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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룡 님의 서재입니다.

SG

웹소설 > 작가연재 > 판타지

완결

취룡
작품등록일 :
2012.08.20 01:36
최근연재일 :
2012.08.20 01:36
연재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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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6.30 2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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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26쪽

Chapter 5. #3

DUMMY

&



미호는 눈을 떴다.

낯선 천장과 힘이 하나도 없어 축 늘어진 몸. 비몽상몽 간에 눈만 몇 번 껌벅였다.

뿌연 시야가 명확해지자 청각과 후각이 돌아왔다. 구수한 냄새가 코끝을 자극했다. 몇 번인가 킁킁 거렸고, 미호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원룸형 오피스텔. 킹 사이즈 더블 베드가 공간의 거의 대부분을 차지한 그곳. 구석에 자리한 작은 싱크대에 나시 티에 핫 펜츠만 입은 금발 미녀가 서 있었다.

“밥 먹자.”

전신성형을 해도 저렇게는 못 만들 것 같은 미친 몸매의 미녀- 시온 알테미스는 투박하게 말하며 간이용 접이식 테이블 위에 음식들을 올렸다. 얼핏 보니 베이컨과 계란, 구운 빵 등이었다.

설마 직접 만들었나?

“안 먹나?”

시온 알테미스가 다시 묻자 미호는 서둘러 침대에서 내려와 테이블 앞에 가 앉았다. 가까이서 보니 모양새가 보통 그럴듯한 게 아니다. 단촐한 메뉴임에도 불구하고 데코레이션부터 시작해서 무슨 요리책에서 끄집어 낸 것만 같았다.

“자, 잘 먹겠습니다.”

우물쭈물 말하며 미호는 음식들을 입에 넣었다. 한 번 씹고, 두 번 씹고 눈을 크게 떴다.

‘마, 맛있다?’

모양만 그런 게 아니라 맛까지 좋았다. 그냥 베이컨이랑 계란인데! 내가 여태까지 먹은 것들은 계란이랑 베이컨의 탈을 쓴 가짜 식품이었나?

눈을 동그랗게 뜬 미호가 저도 모르게 수저질을 빠르게 하자 시온 알테미스는 가늘게 웃었다.

“아기 고양이.”

언제 들어도 소름 돋는 호칭에 미호는 켁켁 거리며 고개를 들었다. 시온 알테미스는 우아한 자세로 앉아 그런 미호를 직시했다.

“난 다 알고 있다. 그러니 숨겼던 부분을 털어놔라.”

어젯밤 나누었던 일련의 대화.

미호는 숨이 턱 막히는 기분이었지만 주먹을 꽉 움켜쥐고 자신을 달랬다. 시온 알테미스가 미호 자신에게 무슨 해코지를 할 생각이었다면 진작에 하고도 남았으니까. 용기를 내서 입을 열었다.

“…SG-012가 제 이름을 물어봤어요.”

“잡아먹겠다고?”

미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시온 알테미스는 당연하다는 듯 마주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전투 중에… 롤랑드가 흘린 피를 몇 방울 삼켰어요.”

피를 삼켰다. 그 말이 나온 순간 시온 알테미스의 기세가 변했다. 미호는 무서워 죽을 것만 같았지만 용기를 내서 계속 말했다. 그 날 있었던 일들, 마지막 일수를 내지르기 직전에 있었던 일들.

“몇 방울만으로 그렇게 되다니 상성이 정말 좋은가 보군.”

시온 알테미스는 다시 기세를 누그러트렸다. 겨우 다시 숨을 제대로 쉬기 시작한 미호를 한참이나 바라보다 말했다.

“윤미호, 나는 너로 낚시를 할 거다.”

“낚시…요?”

“그래, 넌 먹음직스런 미끼다. 놈이 널 노리고 덮쳐오면 나와 조직이 그걸 또 덮쳐서 상황을 끝낸다. 그래서 널 시설 밖으로 내보낸 거고, 내가 지금 여기 있는 거다. 뭐, 다른 목적도 있지만.”

잘 나가다가 마지막에 가서 음흉하게 웃는다. 끈적끈적한 시선이 어찌나 대단한지 미호는 마치 시온에게 온 몸이 매만져지는 기분이었다.

‘웃지 마! 그렇게 웃지 말라고!’

몸서리를 친 미호는 시선을 다른 쪽으로 돌리며 어렵사리 입을 열었다.

