆으로 넘기고 다녔잖아. 못 알아볼 만하지."

"생각해보면 시온 외모는 그때 정말 인기 좋았는데."


정작 시오르 본인은 눈만 껌뻑이며 조용히 있었다. 과거 이야기만 나오면 대답할 수 있는 게 '모른다'는 말 뿐인 게 아쉬웠다.


"아무튼 이렇게 다시 뵙게 돼서 반갑습니다. 시오르 님."

"아, 아뇨. 그러실 것까지야."


본능적으로 뒤로 물러서며, 정중한 인사를 피한 그는 도와달라는 듯이 주위를 쳐다봤다. 세라스는 짓궂게, 레아는 흡족한 듯이 입을 가리고 웃고 있었다.


"그보다, 정말로 이런 곳에는 무슨 일로 오신 겁니까? 여긴 유적 조사나 하고 있는 중입니다만."

"아, 그게 길을 잘못 들어서요. 분명 제가 이 동네 사람인데도 길을 헷갈렸지 뭐에요."

"지르빌 출신이라며? 표지판 세워놨을 텐데?"

"네? 없던데요?"


레아의 말을 들은 카노드는 이마를 짚으며 탄식했다.


"아이고, 그 망할 주정뱅이가 또.... 카우트! 가서 네팜 데려와!"

"예, 알겠습니다!"


저 멀리에 있던 인부가 카노드의 목소리를 듣고 어디론가 달려갔다. 안경을 고쳐 쓴 그는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보아하니 오는 길목 내내 아무런 표지판도 못 본 모양이네요."

"무슨 문제라도?"

"그게, 여긴 지르빌에서 못해도 하루의 반 정도 떨어진 거리입니다. 며칠 전부터 길을 닦아놓고 있었던지라, 아마 지도에는 없던 길로 새어서 이쪽으로 오셨을 겁니다."

"변질된 짐승들은 안 마주쳤나요?"

"아, 그 일 때문에 작업이 잠시 멈춰서.... 마침 근방에 용병분이 오셨다길래, 새로이 의뢰했지. 그게 너희 할아버지인 거고."


저 멀리에서 배가 불룩한 인부가 다가오자, 카노드는 얼굴을 찌푸리고는 그에게 다가갔다.


"네팜! 내가 오는 길에 표지판 박아두라고 했잖아!"

"아니, 하지만 표지판이 변질된 짐승들한테 기습당해서 제때 못 왔다구요. 아니, 아예 오지 못했네요. 박살 나버려서."

"그럼 미리미리 다른 인부들이나 나한테 보고를 했어야지! 너 만약에 지금 온 이분들이 저기 니프리 가문 같은 녀석들이었으면, 몇 달 뒤에 매몰 사고로 전부 뒤진 걸로 알려졌을지 몰라!"

"죄송합니다."

"이분들께 사과 드리도록 해. 일전에 마경 쪽에서 나온 유물 복원할 때 도움 주셨던 리버스 가문의 자제분들이셔."


한참 사과와 감사의 인사를 전하는 인부를 뒤로, 시오르는 고개를 옆으로 살짝 돌렸다. 이 앞에는 유적지 같은 걸 찾는 작업이 이뤄지는 중이다. 그는 이전부터 그런 것에 관심이 많았다. 호기심에 자신도 모르게, 눈치를 슬쩍 보고는 뒤로 빠졌다.


그대로 조심스레 현장 방향으로 뒷걸음질치던 시오르는, 누군가가 자신의 팔을 붙잡는 걸 알아차렸다. 고개를 획 돌려보니 레아가 손가락으로 자기 입을 막고 있었다. 조용히 하라는 손동작에 자신도 모르게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레아는 인부들이 없는 조용한 방향을 살짝 가리켰다. 그것을 보고는, 시오르는 고맙다고 작게 속삭이고는 그 방향으로 살금살금 이동했다. 그녀가 뭐라고 작게 중얼거렸지만, 그는 그것을 듣지도 보지도 못했다. 하지만 레아의 뺨에 피어오른 미소는 어째서인가 짐작이 갔다. 그녀는 늘 자기편을 들어줬으니까.



작가의말

(대충 사랑니 뽑아서 아프다는 작가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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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 마지막 여명#5(完) 20.05.07 77 0 14쪽
79 마지막 여명#4 20.04.30 53 0 20쪽
78 마지막 여명#3 20.03.26 27 0 15쪽
77 마지막 여명#2 20.03.19 65 0 12쪽
76 마지막 여명#1 20.03.12 35 0 16쪽
75 잘못된 시작들#8 20.03.05 49 0 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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