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masquer_R

무채색의 마법사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완결

masquerR
작품등록일 :
2018.08.02 17:46
최근연재일 :
2020.05.08 00:06
연재수 :
81 회
조회수 :
9,395
추천수 :
82
글자수 :
474,693

작성
18.08.02 17:49
조회
1,940
추천
9
글자
17쪽

황혼이 끝날 무렵#1

DUMMY

엉성하게 설치된 돌바닥이나 약간 거무튀튀하게 변색된 목재 건물들 사이로 유독 밝은 빛이 나고 있었다. 이렇게 늦은 시간임에도 활기가 있는 것은 마을에 있는 한 길거리였다. 길을 따라 들어가자마자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보석처럼 빛나는 노란색 등. 와글거리는 사람들의 목소리. 잔이 부딪치는 소리. 누구나 책에서 읽어봤을 법한 즐거움을 그대로 꺼내온 것 같았다. 가게 앞에는 '신장개업'과 '개업 기념' 등의 문구가 적힌 팻말이 설치되어 있었다.


설치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맑은 색으로 이뤄진 의자 위에는 여러 사람이 앉아있었다. 주로 젊은이들이 한창 자신들의 이야기를 꽃피우고 있었고, 그 주변으로는 외식을 나온 가족들이 자주 보였다. 다만 그런 무리와는 다르게, 한 무리의 늙은이들은 한탄을 멈추지 못하고 있었다. 한숨이 길어질수록 그들의 옆에 놓이는 술병은 점차 늘어났다. 주인장은 그런 늙은이들이 하필이면 가게 앞쪽 자리에 앉아있다는 것이 무척이나 고민이었다. 자꾸 한탄만 하는 술고래들이 오는 가게로 첫인상이 정해지는 건 그닥 장사하는 입장에선 좋지 못했다.


그런 주인장의 생각을 모르는 것인지, 사라진 머리털 대신 길게 늘어진 수염을 가진 늙은이는 잔을 채워나갔다. 그의 주변에 있는 여러 노인은 그가 자꾸만 술을 넘기는 모습이 걱정스러운 눈빛을 보내고 있었다. 하지만 그를 말릴 수는 없었다. 그 노인에게는 그럴 이유가 있었다.


"호즈, 벌써 10병째이네만."

"시끄러워. 어차피 내가 사는 거잖나."


호즈는 수염을 적시는 듯한 느낌으로 대충 술을 흘려 넣었다. 그리고는 잔을 내려놓고는 멍하니 내용물을 바라보았다. 그 안에는 추한 노인 하나만 비춰질 뿐이었다. 아들이 죽는 날까지 이 마을에서 떠나지 못하고 사서 노릇을 하고 있는 자신이 한탄스러웠다. 나라를 뒤흔들었던 레쉬리안 혁명의 시작이 얼추 10달 전이다. 마법으로 무너진 성과 건물들은 복구되었을지라도, 죽은 사람은 돌아오지 못했다.


"빌어먹을 시대 같으니라고...."


그 쯤, 멀리서 다른 젊은이들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기분이 썩 좋지 않았던 호즈는 고개를 돌려서 그 방향을 보았다. 한창 젊은 나이로 보이는 무리 중 상처가 많은 남자가 웃으며 자기 무용담을 말하고 있었다. 특히 레쉬리안 혁명 때 나선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하하하, 그래서 말이야. 어떻게 됐어?"

"녹시아 가문 녀석 대가리에 칼을 꽂아줬지! 하여간에 귀족 새끼들도 뒤질 때가 되면 추한 건 마찬가지더라고!"

"사람을 죽이는 게 그리도 자랑거리인가...."

"호즈, 참게나."


호즈의 옆에 있던 노인은 그의 팔을 부여잡았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그의 팔에는 힘이 들어가 있었다. 금방이라도 책상을 집어 던질 것처럼 부들거리는 팔을 보고는 다시 한숨을 내쉬었다. 그 대신, 술 마시는 것을 말리던 노인이 직접 술잔에 새로 술을 따라주었다. 녹스는 다시 가득 찬 잔을 들이켰다. 그의 감정만큼이나 잔에는 많은 게 남아있었다.


"자네 돈 많은 건 알겠다만, 아까부터 도수가 높은 술로 시키고 있다는 건 알고는 있는 거지?"

"누가 모르겠나. 이 짓이라도 안 하면 내가 어쩌겠다고."

"내일도 근무라면서."

"임시직 뽑아뒀네. 내일은 어디에도 안 나갈 거야."

