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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채색의 마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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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masquerR
작품등록일 :
2018.08.02 17:46
최근연재일 :
2020.05.08 00:06
연재수 :
81 회
조회수 :
9,434
추천수 :
82
글자수 :
474,693

작성
19.12.01 23:41
조회
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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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2쪽

갈라지는 비극#3

DUMMY

주문서를 검토하는 시오르를 뒤로 하고, 세라스는 공방의 문을 닫았다. 바깥으로 걸어 나올수록 상쾌해지는 공기와 반대로 속은 탈 것만 같이 쓰라렸다. 마법사들과 경비들이 인사하지만, 받는 둥 마는 둥 하며 저택을 나섰다.


성벽이 세워진 도시는 코넥스의 중심에 있지만, 저택은 도시의 중심에서 약간 어긋났다. 산이라고 하기 민망한 작은 언덕이 저택 근방에 있는 게 이유였다.


세라스는 지리적인 요소는 모른다. 단지, 돌아다니기 불편한 산을 끼고 자리 잡은 조상들이 이해 가지 않을 뿐이다. 설령 지리학을 배웠더라도 이런 쪽에 저택을 짓자고 하진 않았을 것이라고 중얼거린 그녀.


산은 그녀에게 어울리지 않았다. 옆으로 튄 마법은 걷잡을 수 없이 마을을 태운다. '방화'라는 이름이 붙은 건 다 이유가 있다. 가끔 나무가 자라지 않은 곳만 보여도, 자기 실수가 떠올랐다.


"하아...."


그런 그녀가 산으로 향한다. 불을 지르려는 건 당연히 아니다. 알렌과 이야기를 할 일이 있었다. 그가 오는 걸 기다릴 상황이 아니었기에, 걸음은 바빠졌다.


강화마법도 익히지 못한 세라스는 화가 났다. 멍청한 건 맞다고 생각해도, 노력하지 않은 건 아니다. 하지만 들인 노력과 시간을 배반당하는 건 참을 수 없다. 사람과 있을 때도 그랬다. 그녀는 언제나 불길과 같았다.


이번에도 참지 못한 채, 서툰 발걸음으로 산을 오른 세라스. 그렇지만 걸음은 오래 가지 않아서 멈췄다. 거친 숨을 쉰 그녀는 무릎을 짚은 채로 말했다.


"아니! 벌레도 많은데, 이런 날에 굳이 산에 가는 건 대체 뭐야!"


소리를 지르니 속이 조금 나아진 세라스. 이미 아는 일이다. 알렌은 집보다 바깥 생활을 좋아한다. 운동도 바깥에서 했고, 배운 것도 바깥에서 더 많이 배웠다.


귀족답지 않다는 말은, 모든 리버스 가문의 남매가 들어왔다. 나르시아만 빼고.


형의 영향 덕인지 더욱 자유분방해진 성격은 세라스와 비슷하게 보인다. 하지만, 남매이고 연년생이다. 기가 막힐 정도로 취향과 방향성 모두 다르다. 어쩌면 이 집안에서 유일하게 남들과 닮은 관계다.​


그래도 집안일을 생각하는 건 다른 두 사람에 밀리지 않았다. 시오르의 말을 빌려서 '어디에서도 당당하게 소개할 수 있는 동생들'이다. 중요한 일이 닥치면 누구보다 합이 잘 맞는 것은 그녀와 알렌이니까.


생각이 끝날 무렵, 세라스는 알렌의 뒷모습이 보였다. 마력으로 신체를 강화한 채, 만들어진 마법 안에서 바쁘게 움직였다. 하얀 내의는 땀과 흙먼지가 가득 묻어있다.


수정에 새겨진 마법진은 온갖 장애물을 생성했다. 방어막과 마력 기둥이 다가오자, 알렌은 이를 극복하고자 필사적으로 돌파했다. 거리가 멀어지면 마력이 흩어져서 약해진다. 가까이 가려고 할수록, 더욱 힘들어지는 건 당연했다. 그게 그가 택한 훈련 방식이다.


