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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룡 님의 서재입니다.

SG

웹소설 > 작가연재 > 판타지

완결

취룡
작품등록일 :
2012.08.20 01:36
최근연재일 :
2012.08.20 01:36
연재수 :
10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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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3,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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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520,281

작성
12.07.01 1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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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8
글자
16쪽

Chapter 6. #3

DUMMY

&



미호와 롤랑드는 서둘러 건물 옥상으로 향하는 비상계단으로 자리를 옮겼다. SG인지 아니면 그냥 우리 세상의 괴이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타겟이 건너편 건물 - 미호와 롤랑드가 현재 자리한 건물보다는 꽤 낮은 - 옥상에 있으니 미호클레스로 합체해서 단번에 도약하는 편이 제일 빠르고 간단했기 때문이었다.

아무튼 비상계단 안. 롤랑드와 미호는 서로를 보고 마주섰다.

‘으슥한 곳에서 키스할 거야.’

비상계단이면 으슥한 곳이 맞는 걸까. 사바스의 음흉한 얼굴이 오버랩되며 미호는 정말이지 울고 싶었다.

“…무슨 일 있소?”

롤랑드가 조심스럽게 묻자 미호는 고개를 휘휘 내저었다. 일전에 시온 알테미스 때문에 비키니만 입고 시내를 돌아다녔던 추억이 떠오른 것일까. 해탈한 얼굴로 말했다.

“하자고요, 그래 해요. 키스. 까짓 거 하자고 키스!”

뱃속에 구렁이 아홉 마리는 기를 것 같이 능글맞은 롤랑드였지만 미호가 이렇게 앙탈(?)을 부리니 조심스러워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마냥 시간을 지체할 수는 없었다. 롤랑드는 미호의 허리를 부드럽게 감쌌다.

“그럼, 합시다.”

미호는 까치발을 들며 롤랑드의 목을 끌어안았다. 롤랑드 또한 미호의 몸을 더욱 꽉 끌어안았다.

허리를 감싸는 손길이 이제는 익숙할 지경이라니 원.

미호는 눈을 감고 입술을 맞추었다. 입을 벌려 서로의 혀를 섞었다.

‘역시 능숙해! 뭐하던 작자야, 이 인간!’

혀 놀림이 보통 예사로운 게 아니었다. 더욱이 허리를 감싼 손길이 자꾸만 슬금슬금 기어 올라온다. 이 인간이 대체 어딜 만지려고!

‘이익! 일단 합체다!’

피는 영혼의 통화.

하나 되는 영혼.

정령합체, 미호클레스-!

순백의 빛이 작렬했다. 둘이 있던 자리에 하나가 섰다.

‘빨리 옷 챙겨요!’

“알았소.”

롤랑드는 기타 케이스를 열어 듀렌달을 꺼낸 뒤 빈 자리에 미호의 옷가지들을 챙겨 넣었다.

‘으으… 정말 싫다.’

어쩔 수 없다지만 롤랑드가 미호 자신의 속옷까지 챙기는 모습이 영 보기 껄끄러웠다. 기타 케이스를 봉한 롤랑드는 서둘러 문을 열고 옥상으로 나섰다.

“아직 있군.”

정령합체를 통해 훨씬 밝아진 시야에 검은 무언가가 포착되었다. 옥상 위인데다가 하늘이 어둑어둑한 지라 보통 사람들은 뭔가가 있는 것도 모르겠지.

‘그런데 이 인간은 커피 마시다 말고 그걸 어떻게 안 거지?’

미호는 소박한 의문을 품었지만 굳이 묻지는 않았다. 롤랑드가 옥상 난간을 박찼다. 높이만 해도 수십 미터, 뛰어넘어야 하는 거리도 수십 미터. 하지만 조금의 망설임도 없었다. 합체로 증폭된 요력은 롤랑드에게 거의 비행에 가까운 도약 능력을 선사했다.

그리고 착지 직전.

검은 무언가도 미호클레스의 존재를 눈치 챈 듯 돌연 고개를 들었다. 바위를 연상시키는 검고 거대한 몸에 두 장의 박쥐 날개. 날카로운 엄니가 돋아난 무서운 얼굴은 생명체 보다는 차라리 석상에 가까웠다.

‘가고일?’

롤랑드가 옥상 위에 착지했다. 가고일을 연상시키는 괴물은 롤랑드 쪽으로 돌아섰지만 딱히 공격적인 모습을 보이진 않았다.

‘표정이 없으니 하나도 모르겠네.’