“저… 그럼 롤랑드는요?”

롤랑드 또한 미호 자신과 마찬가지로 다인슬레프에게 맞는 피를 가지고 있다. 그렇다면 그 또한 보호받거나 해야하지 않을까?

하지만 시온 알테미스는 코웃음을 쳤다.

“여자가 있는데 남자를 노릴 리가 없지. 그냥 시설에 처박아 두는 편이 제일 낫다.”

말하는 게 정말로 확신하고 있는 듯 했다. 어째 그런 끼가 보이긴 했지만 SG-012도 정상하고는 참으로 멀리 떨어진 정신세계를 가진 모양이었다.

시온 알테미스는 홍차 잔을 내려놓았다. 보기만 해도 폐가 썩어들어갈 것 같은 크고 굵직한 시가를 입에 물며 말했다.

“명심해라, 윤미호. 네가 피를 빼앗겨서 놈이 힘을 되찾는다면 나조차도 방법이 없어진다. 정말로 위급한 상황이 오면….”

마지막에 가서 말꼬리를 흐렸다. 그 뒤에 숨은 말은 무엇일까.

뒷말을 마저 듣기가 두려워진 미호는 가볍게 박수를 쳤다. 있는 힘을 다해 밝은 척을 하며 물었다.

“그, 그럼 저는 오늘 뭘 하면 되죠?”



“이, 이게 뭐예요!”

1시간 뒤, 대로변. 서울만 못하지만 그래도 꽤나 사람이 많은 시내 한복판에 핑크색 비키니 수영복 차림으로 홀로 선 미호가 통신기를 향해 소리를 질렀다. 커다란 선글라스로 얼굴을 가리긴 했지만 쪽팔려 미치겠다!

여기가 무슨 해변가 도시도 아니고, 전라도인데!

누가 되었든 비키니 차림으로 시내 한복판에 서 있으면 시선이란 시선은 다 끌어모을 텐데 미호가 하면 오죽할까. 시선의 홍수 속에서 미호는 온몸이 발갛게 달아올랐다.

통신기 너머에서 시온 알테미스가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놈은 마법사이다. 특히나 인간의 무의식을 이용한는 데 탁월한 능력자지. 네가 이 근방 일대의 사람들에게 시선을 모으면 모을수록 놈은 너를 확실히 인지할 거다. 물고기를 낚으려면 먼저 미끼로 유인을 해야 하잖나?”

“그, 그래도!”

그래도 이건 아니다. 사람들의 시선이 따가워도 너무 따갑다! 눈요기해서 좋다는 시선부터 시작해서 별 미친년을 다보겠다는 시선까지.

시온 알테미스가 다시 말했다.

“왜? 쪽팔리나? 조직의 일인데도? 엄청난 비극을 불러모을 수 있는 SG-012를 포획하기 위한 작전인데도? 귀하는 고작 그것 밖에 되지 못하는 인간이었나?”

“그, 그럼 같이 하든가요!”

수치심에 정신이 돌아버린 걸까. 아니면 얼굴이 안 보인다고 통신기 너머의 상대가 누구인지 잠시 망각한 것일까. 미호가 발악하듯 외치자 시온 알테미스는 깔깔깔 웃었다.

“미쳤나? 쪽팔리잖아.”

“sdjgpdsghosdhg!”

미호가 괴성을 토했지만 시온 알테미스는 그 중에 1할도 제대로 듣지 않았다. 통신기를 거의 바로 꺼버렸으니까.

미호가 홀로 수치 플레이를 하고 있는 곳으로부터 50미터 가량 떨어진 곳에 세워진 승합차 안. 모니터를 통해 미호가 발광하는 모습을 보며 낄낄거리던 시온 알테미스는 문득 느껴진 시선에 고개를 돌렸다.

“불만있나?”

데이비드 킴은 무언으로 답했다. 시온 알테미스는 피식 웃더니 의자 등받이에 몸을 깊이 묻었다.

“뭐… 확실히 효과가 없진 않겠지만 저걸 보고 놈이 달려들진 않겠지.”

헐렁한 말투를 보아하니 미호에게 말한 효과조차도 그다지 기대하지 않는 눈치다. 데이비드 킴이 저도 모르게 물었다.

“그, 그럼 왜?”

“괴롭히면 반응이 재밌잖아.”

