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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채색의 마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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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masquerR
작품등록일 :
2018.08.02 17:46
최근연재일 :
2020.05.08 00:06
연재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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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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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06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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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잘못된 시작들#5

DUMMY

검은 마력이 파도를 일으키며 주변을 무너트린다. 처음엔 가루가 날렸지만, 점차 벌어지는 틈은 불길함을 암시했다. 남아있는 병력은 다급하게 넘어지는 건물을 붙잡아보지만, 자기 몸도 가누지 못하는 이들은 뼈가 끊어지는 소리와 함께 엎어졌다. 자연스레 건물은 천천히 그들 머리 위로 내려와, 붉은 비석이 되어주었다.


형체를 이루고 있는 마법이 있는 동안, 알렌은 주먹에 온 마력을 실었다. 푸른 빛을 일으킨 주먹은 엎어진 벽을 갈라버리고, 아직 숨이 붙어있는 이들을 찾아냈다. 레아의 옅은 마력이 검은 파동에 휩쓸렸지만, 즉시 마법을 재개하자 그들의 목숨을 붙들었다.


"알렌, 돌을 바로 움직이지 말고 천천히 움직여줘!"

"빨리 빼야 하는 거 아니었어?!"

"마력이나 피, 뭐든 간에 갑자기 새어 나오면 되돌리기 힘들어! 내 실력으로는 그런 일이 일어나면 대처할 수가 없어!"


레아는 필사적으로 살점을 구축해나갔다. 흘러나온 핏줄기를 몸으로 되돌리고, 이물질은 마력으로 걸러낸다. 만약 담을 수 없는 피라면 내다 버리고, 신체의 재생을 가속시켜 피를 재생성하게 한다. 할 줄 아는 일을 해야만 했다.


세라스는 화염을 탄환 삼아 하늘로 날려 보냈다. 떨어지는 파편은 화염에 집어 삼켜져서 서서히 크기가 줄어들었다. 큰 변화를 견디지 못한 돌은 가루가 되어 흩날렸기에, 온 주변에 시커멓게 변해갔다.


왕성의 벽돌을 불사를 일이라는 게 마냥 유쾌하지는 않았다. 집중이 조금이라도 흐트러지면, 파편을 불사를 정도로 불이 일어나지 않았다. 게다가 살아있는 병사 몇 명의 도움이 없더라면, 그녀는 오로지 방어막을 펼쳤어야만 했다.


"괜찮으세요?! 정신이 드시면 대답 좀 해주세요!"

"아...아아...."

"알렌, 이분은 중상이야! 시간이 없으니까 보내드려!"


알렌은 다급히 부상자를 업어 들고 다른 곳으로 향했다. 핏물이 고인 웅덩이에 무릎을 꿇고 있던 레아는 고개를 들었다. 회백색 연기와 크게 요동치는 마력, 왕성에서 일어날 수 없는 재앙이 모든 것을 집어삼키고 있었다.


'저주받은 시대'라는 말이 현실로 다가오자, 그녀는 절로 의지가 꺾여버리고 말았다. 핏물이 점차 치맛자락을 타고 올라왔다.


그래도 그녀는 이대로 쓰러질 순 없었다. 매번 시오르가 했던 말을 떠올리며, 넘어져도 다시 일어서는 것을 반복할 뿐이다.


자신이 따르기로 한, 시오르와 같은 길이다. 불순하다고 여겨질지 모르지만, 그녀는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시오르라면 이해해줄 거라고 믿었다. 홀로 고립되어 죽어가던 순간, 자신을 구하기 위해서 자기 목숨도 내던졌던 그다. 병적인 마음이 쏟아낸 말조차 따스하게 감싸줬던 그다.


아직 손이 비어있었다. 그렇다면 내밀어야만 한다. 타인에게 베푸는 것은 힘을 가진 사람이라면 마땅히 해야 할 일이다. 그녀의 불운한 손길이 필요하다면 그만큼 절박한 게 분명했다.


이미 수차례 살려내지 못한 시체들이 나뒹굴었다. 바닥을 적신 붉은 자국들이 마력이 뒤틀릴 때마다 커져만 간다.


어릴 적, 부모님이 자신을 데리고 칼립소 지역으로 향하던 날의 악몽이 떠오른다. 날뛰는 변질된 짐승들이 사람들을 덮쳤다. 지금과 같은 광경이지만, 그녀는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보랏빛 눈동자가 녹아내릴 듯이 울면서 팔을 잃은 아버지를 붙들고 있었다.


