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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룡 님의 서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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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취룡
작품등록일 :
2012.08.20 01:36
최근연재일 :
2012.08.20 01:36
연재수 :
10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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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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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
12.07.02 1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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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22쪽

Chapter 9. #2

DUMMY

&



“아무튼 우리가 위험에 처해있다는 것은 확실해요.”

“이러니저러니 해도 미호클레스는 우리 가진 가장 강한 무기고 말이오.”

처음은 미호였고 그 다음은 롤랑드였다. 각자의 침대 위에 걸터앉아 서로를 마주하고 있는 남녀.

미호가 손뼉을 쳤다.

“좋아요, 이해가 일치하네요. 그러니까 이건 일이에요.”

“데이터 수집을 위해서군.”

“바로 그거죠. 시계는 준비되었죠?”

롤랑드는 고개를 끄덕이며 여러 가지 의미로 깨끗해진 노트북 화면을 미호 쪽으로 돌렸다. 화면에는 검은 바탕에 녹색으로 표기된 숫자 0이 나란히 나열되어 있었다.

“엔터만 치면 언제든지.”

“좋아요.”

미호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롤랑드도 자리에서 일어섰다.

“할 일이 정말정말 없어서 그러는 거예요.”

“물론이오.”

두 사람이 서로에게 한 발짝 다가섰다. 워낙에 좁은 격리실이다보니 그것만으로도 꽤나 거리가 좁혀졌다.

두 사람은 다시 한발짝을 내딛었다. 이제는 서로의 지척. 숨결을 토하면 느낄 수 있는 거리. 미호가 자신보다 25cm나 더 큰 롤랑드를 올려다보았다.

“허리랑 엉덩이 만지지 마요.”

“그럼 좀 힘들지 않겠소?”

키 차이가 워낙 나니까.

미호는 입술을 한 번 삐쭉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요. 그럼 허리까지. 엉덩이 안 되고, 가슴은 절대, 절대 안돼요. 가슴 만지면 너 죽고 나는 살고. ok?”

“레이디 윤, 난 치한이 아니오.”

롤랑드가 약간 기분이 상했다는 듯 눈썹을 꺾었다. 하지만 미호는 코웃음을 쳤다.

“내가 다 봤거든요?”

합체할 때 댁 손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조금씩 조금씩 위를 향해 기어오르는 것을?

“그건 본능…같은 것이오.”

“그럼 이성으로 제어해요. 성기사 양반.”

롤랑드는 천장을 보았고, 벽을 보았고, 미호를 보았다. 어깨를 으쓱였다.

“좋소, 합체 합시다.”

미호와 롤랑드는 서로를 보았다. 시선을 맞추었다.

“어, 얼굴을 왜 붉히시오?”

“그, 그러는 댁이야 말로!”

미호는 열렬하게 손부채질을 했고 롤랑드는 헛기침을 토했다. 그리고 다시 서로를 마주했다. 미호는 눈을 감았다. 두 손을 뻗어 롤랑드의 목을 끌어안았다. 롤랑드는 미호의 허리를 감쌌다.

거리가 가까워졌다. 몸이 맞닿았고, 이내 입술이 맞닿았다. 서로 입을 벌렸다. 두 사람의 혀가 한데 엉켰다.

고양감.

지금까지와는 조금 다른 무언가 설명하긴 힘들지만 그런 어떤 기분.

미호가 롤랑드의 목을 꽉 끌어안았다. 롤랑드가 미호의 허리를 당겨 미호와 자신의 몸을 더욱 밀착시켰다.

그리고 문이 열렸다. 아주 세게.

“윤미호!”

시온 알테미스의 노성에 미호와 롤랑드는 동시에 눈을 떴다. 너무 깜짝 놀라 서로를 밀어낼 생각도 하지 못했다. 서로 끌어안은 상태로 어정쩡하게 시온 알테미스를 보았다. 그리고 그런 시온 알테미스의 뒤, 까치발을 들고 방안을 훔쳐본 클레어가 웃으며 손짓했다.

