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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채색의 마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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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masquerR
작품등록일 :
2018.08.02 17:46
최근연재일 :
2020.05.08 00:06
연재수 :
81 회
조회수 :
9,419
추천수 :
82
글자수 :
474,693

작성
19.02.14 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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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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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글자
12쪽

모든 마법은 머리에서부터#1

DUMMY

싸늘한 감각이 점차 살점을 파고든다. 무겁고 눅눅한 숨소리를 들으며, 감았던 눈을 서서히 뜬다. 시오르는 뺨에 닿고 있는 차가운 돌바닥을 바라본다. 정신을 차린 지 얼마 되지 않아서, 바닥조차 흐릿하게 보였다. 몸은 피곤함과 저릿함은 쉽사리 떠나가질 않는다.


하지만 정신이 돌아오면서, 조금 전에 있었던 일을 떠올린다. 두 사람에게 쫓겨서 도망치다가 실패했다. 그 사실이 기억나자, 반사적으로 팔은 바닥을 짚고 힘을 주고 있었다. 억지로 일어난 탓에 다리가 후들거렸다. 시오르는 그럼에도, 지금 자신이 어디에 있나 확인해야만 했다.


그저 작은 철창이 세워진 좁은 구석. 간이로 만든 것인지, 잘만 하면 몸을 비집고 나올 수 있을 정도였다. 하지만 얼핏 보기에도 신경질적으로, 마력이 방을 감싸고 있었다. 이에 시오르는 입가에 느껴지는 축축한 것을 소매로 닦으며 말했다.


"여긴 어디지...."


시오르는 문득, 팔에 느껴지는 따가운 감각을 느꼈다. 피로 젖은 소매를 들춰보자, 시퍼런 멍이 작게 남아있었다. 무엇인지 확인하려던 무렵, 두개골 안에서 울려오는 의문의 울림이 그를 괴롭게 했다.


생각이 깊어질수록 뇌를 조여왔다. 고통만이 머릿속을 채운 후에야 잠깐 해방됐다. 하지만, 고통이 무엇인지 걱정하자마자 다시 그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으그그...."


고통의 수준이 평균치로 낮아질 무렵, 시오르는 고통이 떠난 자리에 의문을 쌓아나갔다. 깜깜한 시야를 비추는 누르스름한 빛은 쇠창살 바깥에서 오고 있었다. 그 빛 너머로는 웅성거리는 소리가 잦아들지 않았다.


"진짜 미쳤어?"

"아니, 하지만 이제 와서 어쩌려고!"

"그렇다고 이르미온을 부른다고? 대가로 뭘 요구할지 모르는, 악마들보다 더한 녀석들을?"


자신을 쫓던 남자 쪽은 한숨을 푹 내쉬면서 말했다.


"아니, 내 말 들어봐."

"웃기지 마! 게다가 그런 위험한 사람들이랑은 또 왜 연락이 닿는 건데? 처음 아니지?"

"그게 말이지...."

"아버지가 들으면 좋아하시겠다! 미세 가문 전체가 너 때문에 쥐어짜지는 건 사양이거든?"

"아니, 좀...."


아까부터 말을 잘라버리는 여자 탓에 남자는 곤란한 눈치였다. 그러다가 우연히 시오르와 눈이 마주친 남자.


"야, 쟤 일어났어."

"젠장. 우선 따라와."


창살을 부여잡고 있는 시오르는 두 사람이 다가오자, 얼굴을 찌푸리며 말했다.


"대체 이건 뭐죠?"

"신경 쓰지 마. 그보다 너, 뭐 하는 녀석이야?"

"뭐 하는 녀석이냐고 물어도 답해줄 게 있어야죠. 으으."


머리를 붙잡은 시오르는 어떻게든 고통에서 벗어나 보려고 했다. 발을 구르는 모습에, 여자는 조금은 안도한 것인지 목소리가 조금은 유해졌다.


"그냥 가만히 있는 게 좋을 거야. 너한테 주입한 약물은 정신에 부담을 주는 녀석이야. 마법 같은 것을 쓰려면, 머리가 멀쩡한 채로 산산조각 나는 기분을 느낄 수 있을걸?"

"으으...."

"우리가 묻는 거에나 대답하고, 그 구석에 앉아서 잠이나 자는 게 나을걸?"

"너, 그 몸에 있는 낙인. 왜 새겨진 거지?"

"몰라요."

"모른다고?"


시오르의 대답에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이, 두 사람은 시오르를 노려봤다. 고통으로 일그러진 표정은 흡사 반항하는 꼬마 같았다. 어찌나 무섭지 않은 표정인지, 긴장이 풀릴 지경이다. 하지만 그와 별개로 시오르의 창백하고 허약한 모습은, 정말로 그런 준수한 마법을 사용하는 사람이라 믿기 힘들 정도였다.


"정말 몰라요. 최근 1년간 기억이 없이 살아서."

"어떻게 살았냐, 너."

"그건...."