당연한 거 아니냐는 대답에 데이비드 킴은 다시 말을 잊었다. 가련한 부하 직원에게 마음속으로나마 심심한 위로의 말을 보냈다.

시온 알테미스는 다시 모니터를 보았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는 미호를 보며 시가를 입에 물었다.

마인 시온 알테미스는 쓸모없는 짓을 하지 않는다.

놈은 오래지 않아 윤미호를 인식하리라. 그리고 조직이 윤미호를 통해 자신을 낚으려 한다는 사실 또한 알게 되리라. 그 뒤에 시온 알테미스가 서 있다는 사실 또한 알게 되리라.

그리고 그렇기에 놈은 오겠지.

시온 알테미스의 추측대로라면 놈이 삼킨 피가 효과를 잃는 것은 길어봐야 일에서 이주. 놈은 그 안에 반드시 모습을 드러내리라.

시온 알테미스는 모니터를 보았다. 뜻모를 미소를 그렸다.



&



“레이디 윤은 오늘도 오지 않소?”

미호와 시온 알테미스가 동거를 시작하고도 일주일. 격리실에서 데이비드 킴을 마주한 롤랑드가 물었다. 일주일 내내 비키니 차림으로 시내 한 바퀴를 돌아서 이제 조만간 TV방송국에서 기행녀라고 취재해 가는게 아닐까 싶은- 아무튼 그런 미호를 대신해서 요 며칠 롤랑드의 심사를 진행하던 데이비드 킴은 조금은 풀어진 얼굴로 되물었다.

“왜, 보고 싶소?”

“보고 싶소.”

롤랑드가 진지한 얼굴로 바로 답하자 데이비드 킴은 미간을 좁혔다. 남녀상열지사는 모르는 일이라던 스승님의 말이 맞았나?

“흠흠, 윤미호 요원은 최근 중요한 임무를 수행중이라 시간을 낼 수 없소.”

스트레스도 엄청 받는 임무지. 삼일 째에 기어코 울음을 터트린 이후로는 무언가 해탈한 얼굴로 돌아다니고는 있지만.

이번에는 롤랑드가 미간을 좁혔다.

“중요한 임무라는 것이 지난번의 그 빨간 변태 괴물과 관련된 일이오?”

“아직은 말해줄 수 없소.”

데이비드 킴은 딱 잘라 말했고 롤랑드는 실망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잠시 뿐이었다. 롤랑드는 이내 표정을 풀었다.

“아무튼 그녀가 안전한 것만은 사실인 것 같군. 그렇다면 다행이오.”

이거 진짜 윤미호 좋아하나? 데이비드 킴은 까놓고 묻고 싶었지만 참았다. 하기야 합체니 뭐니 하며 키스까지 한 사이인데 마음이 안 생기면 미호가 너무 비참(?)해지는 셈이지.

“자, 당신이 조직의 요원이 되면 다 해결될 일이오. 그리고 그 날은 이제 얼마 남지 않았소.”

“그거 거의 볼 때마다 듣는 소리 같소만.”

롤랑드가 슬쩍 찌르긴 했지만 그다지 감정이 담겨 있진 않았다. 데이비드 킴은 멋쩍게 웃으며 상담을 재개했고 롤랑드는 순순히 응했다. 하지만 5분이나 지났을까. 데이비드 킴의 개인 통신기로부터 요란한 굉음이 울렸다. 긴급 상황을 알리는 시그널.

의아해 하는 롤랑드의 시선을 피해 급히 통신기를 집어든 데이비드 킴의 귓가에 앨리스의 다급한 목소리가 울렸다.

“SG-012가 나타났습니다!”



&



이제는 동네의 명물(?)이 된 분홍색 비키니 아가씨 앞에 붉은 가죽 바지 하나만 달랑 입고 웃통을 벗어재낀 남자가 섰다.

이제는 모종의 광고가 아닌가 싶은 분홍 비키니 아가씨마냥 겉만 보면 멀쩡하다 못해 우월하다. 새하얀 몸은 대리석을 깎아 만든 것처럼 완벽했고, 뒤로 넘긴 금발 머리 아래 얼굴은 아름답다는 표현이 어울렸다.

남자가 걷자 주변이 갈라진다. 모세가 홍해를 가르듯 대로변에 가득하던 사람들이 모두 몸을 피해 길을 열어주었다.