“계속해, 1시간 뒤에 다시 올 테니까.”

그리고 진짜 가려고 한다. 미호가 급히 소리쳤다.

“하, 합체 시간 재려고 그런 거예요!”

“맞소, 사적인 감정은 조금도 없었소.”

롤랑드가 그렇게 말했고 미호는 순간 미간을 찡그렸다. 하지만 아주 잠깐 뿐이었다. 얼른 롤랑드를 밀쳐내고 떨어져서 섰다. 자기가 왜 변명을 해야 하는지 모르겠지만 해야 할 것 같았다. 그래, 그저 합체 시간을 재려고 했을 뿐이라고! 이상한 게 아니야! 거기다 본 건 직장 상사잖아!

시온 알테미스는 숨을 길게 토했다. 최대한 인내하며 말했다.

“아기 고양이, 내가 어른의 놀이는….”

“아, 아니라니까요! 내가 저 인간이랑 왜!”

이번에는 롤랑드가 순간 눈썹을 꺾었지만 미호 때와 마찬가지로 아주 잠깐이었다. 완전 빨개진 얼굴로 허둥거리던 미호는 천장에 부착된 스피커를 향해 손을 뻗었다.

“아무 것도 아니에요! 그, 그렇지, 앨리스?”

미호는 간절한- 왜 그래야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 눈으로 스피커를 보았다. 스피커 속의 목소리가 심드렁하게 대답했다.

“그렇다네요.”

“야!”


“사랑하는 요원님, 제가 뭔가 이상한 말이라도 했나요? 그럼 두 사람이 서로 얼굴을 맞대고 부끄부끄 아잉아잉 얼굴을 붉히다가 음미하듯… 아, 실수. 아무튼 진한 키스를 나누는 걸 보고 무어라 말….”

“닥쳐! 닥치라고!”

스피커에 여우 불을 던져 폭발시킨 미호는 헉헉 거렸다.

시온 알테미스는 이마를 짚었다.

“…그 이야기는 나중에 논하도록 하지. 일단은 소개해줄 사람들이 있다.”

한 걸음 옆으로 비켜서서 시현과 클레어를 잘 보이게 한 시온 알테미스는 두 사람을 가리켰다.

“별의 아이 이시현과 그 부인인 클레어다. 이쪽은 우리 요원인 윤미호와 잡역부인 롤랑드.”

마지막 소개에 롤랑드가 인상을 구겼지만 신경 쓰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미호는 새빨개진 얼굴로 허둥거리다가 애써 침착한 척 하며 영업용 미소를 그렸다.

“윤미호입니다.”

“이시현입니다.”

“클레어야.”

“…샤를마뉴 대왕의 기사 롤랑드요.”

그리고 잠시 침묵. 시현이 헛기침을 했다.

“에, 어… 음. 시온 씨?”

뭔가 추가 진행을 해달라는 의사 표시에 시온 알테미스는 귀찮은 얼굴로 시가를 꺼내 물었다.

“사바스의 정보대로라면 별의 아이는 세상의 수호자…같은 것이라 한다. SG-012 건으로 협력을 받기로 했다. 그리고 이 자가 아기 고양이를 꼭 한 번 보고 싶다고 하더군.”

미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별의 아이인지 뭔지는 처음 듣는 거라 감도 오지 않았지만 그 외의 흐름은 대강 이해가 되었달까.

시현이 웃으며 말했다.

“사바스에게 들었는데… 미호클레스라는 기술을 쓰신다면서요?”

어쩌다보니 정식명칭으로 굳어졌지만 미호클레스라니. 듣기만 해도 민망해진다. 미호는 얼굴을 붉힌 상태로 소심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네. 참고로 제가 지은 이름은 절대 아니에요. 아까도 합체하려고 한 거고….”