"알렌, 나 왔다."

"방해되니까 잠깐 옆에 있어."

"진짜 곱게도 말한다."


새어 나온 한숨을 막을 생각도 없이, 그녀는 옆길로 터벅터벅 걸어갔다. 이런 부분에서 두 사람이 닮았다는 소리도 나오곤 한다. 차이라면 알렌 쪽은 감정에 따라 표현의 정도가 크게 달라진다는 점. 적어도 지금 말투를 봐선, 아직도 화난 상태인 건 충분히 짐작한 세라스였다.


주먹에 마력을 실은 알렌은 방어막을 깨부수고 돌진했다. 맹렬히 쏟아지는 방해물들도 거뜬히 부쉈지만, 그는 일부로 그것을 피했다. 마법과 정면으로 부딪친다면 막는 것보단 피하는 게 정론이다. 몇 번이고 기억하며 조금씩 수정에 가까워졌다.


그는 나르시아와 같은 왕국 기사단원이자, 차기 단장도 노리는 프라하가 가르쳤다. 성격이나 행실만 보면 동네 형이나 다를 거 없지만, 검사로선 유능함이 자자했다. 물론 언니에게 찝쩍대는 건 무척이나 싫었다. 그래도 알렌이 충분한 실력을 갖춘 건 그 덕분이다. 그런 탓에 서로 프라하를 평가할 때에 엇갈리니, 사이가 좋을라고 노력해도 그럴 수 없다.


마침내 수정에 닿은 알렌은 마력을 움켜쥐며 마법진을 뭉갰다. 자신이 건 마법이 끊어지면서 마력이 큰 반동을 일으키며 그를 밀쳐냈다. 날아가는 듯하더니, 알렌은 크게 회전을 주어서 균형을 잡았다. 무릎을 땅에 댄 채로 착지한 그는 흙먼지를 털며 수정을 회수했다.


"용케도 왔네. 다시는 안 온다더니."

"그나마 벌레 안 돌아다니는 계절이잖아. 세 번째 달은."

"그래서, 왜 여기로 온 거야? 이야기는 집에서 해도 되잖아."


바닥에 주저앉은 알렌은 심드렁한 표정으로 말했다. 낮이 끝나갈수록 그림자는 깊어졌다. 그리고 세라스의 얼굴에도 드리워진 그림자는 걷힐 듯 보이진 않았다.


"집에서는 너도 입 안 열잖아."

"그게 낫잖아. 맨날 내가 입 열면 누나랑 싸우고."

"자각은 있나 보네."


대화는 거기에서 멈췄다. 세라스가 입을 다물고 있자, 알렌은 먼저 입을 열었다.


"그래서 왜 왔는지 정말 말할 생각 없어?"

"...어제 일 말이야. 대체 왜 그렇게 된 거야?"

"네가 봤던 그대로야. 누나가 흥분한 탓에 마법을 썼고, 그게 운 없게 형한테 맞았을 뿐이야. 그나마 마방 어디로 튄 건 아니라 다행이고."​

"이제야 와서 뭘 둘러대는 거야? 빨리 솔직하게 말해."


세라스의 독촉은 거칠었다. 알렌은 살짝 눈을 감았다가 앞을 바라봤다. 고집부리기론 그녀를 이길 수 없기에, 포기하는 데에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래. 누나가 시오르한테 불만이 많았어. 그게 말싸움의 화근이야."

"대체 왜? 진짜 네가 했던 말이 사실이야?"

"애초에 믿지도 않았잖아."

"언니가 그럴 사람이 아니잖아."

"나도 그런 줄 알았지."


알렌은 불쾌한 기억을 떠올리며 말했다.


"근데 상식적으로, 낙인이 찍히는 광경을 히죽이며 보는 게 사람이야?"

"말도 안 돼."