이제는 익숙해질 대로 익숙해져서 동네 사람들과 가볍게 수다를 떨고 있던 미호는 얼어붙은 것 마냥 제자리에 멈춰 섰다. 사람이 많지만 모두가 물러선다. 커다란 대로변에 단 둘만이 서로를 마주한다.

미호는 남자를 알았다.

남자도 미호를 알았다.

남자와 미호의 거리는 이제 겨우 10미터.

남자가 웃었다.

미호가 다급히 귀에 부착된 통신기에 손을 가져갔다.

총탄 세례가 쏟아졌다.

투콰가가가가가가가각-!

비스듬한 각도에서 쏟아진 포화가 SG-012 다인슬레프를 뒤덮었다. 총탄 세례의 의미는 간단했다. 하나, 잠깐 뿐일지라도 시간을 번다. 둘, 총격으로 사람들을 도망치게 한다.

“꺄아아아아악-!”

과연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며 도망치기 시작했다. 하지만 다인슬레프에게는 일말의 피해도 주지 못했다. 다인슬레프를 호위하듯 떠오른 핏덩이들이 모든 총탄세례를 막아냈다.

“안녕, 윤미호.”

다인슬레프가 발걸음을 내딛었다. 미호의 귀에 부착된 통신기에서 시온 알테미스의 차가운 목소리가 울렸다.

“내가 간다. 윤미호. 명심해라. 절대 내 곁에서 떨어지지 마라.”

도망치란 명령이 아니었다. 떨어지지 말라는 명령. 미호는 주먹을 콱 움켜쥐었다. 소용없을 지언정 3개의 꼬리를 꺼냈다. 다섯 개의 여우 불을 소환했다.

다인슬레프가 지면을 박찼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다인슬레프!”

포효에 가까운 외침과 함께 미호의 머리 위로 무언가가 도약했다. 처음에는 인영, 하지만 미호의 머리를 뛰어넘는 순간 그것은 더 이상 인영이 아니다. 두 장의 날개로 하늘을 뒤덮었다. 거대해진 육신의 그림자로 대지를 가렸다.

미호는 눈을 크게 떴다. 시온 알테미스가 화한 것은 몸길이 십여 미터에 달하는 황금의 용! 황금색 불꽃을 일으키며 포효한 그것은 다인슬레프를 향해 똑바로 날았다. 그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냈다. 화염의 숨결을 토했다.

“시온 알테미스!”

다인슬레프가 광소했다. 이제는 코앞까지 다가온 용의 숨결을 향해 달려들었다. 다인슬레프가 발을 딛은 바닥으로부터 붉은 피의 파도가 일었다. 용의 숨결과 돌진에 정면으로 맞섰다.

굉음이 울린다. 무정형의 피의 괴물과 황금의 용이 한데 얽힌다. 섬광이 일고 세상이 울린다!

“피해! 윤미호!”

주저앉기 직전의 자세로 두 괴물의 격돌을 지켜보던 미호의 머릿속으로 데이비드 킴의 외침이 파고들었다.

데이비드 킴의 말이 맞았다. 피해야 했다. 저런 괴물들이 싸우는 장소 근방에 있는 것만으로도 위험하다.

“하, 하지만!”

미호는 선뜻 움직일 수 없었다. 너무 무서워서 몸이 얼어붙어서가 아니었다. 시온 알테미스가 싸우기 직전에 했던 말. 자신의 곁을 떠나지 말라는 그 말.

“어서!”

데이비드 킴이 통신기 너머에서 다시 외쳤다. 미호는 결국 돌아섰다. 뛰었다.

용의 숨결이 지면을 뒤덮었다. 룬 마법으로 인해 지상에 강림한 용은 피의 괴물을 이빨과 발톱으로 사정없이 난도질했다. 피의 괴물이 무정형인지라 다인슬레프의 상태를 명확히 알 수 없었지만 시온 알테미스가 일방적인 공격을 가하고 있다는 사실만은 분명했다.

미호는 그대로 달렸다. 총탄 세례를 쏟아부었던 기동 부대원들은 미처 도망가지 못한 시민들을 대피시켰다. 일부는 미호에게 달려왔다.

미호와 다인슬레프와의 거리는 이제 50미터 남짓. 기동 부대원들과 합류한 미호는 거리를 더 멀리기 위해 다시 한 번 지면을 박찼다. 하지만 바로 그 순간이었다.

“빌어처먹을! 돌아와, 윤미호!”