확실히 미호는 귀여웠다. 뒤에서 클레어가 쌍심지를 세우는 것도 모른 채 시현은 작게 웃었다.

“본래 기술명이 라므클레스의 라므도 사람 이름인걸요. 괜찮아요.”

그런가요? 하하하 다행이네요-하고 웃는 대신 미호는 미간을 좁혔다. 미호클레스의 원조라 할 수 있을 라므클레스에 대해 알고 있다.

“이 기술을 만든 건 저랑 굉장히 친한 형이니까요. 그래서 말인데요, 미호 씨. 그 기술은 누구에게 배운 거죠?”

라므클레스는 세진의 어마무지막지한 영혼 친화력을 바탕으로 한 기술이다. 사실상 누군가에게 전수하는 것이 불가능하달까? 그런데 윤미호는 라므클레스와 거의 같은 기술명을 붙여놓고 그와 비슷한 기술을 사용한다. 세진에게 직접 배웠을까? 그럴 리가 없다. 세상 일광에서의 사건 이후 철도 사업을 시작해서 한창 바쁜 세진이었으니까. 더욱이 세상간 이동은 그렇게 호락호락한 것이 아니었다. 조금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당장에 시현 자신도 자력으로는 이동이 불가능했다. 가끔씩 로드 카시리온이나 먼치킨 루크록스 씨나 메데이아에게 부탁해서 옮겨 다니는 처지랄까.

미호는 바로 답하기 앞서 시온 알테미스를 보았다. 시온 알테미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세류 언니에게 배웠어요. 세류 언니는 세진이라는 이계의 대정령사에게 배웠다고 했고요.”

“…세류? 창천의 요호 세류 씨 말인가요?”

시현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리고 그건 미호도 마찬가지였다.

“세류 언니를 알아요?”

“어… 음… 형수님이니까요.”

미호가 눈을 깜박였다.

“형수님?”

“네.”

“형의 부인?”

“네.”

“세류 언니가?”

“네.”

“누구의?”

“세진 형의.”

대화가 잠시 멈췄다. 미호는 천장을 보았고, 바보같이 웃었다. 그리고 순식간에 표정을 굳히고 정면을 보았다.

“그 세진이란 사람 뭐하는 사람이죠? 아니 애당초 성은 뭐에요?”

“엄…세진이요.”

엄세진. 분명히 들어본 적이 있었다. 아니, 본적이 있었다. 어디였을까. 그러고 보니 시현과 클레어도 본 적이 있다. 어디였을까.

미호는 순간 눈을 크게 떴다.

“나이트 사가! 그 영화에 나왔었어! 이름은 스텝롤에서 봤고!

이번엔 시현이 얼굴을 붉혔다. 클레어는 어쩐지 모르게 의기양양했지만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다.

아아, 어쩐지 검은 불꽃이 나온다 해서 이상하다 했더니 진짜 이계에서 찍어가지고 온 영화였나. 아니 그런데 잠깐만. 그럼 이 작자가 SG-013과 아는 사이란 말인가? 아니 그보다 잠깐만.

“그 세진이란 사람이 무슨 역할이었죠? 그 잘생긴 엘프? 검정 머리에 그… 당신이랑 죽을동 살동 싸우던 멋진 남자?”

미남미녀가 별처럼 쏟아지는 영화였다. 솔직히 그중에 누가 걸려도 세류의 남편으로 ok였다. 하지만 시현은 어째 불안한 표정으로 뒤로 살짝 물러섰다. 우물우물 답했다.

“…오크요.”

“응?”

“오크요. 그 왜 취익취익거리던….”

“그 주인공한테 칼 한 방에 뻗은?”

끄덕끄덕.

“그 피부 녹색이고 엄니 튀어나오고 흉포하게 생긴?”

끄덕끄덕.

미호는 다시 천장을 보았다. 웃었다. 시현의 멱살을 붙잡았다.