"거 참, 우리도 어차피 자네 집에서 바쁘겠지만 그래도 술은 적당히 하게. 아무리 그래도 자네 집을 정리하는데 우리가 자네를 치울 수는 없잖나?"

"맞아. 그러니 조금만 줄이는 게...."


다만, 호즈의 일행은 호즈가 속이 타는 것처럼 다급하게 술을 넘기느라 말이 끊어졌다. 그의 눈가에는 시뻘건 핏줄이 뻗어있었다. 뿌리가 파고든 흙처럼 이리저리 비틀리는 눈동자는 그가 상당히 취했음을 보여주었다. 그럼에도 한 사람이 용기를 내서 말을 걸었다.


"아니면 조금은 마음을 둘만 한 곳을 술이 아니라 다른 곳에라도...."

"그럼 자네 말대로 테사르노에 입교라도 해야 하나. 대체 그놈의 신이 뭘 했다고. 다 멍청이들이야. 한평생 배우기만 했던 내가 보기에도 신은 형편없어!"

"호즈! 그래도 테사르노는 국교일세. 전 국민의 8할 가까이가 믿는데 너무 목소리 큰 거 아닌가?"

"하, 감시관이니 파견인이니 하는 놈들이 내 대가리를 깨기라도 한단 말이야? 350년 전도 아니고, 이젠 그냥 지방 관리들이나 다름없어. 겨우 전단지나 돌리고 믿는 놈들 수금하는 애들일 뿐이라고."


그의 날카로운 말투에 일동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호즈가 아까 중얼거렸던 '빌어먹을 시대'의 희생자들이었기에 그 마음을 이해 못 하는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하나뿐인 아들이 그렇게 죽어버릴 줄 그는 알지 못했다. 무엇보다 그의 아들은 마법에 재능이 훌륭했다. 어릴 적부터 책과 가까웠던 자신 때문에 너무 많은 것을 배워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그 재능이 호즈의 아들을 죽여버린 것이다. 이럴 때는 마법이라는 것이 너무 증오스러웠다. 그는 바다 너머의 네티아 공화정으로 도피하고 싶었다. 그들은 마도학이라 불리는 정석적인 마법보다는 기술력을 중시하는 마공학을 사용하는 이들이니까.


"망할 마법 같으니라고!"


분노가 치밀어오를 무렵, 그는 자신도 모르게 들고 있던 잔을 들어 앞으로 던져버렸다. 다행히 앞자리에 있던 노인은 잠시 화장실을 가려고 자리를 비운 상태였다. 하지만 날아간 잔의 궤적 안으로 한 여자가 지나가고 있었다. 머지않아서 무언가가 깨지는 소리가 났고, 한순간에 주변에 조용해졌다.


"이봐! 뭐 하는 짓인가!"

"저기, 처자! 괜찮은가?"


갈색 로브를 쓰고 있던 여자는 자신의 옷에 박혀버린 유리 조각을 슬쩍 보았다. 그리고는 손을 들어서 무언가를 다루기 시작했다. 푸른색 마력이 그녀의 손끝에서 나와서 유리 조각을 전부 땅바닥에 내던졌다. 젖었던 로브에서는 술이 뽑혀 나오면서 물방울이 되어서 허공을 떠다니고 있었다. 마법으로 자신에게 닿은 피해를 치워낸 여자는 조심스럽게 가게 안을 보았다.


가게에 있던 사람들은 조금은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외관적으로 즐겨입는 사람이 있다고 해도, 로브는 보통 마법사들의 장비였다. 마력이 깃든 식물로 짜서 만드는 것이기에, 아무리 싸움 중에 제일 먼저 파손되는 로브일지라도 그 가치는 상당할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갈색 로브 안쪽으로 드러난 여자의 눈매는 칼날처럼 매섭게 빛나고 있었다. 붉은 눈동자가 그 방향을 향하자, 호즈도 정신이 돌아오기 시작했다. 그도 살아온 세월이 많았던 만큼 살기를 뿜어대는 여자에게 화를 낼 자격도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애초에 자신의 실수임을 자각한 이상, 더 입을 열어선 안 됐다.


여자는 천천히 물방울을 손 위에 띄운 채로 그들에게 걸어왔다. 어디선가는 다급하게 도망치는 듯한 소란이 있었지만, 대개 가만히 있는 사람들이 많았다. 무엇보다 어떤 이들이 여자를 알아보면서 흥분이 가라앉은 것이다. 저렇게 특이한 사람을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라며 중얼거리는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호즈와 그 일행은 그 사실을 알지 못했기에 두려울 수밖에 없었다.