시온 알테미스가 강력한 정신파를 날렸다. 아니, 그것도 모자라 피의 괴물을 내버려두고 반전했다. 미호를 향해 몸을 날리려 했다.

대체 왜.

미호가 고개를 뒤로 돌리는 순간 옆에서 함께 달리던 기동 부대원 하나가 몸을 부르르 떨었다. 무방비 상태인 미호를 향해 손을 뻗었다.

“크롸라!”

시온 알테미스가 미호와 기동부대원들을 향해 몸을 날렸다. 기동 부대원이 뻗은 손이 미호의 어깨에 닿았다. 미호는 현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직감했다. 미호의 곁에 있던 남은 네 명의 기동 부대원들이 동시에 몸을 부르르 떨었으니까. 그리고 한결 같이 미호를 향해 손을 뻗었으니까.

시온 알테미스가 허공에서 홰를 쳤다. 시온 알테미스는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명확히 알았다. 다인슬레프 저 죽음의 왕은 기동부대원들을 집어삼켰다. 170년 전에는 보지 못한 새로운 마법이었다.

죽음의 왕 다인슬레프. 4대 아크메지이를 능가하는 대마법사.

무슨 짓을 할지 모를 그이기에 미호에게 멀어지지 말라 했던 것이다.

시온 알테미스가 입에 불꽃을 머금었다. 미호와 기동부대원 모두를 용의 숨결로 한줌 재로 바꿀 속셈이었다.

하지만 늦었다. 기동부대원들은 이미 하나하나가 모두 다인슬레프였다. 그의 단말이었다.

다섯 개의 단말이 동시에 입을 벌렸다. 여우 불이 자신들을 태우든 말든 신경 쓰지 않고 훤히 드러난 미호의 맨살을 향해 이빨을 들이밀었다.

미호가 비명을 질렀다. 시온 알테미스가 화염을 토했다. 다인슬레프의 단말이 미호의 피를 집어삼켰다.

피는, 영혼의 통화.

화염이 세상을 뒤덮었다. 하지만 이내 갈라졌다. 용솟음치는 피의 회오리가 황금의 불꽃을 찢었다.

“안녕.”

미호도, 시온도 들을 수 있었다. 감미롭기 짝이 없는 남자의 목소리.

“결계 발동!”

지면에 착지한 시온이 비명처럼 외쳤다.

일주일 전부터 하루하루 보강한 거대한 마법진이 일시에 발동했다. 4대 아크메이지 가운데 하나인 시온 알테미스가 직접 설치한 룬 마법 봉인진. 황금빛 문자가 지면을 뒤덮었다. 직경 50미터에 달하는 이 마법진은 대한민국 지부에 설치되어 있는 봉인진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거대한 마력을 담고 있었다.

하지만 그 속에서 다인슬레프는 웃었다. 광소하며 소리쳤다.

“나는- 죽음의 왕이다-!”

다인슬레프가 집어삼킨 미호의 피는 작은 컵을 반도 채우지 못할 양에 불과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단 몇 방울만으로도 본래의 모습을 되찾았던 다인슬레프였다. 지금 섭취한 양은 그 백배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피보라가 황금의 문자를 파괴했다. 인위적으로 모인 모든 마력을 파훼했다.

“크롸라라라라라-!”

다급해진 시온이 직접 다인슬레프에게 달려들었다. 4대 아크메이지 가운데 하나인 그녀보다도 수백 년은 더 마법을 갈고 닦은 대마법사인 그에게 마법으로 덤비는 우를 범하지 않았다. 믿을 것은 육탄전! 하지만 그것도 소용없는 일이었다.

“배짱도 좋구나, 시온 알테미스! 네년 혼자면서 낚시를 한 것이냐?!”

피보라가 피의 괴물이 되었다. 붉고 끔찍한 거인의 형상을 한 그것은 용으로 변한 시온 알테미스의 목을 움켜쥐었다. 시온보다 두 배는 더 큼직한 거인은 시온을 땅바닥에 패대기쳤다. 무자비한 폭력을 가했다.

“시, 시온!”

미호가 소리쳤지만 할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었다. 피의 거인과 용. 4대 아크메이지 가운데 하나인 시온과 죽음의 왕이라 불리는 자.

차원이 다르다. 도저히 끼어들 틈바구니가 없다.

“윤미호!”

그런 미호의 등 뒤를 데이비드 킴이 점했다. 단번에 미호의 허리를 끌어안고 다시 한 번 기문둔갑의 술을 발휘했다.

