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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룡 님의 서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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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취룡
작품등록일 :
2012.08.20 01:36
최근연재일 :
2012.08.20 01:36
연재수 :
10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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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3,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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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520,281

작성
12.07.02 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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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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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6
글자
12쪽

Chapter 8.

DUMMY

인류 최후의 기함 노틸러스. 관제실에서 무지개 방벽의 상태와 남은 수명을 검토하던 엑스칼리버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신호다!”

외침에 구석에 앉아 지저세계 대탐험을 읽고 있던 아론다이트 또한 일어섰다. 눈을 크게 떴다.

“연결된 건가?!”

엑스칼리버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붉은 눈동자로 세상 너머에서 전해져오는 신호를 읽어 내렸다. 다급하게 소리쳤다.

“발뭉을 불러! 어서!”

신호는 언젠가는 끊어진다. 그 전에 좌표 값을 기록하고 고정된 통로를 만들어야만 했다. 신검의 힘이 필요했다.

“아, 알았어!”

아론다이트가 급히 돌아섰다. 하지만 채 한발자국을 내딛기도 전에 다시 돌아설 수밖에 없었다.

“엑스칼리버?!”

엑스칼리버가 몸을 부르르 떨더니 쿵 소리를 내며 바닥에 쓰러졌기 때문이었다. 아론다이트는 얼른 쓰러진 엑스칼리버의 머리를 받쳐 안았다.

“엑스칼리버! 괜찮아? 엑스칼리버!”

정보 과부하인가? 그렇지 않으면 신호에 무언가 해로운 것이 섞여 있었던 것일까? 다급해진 아론다이트는 엑스칼리버의 뺨을 후려쳤다. 뭔진 몰라도 정신을 잃으면 더 위험한 지경에 처할 수 있었다.

양 뺨이 발갛게 부어오르자 엑스칼리버가 번쩍 눈을 떴다. 아론다이트가 기뻐 외쳤다.

“엑스칼리버!”

“신호가 끊어졌어!”

엑스칼리버가 얼굴을 일그러트렸다.



“피가 부족해.”

다인슬레프는 하늘을 향해 뻗어 올렸던 손을 내렸다. 칼리번이 눈썹을 꿈틀거렸다.

“적합한 피잖아! 그런데 부족하다니?!”

다인슬레프는 적지 않은 피를 삼켰다. 못해도 컵 두 세 개는 가득 채울 양. 솔직히 미호의 몸 상태가 걱정될 정도로 - 죽은 적합자의 피는 쓸모가 없으니 - 많은 피이거늘.

“아무튼 부족해. 이게 아니야.”

다인슬레프는 더더욱 알 수 없었다. 칼리번이 세상간의 벽을 뚫고 다인슬레프의 존재감을 느낄 수 있었던 것은 다인슬레프가 최고급 적합자인 미호의 피를 취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부족하다니?

“미호!”

빛이 가시자 다인슬레프와 칼리번 사이로 두 사람이 돌진했다. 듀렌달을 높이 든 롤랑드와 아조트 검을 비껴든 시온 알테미스였다.

“시온 알테미스!”

다인슬레프가 시온 알테미에게 마주 고함을 질렀다. 시온 알테미스는 입을 벌렸다. 포효하며 도약함과 동시에 용으로 변모했다. 좁아터진 장소에서 용으로 변신하는 것은 전술상 불리한 행동이었지만 그리했다. 틈을 만들기 위해서였다.

시온 알테미스의 거체가 다인슬레프와 칼리번을 순간적으로나마 완전히 몰아세웠다. 롤랑드는 그런 셋에게 관심을 두지 않았다. 여전히 돌채찍에 고정된 상태로 천장 부근에서 피를 흘리고 있는 미호를 향해 뛰었다. 도약하며 검을 휘둘렀다.

“으아아아아!”

날카로운 섬광이 단번에 몰아쳤다. 미호의 사지를 고정하고 있던 네 개의 돌채찍을 한번에 모두 잘라낸 롤랑드는 추락하는 미호를 한 손으로 끌어안았다. 착지와 동시에 문쪽으로 달렸다.

“아아아아아아악-!”

등 뒤로 시온 알테미스의 비명소리가 들렸다. 땅에서 돋아난 거대한 돌주먹이 시온 알테미스의 배를 후려쳤다. 벽에서 돋아난 피의 손이 시온 알테미스의 목을 졸랐다.