“오크라고?! 세류 언니 훔쳐간 세진이란 도둑놈이 오크라고?! 내 형부가 오크라고?!”

클레어가 순간 인상을 썼지만 시현이 제지했다. 멱살이 붙잡힌 상태로 미호의 시선을 피했다.

“잘 보면 나…름 멋있어요.”

“나름이겠지!”

미호는 시현의 멱살을 거칠게 풀었다. 형부가 오크라니! 내 형부가 오크라니!

“잠깐만, 잠깐 기다려봐. 그럼 라므는 누군데?”

기술 이름을 라므클레스라고까지 지은 걸로 봐서는 세진과 보통 사이가 아니니라. 이번에야말로 시현의 얼굴색이 변했다. 시현은 필사적으로 딴청을 했다.

“방이 참 하얗네요.”

“라므가 누군데?!”

“…부인이요.”

“부인이라니? 누구의?”

“…세진형이요.”

“세진이란 놈은 우리 세류 언니 남편이라며.”

“라므 남편이기도 해요.”

“…부인이 둘?”

끄덕끄덕.

“오크 주제에 부인이 둘?”

끄덕끄덕.

“참고로 세류가 세컨드야. 그 망할 암캐가 퍼스트고.”

뒤에서 클레어가 킥킥 웃으며 낮게 목소리를 흘렸다. 시현은 이를 악물고 클레어를 돌아보았고, 미호는 입을 벌렸다.

“세컨드라고오오오오?! 퍼스트도 아닌 세컨드으으으으으으?! 세류 언니가아아아아아?!”

시현은 마른 침을 삼켰다. 다시 한 번 고개를 끄덕였다.

“으아아아아아!”

미호가 폭발했다. 다섯 개의 꼬리와 여우귀가 돌출되었다. 몸 주위로 다섯 개의 여우불이 떠올라 활활 타올랐다.

“뭐하는 새끼야!”

“…네?”

“세진 그 새끼 뭐하는 놈이냐고!”

“처, 철도왕이요! 돈이 많아요! 엄청!”

“철도왕?”

“세상 일광의 전대륙을 관통하는 철도회사의 주인이라고요! 세진 오퍼레이션! 하, 한국으로 치면 삼성? 아니 어쩌면 더 할지도?! 삼성 더하기 현대?”

미호는 입에서 하얀 입김을 토했다.

“그래… 돈이 많구나… 그 썩을 돈으로 우리 세류 언니를….”

“세, 세류 씨도 행복해 보였어요. 조만간 정식 결혼식을 치룰 거예요. 하늘에 떠다니는 공중거성에서! 와우! 판타스틱! 정말 멋질 거예요!”

시현이 시현답지 않게 오버하며 횡설수설했다.

하지만 미호의 표정은 그다지 변하지 않았다. 그렇잖아도 어쩐지 모르게 섬뜩한 느낌을 주는 보라색 눈동자인데, 눈동자에 초점이 없었다. 그야말로 호러.

처음 보는 미호의 모습에 롤랑드와 시온 알테미스도 약간은 몸을 뒤로 뺐다. 하지만 그런 모두와 달리 태연한 사람이 하나 있었다.

“야야, 내 남편한테 그만 앙앙거려. 세류 걔도 어디 좋은 구석이 있으니까 똑똑한 오크한테 시집갔겠지. 따지려면 걔한테 따져. 엄한 우리 시현이 건들지 말고.”

미호가 클레어를 돌아보았지만 클레어는 코웃음을 쳤다. 네깟 년이 뭘 어쩌겠다고-하는 표정이었다.

미호는 깊은 숨을 길게 토했다. 여우귀와 꼬리를 거두었다.

“…좋아요. 그 문제는 일단 넘기기로 하죠.”

“가, 감사합니다.”

시현은 반사적으로 감사를 표했다. 미호는 다시 숨을 토했다. 표정을 고치고 영업용 미소를 지었다. 그런데 어째 더 무섭다.