여자는 경직된 분위기를 보고는 '자기가 무언가 잘못했나?' 싶어서 심장이 뛰었다. 유리잔에 맞은 건 몹시 아픈 일이지만, 그녀가 애초에 이런 일로 아파할 존재는 아니었다. 그냥 재수없는 일로 넘길만한 일이었다. 그래서 그녀는 냉큼 물방울을 다른 술잔 안에 넣어두었다. 다시 잔으로 흘러 들어간 술은 철렁거리며 약간의 거품을 일으켰다. 그래도 분위기는 가라앉지 않았다.


"네, 괜찮아요."


그녀는 안심하라는 듯이 로브를 벗으며 말했다. 입술보다 더 연한 분홍색 머리카락이 드러난 여자의 얼굴은 일부 남자들의 시선을 빼앗았다. 나무를 감고 올라가는 덩굴 같은 머리카락과 수확하기 직전인 열매만큼이나 탐스러운 몸매가 로브 안에 감춰져 있던 것이다. 여자는 로브를 팔에 걸치고는 맞았던 부분을 가리켰다. 상처 하나 없이 깔끔했다.


"보이시죠?"

"...미안하네. 잠시 화가 나서."

"무슨 일이었는진 모르겠지만 이해할게요."


여자는 호즈의 옆에 놓인 술병을 슬쩍 보고는 말했다. 그리고는 자기는 이만 가보겠다며 다시 로브를 쓰고 가던 길을 떠났다. 잠시 시간이 멈췄던 것 같은 가게는 다시 활기를 되찾았다. 그리고 대부분은 그 여자에 대한 이야기였다.


사실 지르빌에 사는 이들 중 여자를 본 사람은 제법 많았다. 하지만 그녀가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 아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그저 마을에 잠시 와서 물건을 사거나, 수준 높은 마법 장비들을 판매하고 있다는 점만 알려진 상태였다. 이름조차 모를 여자에 대해 이야기를 하던 무리는 결국 알 수 없는 것에 대한 이야기 대신 자신들의 주제로 다시 돌아왔다. 가게는 다시 활기를 온 마을에 뿌리기 시작했다.


그런 사실도 모른 채, 마을을 점차 떠나고 있는 여자는 찝찝함을 느꼈다. 그냥 '아, 괜찮습니다' 하고 조용히 지나가는 게 더 나았으려나 고민에 빠졌다. 항상 뭔가 잘못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는 그녀였기에, 그 부분이 너무 찝찝했다. 잘 생각해보면 사실상 땅바닥에 떨어진 거나 다름없는 술을 다시 잔에 넣어준 게 아닌가? 혹시 이거나 먹으라는 모욕으로 받아들였을까 걱정돼서 뒤를 돌아보았다. 이미 밝은 빛과 그녀는 너무 먼 거리에 서 있었다.


"하.... 날로 갈수록 이상한 평판만 늘리는 것 같은데...."


그렇게 말한 여자는 로브를 만지작거렸다. 집구석에 박혀서 열심히 마법 도구나 만들고 있을 녀석을 생각하면, 자기가 더 노력해야겠다고 생각할 뿐이었다. 그녀가 바라건대, 아직 그의 존재가 세상에 드러나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사람들이 그에 대해 잊고 난 뒤에 필요한 것을 알려주고 일을 시작해도 괜찮겠다 싶었다.


게다가 워낙 몸이 안 좋아서 자주 쓰러지는 그를 생각하면, 절대 지금은 뭘 시키고 싶지 않았다. 하도 마법을 배우고 싶다고 졸라대서 어쩔 수 없이 마공학을 가르치긴 했지만, 조만간 마법에 손을 댈 것처럼 보였다. 그녀는 그것을 절대 원치 않았다. 마법에 손을 댄다면 분명 그는 모두에게 모습이 드러날 것이다. 그런 생각에 여자는 달리기 시작했다. 오늘은 집에 일찍 가봐야 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


짙은 어둠 속에서 한 노인이 산길을 따라 걸어가고 있었다. 그는 물만 묻어도 티가 날 정도로 새하얀 로브를 입고 있었다. 게다가 후드를 뒤집어쓴 상태에서 흘러나온 수염은 그가 얼마나 늙었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었다. 하지만 깊은 어둠 속에서도 총명함을 잃지 않은 보석 같은 그 눈은 자신에게 일어날 일을 예측하였다. 왼쪽 나무 뒤에 느껴지는 마력과 자꾸만 겹쳐서 들리는 발소리만으로 그는 자신이 미행당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정확히는 이미 이렇게 미행당할 거라고는 생각을 하고 나선 것이었다.