데이비드 킴이 이 우스꽝스런 낚시에 동의한 것은 시온 알테미스와 그 봉인진을 믿었기 때문이었다. 요소에 배치해둔 서른일곱 명의 기동 부대원들을 믿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렇게 웃기지도 않게 미호의 피를 빼앗기다니.

데이비드 킴은 기문둔갑 속을 연발해 순식간에 백여 미터 이상을 이동했다. 승합차에서 초조한 표정으로 모니터를 보고 있던 백무원은 데이비드 킴이 도착하자마자 외쳤다.

“오행진을 펼친다. 최악의 경우에는 도시 자체를 파괴한다!”

“스승님!”

도시와 다인슬레프를 함께 날려버리자는 소리였다. 그리고 그것은 곧 총 이상의 현대 병기를 동원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리고 그 작전이 효과를 발휘하려면 다인슬레프의 위치가 명확하고, 그가 도시를 빠져나갈 틈이 없는- 그러니까 지금 같은 상황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것은 곧 도시와 함께 도시 거주민들을 쓸어버린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것 밖에 방법이 없어!”

다인슬레프가 힘을 되찾았다. 놈이 이대로 이 도시를 빠져나가면 어떻게 될까?

“이익! 그럼 일단 오행진을!”

데이비드 킴이 잇소리를 토했다. 조직의 대한민국 지부와 가까운 이 땅에는 백무원과 데이비드 킴이 수 년 전부터 천천히 보강해온 주술진이 설치되어 있었다. 기술면에서는 시온 알테미스의 그것보다 못했지만, 쌓아온 세월이 다르기에 그 힘만은 더하면 더했지 못하지 않을 주술진이었다.

하지만 백무원과 데이비드 킴은 오행진을 발동시키지 못했다.

“뭐, 뭐지?”

지면이 붉은 빛으로 물들었다. 끈적끈적한 액체가 그 영역을 넓혀나갔다.

“피 웅덩이!”

미호는 붉게 물들던 그 날의 기지를 떠올렸다. 피 웅덩이. SG-012 다인슬레프의 영적 영지. 여기서 싸움터까지는 백 미터가 넘는다. 그런데 벌써 여기까지 영역을 확장했다는 것은-

“시간이라도 번다! 폭탄 투여해!”

물리력이 얼마나 소용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쏟아 붓고 본다. 시간이라도 벌어야 했다.

“자, 잠깐만요!”

그때 미호가 외쳤다. 다인슬레프에게 폭탄을 투여한다. 그렇다면, 그렇다면-

“시온 알테미스는요?!”

다인슬레프와 싸우고 있는 그녀는? 그녀에게도 폭탄 세례를 쏟아 붓겠다는 건가?!

백무원은 대답할 가치가 없다는 듯 통신기를 고쳐 잡았다. 명령 실행을 촉구하려 하였다. 미호가 발을 굴렸다. 다시 한 번 백무원에게 소리치려 했다. 그리고 그런 백무원과 미호 두 사람의 어깨를 한 사람이 붙잡았다.

“진정해라.”

아수라장인 현 상황에 어울리지 않는, 어찌보면 이질적이기까지 한 차분한 목소리였다. 미호의 얼굴에 순간 화색이 돌았다.

“스승님!”

SG-113 전설의 사냥꾼.

지금보다 더한 상황을 수도 없기 겪은 그는 흥분하지 않았다. 냉정을 유지하며 말했다.

“데이비드 킴, 백무원, 미호. 내가 틈을 만든다. 시온 알테미스를 구조해라. 저래서야 개죽음 밖에 되지 않는다.”

시온 알테미스는 피의 거인에게 그야말로 개 맞듯이 맞고 있었다. 용 변신은 이미 풀린 지 오래였기에 그 비참함이 더했다.

백무원이 이를 악물었다.

“어떻게 할 셈이오?”

틈만 만든다면 기문둔갑의 술을 써서 시온 알테미스에게 접근할 수는 있다. 하지만 저 괴물을 상대로 어떻게 틈을 만든단 말인가.

전설의 사냥꾼은 백무원의 물음에 답하기 앞서 모자를 고쳐 썼다. 마총 레전드를 들어 올리며 전장을 주시했다.

“늘 하던 대로.”

전설의 사냥꾼이 지면을 박찼다.