“그런데 말이에요, 이시현씨.”

“네.”

“혹시 윤현아라고 아세요?”

나이트사가 스텝롤에는 행방불명된 자신의 사촌 동생 이름도 있었다. 어머니 외에는 본가 쪽-미호는 반인반요니 인간쪽 친척들도 존재는 했다. 왕래가 거의 없어서 그렇지 - 사람들과 거의 친분이 없는 미호였지만 그래도 돌연 행방불명되었다는 사촌 동생 이름 정도는 기억을 했다. 어머니 부탁으로 나름 조사를 해보기도 했었으니까.

영화에 나오는 윤현아는 금발에 귀가 긴 매혹적인 여자였던 지라 그냥 동명이인인가 하고 넘어갔지만 어째 묘하게 신경이 쓰였다. 영화 관계자를 직접 만났으니 이왕지사 물어본 것이랄까.

시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 잘 알죠. 현아는 제 가장 친한 친구 중에 하나인 걸요. 그런데 왜….”

시현은 순간 말끝을 흐렸다. 미호를 보았고, 미간을 좁혔다.

“윤현아. 그리고… 윤미호씨.”

“윤미호, 윤현아.”

“홍대 다니는 윤현아?”

“그중에서도 미대 다니는 윤현아.”

“…언니가 교통사고로 죽은?”

“바보같이 착해빠진?”

“하하하.”

“호호호.”

두 사람은 어색하게 웃었다. 그리고 순식간에 웃음을 거뒀다.

“사촌 동생이야.”

“…연이 깊군요.”

“걔는 왜 엘… 엘프 맞나?”

“네, 엘프. 그중에서 윈드시커 일족.”

“아무튼 왜 동양인이 엘프가 된 거지?”

“…설명하면 긴데요. 저도 원래는 동양인이었어요.”

“무사해? 걔네 부모님이 얼마나 걱….”

“부모님들도 아세요. 알린 지는 대충 1년 좀 안되었어요. 현아 결혼식에도 참가하셨는….”

“결혼식?! 현아도 결혼했어?! 이번에도 오크냐?! 이번에도 오크냐고!”

미호가 다시 시현의 멱살을 붙잡았다. 시현은 다급히 두 손을 내저었다.

“아니에요! 잘생겼어요! 남자인 내가 봐도 진짜 쩔어! 거기다 현아 밖에 안 봐! 바람 필 일 절대 없어! 그냥 아주 현아를 여왕님으로 모시는 그런 남자!”

“…걔도 영화 나왔어?”

“그 엘프 남자! 극중에서도 현아 남친!”

미호는 기억을 더듬었다. 확실히 미치도록 잘생긴 남자가 하나 있었다. 그래, 그 정도면 인정한다.

“남편도 엘프야?”

“아니… 그게….”

“뭔데? 엘프 아냐? 그럼 무슨 변종 오크냐?!”

“…마요.”

“뭐?”

“악마요.”

“악마?”

“악마.”

“데블?”

“…데몬?”

미호의 여우귀와 꼬리가 다시 튀어나왔다.

“현아 남편이 악마라고?! 작은 아버지 성당 다니시는 건 아냐?!”

“사, 사바스 상관이에요! 사바스네 회사 간부!”

“사바스?”

“사바스.”

“그럼 몽마냐?! 인큐버스?! 야 이 새끼야 장난해?! 인큐버스가 바람 끼가 없다고?! 차라리 사자가 채식주의라고 말해라! 솔직히 말해! 현아는 서드냐? 아니면 12번째 첩 그런 거?!”

“보, 본처! 진짜 현아 밖에 없어요, 더스트한테는!”

미호와 시현은 함께 헉헉거렸다. 시온 알테미스는 거의 다 핀 시가를 던진 뒤 새 시가를 꺼내들었고 롤랑드는 꽤나 신기하단 얼굴로 미호를 보았다. 클레어는 짜증난다는 얼굴로 끼어들었다.