그는 어느 시점에 맞춰서 이들을 쫓아낼까 생각을 해보았다. 이제 조금만 더 걸어가면 나투르 대륙의 동부, 칼립소 지역에 들어서게 된다. 산과 숲이 많은 지역이기에 얼핏 보면 사람 만나기가 힘들어 보인다. 하지만, 예로부터 정통 마도학의 고향으로 불린 땅에는 책 사이에 낀 먼지처럼 사람들이 흩어져서 살고 있었다. 그러니, 만약 칼립소 지역에 들어섰을 때에 그들과 대적했다간 민간인에게 피해를 줄 수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이라고 좋은 때는 아니었다. 노인이 하고 싶은 일은 그들의 관심을 최대한 끌고 시선을 돌리는 일이다. 시간이 길어질수록, 그가 원하는 정보를 상세하게 얻어낼 수 있었다. 최대한 그들을 모르는 척 하고 넘어가야, 불쌍한 적이 자신들의 실수를 깨닫지 못할 수 있는 것이다.


노인이 찾는 것은 한 소년이었다. 자신의 제자였고, 제자의 아들이기도 한 한 소년이었다. 그는 건강을 제외하고는 많은 것을 거머쥐고 태어났다. 남들과 같았더라면 오만하고 강대했어야 할 재능이었다. 하지만 그는 그러지 않았다. 힘을 올바르게 사용할 줄 알았고, 지혜를 필요한 곳에 쓸 줄 알았다. 좋은 환경 덕에 인성은 더나위 없이 성숙해져만 갔다.


하지만 1년 전에 모두를 위해서 많은 것을 희생했다. 만약, 그가 그런 일에 휘말리지 않았더라면 그는 지금쯤 모두가 우러러보는 마법사로서 살고 있었을 것이다. 자신의 뒤를 이을, 어쩌면 자기보다 더 나은 삶을 살 사람임을 그는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렇기에 이 순간은 중요했다. 속된 말로 '저주받은 시대를 살아가는 축복받은 세대'를 위해서 그는 자신이 더 노력하기로 결심했다.


"벌써 날이 이렇게 된 건가...."


그는 하늘에 뜬 별을 바라보았다. 완전히 시커멓게 물든 도화지에 구멍을 낸 것처럼 희미한 빛만 눈에 들어왔다. 노인은 자신이 너무 늙었다고 생각했다. 한때는 저런 하늘만 봐도 목표가 생기고, 의지가 솟구쳤다. 하지만 지금은 걱정과 슬픔만이 그의 눈가를 적셔왔다. 노인은 한숨을 푹 쉬고는 고민하던 것을 마저 고민하기로 했다.


하지만 그의 생각과는 다르게 가벼운 무언가가 발사되는 소리가 들렸다. 노인은 성질도 급하다고 중얼거리며 손을 앞으로 뻗었다. 그에게 날아오던 푸른색의 화살 하나가 허공에서 부스러졌다. 노인은 고개를 들어서 화살이 흩어지는 모습을 보았다. 불안정하게 흔들리는 마력은, 시전자가 미숙한 실력자임을 알아보았다.


"노인은 책과 같이 대하라고 할 텐데, 너무 한다고 생각하지 않나?"

"유감이야. 할아범. 나는 책 같은 건 불태우는 사람이라서 말이야."

"내가 아무리 자네들을 모른다지만 나를 목표로 한 거라면 분명 목표의 이름 정도는 알고 왔을 거라고 생각한다만."


그의 앞에 나타난 것은 책을 든 남자와 칼을 든 여자였다. 그들의 로브는 평범한 갈색이었으나, 그들이 든 물건에는 익숙한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나뭇잎 없이 거꾸로 심겨진 나무. 누군가는 '배교'라 부르고, 누군가는 '광인'라고 하는 이들의 상징. 하지만 그들에게도 정확한 이름이 있었다.


"설마 루니르노에서 그걸 알려주지 않았다고 하진 않겠지?"

"하, 지금까지 우리가 따라오는 것도 모르는 늙다리가 설마 현자라고 칭송받는 시나한일 줄 어떻게 알겠어?"

"맞아. 정말 그 사람 맞나 확인하는 데 시간 너무 썼다고."

"허허. 하긴, 나도 많이 늙긴 했지. 근데 자네들은 책을 좀 많이 봤어야 했는데 말이야."


시나한의 웃음기가 사라지는 순간, 두 사람은 꺼림칙함을 물리적으로 체험할 수 있었다. 한순간에 허공에 묶인 그들은 자신들을 둘러싼 푸른 마력을 보았다. 풀어보려고 했지만, 갈고리처럼 그들의 살에 끼워진 채로 고정된 것 같았다. 하늘 위로 그들을 띄운 시나한은 나지막이 말했다.