어째서 그 장소가 사막이 아니었는가, 는 알 수 없었다. 단지 그날의 악몽이 재현되는 것만 같아서 속이 메스꺼웠다. 울분과 두려움을 토해낼 새도 없이, 낯빛이 어두워지자마자 밝은 빛이 들어왔다.


세라스의 화염이 그녀의 주변을 지나쳐, 무너지는 잔해를 막아냈다. 붉게 타오르는 화염은 마력을 삼키면서 유동적으로 방어선을 구축해나갔다.


"레아! 뒤로!"


붉은 제복을 펄럭이며 세라스는 그녀에게 다가왔다. 그 순간, 화염 벽을 뚫고 무언가가 튀어나왔다. 특면에서 나타난 형체는 검은 개였다.


다급하게 뒤로 물러선 레아는 웅덩이를 밟고 엎어지고 말았다. 하지만, 그 덕에 목숨을 부지했다. 검은 개의 이빨이 선명하게 보일 정도로, 레아는 나타난 위협을 알아봤다.


열차를 습격당했을 때, 그들을 공격했던 마흐니의 엽견들이다.


"어쩐지 병사들이 너무 없는 것 같았더니!"

"저건...."

"젠장! 이래선 우리 힘으로 할 수 없는 일이잖아!"


검은 마력을 다듬은 사냥개들은 날카로운 날을 드러내며 레아를 향해 다가갔다. 지면을 밟을 때 일렁이는 마력은 그대로 개에게 흡수됐다. 형체를 이루는 비결은 바로 자연마법임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사람이라고 할 만큼 자연스럽게 대형을 갖추며 다가오는 개들. 기겁한 레아는 다급하게 몸을 돌려서 뒤로 달려갔다. 세라스는 화염으로 벽을 만들고는 개들의 경로를 전부 틀어막았다.


마흐니의 엽견들은 갑자기 짖기 시작했다. 으르렁거리던 소리가 서로 부딪치다가 깨져버린 것만 같았다. 날카롭고 집요한 사냥을 알리는 동시에, 개 두 마리가 빠르게 화염 벽을 돌파했다. 세라스는 자신의 화염이 터무니없이 쉽게 뚫린 것을 봐야만 했다.


게다가 굴욕적인 것은, 그것들은 세라스의 이동을 막기 위해 천천히 주변을 돌고 있다. 공격할 기세도 없이 계속 자신을 노려보는 것이 기분이 나빴다. 마치, 자신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이 배제하는 것만 같았다.


"웃기지 마!"


엽견들은 그녀의 분노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날뛰는 화염을 빨아먹으며 천천히 자리를 옮기던 찰나, 일부 엽견이 고개를 돌렸다. 푸른 마력이 알렌의 잔상을 남기며 저 멀리 날아갔다. 마력을 움켜쥔 알렌은 모든 마력을 집중했다.


사고로 엉망이 된 왼쪽 눈가에서 보라색으로 마력이 새어 나온다. 푸른 잔상 위로 새겨진 보랏빛 섬광. 그 빛이 멈춰선 순간, 알렌의 다리는 엽견의 머리를 향했다.


세게 걷어 찬 알렌은 레아의 팔을 붙잡았다. 그녀가 당황할 새도 없이 그대로 품에 안아 든 그는, 세라스를 향해 소리쳤다.


"세라스! 레아 누나는 내가 데리고 갈 테니까 따라올 수 있지!"

"누굴 물로 보냐! 얼른 가!"


하지만, 두 사람 다 속으로는 알고 있었다. 알렌에게 걷어차인 엽견은 마력이 끊어지지 않았다. 마치 고깃덩어리를 걷어찬 것 같이 물컹한 느낌이 느껴졌다. 실체를 분명하게 갖춘 사냥개들은 비웃듯이 대열을 유지했다.


어째서 레아를 집중적으로 노리는지 알 수 없지만, 분명 그 이유가 있어야만 했다. 저열한 취미라기엔 과한 정성을 들이고 있다. 무언가 목적이 있는 게 분명했다.


그녀는 고개를 아래로 숙이고, 벽에 등을 대고 있는 어느 여자를 바라봤다.


"...부탁드려도 될까요?"