피의 거인이 시온 알테미스를 유린하는 것을 보며 광소하던 다인슬레프는 순간 느껴진 살기에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그 순간 시간을 찢으며 날아온 빛의 탄환이 피의 거인의 팔을 끊어놓았다.

시온 알테미스가 바닥에 추락했다. 피의 거인은 비명을 지르는 대신 그 몸을 피의 파도로 바꾸어 다인슬레프를 휘감았다. 연이어 날아온 포화로부터 주인을 지켰다.

백무원은 욕지거리를 토하며 제자와 함께 기문둔갑술을 펼쳤다. 지금까지 데이비드 킴이 선보였던 기문둔갑과는 다른 것이었다. 백무원이 입구를 맡고 데이비드 킴이 출구를 맡는다. 서로 떨어진 공간 사이를 강제로 연결하는 통로를 만들어낸다.

미호가 입구로 뛰어들었다. 다인슬레프와 시온 알테미스로부터 십여 미터 떨어진 출구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전설의 사냥꾼의 연사가 피보라를 압박했다. 미호는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하지만 그래도 뛰었다. 피는 영혼의 통화. 죽어버린 자의 피는 소용없다. 그러니 미호 자신을 죽이지는 않겠지!

비약이 심한데다가 말도 안 되는 논리였지만 미호는 그거 하나를 붙들고 피보라로부터 4~5미터 남짓 떨어진 곳에 널브러진 시온 알테미스에게 달렸다.

“시온 알테미스! 정신 차려요!”

미호가 시온 알테미스를 일으키며 말했다. 어떻게 얻어맞았는지 하얀 본디지 슈트는 거진 다 찢어졌고 온 몸에는 피멍이 가득했다. 미호는 몰랐지만 그나마 시온 알테미스였기에 사지를 유지하고 있는 것이었다. 패시브로 끊임없이 발동하는 자체 회복 마법이 끊어진 뼈와 살을 이어주지 않았다면 진즉에 오체분시 된 참혹한 꼴이 되었으리라.

금방이라도 숨이 넘어갈 것 같은 시온 알테미스는 미혼의 부름에 어렵사리 눈을 떴다. 다 죽어가면서도 피식 웃었다.

“오, 아기 고양이.”

그 부름에 미호는 짜증이 아닌 반가움을 느꼈다. 농담을 지껄이는 걸 보니 숨이 넘어갈 것처럼은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미호는 시온 알테미스를 거의 업듯이 부축했다. 언제 다인슬레프가 반응을 보일지 모르지 서둘러 출구로 되돌아가야 했다. 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꺄악!”

갑자기 가해진 충격에 미호는 비명을 지르며 나가떨어졌다.

피웅덩이로부터 일어난 거대한 붉은 손이 미호와 시온 알테미스를 후려쳤기 때문이었다. 그 광경에 전설의 사냥꾼은 더더욱 연사 속도를 높였지만 다인슬레프는 피보라를 더 거세게 일으켜 그 공격을 막았다. 그러는 한편 피 웅덩이로부터 거대한 핏덩이를 일으켜 바닥에 쓰러진 미호와 시온 알테미스를 덮치게 했다.

미호는 이를 악물었다. 바닥에 깔린 시온 알테미스를 자신의 몸으로 뚜껑 덮듯 덮은 상태로 여우 불을 일으켰다. 핏덩이를 막고자 했다.

“크윽!”

하지만 역부족이었다. 미호의 여우 불은 핏덩이를 일시에 태워버리기에는 너무나 약했고, 그렇다고 물리적으로 핏덩이를 막아낼 힘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그때 시온 알테미스가 손을 들었다. 룬 마법을 가까스로 쥐어짜내 룬의 방벽으로 핏덩이를 가로막았다.

반투명한 룬 방벽 너머로 붉은 핏덩이가 가득했다. 룬 방벽이 자체적으로 뿜어내는 빛이 없다면 아무 것도 보이지 않을 터였다.

“끝장이군.”

시온 알테미스는 쓰게 웃었다. 핏덩이가 룬 방벽을 찌그러트리고 있었다. 아마도 전설의 사냥꾼이 나타나 틈을 만드려 한 것 같았지만 소용없었다. 그가 강한 SG라는 것은 사실이었지만, 다인슬레프는 상식을 벗어난 존재였다. 애당초 낚시를 하려 한 것이 잘못이었다. 이렇게 어처구니없이 당할 줄이야.