"남의 실력을 잘 알지 못하는 이가 자기 힘만 믿고 까불면 보통 패배한다는 것 정도는 동화에서도 나오는 흔한 일인데 말이야."

"그게 뭐 어쨌다는 거지!"

"거 보세. 마법의 기본은 집중인데, 지금 마법을 쓸 생각은커녕 이 마법을 몸으로 풀려고 허둥대고 있지 않은가? 게다가 자네는 검으로 이걸 끊을 생각도 안 하고 뭐하는가? 설마 내가 너무 세게 잡아서 칼자루를 잡을 힘도 없는 것인가?"


그제서야 자신들의 실수를 깨닫고 힘을 쓰는 두 사람이었지만, 시나한은 손을 뻗어서 거대한 무언가를 허공에 그리기 시작했다. 푸른 마력이 원처럼 한 바퀴를 돌고 그 안에 수많은 글자와 도형을 채워내기 시작했다. 단 한 순간에 만들어진 마법진은 두 사람을 향해 달려갔고, 마법진 안에 삼켜진 그들은 기운을 잃고 추욱 늘어졌다.


시나한은 그들이 가지고 있는 칼과 책을 주워들고는 두 사람을 조심스럽게 나무 옆에 앉혀두었다. 그리고 허공에서 일어난 불에 책을 던지고, 알 수 없는 일그러짐 속에 칼을 던졌다. 책 대신 떨어진 재는 바람에 흩날렸고, 완전히 구부러진 칼은 쇠공이 돼서 바닥을 나뒹굴었다. 시나한은 일을 마치고 난 뒤, 조심스럽게 갈 길을 마저 떠났다.


그들이 성급하게 나와준 덕에 조금은 고민을 덜었다고 생각하니, 역시 하늘에 있는 신께서 다 이뤄주신 게 아닌가 감사했다. 한 꺼풀 고민을 집어던진 그는 더욱 침착하게 발걸음을 내디뎠다. 추격자들이 깨어나자마자 자신의 흔적을 찾을 수 있으니, 오늘 밤은 준비를 단단히 해야겠다는 생각뿐이었지만 그것만으로 충분했다.


그 소년만 찾을 수 있다면 모든 게 바뀔 수 있다. 그 믿음이 그의 걸음을 더 빠르게 만들었다.



작가의말

만나뵙게 되서 반갑습니다

긴 말 없이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2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무채색의 마법사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4월 휴재 안내 20.04.02 48 0 -
공지 2월 휴재 공지 20.02.20 61 0 -
공지 12월 휴재 공지 19.11.28 62 0 -
공지 금주 휴재 공지 19.10.28 21 0 -
공지 8월 격주 휴재 공지 19.08.12 55 0 -
공지 4/25 휴재 공지 +2 19.04.11 91 0 -
공지 미리 말씀드리는 공지 19.03.14 252 0 -
공지 1/17 휴재 19.01.10 76 0 -
공지 업로드 관련 18.08.02 159 0 -
81 후기 20.05.08 92 0 1쪽
80 마지막 여명#5(完) 20.05.07 77 0 14쪽
79 마지막 여명#4 20.04.30 53 0 20쪽
78 마지막 여명#3 20.03.26 27 0 15쪽
77 마지막 여명#2 20.03.19 65 0 12쪽
76 마지막 여명#1 20.03.12 35 0 16쪽
75 잘못된 시작들#8 20.03.05 49 0 17쪽
74 잘못된 시작들#7 20.02.27 44 0 16쪽
73 잘못된 시작들#6 20.02.13 39 0 16쪽
72 잘못된 시작들#5 20.02.06 43 0 13쪽
71 잘못된 시작들#4 20.01.30 43 0 15쪽
70 잘못된 시작들#3 20.01.23 37 0 14쪽
69 잘못된 시작들#2 20.01.16 42 0 15쪽
68 잘못된 시작들#1 20.01.09 42 0 15쪽
67 갈라지는 비극#3 19.12.01 32 0 12쪽
66 갈라지는 비극#2 19.11.28 30 0 16쪽
65 갈라지는 비극#1 19.11.21 31 0 13쪽
64 정말로 잃어버린 것#9 19.11.14 43 0 19쪽
63 정말로 잃어버린 것#8 19.11.07 55 0 14쪽
62 정말로 잃어버린 것#7 19.10.24 38 0 14쪽
61 정말로 잃어버린 것#6 19.10.17 37 0 13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