‘내게 맡기시오.’

미호에게 마음속으로 언질한 롤랑드는 착지를 위해 굽혔던 무릎을 펴 똑바로 서며 듀렌달을 들어올렸다.

“나는 샤를마뉴 대왕의 기사 롤랑드, 그리고 함께하는 것은 아리따운 레이디 윤이다. 넌 누구냐!”

손발이 오그라드는 대사에 미호는 영혼 상태이지만 얼굴에 열이 오르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아, 아리따운이라니.

괴물은 롤랑드의 얼굴과 날카로이 날을 세운 듀렌달을 번갈아 보았다. 그리고 이내 입을 열었다.


“롤랑드? 미치광이 오를란도?”

생각지도 못한 청량한 목소리, 거기다 유창한 한국어였다. 뿐만 아니라 그 내용. 오를란도는 롤랑드를 이탈리아식으로 부르는 이름이었다. 그리고 미치광이 오를란도는 요녀 안젤리카에게 이용당하고 버려진 롤랑드가 광인이 되어 날뛰던 시절을 담은 이야기였다.

오를란도가 곧 롤랑드라는 사실까지는 롤랑드가 알 리가 없었지만 연달아 단어가 나왔으니 대강이나마 낌새를 못 채면 바보이리라. 롤랑드는 경계하듯 눈을 가늘게 떴고, 미호는 또 다른 의미로 긴장했다. 미치광이 오를란도까지 언급한걸로 보아서는 우리 세상의 괴이, 그것도 문학쪽에 제법 관심이 있는 괴이인가?

그런 둘의- 보이기에는 롤랑드뿐이지만- 의 반응에 가고일을 닮은 괴물은 적의가 없다는 듯 두 손을 들어보였다.

“아, 실례. 워낙에 유명한 이름인지라.”

“…이해하오.”

유명한 이름이란 걸 이해한다는 걸까? 분명히 롤랑드에게는 롤랑의 노래나 그와 관련된 서적은 반입이 금지되었을 텐데?

미호는 어쩐지 모르게 뜨끔한 기분이었지만 지금 중요한 것은 그런 것이 아니었다. 괴물은 여전히 자신에게 겨누어진 롤랑드의 듀렌달을 슬쩍 내려다보며 물었다.

“그런데 롤랑드 경, 그대는 하나인데 어찌 둘이라 하오?”

“나는 지금 레이디 윤과 합체한 상태요.”

롤랑드가 별거 아니라는 듯이 즉답했다. 괴물이 조금 의아하다는 듯이 고개를 살짝 기울이자 미호는 롤랑드의 입을 통해 말했다.

“조직의 윤미호입니다. 가고일이신가요?”

같은 성대를 사용하나 그 목소리의 톤과 억양이 달랐다. 괴물은 약간이지만 감탄한 듯 작게 웃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가고일, 우리 일족을 그렇게 부르는 자들도 있더구려. 나는 오랜 시간 동안 잠을 잤고, 깨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았소. 그런데 그 사이에 세상이 많이 변한 것 같소.”

목소리를 계속 듣다보니 한국어가 아니었다. 듣는 이로 하여금 그 자신의 모국어로 들리게끔 하는 언어 변환 마법. 시온 알테미스가 사용하고 있는 것과 거의 동등한 수준이었다.

“어디… 출신이신가요?”

미호는 조심스런 어조로 물었다. 모르긴 몰라도 상대방은 꽤나 오랜 세월을 살아왔고, 그에 어울리는 힘을 갖춘 존재임에 분명했다.

가고일은 그 험상궂은 얼굴에 어울리지 않게 부드럽게 웃었다.

“나는 런던에서 왔소. 정확히 어떤 시대였는지는 설명하기가 어렵구료.”

이성도 있고, 당장 보이는 태도는 우호적이다. SG는 아니었지만 분명 신비. 조직이 관리하는 것은 SG만이 아니었다.

“그럼 저희와 함께 가실래요? 이곳은 런던에서 아주 먼 곳이라 돌아가시는데 도움이 필요 하실 거예요.”

살가운 목소리로 그리 말해보았다. 물론 소체가 되는 것이 롤랑드이다보니 어찌보면 좀 거북한 목소리였지만 억양과 톤에는 여성 특유의 부드러움이 담겨 있었다.

하지만 상대는 미간을 찌푸렸다.

“선의는 고맙지만… 그거 혹시 강제요?”

핵심을 찌르는 물음이었다. 미호는 약간은 주저하며 말했다.

