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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룡 님의 서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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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취룡
작품등록일 :
2012.08.20 01:36
최근연재일 :
2012.08.20 01:36
연재수 :
10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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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3,4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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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520,281

작성
12.07.02 1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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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쪽

Chapter 10.

DUMMY

일시적 우호관계를 맺었지만 상황에 따라 언제든 적으로 돌아설 가능성이 높은 집단 앞에서 밑천을 드러내야 할 상황이라면, 크게 두 가지 선택지 가운데 하나를 고를 수 있다.

하나는 적으로 돌아섰을 경우를 대비해 비장의 카드를 숨기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냥 카드를 전부 다 보여주는 것이다.

상대가 감히 자신을 적으로 삼을 엄두조차 내지 못하도록.



황금색 클레이모어로부터 어마어마한 영력이 방출되었다. 미호는 저도 모르게 입을 벌렸고 시온 알테미스는 이를 악물었다. 저게 별의 아이의 총력인지 뭔지 알 수 없지만- 당장 저렇게 검을 들고 있기만 한데도 시온클레스 이상의 힘이 느껴졌다. 영혼의 힘을 느끼는데 미숙한 롤랑드는 조금은 다른 의미로 인상을 굳혔다. 클레이모어를 쥐기 전과 쥐고 난 후의 시현은 달랐다. 그 기세가, 그 자세가, 모든 것이 보다 전투적으로 변했다.

시현은 그런 일행을 보았다. 무표정한 얼굴로 비어있는 왼손을 들어올렸다. 낮은 목소리로 불렀다.

“천검, 에잇 브레이커.”

시현의 왼손에서 이번엔 붉은 섬광이 내뿜어졌다. 그리고 쥐어진 것은 선홍색의 검. 이 자리에 있는 것만으로도 질식할 것만 같은 어마어마한 영압에 미호는 결국 주저앉고 말았다. 시온 알테미스는 식은땀을 흘리며 시현을 보았다.

시현의 표정은 평온했다.

두 자루의 검을 들어올려 교차시켰다. 그대로 다시 양손을 휘둘렀다.

미호는 반사적으로 눈을 감았다. 롤랑드는 그런 미호에게 뛰어들어 미호를 끌어안음과 동시에 자신의 등으로 정면을 막았다. 시온 알테미스는 다급히 룬 방벽을 펼쳐 일행을 보호했다.

하지만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방안의 모든 존재들을 짓누르던 무시무시한 영압이 사라졌다. 시현은 빈손으로 돌아갔다.

“제가 가진 두 자루의 영혼의 검입니다.”

시현은 최대한 우호적으로 웃었지만 시온도 미호도 롤랑드도 웃을 수 없었다. 다인슬레프와 칼리번이 도망친 것도 이해할 수 있었다. 솔직히 처음에 세상이 위기에 대처하기 위해 낳은 별의 아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는 과장 한 번 대단하다고 생각한 미호였지만 이제는 생각을 고쳐먹을 수밖에 없었다.

세상이 위기를 타파하기 위해 낳은 아이가 맞다. 그런 것이 아니면 저런 괴물같은 힘이 설명될 도리가 없었다.

“…그게 ‘전직’의 힘인가.”

“네.”

시온 알테미스는 룬 방벽을 거두었다. 끼리끼리 논다더니. SG-013 검은 불꽃과 정면으로 마주했던 날이 절로 떠올렸다. 놈이 절대적 죽음의 상징인 사신이라면 시현은 너무 밝게 빛나 어찌해볼 도리가 없는 단단한 기사랄까. 이상한 표현이지만 그런 이미지 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롤랑드는 미호를 일으켜 세웠다. 미호는 롤랑드에게 작은 목소리로 감사한 뒤 자세를 바로하고 섰다. 자신이 방금까지 저 괴물의 멱살을 붙잡고 소리를 질렀다니.

“저… 그런데 잠시 자리를 비켜주실 수 있나요?”

시현이 살짝 곤란하단 얼굴로 웃으며 그리 물었다. 시온 알테미스가 미간을 좁혔다.

“왜지?”

“클레어를 다시 부르고 싶은데… 아무래도 옷을 입어야 할 것 같아서요.”

시현은 바닥에 떨어져 있는 하얀 원피스를 가리켰다. 시온 알테미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1분 뒤에 다시 들어오겠다.”

그렇게 말하고 먼저 격리실을 나섰다. 미호는 엉거주춤 그런 시온 알테미스를 따랐고, 미호를 부축하고 있던 롤랑드 또한 격리실을 나갔다.