“오행진!”

데이비드 킴이 바닥을 짚으며 제압된 오행진의 기능을 되살렸다. 록허트가 멧돼지로 변신해 돌진했다. 사바스가 두 개의 뿔과 두 장의 날개를 모두 꺼냈다. 양 손을 앞으로 뻗으며 마법을 발사해 시온 알테미스의 목을 조르는 피의 손을 파괴했다.

“미호! 괜찮소?! 미호!”

단번에 문까지 타넘은 롤랑드는 미호를 바닥에 눕히고 다급히 물었다. 등을 안은 팔이 피로 축축해졌다. 피가 멎을 생각을 하지 않았다.

“일어나시오! 미호!”

롤랑드가 얼굴을 가까이하고 소리쳤다. 미호가 어렵사리 눈을 떴다. 롤랑드를 보았고, 힘겹게 입을 열었다.

“합…체….”

롤랑드는 얼굴을 구겼다. 합체라니. 지금 이런 몸상태로 합체를 하자는 건가? 다 죽어가면서?

롤랑드는 이를 악물었다. 확실히 합체가 필요했다. 싸우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합체를 해서라도 미호의 출혈을 막아야 했다.

롤랑드는 혀를 깨물었다. 힘없이 입을 벌리는 미호에게 키스했다. 혀를 밀어 넣어 미호의 혀를 당긴 뒤 다시 한 번 깨물었다.

피를 섞었다.

순백의 빛이 일었다.



“저건가?!”

칼리번이 돌연 외쳤다. 그리고 깨달았다. 미호도 적합자. 롤랑드도 적합자. 그리고 그 둘의 합체.

칼리번은 미호의 피를 강제흡혈 한 다인슬레프의 힘을 느낀 것이 아니었다.

미호클레스와 다인슬레프의 최초의 조우, 그때 삼킨 겨우 몇 방울의 피로 증폭된 힘을 느낀 것이었다.

합체의 주는 미호다. 잡담을 나누는 척 윤미호에게 전해들은 이야기대로라면 어찌되었건 합체의 메인이 되는 것은 요호 윤미호이다. 윤미호를 확보해야 한다. 그렇게 하면- 그렇게 하면-

칼리번은 순간 몸을 부르르 떨었다. 무시무시한 기운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불길하기 짝이 없는 예감이 등뒤를 스쳤기 때문이었다.

‘도망치자!’

피의 거인을 불러내 시온 알테미스와 록허트를 압박하고 있던 다인슬레프는 텔레파시로 전해진 칼리번의 말에 인상을 구겼다.

‘무슨 소리냐. 혀…형제?’

기억이 불완전한 다인슬레프가 약간은 망설이는 어조를 섞어 되물었다. 칼리번은 돌벽을 세워 사바스의 마법을 차단하며 다시 한 번 텔레파시를 보냈다.

‘기억이 돌아오고 있군. 아무튼 지금은 싸울 때가 아니다. 별의 아이가 오고 있다.’

‘별의…아이?’

기억이 불완전하긴 했으나 다인슬레프는 본능적으로 알았다. 별의 아이는 적이다. 대적이다. 일곱이 아닌 둘로는 맞설 수 없는 적이다.

다인슬레프가 피의 거인을 돌진시킴과 동시에 폭발시켰다. 칼리번이 넓게 돌벽을 세워 폭발과 일행으로부터 자신들을 차단했다.

시온 알테미스가 룬 마법으로 폭발을 막았다. 데이비드 킴이 오행진으로 다인슬레프와 칼리번의 영적 영지가 지금까지와 다른 움직임을 보이고 있음을 포착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도망치려 하고 있다.

이대로 도망치게 놔둬야 하는 걸까?

아니면 어떻게든 방해해야만 하는 걸까?

놈들은 대체 왜 도망치려하는 걸까?

그 순간 돌벽이 사라졌다. 바짝 붙어 선 다인슬레프와 칼리번이 모습을 드러냈다.

칼리번이 누구에게랄 것 없이 말했다.

“다음에 봅시다.”

두 사람의 모습이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



생명은 혼과 육과 백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 본질인 영혼과, 영혼의 그릇인 육신과, 그 둘을 이어주는 백.