“압사인가. 쓰레기의 최후로는 적당하군.”

‘살아있어야 한다.’는 조건을 가진 미호와 달리 시온 알테미스 자신의 운명은 뻔했다. 이대로 핏덩이에 압사당해 죽는다.

넝마조각 같은 영혼을 가진 자신도 죽으면 저 위대한 아스트랄 라인에 편입될 수 있는 것일까.

장 브루노가 사용했던 영적 부활 마법을 비롯해 수없이 많은 영혼과 관련된 마법을 연구하고 개발해낸 시온 알테미스였지만 그 자신에게는 무엇 하나 적용시키지 못했다.

시온 알테미스는 걸레짝 같은 자신의 영혼을 증오했고, 170년 전 저 다인슬레프조차도 자신의 피와 영혼을 거부하자 절망했다.

쓰레기다운 최후.

스스로를 경멸하는 시온 알테미스였기에 그 말에 거짓은 없었다.

시온 알테미스는 모든 것을 포기했다. 사람들이 마인이라 부르며 두려워하는 그녀는 사실 지칠 대로 지친 인형에 불과했다.

미호는 그런 시온 알테미스를 보았다. 시온 알테미스가 쓰레기 운운하는 것을 들었다. 형형한 살기를 모두 다 잃어버리고 공허하기만 한 시온 알테미스의 눈동자를 보았다.

시온 알테미스의 뺨을 후려쳤다.

“일어나! 시온 알테미스!”

미호는 짜증이 났다. 화가 났다. 억누르고 억눌러온 분노를 폭발시켰다.

마인이잖아! 4대 아크메이지 가운데 하나잖아!

다시 한 번 후려쳤다. 양 뺨을 모두를 얻어맞고 순간이나마 멍한 표정을 짓는 시온 알테미스의 멱살을 움켜쥐었다.

“일어나서 싸워!”

낚시를 한다며! 강하잖아! 위대하잖아!

미호는 양손으로 시온 알테미스의 얼굴을 붙잡았다. 점점 더 압박해오는 핏덩이를 무시했다. 혀를 깨물었다.

시온 알테미스가 눈을 크게 떴다. 이번에는 미호가 쓰게 웃었다. 그대로 시온 알테미스에게 입 맞추었다.

섞이는 피와 타액.

피는 영혼의 통화.

두 영혼이 하나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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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7

  • 작성자
    Lv.83 moonrise
    작성일
    12.07.02 12:34
    No. 1

    그런데 피만 섞으면 되는거 아니었나요?
    롤랑은 금강불괴 패시브라서 그런거고
    아님 설마 그냥 하고싶어서...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59 sfartar
    작성일
    12.07.05 11:32
    No. 2

    영혼이 같아서 되나 보군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3 만담무적
    작성일
    12.07.09 13:56
    No. 3

    피 = 영혼의 통화

    서로 대화를 하는데
    단순히 피만 섞으면 된다.... 고 보긴 좀 ;;;

    "피가 섞인다"는 내용을 위해
    "키스"라는 형식이 필요한걸지도?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3 만담무적
    작성일
    12.07.09 14:00
    No. 4

    뭐 단순히 피만 섞으면 되는거였다면
    롤랑드와도 다른 방법이 있었겠죠

    처음이야 롤랑드의 신체가 금강불괴라서 어쩔 수 없었다쳐도
    차후엔 무언가 방법을 찾아낼 수 있었을거라 생각하는대...

    미리 상처를 내서 용기에 보관하고 있다가 섞는다던가... 하는 식의...
    그런 방법을 생각해내지 못했다기보단
    "키스"라는 형태가 필요했던가 아닐까요

    ...라고 생각했는데
    다인슬로프는 분신이 그냥 피를 먹고 강해졌네?

    아 아 복잡하다 ;;;;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3 만담무적
    작성일
    12.07.09 14:02
    No. 5

    아 그렇다

    죽음의왕은 단순히 피가 필요한거니
    어떤 방식으로든 피만 흡수하면 되는거라
    키스라는 행위가 필요없는거고

    "합체"는 영혼의 결합이니
    키스라는 수단이 필요한게 아닐까

    라고 생각해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52 천지
    작성일
    13.10.30 09:56
    No. 6
  • 작성자
    Lv.99 白雨
    작성일
    14.11.07 23:54
    No. 7

    잘 보고 갑니다~!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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