"아예 안 되진 않지. 이전부터 누나는 형 대하는 걸 꺼렸잖아. 어딜 가도 형 알아서 하라고 하고."

"증거는? 정말 그게 전부야?"

"봐. 완전 누나 편이잖아."


코웃음을 친 알렌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세라스는 떠날 것 같은 알렌을 붙잡으려 했다. 하지만, 자신의 모든 것이 나르시아를 변호하는 것 같았다. 어찌할 도리를 모른 채, 가만히 서 있는 세라스.


마법으로 몸에 묻은 털어낸 먼지는 냅다 산기슭을 향해 던져졌다. 알렌은 나뭇가지에 걸쳐둔 옷을 끌어당기고 허공에 띄워뒀다. 옷을 입는 그는 불쾌한 듯이 세라스를 봤다.


"그러니까 더 할 말은 없어. 믿지도 않을 거면 뭐하러 내 의견을 물어? 차라리 형한테 가서 누나가 그럴 사람이 아닌데 무슨 오해라도 있었을 거라면서 대신 변명이라도 해주지?"

"말이 너무 심하잖아. 난 단지...."


목소리가 세지던 세라스는 말을 멈췄다. 엄밀히 말하면 자신도 알렌의 누나다. 하지만, 집을 나선 이후로는 작은 누나라고도 하지 않았다. 어딘가 멀어져 버린 그의 행동에 자신의 책임이 있는 것 같아서 화까지 났다. 그렇지만 그것을 알렌에게 돌리면 실수를 반복하는 일이다.


"단지 누나가 정말 걔를 싫어했나 의구심이 들었을 뿐이야. 세온 3세 앞에서는 자기가 책임지겠다고까지 맹세했는데...."


알렌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도 그 부분이 의아했다. 단순히 그를 합당하게 죽일 수 있는 권한을 쥐고 싶었던 건 아닐 것이다. 게다가 여정 중에는 아무렇지 않게 대하기까지 했다.


설령 속으로 몰락한 형을 비웃고 이 상황에 만족하는 중이었다고 해도, 굳이 이렇게까지 앞장설 필요가 있었나 싶었다. 지금도 집에 체류시키고, 왕국에 바로 보내지 않았다. 완전히 시오르에게 악의를 내뿜는 건 아닌가 생각이 들었다.


두 사람에겐 곤란했다. 어떤 게 진심인지 확신할 수 없었다. 다만, 그 순간에 터진 열등감은 분명했다. 도무지 상상할 수 없었던 모습이다.


착잡한 마음에 서로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알렌은 먼저 산에서 내려갔고, 세라스는 그 사실을 알고 나서야 따라갔다. 침묵은 언제나 어색했다. 바람이 싣지 못한 무거운 분위기가 굴러내려 갔다.


저택에 다시 도착했을 때는 레아가 돌아오고 있었다. 아래쪽 길목에서 걸어온 그녀는 그들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새하얀 미소는 하늘에 뜬 햇빛처럼 선명했다.


"세라, 알렌!"


마력을 많이 쓴 탓에, 그녀는 마법을 쓰지 않았다. 그 탓인지 붕대로 감은 상처들을 회복하지도 않았다. 이제는 익숙해질 법도 하지만, 알렌은 여전히 그렇지 못했다.


다급하게 달려간 세라스는 그녀의 상처를 살폈다.


"세상에. 잠깐 마을 간 거 맞지?"

"응...."

"기다려 봐. 마법으로 치료하는 거면 안에 마법사들 있으니까 부탁하자."


세라스의 모습에 조금은 신기했던 알렌은 가만히 그 광경을 지켜봤다. 친구라고 할 만한 사람이 거의 없는 그녀가, 저렇게까지 사람 손을 꽉 잡고 달려가는 건 부모님이 알았더라면 어떤 표정을 지었을까?