“적당히 해둬라. 내 남편은 네 화풀이 대상이 아냐.”

노려보는 눈빛이 장난이 아니다. 하지만 미호도 어지간히 흥분한 상태였던지라 평소처럼(?) 쫄거나 움츠러드는 대신 그저 시현의 멱살을 풀었다. 한참이나 숨을 고른 뒤 시현에게 살짝 고개를 숙였다.

“흥분했어요. 미안해요. 시현 씨가 저지른 일들도 아닌데.”

“아니오, 저는 괜찮아요. 가족들 일인걸요. 그리고 두 사람 모두 행복하니까 걱정 마세요.”

어째 억지춘향 같지만 분위기는 재위치로. 크나큰 인내심을 발휘하던 시온 알테미스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그럼 일 이야기를 하도록 하지.”

“아니오, 잠깐만요. 그 전에 드릴 말씀이 있어요.”

미호가 다시 손을 살짝 들며 말했다. 시온 알테미스가 미호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네가 나에게?”

“네, 중요한 이야기에요.”

시온 알테미스는 바로 다시 시현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짧고 간결하게 말했다.

“잠시 기다려주겠나? 롤랑드가 함께 있어줄 거다.”

“…내가 말이오?”

바로 연이어 되물은 것은 시현이 아닌 롤랑드였다. 시온 알테미스는 여전히 시현쪽을 보며 말했다.

“일단은 우리 요원이다.”

“…이 방에 클레어와 함께 대기하고 있으면 되나요?”

“이해가 빠르군.”

시온 알테미스는 툴툴거리는 클레어와 그런 클레어를 달래는 시현과 어째 좀 뚱하면서도 기쁜 듯 하면서도 아무튼 진지한 표정을 한 롤랑드를 내버려 두고 미호와 함께 복도로 나갔다. 격리실 문을 닫아 물리적인 방음을 실현한 뒤 룬 마법을 펼쳐 완벽한 방음을 실현했다.

“뭐지? 아기 고양이?”

“이시현이라는 쟤… 검은 불꽃이랑 아는 사이에요.”

SG-013. SS랭크 가운데서도 최고로 위험하다 여겨지는 존재. B랭크에 불과한 윤미호는 ‘어떤 일이 일어나도 관여하지 말 것’이라는 짧은 문장과 정면 사진 한 장 외에는 그 어떤 것도 열람할 수 없는 남자.

시온 알테미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안다.”

“아신다고요?”

“그 영화가 개봉한 지가 언제인데. 다만 조직의 방침대로 했을 뿐이다.”

“…관여하지 않는다?”

“잘 아는군. 할 말은 그것뿐인가?”

“…일단은요?”

시온 알테미스는 머리칼을 쓸어 올렸다. 미호의 뺨을 가볍게 두드렸다. 부드럽게 끌어안고 귓가에 속삭였다.

“아무튼 네가 별의 아이와 접점이 많아서 다행이다. 별의 아이라는 저 녀석이 신이 내린 연기자가 아니라면 꽤나 착한 녀석인 것 같고. 아마 무슨 일이 있어도 널 잘 지켜줄 거다.”

“시, 시온?”

갑작스런 행동이 당혹스러웠다. 더욱이 뭐라고 해야 할까. 평소의 그녀답지 않게 너무 약해보였다고 해야 할까? 하지만 시온 알테미스는 대답하는 대신 그저 빙긋 웃은 뒤 룬 방벽을 해제했다. 격리실 문을 열었다.

“들어가지. 별의 아이가 기다린다.”

시온 알테미스는 턱짓을 했고 미호는 잠시 멈칫했지만 고개를 끄덕였다. 시온이 열어둔 문을 통해 격리실 안으로 들어섰다.



“그러니까… 우리 세상의 수호자?”