그리고 1분 후.

“좋아, 이제는 미호클레스라는 걸 보여줘.”

한껏 기가 산 클레어가 당당하게 요구했다. 시온 알테미스는 미호를 돌아보았다.

“합체해라.”

미호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이내 다시 시온 알테미스를 보았다.

“나가서 하고 올게요.”

합체하는 것 자체는 상관 없었지만(?) 아무래도 시현과 클레어 앞에서 하기에는 좀 껄끄러웠다. 이해한 시온이 미호의 청을 수락하려 할 때였다.

“안 돼, 안 돼. 여기서 보여줘. 합체하는 걸 두 눈으로 봐야겠어. 너희가 합체 운운하면서 제 3의 인물을 데리고 올 줄 누가 알아?”

클레어가 손가락을 휘휘 내저으며 말했다. 그런데 어째 표정이 수상쩍다. 타당한 이유를 내세우긴 했지만 사실 그건 별로 신경 쓰지 않는다는 눈치랄까? 짓궂은 장난을 준비하는 악동같은 얼굴이었다.

“으으….”

미호는 잠시 그런 클레어를 바라보더니 이내 한숨을 쉬었다. 시온에게 다시 한 번 매달리는 대신 롤랑드를 돌아보았다.

“…합체해요.”

“…그럽시다.”

클레어는 까르르 웃었고 시현은 한 손으로 자신의 이마를 짚었다. 시온 알테미스는 벌레라도 씹은 얼굴로 클레어를 주시했다.

미호가 까치발을 들고 롤랑드의 목을 끌어안았다.

롤랑드가 미호의 허리를 감싸 안았다.

클레어가 꺄아-하고 작게 감탄했고 시현은 두 사람을 위해 눈을 감고 고개를 다른 곳으로 돌렸다. 시온 알테미스는 의도가 명백한 클레어의 모습에 신경질적으로 시가를 씹었다.

미호가 롤랑드를 보았다.

롤랑드가 미호를 보았다.

두 사람 모두 얼굴이 붉었다. 얼굴을 가까이 했다. 숨결이 서로 맞닿았다. 입술이 닿았다. 혀와 혀가 서로 섞였다.

롤랑드가 미호를 꽉 끌어안았다. 미호가 그런 롤랑드에게 몸을 맡겼다.

혀와 혀가 엉켰다.

그리고 지금까지와는 아주 약간 다른 움직임이 오갔다.

지금까지의 합체는 언제나 일방적이었다.

처음 합체할 때는 혀의 움직임에 있어 미호가 주동적이었고, 그 이후로는 거의 다가 롤랑드가 주동적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서로가 서로의 혀를 탐했다.

미호는 미묘한 기분이 들었다.

뭐라고 해야 할까.

‘이거 생각보다 재밌다…?’

고양감. 기분 좋음. 포근함. 따스함. 그리고-

순백의 빛이 격리실에 번졌다. 여우귀와 꼬리를 단 롤랑드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미호클레스….”

속삭이듯 낮게 말한 롤랑드는 시현을 보았다.

클레어는 호오-하고 짧게 감탄했고 시현은 진지한 얼굴로 롤랑드를 보았다.

예상보다 훨씬 강한 힘이었다. 저 정도면 그 옛날 시현에게 처음으로 절망감이라는 것을 가르쳐주었던 천검 레이커스와도 제법 승부를 다툴 수 있을 것 같았다. 물론 어디까지나 출력면에서지만- 그것만으로도 굉장한 일이었다.

시온 알테미스는 시현이나 클레어보다는 좀 더 복잡한 표정으로 롤랑드를 보았다.

‘합체 효율이 좋아졌군….’

꼬리가 다섯 개에서 여섯 개로 늘었다.

갑자기 합체 효율이 좋아졌다. 이유가 무엇일까?

‘…알만하군.’

키스하는 모습만으로도 알 수 있었다. 미호클레스에 있어 ‘감정’은 꽤나 중요한 요소였다. 그 부분이 지금보다 개선된 것이겠지.

기쁘면서도 껄끄럽다. 저 놈팽이 놈이 기어코 우리 착하고 순진한 아기 고양이를….

“아무튼- 서로간의 카드 공개 타임은 어느 정도 마무리가 된 것 같군. 네 요구대로 아기 고양이와의 만남도 있었고. 이제 다른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장소를 옮겼으면 좋겠군.”