"나도 저런 것들은 무리인데."


레베카는 피로 물든 테사르노 교단 옷을 바라봤다. 상처는 깊지 않았지만, 마법을 쓰기 위해 집중하기엔 너무나도 통증이 밀려왔다. 찌푸린 얼굴로 얼굴을 짚었다. 풀려버린 붕대가 파르르 떨리면서 그녀 가슴 앞을 스쳐 지나갔다.


"나 참, 책이나 읽고 있으려고 했는데.... 감시관 꼴이 말이 아니네.... 할 일은 해야지...."


자리에서 비틀거리며 일어난 그녀는 팔에 피어오른 상처들을 바라봤다. 가려움과 부어오름이 반복되면서 온통 손톱자국이 남았다. 며칠 사이에 과한 업무로 인해 제대로 치료할 시간도 없었다. 결국 팔이 엉망이 되도록 이런 꼴이다. 남들이 봤더라면 수상하게 여겼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모두가 상처 입었고 탁류 위에 쓰러져있다. 그녀도 별다를 것 없는 부상자였다. 하지만, 테사르노이고 마법사였다. 애써 끌어올린 마력이 물의 형상으로 모였다.


"이 사람들 이끌고 안전하게 가달라는 거지? 맡겨둬. 그리고 가서 우리 불쌍한 시오르나 지켜줘."

"레베카 씨...."

"잠깐이나마 걔와 쌓은 인연이지만, 이렇게 좋은 사람 몇 명 못 봤어. 그런 애가 살아남아야 우리가 살기 좋지 않겠어?"


정신을 차린 일부 병사들은 그녀를 돕기 위해 다가왔다. 엽견들은 그들을 향해 고개를 돌렸지만, 여전히 공격할 기세는 없었다. 하지만 점차 늘어나는 숫자가 부담스럽다 못해, 두렵기까지 했다.


"가. 우리 집안 영창이 좀 민망해서 가까이 누가 있으면 부담스럽더라."

"...감사합니다."

"고마워. 방화의 세라스. 그런 모습은 또 색다르네."


머리를 휘저은 그녀는, 어느새 세라스가 일행을 쫓아가는 것을 확인했다. 마지막 말은 듣지 못한 것인지 화도 내지 않았다. 건방지고 예의를 모르기로 악명 높은 세라스가 저러는 것을 보아, 확실히 가족이 중요하다는 게 느껴졌다.


자신은 가문을 둔 싸움에서 빠져나온 셈이지만, 그래도 저런 가족이 있었으면 했던 적이 많았다. 사실 지금도 그렇지만, 그런 회상에 잠길 틈도 없이 마력을 끌어내야만 했다.


"비호는 투쟁 속에서 일어난다."


핏물이 하늘로 떨어지듯이 움직였다. 붉은 부분은 덜어내고 순수히 맑은 색의 액체는 마력을 머금고 푸른 색채를 되찾았다.


"그렇기에 물이 취할 모습은 방패이며 칼날이니."


다른 마법사들이 뻗은 마력이 그녀의 마법을 일사불란하게 교정한다. 어긋나는 마력 없이, 그들의 지원을 받아서 더욱 순도를 높이는 마법은 아름답게 반짝였다.


"나는 고요함을 휘젓는 자. 물속에 잠긴 생명을 이끌고, 더러운 것을 도려내는 자."


주변을 감싸는 물길은 폭포 아래에 놓인 것만 같이 빠르게 흘러갔다. 그녀의 주변에는 방금 물방울이 떨어진 듯이 말끔했지만, 그 순간을 재현해낸 마법은 이후에 일어날 것을 예비하듯이 가지런한 힘을 끌어모았다.


"테사르의 이름으로 말하니 죽음은 내 물살 속에 거두지 않겠노라."


물로 이뤄진 톱날이 점차 거리를 넓혔다. 위로 솟구친 파도는 사냥개를 집어삼켰고, 부유한 채로 물살이 그것들을 베어냈다. 난폭한 힘이 물 안에서 일어났지만, 성과 사람들을 해치지 않은 것은 레바카의 실력이기도 했다.