“음… 그런 건 아니지만, 솔직히 말해서 그쪽은 현대를 살아가는 인간들에게 위협이 될 수도 있으니까요. 함께 가주셨으면 합니다.”

하며 고개도 살짝 숙였다. - 물론 겉으로만 보면 아리따운 처자가 귀엽게 고개를 숙이는 게 아니라 말만한 총각이 무뚝뚝하게 고개를 숙이는 거였지만 -

가고일은 미호의 제안을 숙고하듯 천천히 자신의 턱을 쓰다듬었다.

“흐음, 일단은 타당한 의견이구려. 하지만 그렇기에 꺼려지기도 하는구려.”

이도저도 아닌 말이었지만 미호는 인내심을 발휘했다. 롤랑드에게도 참으라는 말을 잊지않고 전한 뒤 무어라 말을 이으려 했다. 하지만 상대가 먼저 말을 꺼냈다.

“그보다 우선 통성명을 마저 하도록 하겠소. 나는 거암의 칼리번이요.”

가고일이 다시 웃으며 악수를 청하듯 한 손을 내밀었다.

“네, 칼리번 씨 만나서 반갑습니다.”

미호는 그리 말하며 롤랑드의 왼손을 내밀어 악수를 하려 했지만 롤랑드가 그 같은 요청에 따라주지 않았다.

‘롤랑드!’

‘진정하시오, 레이디 윤. 우호적인 분위기는 좋지만 악수는 위험한 행위요.’

악수는 근거리에서 한쪽 손을 맡기는 행위였다. 상대가 어떤 이능을 보유했는지 모르는 상황에서 섣불리 할 수 있는 제스츄어가 아니었다.

미호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아예 무시할 수는 없지 않은가.

‘좋아요, 그럼 말이라도 제대로 해요.’

미호는 다시 롤랑드의 성대와 입을 통해 말을 하고자 했다. 하지만 바로 그 순간이었다.

날카로운 충격이 미호와 롤랑드의 영혼을 가격했다. 이미 몇 번이나 겪어본 느낌이었다.

“레이디 윤?!”

롤랑드가 제자리에서 비틀거리며 황망한 목소리를 토했다. 미호는 그런 롤랑드를 보았다. 보았다? 분리?

미호는 눈을 껌벅였다. 여우귀도, 꼬리도 달고 있지 않은 롤랑드. 그리고 살을 에는 옥상의 차가운 바람.

바람.

살을 에는?

“꺄아아아아악-!”

합체가 왜 풀렸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풀렸다. 그리고 그것은 미호가 알몸으로 분리되었다는 것을 의미했다. 미호는 두 손으로 어깨를 감싸며 제자리에 주저앉았다. 또 이런 꼴이라니! 더욱이 이번엔 롤랑드랑 단 둘이 있는 것도 아닌데!

“지, 진정하시오!”

롤랑드가 다급히 외치며 급한 김에 웃통을 벗으려 했다. 하지만 그보다 앞서 칼리번이 움직였다.

거의 반우는 얼굴로 고개를 푹 숙이고 있던 미호는, 온 몸을 감싸는 따스함에 저도 모르게 순간 고개를 들었다. 미호의 전신을 에워싼 것은 새카만 무언가. 정체를 알 수 없는 것이었지만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따스하고 좋았다.

“칼…리번 씨?”

미호는 눈을 크게 뜨며 물었다. 그럴 수밖에. 자신 앞에 서 있는 것은 방금까지의 가고일이 아니라 훤칠한 키에 잘생긴 정장 차림의 영국 신사였으니까.

“인간형이오.”

짙은 갈색 머리칼에 고급스런 느낌이 드는 턱수염, 그리고 영리해 보이는 푸른 눈동자. 살짝 윙크한 칼리번은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자 미호의 몸을 감싸고 있던 정체불명의 검은 무언가가 환한 빛을 내더니 순식간에 검은 고딕 드레스로 변모했다.

언제나 이능과 함께하고 있는 미호였지만 눈을 휘둥그레 뜰 수밖에 없었다. 칼리번은 웃으며 그런 미호에게 손을 내밀었다. 주저앉아 있던 미호가 반사적으로 마주 손을 내미자 부드럽게 감싸 쥔 뒤 그 손등에 입 맞추었다.

“롤랑드 경의 말대로 아름답구려.”

감미로운 목소리엔 여심을 꿰뚫는 날카로움이 숨겨져 있었다. 더욱이 그 잘생긴 얼굴. 미호는 지금까지와는 다른 의미로 얼굴을 붉혔고, 저도 모르게 마주 웃고 말았다.