시온 알테미스가 각종 감정들을 시가 연기와 함께 토해내며 그리 말했다. 시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



격리실에서도 시간은 흘렀다. 낮이 지나고 밤이 왔고, 잠을 자야만 하는 시간이 되었다.

미호와 롤랑드는 각자의 침대에 누웠다.

“소등합니다, 안녕히 주무세요, 사랑하는 요원님들.”

미호가 박살낸 스피커 대신 들여온 무전기에서 다정한 목소리가 울림과 동시에 격리실의 불이 꺼졌다.

창문 하나 없기에 완전히 캄캄하다.

그리고 조용하다.

숨 쉬는 것 하나, 뒤척이는 것 하나 모두 다 들릴 정도로.

불이 꺼진지 얼마나 지났을까.

“롤랑드.”

소심한 부름에 기다렸다는 듯한 답변이 시작되었다.

“왜 부르시오, 레이디 윤?”

“자요?”

“그러는 레이디 윤은 주무시고 계시오?”

“우리 둘 다 잠꼬대 하는 게 아니라면 둘 다 깨어있는 거겠죠.”

“그렇구려.”

대화가 끊겼다. 뒤척이는 소리가 들렸다.

“롤랑드.”

“레이디 윤.”

“아까 재보니까 1시간 12분이었죠?”

“여태까지 중에 가장 오랜 합체 시간이었던 것 같소.”

다시 대화가 끊겼다.

“레이디 윤.”

“왜요, 롤랑드?”

“아무 것도 아니오.”

다시 뒤척뒤척.

“롤랑드.”

“레이디 윤.”

“그때 왜 자는 척 했어요?”

“…무슨 말인지?”

“그때요. 합체 후유증으로 다 봤거든요? 시치미 떼지 말고 말해 봐요.”

캄캄하기에 서로의 얼굴을 볼 수 없었다. 약간 떨리는 음성만으로 감정을 추측하기엔 변수가 너무 많았다. 롤랑드는 듀렌달을 불러서 순백의 빛을 내뿜고 싶다는 충동에 시달렸지만 자신을 잘 억눌렀다.

“…나도 잘 모르겠소.”

“…거참 진부하네요.”

“그냥….”

“그냥?”

“기분이 너무 좋았소. 그 포근함이….”

돌아오는 대답이 없었다. 롤랑드는 목구멍 바로 근처까지 올라온 ‘듀렌달!’이란 외침을 간신히 삼켰다.

“로, 롤랑드.”

“레이디 윤.”

뒤척이는 소리가 들렸다. 입술을 달싹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잘 자요.”

“좋은 꿈 꾸시오.”

다시 뒤척이는 소리가 들렸다.

침대는 두 개였고, 두 사람은 각자의 침대에 누워 뒤척거렸다.





꼐속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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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 Chapter 13. #2 +38 12.07.08 5,626 94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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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Chapter 12. #3 +21 12.07.07 5,460 99 8쪽
33 Chapter 12. #2 +16 12.07.06 5,736 100 7쪽
32 Chapter 12. +31 12.07.05 5,810 105 10쪽
31 용어 해설 #3 +21 12.07.05 5,718 63 9쪽
30 Chapter 11. #3 +13 12.07.05 5,713 95 8쪽
29 Chapter 11. #2 +29 12.07.04 6,053 111 13쪽
28 Chapter 11. +45 12.07.03 6,241 120 18쪽
27 Chapter 10. #2 +19 12.07.03 6,483 99 17쪽
26 용어 해설 #2 +9 12.07.03 6,710 80 20쪽
» Chapter 10. +30 12.07.02 6,544 121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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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Chapter 9. #2 +18 12.07.02 6,549 99 22쪽
22 Chapter 9. +8 12.07.02 6,479 102 16쪽
21 Chapter 8. #3 +14 12.07.02 6,787 101 17쪽
20 Chapter 8. #2 +3 12.07.02 6,395 102 15쪽
19 Chapter 8. +4 12.07.02 6,512 106 12쪽
18 Chapter 7. #2 +16 12.07.01 6,832 100 14쪽
17 Chapter 7. +7 12.07.01 6,881 94 11쪽
16 Chapter 6. #4 +11 12.07.01 7,182 107 11쪽
15 Chapter 6. #3 +4 12.07.01 7,118 98 16쪽
14 Chapter 6. #2 +13 12.07.01 7,408 96 21쪽
13 Chapter 6. +5 12.07.01 7,348 93 14쪽
12 Chapter 5. #4 +34 12.06.30 7,574 120 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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