그렇지만 걱정은 수풀 속에 숨어있는 뱀처럼 나타나 이빨을 드러냈다. 레아의 행실은 이질적이고 기괴했다. 잠도 제대로 자지 않은 채, 매일 시오르의 성과를 뒤쫓으려고 하는 모습. 어딘가 나르시아를 닮은 것 같았다.


나르시아는 시기를 품었지만, 레아는 아니다. 그 생각 덕에 알렌은 그녀와 가까이 있기 더욱 꺼려졌다. 몸이 병든 시오르와 다르다. 새하얗게 피어난 꽃이라기엔 어딘가 병들고 비틀렸다.


형이 아직 사람을 못 보는 걸까? 알렌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기억이 없어도 그가 '시오르'임을 입증하는 것은 여러 차례 확인했다. 천재성이나 감성은 타고난 것이다. 그렇다면 이해하지 못한 게 아닐 것이다. 설령 모른다고 해도, 알게 될 것이다.


이 사실도 형에게 말해야 할까? 생각할 때마다 세라스의 핀잔이 떠올랐다. 그를 더 상처 입히지 말라고.


"경비병."

"네. 도련님."

"지금 마방에 있는 형이 뭐 하는지 확인해줘. 옷 갈아입는 데로 거기로 간다고 전해주고."

"알겠습니다."


경비병이 멀어지는 발소리에 맞추듯, 그도 저택 문을 향해 걸어갔다. 혼자 훈련할 때보다 다리가 무서워서 곤란했던 알렌.


고개를 낮추니 새삼 자신이 많이 컸다는 게 느껴졌다. 어릴 적엔 그렇게도 가까웠던 땅이 멀게 느껴졌다. 자신은 성장했다. 분명 가족들 모두, 여러 의미로 발전했을 것이다. 자신이 그렇게나 싫어하는 나르시아도.


하지만 시오르는 성장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아무리 발전해도 과거의 그림자에 비하면 초라하다. 날아오르기 위한 날개 대신, 그를 붙잡은 족쇄와 목을 조여오는 불안만 가득했다. 금방이라도 그를 찢어버릴 듯이 달려드는 현실에 숨이 턱 하고 막혔다.


지금 형이 믿는 여자도, 형이 좋아하는 여자도. 심지어 가족인 사람조차. 시오르에겐 배제하는 게 좋았다. 언젠가 그들이 형을 망칠 것이라는 생각만 들었다.


그가 바라봤던 형은 잔인하리만큼 솔직했다. 유리병에 담긴 순수한 물처럼, 누군가가 무엇을 넣으면 훤히 보일 것 같이 분명했다. 거짓말은 그와 어울리지 않았다고 느꼈다. 무언가를 숨긴다는 것이 느껴질 만큼, 모두에게 솔직했다.


그러니 말해야 한다. 얼마나 괴로운 일이라도, 형이라면 솔직하게 알려줬을 것이다. 그게 옳다고 믿는다. 자신이 바라본 형은 그러했고, 그런 길을 걷고 싶었기에.


작가의말

하던 이야기는 마저 끝내고 떠나야겠죠

1월에 뵙도록 하겠습니다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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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 후기 20.05.08 93 0 1쪽
80 마지막 여명#5(完) 20.05.07 77 0 14쪽
79 마지막 여명#4 20.04.30 54 0 20쪽
78 마지막 여명#3 20.03.26 28 0 15쪽
77 마지막 여명#2 20.03.19 66 0 12쪽
76 마지막 여명#1 20.03.12 35 0 16쪽
75 잘못된 시작들#8 20.03.05 49 0 17쪽
74 잘못된 시작들#7 20.02.27 45 0 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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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 잘못된 시작들#2 20.01.16 43 0 15쪽
68 잘못된 시작들#1 20.01.09 43 0 15쪽
» 갈라지는 비극#3 19.12.01 33 0 12쪽
66 갈라지는 비극#2 19.11.28 30 0 16쪽
65 갈라지는 비극#1 19.11.21 32 0 13쪽
64 정말로 잃어버린 것#9 19.11.14 43 0 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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