요호는 본래가 정령에 가까운 존재로 육보다는 영이 발달한 존재이다. 이 때문에 요호들은 다른 요괴들과 달리 육신의 힘에 의존하기 보다는 영과 백을 이용한 요술이나 선술에 능했다. 격세유전으로 태어난 반인반요인 윤미호 또한 마찬가지로, 다른 요호들에 비해 육의 비중이 높았지만 그녀 또한 정령에 가까운 존재라 할 수 있겠다.

이계의 대정령사 엄세진이 만들어낸 합체주술 라므클레스는 백의 기운을 확장 시켜 본래 서로 다른 존재인 두 영을 하나로 묶는 기술이었다.

이질적인 두 영혼을 아무런 부작용 없이 하나로 합쳐 시너지 효과만을 얻는다.

본래라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별의 아이인 엄세진은 상식을 벗어난 영혼친화력을 가지고 있었고, 이를 바탕으로 다른 영혼들을 자신의 영혼에 합신시킬 수 있었다.

미호는 별의 아이도 아니고, 영혼 친화력이 세진만큼 뛰어난 존재도 아니었다. 그런 그녀가 롤랑드나 시온 알테미스와 합체할 수 있었던 것은 세 사람의 영혼의 파장이 거의 일치한다는- 실로 천만 분의 일의 가능성을 뛰어넘은 기적 덕분이었다.

미호클레스는 두 영혼을 하나로 묶는다.

영혼의 통화인 피를 매개로 서로의 백을 연결하여 영혼의 교류를 골자로 한 합신을 이룬다.

미호는 그래서 볼 수 있었다.

롤랑드가 흥분했기 때문이었다.

롤랑드가 ‘다시 잃을지도 모른다는 공포’ 때문에 잊고자 했던 과거를 강하게 상기했기 때문이었다.

아름다운 여인이 보였다.

엉덩이 근처까지 내려오는 길고 새카만 머리칼 사이로 영리해 보이는 진청색 눈동자가 도드라졌다.

별처럼 빛나는 미모에 어울리는 자신만만한 미소가 얼굴에 걸려있었다.

매혹적이었다. 시온 알테미스와 비슷한 분위기를 풍겼다. 옷을 입고 있음에도 야한 느낌이 들었다.

쏟아지는 별빛 아래서 그녀를 보고 있었다.

누가.

내가.

내가?

롤랑드가.

하얗고 가늘고 긴 손가락으로 롤랑드의 뺨을 어루만졌다. 롤랑드는 주인의 손길을 만끽하는 강아지마냥 황홀해 했다.

가슴이 타고 있었다.

애간장이 녹고 있었다.

감출 수 없는 욕구가 온몸에서 발산되었다.

미호는 여자가 누군지 알았다. 깨달았다.

안젤리카.

롤랑드의 마음을 가지고 논 여자.

갈라프론의 딸. 첩자. 샤를마뉴 대왕의 12성기사 가운데 필두인 롤랑드를 유혹하고 유린하고 이용하고 끝내는 버린 여자.

롤랑드가 진심으로 사랑한,

롤랑드를 단 한 번도 진심으로 사랑하지 않은,

그 여자.

롤랑드가 그 손등에 입맞추었다. 그 발등에 입맞추었다. 수없이 매혹을 걸어도 뚱한 표정만 짓던 사내가 노예라도 된 마냥 안젤리카의 사랑을 구걸했다.

“롤랑드, 나는 갈 거야. 가엾고 어리석은 사람.”

안젤리카는 사라센의 목동인 메도르와 사랑에 빠졌다. 그리고 그렇기에 이제는 첩자질 대신 자신의 사랑을 찾아 떠나기로 하였다.

안젤리카는 언제나처럼 화사하게 웃었다. 그 미소엔 슬픔이나 연민이 담겨있지 않았다. 같은 여자인 미호는 느낄 수 있었다. 천박한 우월감과 충족된 자존감만이 저 여자의 마음엔 가득했다.

롤랑드가 울었다. 울부짖었다.

미호는 눈을 감고 싶었다. 귀를 막고 싶었다.

보고 싶지 않았다. 듣고 싶지 않았다.

일어나 롤랑드! 뭐하는 짓이야! 저깟 여자가 뭐라고!

하지만 롤랑드는 일어나지 않았다. 12성기사의 필두이자 프랑크 왕국 제일의 기사인 그는 추하게 바닥에 엎드려 사랑을 애걸했다. 자신을 버리지 말라고 울며 빌었다.

너무 보기 흉했다.

너무 추잡해 보였다.

너무…

가엾어 보였다.