칼리번은 미호를 일으켜 세웠다. 그리고 그 옆에서 꿔다놓은 보릿자루처럼-사실 뭔가 살짝 화가 난 듯한 얼굴이었지만- 웃통을 벗다 만 자세로 선 롤랑드를 슥 돌아보더니 다시 미호의 어깨에 가볍게 손을 얹으며 말했다.

“아무튼 함께 가도록 합시다, 레이디 윤.”

“…네.”

미호는 살짝 홀린 듯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고, 롤랑드는 불만스런 얼굴로 입술을 삐쭉 내밀었다.



&



“가고일이군. 가문은 모르겠지만 얼핏 봐도 천 년 이상 산 놈이다.”

3시간 뒤, 시온 알테미스의 방. 숙소라기보다는 연구실 혹은 진료실을 연상시키는 하얀 방에는 각종 플라스크들이 가득 올라간 탁자와 사이즈가 좀 심하게 큰 간이침대, 홀로 튀는 모양새를 한 붉은 가죽 소파가 있었다. 그중에서 소파 위, 다리를 꼬고 앉은 시온 알테미스는 예의 그 굵은 시가를 손에 들고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했다.

하지만 그 맞은 편에 앉아있던 미호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처, 천 년이요?”

천호 이랑의 후예들의 대표격인 일본의 칸젠 야마토도 이제 겨우(?) 칠백 살이었다. 그런데 천 년을 넘게 살았다니. 전 세계를 뒤져도 그 정도로 오래 산 요괴가 몇이나 될까?

하지만 시온 알테미스는 여전히 별일 아니라는 투로 말했다.

“뭐, 영국에야 아직 가고일 일족이 몇 남아있으니 그쪽으로 넘기면 되겠지. 그보다 합체가 풀렸다고?”

“네.”

미호가 얼른 고개를 끄덕이자 시온 알테미스는 미간을 살짝 좁혔다. 시가 연기를 길게 토하며 눈을 살짝 내리깔았다.

“생각해보면 지속시간이 있는 거야 당연하지. 여태까지 실험해보지 않은 게 이상했던 거다.”

사실 합체는 늘 풀렸으니까. 처음 다인슬레프에게 대항했을 때도 그러했고, 시내 한복판에서 대혈전을 벌일 때도 그러했다.

반쯤 핀 시가를 재떨이에 내려놓은 시온 알테미스는 우아하게 턱을 괴었다.

“하지만 이상하군, 5분 남짓 만에 풀릴 합체는 아니었을 텐데.”

격렬한 전투를 하면서도 5분 이상을 너끈히 버티던 합체였다. 그런데 평범하게 대화만 했는데 휙 풀려버리다니.

시온 알테미스는 눈동자를 굴렸다. 작게 자른 롤케이크를 토끼마냥 오물오물 씹어 먹는 미호를 보며 생긋 웃었다.

“싸 줄 테니 가져가거라.”

친애의 정이 듬뿍 묻어나는 말이었지만 미호는 순간 켁켁거리며 가슴을 칠 수밖에 없었다. 정말이지 시온 알테미스 이 작자는 같은 여자한테 왜 이런단 말인가? 하지만 어쩌랴, 상대는 윗선 오브 윗선인데. 미호는 어설프게나마 영업용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사실 이 롤케이크 엄청나게 맛있었으니까. 지난번 호두파이와 도저히 우열을 가릴 수 없을 천상의 맛이었다.

아무튼 미호는 어설프게 웃고, 시온 알테미스는 그런 미호를 사랑스럽다는 듯이 바라볼 즈음이었다.

뚜우-뚜우-뚜우-

소심하기 짝이 없는 호출음이 벽에 부착된 스피커에서 흘러나왔다. 슬슬 시온 알테미스의 시선이 부담스러워지던 참이었던 미호는 재빨리 반응했다.

“앨리스?”

부르자 바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사랑하는 요원님, 지부장님의 호출입니다.”

“뭐지?”

되물은 것은 미호가 아닌 시온 알테미스였다. 딱딱하면서도 차가운 목소리에 스피커 너머의 목소리는 잔뜩 움츠린 어조로 답했다.

“그… 금일 부로 대한민국 지부에 몸을 의탁한 가고일 칼리번이 미호 요원과의 면담을 원하고 있습니다. 데려온 사람이 끝까지 책임지라는데요….”

마지막에 가서는 거의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다.