넘실거리는 마력이 물길을 이어가며 도망치는 사냥개의 다리를 붙잡았다. 그대로 휘말린 것들은 붕 뜬 채로 온갖 마력이 몸이 난도질되서, 자신들을 유지하던 마법이 깨지고 말았다. 필사적으로 레베카의 마력을 양분 삼아 버티려고 했지만, 물의 가문이라 불리는 호라이즌의 핵심 마법이다. 순도 높은 마력을 사용하고 그 마력을 끝까지 쥐고 흔들기에 쉽사리 빼앗을 수 없었다.


솟구친 마력이 다시 튕기며 그녀의 위에 뭉쳤고 작은 물방울이 되어 떨어졌다. 떨어진 물방울은 다시 파도를 일으키며 무한히 적들을 쓸어버렸다. 자연의 거대한 순환이, 마법사의 손길 아래에서 재현됐다.


하지만, 가문의 마법을 완벽히 이루지 못했기에 점차 마력이 그녀를 떠나갔다. 과한 소모와 지나치게 상세한 구상이 그녀를 금세 지치게 했고, 마법이 꺼지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흐르지 않았다.


그렇지만 한 번 휩쓴 물길이 활로를 만들어냈다. 위험한 곳에서 죽기만을 기도하던 이들은 다른 병사들의 손에 이끌려 왕성 방향으로 이동했다. 레베카는 과한 마력을 사용한 탓에 현기증을 호소했다. 부여잡은 머리를 자기 손으로 붙잡고 어떻게든 균형을 붙잡은 채, 고개를 돌렸다. 자신을 지원해준 병사들이 다가왔다.


"괜찮으십니까?"

"네. 괜찮습니다. 우선 뒤로 퇴각하죠. 분명 비상사태라면 왕성 중앙으로 집결할 거예요."

"알겠습니다! 전원 퇴각하라!"


잦아드는 물길 너머로 검은 엽견들이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검은 연기는 하늘에 떠도는 것을 붙잡아둔 듯이 더 짙고 자욱했다. 엽견의 이빨은 멀어져가는 생존자들을 향해 다가갔다.


하지만, 일부는 고개를 돌려서 성벽 주변을 바라봤다. 먼저 떠난 것들의 발자취를 훑고는, 주어진 목표로 향하는 길을 알아챘다. 고개를 치켜들며 울음을 토해내는 엽견들은 곧 사냥감을 쫓았다.


충분히 찾으려면 찾을 수 있는, 조금 특이한 목표다. 그렇지만 그것이 어느 마법사와 연관이 되어있다면, 이 기회를 놓치기엔 너무 아까웠다.


뒤집힌 나무가 피워낸, 생기 없고 잔혹한 열매를 피우기엔 너무 좋은 계획이다. 엽견들은 그런 생각을 한 이의 명령대로 빠르게 움직였다. 거친 숨소리가 가까워지면서, 사냥의 전율이 마력으로 이뤄진 육신을 타고 흘렀다.


작가의말

건강 챙기기 힘든 시기라서 무척 힘드네요

다들 감기 조심하시고, 오늘도 보러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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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 후기 20.05.08 92 0 1쪽
80 마지막 여명#5(完) 20.05.07 77 0 14쪽
79 마지막 여명#4 20.04.30 53 0 20쪽
78 마지막 여명#3 20.03.26 27 0 15쪽
77 마지막 여명#2 20.03.19 65 0 12쪽
76 마지막 여명#1 20.03.12 35 0 16쪽
75 잘못된 시작들#8 20.03.05 49 0 17쪽
74 잘못된 시작들#7 20.02.27 44 0 16쪽
73 잘못된 시작들#6 20.02.13 39 0 16쪽
» 잘못된 시작들#5 20.02.06 45 0 13쪽
71 잘못된 시작들#4 20.01.30 43 0 15쪽
70 잘못된 시작들#3 20.01.23 37 0 14쪽
69 잘못된 시작들#2 20.01.16 43 0 15쪽
68 잘못된 시작들#1 20.01.09 42 0 15쪽
67 갈라지는 비극#3 19.12.01 32 0 12쪽
66 갈라지는 비극#2 19.11.28 30 0 16쪽
65 갈라지는 비극#1 19.11.21 31 0 13쪽
64 정말로 잃어버린 것#9 19.11.14 43 0 19쪽
63 정말로 잃어버린 것#8 19.11.07 56 0 14쪽
62 정말로 잃어버린 것#7 19.10.24 38 0 14쪽
61 정말로 잃어버린 것#6 19.10.17 37 0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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