여기서 '저랑 계약한 악마와 같이 살았습니다'라고 말할 수 없던 시오르. 그 생각 탓에 더욱 머리가 아팠지만, 침착하게 말을 둘러댔다.


"기억 잃기 전에 저랑 지인이시던 분이 돌봐주셨어요. 테사르노 감시관이시기도 하셔서...."

"봐! 이제 어쩔 거야!"


여자가 시오르의 말에 반응하며, 크게 화난 표정을 지었다. 어쩔 줄 몰라하는 남자는 뭐라고 이야기를 계속했지만, 여자는 듣지도 않는 듯했다. 시오르는 두통 탓에 살짝 주저앉았다.


두 사람이 싸우는 와중, 시오르는 고민했다. 먹이를 물어뜯는 짐승처럼 괴로움이 잠식한다. 하지만 그 고통을 참아서라도 탈출할 방법을 생각해야한다. 다행히 떠오른 방법은 실천이 어려울 뿐, 제법 간단하게 떠올랐다.


철장 사이로 통과해서 도주하면 된다. 하지만 흐릿한 시야 사이로 좁은 계단이 보인다. 지금 자신이 있는 곳이 지하임을 파악하자, 도주하는 것이 무척이나 힘들어 보였다. 더 좋은 방법이 있나 생각해보지만, 지금으로서는 마땅치 않은 것이 현실이다.


한참을 싸우던 두 사람은, 익숙하지 않은 발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시오르는 고개를 숙인 채로, 다가온 사람을 확인했다.


"이야, 오랜만입니다. 프라시온 고객님."

"발터. 정말 잘 와주셨습니다."


드디어 남자의 이름이 프라시온임을 알게 된 시오르. 반면, 두 사람에게 다가온 '발터'라는 인물은 무척이나 의미심장한 느낌을 줬다. 옷에서 신분이 나타나지 않고, 얼굴에서 악독함이 느껴지지 않는다. 목소리마저 어디선가 들어봤을 법한 평범한 목소리다. 온통 '평범한 사람'임을 표현하고 있었다.


"미네트 양도...."

"시끄러. 이 의뢰는 취소할 거야."


미네트는 그렇게 말하며 프라시온을 질책했다. 하지만 발터는 손을 내밀면서 미네트 앞에서 흔들었다.


"저희에게 의뢰한 건 '프라시온 라이누 미세'님입니다. 착각하지 마시길."

"그래서 발터, 가능한 거지?"

"진짜 안된다니까!"


시오르는 자신을 바라보는 발터를 바라보았다. 그의 표정은 무덤덤하다면 그렇게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살짝 올라간 입꼬리는 무척 즐거운 것처럼 보였다.


"정말 재미있네요."

"뭐가 재미있다는 거야?"

"우선 말소급 각인이 있는 대상을 처리하는 것은 시간이 제법 걸립니다. 게다가 아시다시피, 1년 전에는 반란이 일어나서 정세도 혼란스럽고요."


프라시온이 미심쩍은 표정을 짓자, 발터는 손을 내저었다.


"아, 못한다는 것은 아닙니다. 이런 일에 관심이 많은 분이 계셔서 받아주실 겁니다."

"그럼 빨리해줘!"

"안된다니까!"


정신적으로 지친 시오르는 눈을 감았다. 철창을 부여잡은 손 그대로, 고개를 푹 떨궜다.


------


두 번째로 정신을 차렸을 때에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일순간에 깨어난 탓인지 머리가 무척 괴로웠지만, 덕분에 피곤함이나 멍한 느낌은 그대로 사라졌다.


눈앞에는 미네트라는 여자가 조용히 의자에 앉아있었다. 한숨을 푹 쉬면서 책상에다가 뭐라고 중얼거리는 것 같았다. 시오르는 우선 머리를 내저으며 바닥에 제대로 앉았다.


자기 쪽을 바라보고 있지 않기에, 무언가를 하려면 지금이 적기다. 하지만 그런 생각이 미칠 무렵, 시오르는 찜찜한 기분을 느꼈다. 기절하기 전에 들었던 것은 분명 '자신을 처리한다'는 내용이다. 미네트는 그 의뢰를 하는 것을 원치 않았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시오르는 일어서서 철장 너머에 있는 그녀를 불렀다.


"저기...."


그의 목소리에 여자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로브 탓에 한번도 보지 못한 얼굴이었기에 조금은 당황스럽긴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입술에서 피가 흐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조금 전까지 깨물고 있었던 것인지 선홍빛이 선명하게 떨어졌다.


"가만히 있으라고 했을 텐데."

"혹시 이야기를 좀 할 수 있을까요?"

"이야기? 허."


코웃음을 친 미네트는 됐다면서 뒤돌아갔다.


"저기, 그냥 절 풀어주시면 안 되는 건가요?"

"싫거든."

"하지만 의뢰하시기 싫어하셨잖아요."


그 말에 미네트는 발걸음을 멈췄다. 무언가 걸리는 것이 있는지, 턱에 묻은 피를 손가락으로 닦고는 시오르 쪽으로 돌아왔다. 손에 묻은 피를 핥은 뒤, 손을 터는 미네트.