시현의 정체에 대해 대강의 이야기를 들은 미호는 양쪽 검지손가락을 세우며 그렇게 말했다. 시현은 약간은 미묘한 얼굴로 고개를 기울였다.

“현직…은 아니고 전직이요. 제가 해결해야만 했던 위기는 지나간 지라.”

별의 아이는 위기에 대한 대처 수단이다. 위기가 사라지면 그 직위는 해제된다.

세상 월광은 세상 일광의 위기를 타파하기 위해 네 명의 별의 아이를 낳았고, 약 1년 전을 기점으로 세상 일광의 위기는 사라졌다. 별의 아이의 임무가 끝난 것이다.

시온 알테미스가 시현의 이야기 내내 감고 있던 눈을 떴다.

“흥미진진한 모험담이 될 것 같지만 그 이야기는 다음에 들어야겠군. 전직과 현직의 차이는 뭐지?”

별의 아이의 임무가 끝났다고 하지만 시현은 여전히 이 자리에 있었다. 그러니까 딱히 죽거나 힘을 잃거나 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현은 전직과 현직을 구분했다. 이는 분명 무언가 차이가 있기 때문이었다.

시현은 잠시 고민하듯 눈동자를 굴려 클레어를 보았다. 클레어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시현이 다시 말문을 열었다.

“세상의 지원을 받을 수가 없어요.”

“세상의 지원?”

“에… 그러니까 황제의 아이들을 쓰러트리기 위해 싸울 때만 해도 저는 세상에게서 힘을 직접 공급받을 수 있었어요, 마르지 않는 무한 에너지 링크랄까요? 하지만 지금은 그 링크가 끊어졌어요. 위기가 해결되었으니까요.”

세상으로부터 직접적으로 제공받았던 무한에 가까운 에너지 공급이 끊겼다. 클레어가 날카로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런다고 개길 생각은 하지 마라. 그딴 거 없어도 우리 시현이는 최강이니까. 위에 짜증나는 몇 놈 빼면.”

어째 미묘한 최강이랄까. 하지만 시온 알테미스는 웃거나 기회를 노리는 대신 시현을 보았다.

“전력을 파악했으면 한다.”

“그쪽도 제대로 보여준 카드가 없잖아?”

대답한 것은 클레어였다. 시현은 그런 클레어를 보았고, 주저없이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카레를 먹고 있을 때는 얼빠진 모습을 자주 보이지만 그녀는 왕이었다. 세상 일광의 퍼스트 블러드. 가장 위대한 검사. 이런 일은 시현보다 그녀가 몇 수는 더 위였다.

시온 알테미스는 시선을 시현에서 클레어로 돌렸다. 감정 없는 어조로 말했다.

“미호와 롤랑드. 둘이 합체해서 미호클레스. 우리가 보유한 최고 전력이다.”

미호는 눈을 크게 뜨거나 시온 알테미스를 돌아보거나 하는 어리숙한 짓을 저지르지 않았다. 굳이 이쪽의 패를 다 보여줄 필요는 없다. 그리고 이는 롤랑드도 잘 아는 바였다. 두 사람은 최고라 지목받은 것에 쑥스러워하는- 혹은 자랑스러워하는 표정을 지었다.

클레어는 손가락을 들어 시온을 가리켰다.

“당신은?”

“그것과 호각.”

“합체를 보여줘.”

“이유는?”

“얼마나 약한지 알아야 내버려두거나 지켜줄 타이밍을 잡을 수 있으니까. 충분히 상대할 수 있는 잡병들한테서까지 지켜줄 필요는 없잖아?”

팀플레이를 하기 위해서는 서로간의 전력을 명확히 알 필요가 있었다. 맞는 말이었다. 그래서 시온은 클레어에게 턱짓했다.

“그쪽 카드는?”

클레어는 지겹다는 듯 고개를 내저었다.