시온 알테미스가 코웃음을 쳤다.

“가고일 주제에 건방지군.”

내가 가서 손 좀 봐줘야겠어-라는 말이 이어지면 딱인 표정이랄까. 미호가 손을 번쩍 들며 과장스럽게 일어섰다.

“제가 갈게요! 제가 갑니다!”

“하지만 이제 막 먹기 시작했잖느냐.”

시온 알테미스가 탐탁치않다는 듯 미간을 찌푸리며 탁자 위에 놓인 롤케이크를 가리켰다. 시온의 말마따나 이제 겨우 한 조각을 반이나 먹었으려나.

하지만 미호는 헤실헤실 웃으며 하얀 종이 상자에 롤 케이크를 척척 옮겨 담았다.

“싸 가면 되죠. 감사합니다, 맛있게 먹을게요.”

국어책을 읽는 듯 하면서도 어딘지 모르게 싹싹하다. 시온 알테미스는 그런 미호의 태도가 썩 마음에 들지 않는 듯 했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뒷정리가 끝나면 한 번 찾아가마. 네 합체술에 대해 연구할 것도 많으니.”

말을 마치며 혀로 입술을 살짝 핥는다.

오싹하다 못해 소름이 돋았지만 미호는 그래도 웃었다. 하하호호 바보처럼 소리를 내며 롤 케이크가 든 하얀 종이 상자를 집어 들더니 재빠르게 고개 숙여 인사하고 방을 나섰다.

그야말로 전광석화.

시온 알테미스는 못내 아쉽다는 얼굴로 한숨을 살짝 쉬더니 아까 내려놓았던 시가를 다시 입에 물었다. 그리고 이제까지 까먹고 있던 또 한 명의 방문자에게 고개를 돌렸다.

“뭐하나. 할 일 없으면 나가라.”

소파 귀퉁이, 말없이 앉아있던 롤랑드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스피커를 슥 한번 돌아보더니 그대로 방을 나섰다.

시온 알테미스는 그런 롤랑드에게 관심을 주는 대신 시가를 맛있게 빨았다. 손을 뻗어 아까 전 미호가 가져온 파일을 펼쳤다.

“거암의 칼리번….”

천 년 이상을 산 가고일.

“별 거 아니겠지.”

작게 중얼거린 시온 알테미스는 다시 파일을 덮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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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Chapter 13. #3 +18 12.07.08 5,603 95 9쪽
37 Chapter 13. #2 +38 12.07.08 5,626 94 13쪽
36 Chapter 13. +12 12.07.07 5,254 83 10쪽
35 Chapter 12. #4 +23 12.07.07 5,498 104 11쪽
34 Chapter 12. #3 +21 12.07.07 5,461 99 8쪽
33 Chapter 12. #2 +16 12.07.06 5,736 100 7쪽
32 Chapter 12. +31 12.07.05 5,810 105 10쪽
31 용어 해설 #3 +21 12.07.05 5,718 63 9쪽
30 Chapter 11. #3 +13 12.07.05 5,713 95 8쪽
29 Chapter 11. #2 +29 12.07.04 6,053 111 13쪽
28 Chapter 11. +45 12.07.03 6,241 120 18쪽
27 Chapter 10. #2 +19 12.07.03 6,483 99 17쪽
26 용어 해설 #2 +9 12.07.03 6,710 80 20쪽
25 Chapter 10. +30 12.07.02 6,545 121 9쪽
24 Chapter 9. #3 +7 12.07.02 6,253 99 3쪽
23 Chapter 9. #2 +18 12.07.02 6,549 99 22쪽
22 Chapter 9. +8 12.07.02 6,479 102 16쪽
21 Chapter 8. #3 +14 12.07.02 6,787 101 17쪽
20 Chapter 8. #2 +3 12.07.02 6,395 102 15쪽
19 Chapter 8. +4 12.07.02 6,512 106 12쪽
18 Chapter 7. #2 +16 12.07.01 6,832 100 14쪽
17 Chapter 7. +7 12.07.01 6,881 94 11쪽
16 Chapter 6. #4 +11 12.07.01 7,182 107 11쪽
» Chapter 6. #3 +4 12.07.01 7,119 98 16쪽
14 Chapter 6. #2 +13 12.07.01 7,409 96 21쪽
13 Chapter 6. +5 12.07.01 7,348 93 14쪽
12 Chapter 5. #4 +34 12.06.30 7,575 120 16쪽
11 Chapter 5. #3 +7 12.06.30 7,759 97 2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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