쏟아지는 별빛과 부는 바람. 여기저기 들려오는 풀벌레 소리.

안젤리카는 몸을 낮췄다. 자신의 주군인 샤를마뉴 대왕 외에는 그 누구 앞에서도 무릎을 꿇지 않았던 용맹한 기사가 납작 엎드려 비는 것을 보며 즐겁게 웃었다. 그 귓가에 입술을 가져갔다. 마지막 동정을 베풀어 속삭여주었다.

“롤랑드, 넌 잘해주었어. 날 위해 정말로 많은 일들을 해주었지. 그러니 감사의 뜻을 담아 진실을 말해줄게. 네가 앞으로 살아가는데도 큰 도움이 될 거야.”

롤랑드는 안젤리카의 목소리에 취했다. 그 내용을 떠나 그 목소리에 빠져들었다. 어쩌면 다시는 듣지 못 할 목소리. 그 목소리. 그….

롤랑드! 듣지 말아요! 듣지 마!

미호는 알았다. 안젤리카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았다. 그렇기에 소리쳤다. 들어서는 안 된다. 저 여자는 지금 롤랑드를 위해 저 말을 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저 롤랑드라는 당대 최고의 기사를 자기 마음대로 가지고 놀았다는 천박한 우월감을 채우기 위해 마지막 상처를 주려는 것뿐이다.

그러니까 듣지 말아요! 들으면 안 돼!

“롤랑드.”

롤랑드는 귀를 열었다. 눈물을 흘리며 안젤리카를 보았다. 안젤리카가 롤랑드의 뺨을 어루만지며 말했다.

“나는 널 사랑한 적이 없어. 단 한 번도. 그저 널 이용했을 뿐. 너와 입맞춤을 할 때도, 너와 잠자리를 같이 할 때도, 난 너를 단 한 순간도 사랑하지 않았어. 그러니 그만 사라져. 이 추잡한 놈아.”

롤랑드의 눈동자가 빛을 잃었다. 안젤리카가 화사하게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쏟아지는 별빛과 부는 바람. 여기저기 들려오는 풀벌레 소리.

안젤리카가 떠났다.

롤랑드의 마음이 부서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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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 용어 해설 #4 +31 12.07.09 5,436 82 15쪽
38 Chapter 13. #3 +18 12.07.08 5,603 95 9쪽
37 Chapter 13. #2 +38 12.07.08 5,626 94 13쪽
36 Chapter 13. +12 12.07.07 5,254 83 10쪽
35 Chapter 12. #4 +23 12.07.07 5,498 104 11쪽
34 Chapter 12. #3 +21 12.07.07 5,461 99 8쪽
33 Chapter 12. #2 +16 12.07.06 5,736 100 7쪽
32 Chapter 12. +31 12.07.05 5,810 105 10쪽
31 용어 해설 #3 +21 12.07.05 5,718 63 9쪽
30 Chapter 11. #3 +13 12.07.05 5,713 95 8쪽
29 Chapter 11. #2 +29 12.07.04 6,053 111 13쪽
28 Chapter 11. +45 12.07.03 6,241 120 18쪽
27 Chapter 10. #2 +19 12.07.03 6,483 99 17쪽
26 용어 해설 #2 +9 12.07.03 6,710 80 20쪽
25 Chapter 10. +30 12.07.02 6,545 121 9쪽
24 Chapter 9. #3 +7 12.07.02 6,253 99 3쪽
23 Chapter 9. #2 +18 12.07.02 6,549 99 22쪽
22 Chapter 9. +8 12.07.02 6,480 102 16쪽
21 Chapter 8. #3 +14 12.07.02 6,787 101 17쪽
20 Chapter 8. #2 +3 12.07.02 6,395 102 15쪽
» Chapter 8. +4 12.07.02 6,513 106 12쪽
18 Chapter 7. #2 +16 12.07.01 6,832 100 14쪽
17 Chapter 7. +7 12.07.01 6,881 94 11쪽
16 Chapter 6. #4 +11 12.07.01 7,182 107 11쪽
15 Chapter 6. #3 +4 12.07.01 7,119 98 16쪽
14 Chapter 6. #2 +13 12.07.01 7,409 96 21쪽
13 Chapter 6. +5 12.07.01 7,348 93 14쪽
12 Chapter 5. #4 +34 12.06.30 7,575 120 16쪽
11 Chapter 5. #3 +7 12.06.30 7,759 97 2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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