"그게 뭐?"

"그냥 보내주세요. 그럼 저도 아무런 일 없었다고 할게요."

"내가 뭘 믿고?"


미네트의 말에 시오르는 고개를 숙였다. 당연한 일이다. 자기가 그대로 뒤돌아가서 그들을 신고하면, 그들한테만 위험한 일이다. 그러니 믿어줄 리가 만무하다. 생각이 깊어진 탓에, 다시 두통이 밀려왔다.


"윽...."

"헛소리 말고 가만히 있는 게 어때?"

"하지만 분명, 서로 좋은 일이 될 수 있잖아요?"

"낙관적인 것도 정도가 있지."

"제발 믿어주시면 안 될까요...."


말끝이 흐려지는 시오르. 머리가 아픈 것도 그렇지만, 그 원인이 되는 생각 때문이다. 드디어 가족과 친구를 만나게 되었는데, 세상으로 겨우 나왔는데, 이렇게 있고 싶지 않다. 게다가 자신이 무슨 일을 당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두렵기만 했다.


"안돼."


말 그대로 울고 싶은 상황이다. 하지만 입을 꾹 다물었다. 이 정도 일로 주저앉기엔, 바깥에 있을 이들에게 실례다. 어떻게든 도움이 될만한 일을 해야 한다. 그렇기에 철장으로부터 조금씩 떨어졌다.


이에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노려본 미네트. 대체 제정신이 박히고서야, 자기를 납치한 사람한테 저런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 싶은 것이다. 그렇지만 지금은 고민거리가 많아, 그 부분에 대해 고민하다가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았다. 낮은 한숨 끝에, 그녀는 계단 위로 올라갔다.


계단 너머로는 소리가 점점 사그라들었고, 시오르도 점점 조용해졌다. 고통을 참아가며, 방법을 모색할 뿐이다. 그렇기에 정신을 집중하여 방을 덮은 마력을 조사했다. 한시라도, 나갈 준비를 해놔야만 했다.


"집중하자, 집중."


마법을 사용하기 위해선 집중해야만 한다. 마력을 통해 정신을 구현하는 일이나 다름없다. 그렇기에 정신집중을 통해 마력을 모으고, 수많은 서적이 수양을 강조했다. 고통 속에서도 그가 정신을 부여잡아야 하는 이유다.


방을 감싸는 마력은 그에게서 마력이 흘러나오면 그것을 빠르게 분해해버렸다. 마법의 구현을 위해, 마력을 꺼내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게다가 그 마력은 대기 중에 떠다니는 마력이 되고, 다시 그 마력을 환원해서 방을 유지하는 식이다.


물론 이 경우에는 신체를 강화하는 마법을 쓰면 된다. 하지만 몸을 강화하게 위해 붙은 마력이, 일부 흡수될 것이다. 그러니, 상당히 많은 마력을 써야 원래 효과가 나오게 된다는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시오르는 아직 그런 마법을 익히지 못한 상태였다. 그렇기에 낙담하는 것은 당연했다.


"...이러면 어떻게 해야지?"


안타깝게도 남은 일은 그저 가만히 있는 일임을 안 순간, 씁쓸함을 느낀 시오르. 책에서 보던 것만큼이나 세상은 힘든 곳임을 체감했지만 그게 다였다. 아무런 기억도 없이, 이곳에 남겨진 것을 원망할 이유는 없었다. 그래도 그것이 충분히 아쉬울 만 한 일이다.


고통을 다시 잠재우고, 그는 숨을 고르며 생각했다. 우선 철장을 넘나드는 연습 정도는 빠르게 해봐야 했다. 몸을 살짝 옆으로 돌리고, 철장 사이를 통과한 시오르. 정말로 아무런 방비도 없이, 쑥 하고 철장을 나올 수 있었다.


누군가 내려오는 듯한 발소리에 다시 안으로 들어간 시오르. 처음 보는 사람이지만, 로브를 쓰고 의자를 돌려서 철장 쪽을 보고 있었다. 경비를 세운 것이다.


"그럼 그렇지."


작게 중얼거린 그는 아무런 일 없다는 듯이 주저앉았다. 자는 척이라도 해보고 기회를 보기로 했다. 구해질 수도 있지만, 그것에 의존할 생각은 없었다. 그와 별개로, 시오르의 입에서는 신음이 새어 나왔다.


작가의말

발렌타인데이...입니다만

늙어서 그런가, 그냥 게임 이벤트 하는 날인 것 같네요....ㅜ

그래도 오늘도 보러 와주셨으니 감사해요.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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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 후기 20.05.08 92 0 1쪽
80 마지막 여명#5(完) 20.05.07 77 0 14쪽
79 마지막 여명#4 20.04.30 53 0 20쪽
78 마지막 여명#3 20.03.26 27 0 15쪽
77 마지막 여명#2 20.03.19 65 0 12쪽
76 마지막 여명#1 20.03.12 35 0 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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