“사실 이런 짓 할 필요도 없어. 너네 적이 뭐하는 놈들인지는 몰라도 시현이 혼자 다 쓸어버릴 수 있거든. 애당초 시현이 다가오는 거 느끼고 도망쳤다며 걔네들?”

전달한 적이 없는 정보다. 시온 알테미스가 입술 끝을 말아올렸다.

“사바스인가?”

“응, 그러니까 계약금 팍팍 깎아.”

클레어는 화사하게 웃었고 시온 알테미스는 차갑게 웃었다. 온기류와 냉기류가 만나 태풍이 일 즈음 시온 알테미스가 이번에도 어른(?)답게 먼저 시선을 돌렸다.

“힘을 보여줘.”

시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시현도 시온 알테미스가 자신들의 카드를 전부 다 보인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지만, 아직 미호클레스의 힘을 본 것도 아니지만 자신의 힘을 보이는 것을 망설이지 않았다.

이들은 악이 아니다. 그리고 설사 악이라도-

쓰러트릴 수 있다.

시현은 오른손을 들어올렸다.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천검, 클레이르헴 모르.”

황금빛 섬광이 격리실 안을 가득 채웠다.


작가의말

블로그 연재분 다 따라잡았습니다.

그리고 제가 다시 독서실과 스터디를 시작했기에... 연재 속도는 제 기준으로(...) 꽤 느릴 것 같습니다.

SG는 기상곡 이상으로 더 내키는대로 쓰고 있기에 10분 퀄러티(...)는 여전합니다만

아무튼,

오늘 하루도 행복하세요.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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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G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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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 Chapter 14. +15 12.07.09 5,661 99 8쪽
39 용어 해설 #4 +31 12.07.09 5,436 82 15쪽
38 Chapter 13. #3 +18 12.07.08 5,603 95 9쪽
37 Chapter 13. #2 +38 12.07.08 5,626 94 13쪽
36 Chapter 13. +12 12.07.07 5,254 83 10쪽
35 Chapter 12. #4 +23 12.07.07 5,498 104 11쪽
34 Chapter 12. #3 +21 12.07.07 5,461 99 8쪽
33 Chapter 12. #2 +16 12.07.06 5,736 100 7쪽
32 Chapter 12. +31 12.07.05 5,810 105 10쪽
31 용어 해설 #3 +21 12.07.05 5,718 63 9쪽
30 Chapter 11. #3 +13 12.07.05 5,714 95 8쪽
29 Chapter 11. #2 +29 12.07.04 6,053 111 13쪽
28 Chapter 11. +45 12.07.03 6,241 120 18쪽
27 Chapter 10. #2 +19 12.07.03 6,483 99 17쪽
26 용어 해설 #2 +9 12.07.03 6,710 80 20쪽
25 Chapter 10. +30 12.07.02 6,545 121 9쪽
24 Chapter 9. #3 +7 12.07.02 6,253 99 3쪽
» Chapter 9. #2 +18 12.07.02 6,550 99 22쪽
22 Chapter 9. +8 12.07.02 6,480 102 16쪽
21 Chapter 8. #3 +14 12.07.02 6,787 101 17쪽
20 Chapter 8. #2 +3 12.07.02 6,395 102 15쪽
19 Chapter 8. +4 12.07.02 6,513 106 12쪽
18 Chapter 7. #2 +16 12.07.01 6,832 100 14쪽
17 Chapter 7. +7 12.07.01 6,881 94 11쪽
16 Chapter 6. #4 +11 12.07.01 7,182 107 11쪽
15 Chapter 6. #3 +4 12.07.01 7,119 98 16쪽
14 Chapter 6. #2 +13 12.07.01 7,409 96 21쪽
13 Chapter 6. +5 12.07.01 7,348 93 14쪽
12 Chapter 5. #4 +34 12.06.30 7,575 120 16쪽
11 Chapter 5. #3 +7 12.06.30 7,759 97 2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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